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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73화 (273/299)

< 273화 > 협상 (2)

“리프도 그런 말을 했었지….”

나는 반사적으로 왼손의 촉수를 힐끔거렸다.

침식이라면, 네거티브라면 이것밖에 생각나는게 없다.

하지만, X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게 아니라며 카메라로 된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당신의 왼손의 촉수는...데이터가 부족하지만, 에스더의 위성Satellite화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조금 변질된 것 같지만, 좌표특정과 통신, 타 네거티브들에게 상위존재화 하는 것으로 네거티브로부터 보호…에스더의 의도를 파악해 볼 때 87%확실합니다.]

“위성...뭐?”

[그것 때문에 네거티브화가 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건 당신을 보호해주는 변종으로 추측됩니다.]

촉수 때문에 내가 네거티브인게 아니다?

이게 아니면...왜, 뭐 때문에 내가 네거티브라는 거지…?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해지려 하는 순간, X가 내게 태연한 기계음으로 말했다.

[네거티브는 괴수 바이러스를 사용한 감염공격을 시도, 인류측의 방역 시설이 안정되어감에 따라 눈에 띄는 영향을 보이는 네거티브화는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후, 미세한 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전략을 변경했습니다.]

“바이러스….”

[인류는 네거티브의 시체를 많이 접할수록, 빠르게 네거티브화 되어갑니다.]

네거티브의 시체라면 질릴 정도로 많이 봤다.

보통 사람들보다도 많이...래피드의 습격 현장을 찾아가면서, 날이 갈 수록 더 자주….

방위군에 있을 때도, 회사에 취업하고 난 뒤에는 더욱...래피드가 전투한 현장을 찾아가며 많이 접했다.

[언제부턴가 심한 피로를 느끼진 않았습니까?]

“느꼈는데.”

취업하고 나서, 방위군에서 쫓겨나고 난 뒤,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감은 심해져만 갔다.

다크서클도, 날이 갈 수록 몸이 안 좋아지는 것도 단순히 회사 일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네거티브의 세포는 폐, 위장을 통해 흡수되어 간에 축적됩니다. 당신의 간 옆에는 네거티브의 내장기관, 웹셀이 형성되어있으며, 담관을 통한 호르몬 분비...네거티브와 같이 사고하게 된 이들을 4급 네거티브라 합니다.]

“여, 여기에?”

[거기는 간이 아니라 위장입니다.]

나는 내 배를 손으로 누르며 웹셀인지 뭔지 하는 걸 찾아보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만져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느껴졌던 감각에 대한 기억이 이 근처에 뭔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왼손에 촉수가 있어서 4급 네거티브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네거티브에게 침식당해서 그런 거였다니...생각보다 훨씬 끔찍하다.

[웹셀은 외과적 제거가 불가능합니다. 외부로 노출된 순간 공격성을 띄는 별개의 기생체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거가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제거하면 네거티브가 아니게 되는 거야?”

[...당신은 조금 특이한 경우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X의 말은 나를 이곳에서 내보내주는 것에 더해 내 내장에 달라붙어있는 뭔가를 제거해줄테니, 리프의 시체를 가져와 달라는 뜻이다.

내 몸 속에 그런게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히, 제거하고 싶다.

“그러면….”

곧바로 X에게 시체를 가져다 줄테니 제거해달라고 하려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말을 멈췄다.

...아까 리프가 나를 4급 네거티브라고 할 때, 웹셀에 대한 얘기도 했었다.

웹셀이 정지되어 있다고, 분명히...말하지 않았었나?

“...내 웹셀은 정지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어?”

확실히 들었던 것 같은 사실을 지적하자, X는 혀를 차는 것처럼 찌직, 찌지직 하고 전기가 타는 소리를 냈다.

말하고 나니 기억이 더 세세해진다.

분명 리프는 내게 웹셀은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고, 에스더의 촉수가 웹셀을 못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고 그랬다.

그럼 제거 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웹셀이 정지되어 있다 해도 제거하는게 좋습니다. 네거티브의 세포를 일정 이상 흡수할 때마다 당신의 충동을….]

“일정 이상이라는게 어느정도인데? 뭐, 시체 근처에서 숨을 쉬면 흡수한다는거지?”

[그렇습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근데 난 왼손에 이게 독성을 흡수해 준다면서?”

[...흡수량을 넘어서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넘어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잖아? 그리고, 그렇게 많이 흡수할 일도 딱히 없을테고.”

입으로 직접 괴수 사체를 씹어먹는게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흡수량을 넘어섰다 해서 흡수를 멈추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또 흡수해주겠지.

배부르니까 좀 쉬었다 먹는 것과 비슷하다.

X는 내 말을 듣고 반박의 여지가 없는지 움직임을 그대로 정지했다.

나는 그런 X를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기계면서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무서워서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애초에 X는 날 죽이려 한 리프의 부하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조차 아니다.

X의 말을 내가 어떻게 믿지?

[바보같은 행동입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낮다 해도 위험 요소는 위험 요소입니다.]

“아, 근데 정지되어있다면서~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했잖아~”

[이해 불가, 벽에 금이 갔습니다. 기둥으로 지지대를 세워뒀습니다. 당신은 금이 간 벽을 그대로 두실 겁니까?]

“아, 난 모르겠고, 아무튼 괜찮다면서.”

[손이 잘려나간 순간 당신은 웹셀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됩니다.]

“안 잘리면….”

된다고 말하려던 나는, 조금 전에 애쉬가 내 손목을 자기 맘대로 자르고 붙이던 걸 떠올리며 말을 멈췄다.

“아, 안 잘리면 되지.”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네거티브의 습격에 손, 발을 잃고 의수와 의족으로 대체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지금 시대에 신체결손은 그만큼 흔한 일이지만, 나는 네거티브에게 공격당하지 않는다.

애쉬만 조심하면 괜찮다.

[혹시 이해가 안 되십니까? 가능성이 있는 위험요소를 0%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입니다.]

“누굴 바보로 알아? 당연히 이해했지.”

[그런데 왜 거래에 응하지 않으십니까? 의미를 이해하신 것으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네가 한 말들이 전부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저는 기계입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X에게 대놓고 혀를 찬 뒤, 혀를 내밀었다.

조금 전만 해도 나를 속이려 한 녀석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조금 전까지 날 속이려 해놓고 뭐? 거짓말을 안해?”

[속이지 않았습니다. 웹 셀 제거 필요성을 말했을 뿐입니다.]

“꼭 제거해야 하는 건 아닌데 제거 안하면 큰일나는 것처럼 말했잖아.”

[이해 불가, 네거티브에 의한 지능 저하 우려됨, 더더욱 제거해야 합니다.]

“내가 멍청하다는 것처럼 말하지 마!”

[당신은 실제로 본인의 지성을 떨어뜨리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기계는 거래하지 않는다면서? 거래하자고 한 게 누구였더라? 말의 앞뒤가 안맞는 멍청이는 너 아냐?”

[리프의 의식이 단절됨으로 인해 정보 자율성을 허가받으며 당신과 거래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계산, 상황에 따라 조건이 변화하여 자율적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오히려 기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입니다.]

“응, 아니야. 멍청한 건 너야.”

[알겠습니다. 멍청한 건 저였습니다.]

내가 X를 논리적으로 박살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묘한 패배감이 나를 감쌌다.

뭐지...분명 나는 맞는 말만 했는데, 내가 X의 모순을 지적해 X의 멍청함을 인정하게 했는데...이긴 것 같지가 않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열을 올린 걸까.

갑자기 찾아온 허탈함이 조금 전의 말싸움을 무가치하게 만든다.

X는 기계발의 끝으로 바닥을 긁어 멍하니 서 있는 내 의식을 끌어모았다.

[제가 멍청하다 해도 당신이 웹셀을 제거하며 생기는 이득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걸 해 주는 것은 정당한 거래이며, 웹셀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건 리프의 칵테일 뿐입니다. 거래에 응하신다면 지속적 복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완전히 제거된 백신을 제조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믿냐고...너랑 리프는 나를 죽이려 했잖아?”

[리프가 당신을 죽이려 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건 리프입니다. 저는 당신을 죽이지 않습니다.]

“리프는 네 주인이잖아? 네가 나를 속여서 독을 주사하거나, 밑으로 내려가자마자 톱으로 죽이려 한다거나...리프의 복수를….”

[리프를 죽인 것은 애쉬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복수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저는 복수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긴, X는 리프의 부하이긴 해도, 부하인 게 전부다.

X가 스스로 나를 죽이려 한 것 같지도 않았고...리프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기계로서 명령을 들은 것과, 지금처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건 다른 것 같다.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X는 나를 죽이려 하지 않고, 리프의 명령만 따른 것 뿐인게...맞겠지?

맞나?

[당신에게는 이득뿐인 거래입니다. 어째서 아직도 이해를 못 하십니까?]

“아니...그래도 내가 너랑 거래해서 얻는 이득이 그렇게 큰 건 아니잖아? 에스더가 나 도와주러 오는 거 봤지? 여기서 안 내보내 줘도 나는 에스더를 기다려서 나가면 되고, 웹셀인지 뭔지도 에스더가 촉수로 제어해 주고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가 왜 굳이 네가 내게 뭘 할지도 모른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해?”

[...지금 그 발언을 하시면서도 에스더 때문에 제가 당신을 해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당신에게는 위험부담이 없습니다.]

“어?”

X는 나와 거래하며 리프를 되살리려 한다.

에스더는 시간이 지나면 부활한다.

에스더가 나를 보호하고 있으니, X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듣고보니 확실히...X의 말이 맞았다.

X가 굳이 나를 건드려서 에스더한테 더 원한을 살 필요는 없다.

리프가 부활해도 마찬가지다.

만약 리프가 부활해서 내게 뭔가 하려고 한다면 에스더한테 죽여달라고 하면 된다.

리프는 기분 나쁘지만 능력만큼은 확실해 보이니 내가 최면을 걸어도 되고….

그러면 나는 X와 거래해서 웹셀을 제거받을 수 있고, 리프는 나를 공격하지 않을테고...위험부담은...없다.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X도 나랑 거래하고 이득을 주며 에스더가 나를 공격하지 않게 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건 X의 말대로 정말 서로한테 이득뿐인 거래가 아닐까?

리프는 애쉬가 직접 죽이러 올 정도로 애쉬에게 적대받는 마법소녀다.

그런 리프를 살리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 처럼, X의 말대로 리프와 서로 협력할만한 게 생기지 않을까?

에스더가 옆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리프를 확인사살 하려 했지만, 듣고보니 굳이 에스더가 없어도 리프는 나를 공격할 수 없다.

리프를 살리면...애쉬를 견제할 수 있다.

그 애쉬를 리프가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궁금했던 것들도 물어볼 수 있고, 위험부담은 없다.

[...이해하셨습니까?]

“어….”

이해했다.

이건 정말로 나한테도 X한테도 이득뿐인, 정당한 거래다.

하지만, 그래도 거래에 응할 필요는 아직 없다.

어차피 거래에 응하지 않아도 X는 나를 공격할 수 없다.

조그마한 기계몸은 내게도 맘대로 들어올려질 정도로 취약했고, 이런 다급한 상황인데도 이 몸으로 찾아와 거래하자고 매달리는걸 보면 다른 위험한 기체를 숨겨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리프의 시체는 지금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거래를 원하는 건 내가 아니라 X다.

즉, 거래의 주도권은 내게 있다.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의 가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고, 가치가 떨어져도 내게 해가 될 건 없다.

“더 줄거 없어?”

나는 X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X는 지직, 지직 하는 노이즈가 가득한 소리를 내더니 카메라 렌즈로 나와 리프를 번갈아 봤다.

내게 고정된 카메라가 나를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인 스스로도 너무 쓰레기같다는 생각이 드시진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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