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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71화 (271/299)

< 271화 > 잿더미 (5)

“아아악! 끄아아악! 악! 끄악!”

“요란하네.”

“끅...끄흑...헉….”

바닥을 손톱으로 긁고, 눈을 뒤집고 이를 물어 비명을 지른다.

애쉬가 그 모습을 보고 한 말을 듣고 이건 너무 심했나 싶어진 나는 조금 자제해 눈을 질끈 감고 온몸을 웅크렸다.

뭐라고 하기 힘든 이상한 상황이다.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 해야 한다는 이상한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애쉬에게 고문당한 고통이 아직 몸에 남아, 안개처럼 떠도는 감각을 붙잡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아파하는 연기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는 애쉬가 충분히 만족하고 손뼉을 칠 때까지 계속됐다.

“좋아...그만.”

“헉...허억...헉….”

애쉬의 신호의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한 열연을 마친 나는 정말로 고통스러웠던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애쉬는 그런 내 얼굴을 칼날이 없는 쪽의 구두로 짓밟으며 팔짱을 꼈다.

손대고 싶지도 않다는게 느껴지는 차가운 태도다.

“머리는 달려 있으니까 아무리 멍청해도 이해하겠지...나는 네게 언제든 이 고통을 전해줄 수 있어.”

“아...아, 넷...넵!”

“그럼 앞으로 어떡해야 하는지 한번 말해봐.”

하나도 안 아픈데...어떡해야 하냐니…?

나는 얼빠진 얼굴을 하고 애쉬를 올려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쨌든 애쉬가 듣기 좋아 할 만한 소리를 해 줘야 한다.

“안 아프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어...커헉!”

잠시 망설인 모습을 보이자마자 애쉬의 발이 내 턱을 날렸다.

잠시 꿈을 꾼 것처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애쉬는 내 머리를 짓밟으며 한심해하는 말투로 말했다.

“앞으로 래피드의 고민을 듣는 건 금지.”

“예...옙!”

“이 이상 친해지는 것도 금지. 손 대는 것도 금지. 건드리지 마. 접근하지 마. 래피드와 같은 장소에서 숨을 쉬지 마. 내, 래피드를, 더럽히지, 마.”

“크억...켁! 크흑…!”

귀, 눈, 입, 이마가 순서대로 칼날로 된 힐에 찍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애쉬는 내게 화를 내며 화풀이하듯 발길질한 뒤 숨을 길게 내쉬며 발을 내렸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깨끗한 구두가 캉, 하는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딛는다.

“하지만, 이미 친해졌다면 그 아이는 무척 예민한 아이니까...어쩔 수 없겠지...래피드와 만날 일이 있다면 만나. 그리고 피해, 절대로 거절하지 마.”

“어…? 아, 넵…! 네…? 네!”

대화가 뒤죽박죽 뒤섞인다.

어쩔 수 없으니까 만날 일이 있으면 만나도 괜찮지만, 피해 다니고 거절하지 말라니…?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애쉬의 명령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손에 그건 래피드한테 들키지는 않겠지, 하지만...그래, 그것 때문에 래피드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게 된다면 넌 그 더러운 게 터지는 고통에 시달릴테니 알아서 해.”

“네, 넵…!”

“래피드에게서 점점 멀어지도록 해. 거리를 유지해. 래피드를 보며 더러운 생각을 할 것 같으면 네 눈을 스스로 파내.”

“어...아, 넵…!”

“래피드가 해달라고 하는 게 있으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줄 것. 너는 래피드의 스트레스 풀이용 샌드백이야...래피드가 죽으라면 죽고, 꺼지라면 꺼지고, 머리를 터뜨리라 하면 터뜨려.”

“네? 네!”

애쉬의 말을 전부 긍정해주긴 하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래피드랑 친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지는 말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래피드가 머리를 터뜨리라 하면 터뜨리라니…?

엉망진창이다.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예? 그야, 네! 당연합니다!”

“쯧….”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열심히 해석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엎드리며 제한된 시야 한쪽에 애쉬의 두 발이 보인다.

발이 뒤돌아서는게 보이며, 애쉬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시야에서 애쉬의 발이 사라졌다.

나는 시야에서 애쉬의 발이 보이지 않게 되자 쏟아져내리는 불안감에 젖었다.

발이 어디로 간거지?

설마...말하다 보니 짜증나서 죽이기로 마음을 바꿨나?

내가 애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너무 티난건가?

지금쯤 내 뒤에 있는 건 아닐까?

검을 들고 내리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나?

“전부 이해했습니다, 무슨 말이신지 이해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애쉬에게 온 힘을 다해 사과하며 벌벌 떨었다.

애쉬는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미친년이다.

일단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비위를 맞춰 줘야만 한다.

“래피드가 부르면 꼭 가고, 만나게 되면 숨을 최대한 쉬지 않고, 더러운 생각 하지 않겠습니다! 래피드가 하라고 하면 뭐든지 다 하는 충성스러운 스트레스 풀이용 샌드백이 되겠습니다!”

나는 이마를 땅에 박고 쿵쿵 내리치면서 내가 내멋대로 이해한 것들을 전부 입밖으로 꺼냈다.

하지만 애쉬는 내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혹시 머리를 박는 각도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싶어진 나는 좀 더 예절이 느껴지도록 허리를 위로 들었다.

아무 말이 없다.

혹시 이게 아니라, 다른 걸 원하는 걸까?

래피드에 대한 경고는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자신에 대한 복종심을 확인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애쉬님 만세! 애쉬님 만세! 애쉬님….”

애쉬를 찬양하며 다음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애쉬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눈 앞은 물론이고 방안 그 어디에서도 애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혼란에 빠져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없나…?

갔나...갔어?

갔다…?

“개새끼!”

아무래도 나한테 할 말을 다 하고 볼일이 끝나자마자 사라진 모양이다.

나는 인상을 쓰고 바닥을 발로 쿵쿵 내리찍으며 애쉬를 욕했다.

개 같은 년, 미친년, 정신병자년, 죽일년…!

대체 뭘 어떻게 해서 아무런 소리도, 빛도 없이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다.

방 안에서 나가는 출구는 내 바로 뒤쪽 뿐, 걸어서 나갔다면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다.

애쉬도 공간이동 마법을 쓰는 래피드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방법이 있는 걸까?

하지만 애쉬가 래피드와 같은 공간이동 마법을 쓴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공간이동이 아니라면 투명화나 은폐 마법같은걸 사용하면 가능할 것 같긴 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곧바로 손을 들어올려 내 뺨을 때렸다.

“개새끼! 애쉬님의 말씀을 바로바로 알아듣지 못하다니! 이 개새끼!”

나는 나 자신을 벌주며 필사적으로 애쉬의 흔적을 찾았다.

투명화를 했다면 근처에서...내가 제대로 자기 말을 듣는지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 흔적이라도 보이는 곳은 없나...발자국이라던가, 먼지가 애쉬의 형태로 통과되지 않고 부딪친다거나...하는 곳은...없다.

지금쯤이면 애쉬도 내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이제 되었다며 모습을 드러낼만한 순간이다.

그런데도 애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내 뺨을 때리는 걸 멈추고 방 안을 기어가듯 걸으며 둘러보기 시작했다.

널브러져 불타고 있는 서류, 연구결과...깨진 모니터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부서진 태블릿, 불탄 노트... 잿더미….

...시체.

그제야 내 시야에 들어온 리프의 시체는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고깃덩어리처럼 비현실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다.

굽다가 탄 고기를 붙여놓은 것 같은 절단면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피가 새어 흐른다.

심장은 없고, 머리도 뚫리고...습격지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게...확실히, 죽어있다.

나는 리프의 시체에서 시선을 돌려 방 안을 한바퀴 돌았다.

애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제야 애쉬가 정말 사라졌다는 걸 실감한 나는 반쯤 불탄 연구자료를 집어들어 던졌다.

“쓰레기년이!”

악마같은 년, 사람을 고문해?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자기 원하는 대로 사람을 조종하려고 고통을 주다니…!

무서운 년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미친 사이코패스 살인중독자 변태 쓰레기년일줄은 몰랐다.

감히 나를 누구로 알고...최면어플만 멀쩡했어도...아니, 최면어플이 망가져 있어서 다행인가….

애쉬에게는 최면어플이 통하지 않는다...아마도...직접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시도도 못 하는 상태여서 최면어플을 들키지 않았으니 지금 내가 살아있는 거라고...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열 받는 건 열 받는거다.

내가 최면어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죽이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실험체니까 죽인다니.

실험체가 무슨 실험의 실험체인지 몰라도 실험체면 피해자 아닌가?

그걸 멋대로 죽이려 하는건 마법소녀 실격이다.

마법소녀라면 좀 더 래피드처럼 실험체가 된 사람을 아끼고 보듬어주며 살려줄 줄 알아야지.

애쉬 이 악랄한 년...애쉬는 지금부터 마법소녀가 아닌 쓰레기...아니, 쓰레기라는 말도 아깝다.

애쉬는 애쉬다.

애쉬라는 단어는 앞으로 내게 있어 쓰레기 이상의 오물을 지칭한다.

애쉬가 오물같은 것이 아니라, 오물이 애쉬같은 것이다.

“크으윽…!”

그 애쉬같은 년...분명 래피드에겐 이런 모습들을 전부 숨기고 있겠지?

사람들한테는 카리스마 넘치는 절대적인 수호신 같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으면서, 본성은 파괴신이다.

양심이라는 걸 네거티브에게 넘겨주기라도 한건가?

나를 죽이려 하다니...아니,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애쉬의 시선에서 본 나는 최상위의 마법소녀, 1위, 수호신인 애쉬가 마법소녀를 죽이려 하는 장면을 본 아무 능력 없는 일반인이다.

내가 애쉬라 해도 나같은 녀석은 죽이고 싶을 것이다.

내가 최면어플을 쓸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래피드랑 친구라는 것도 모르고...그레이프랑, 에스더랑 어떤 관계인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있어봤자 귀찮은 일 밖에 생기지 않을 것 같아 죽이려 한 것이다.

나를 죽이려 든 이유는 그게 전부...귀찮아서...그것밖에는 없다.

“하아...하아...후우….”

...그래, 그것 뿐이다.

그것뿐...내가 최면어플을 쓴다는 것도 모르고...애쉬가 아는 건 하나도 없다….

...근데 왜….

왜...마법소녀를 죽이고 다니는 거지?

네거티브의 편이어서…?

아니, 그건...아니야.

애쉬만큼 네거티브를 많이 죽이는 마법소녀는...간부들도 두려워할만큼 강한 마법소녀는 없다.

애쉬는, 래피드를 언제나...옆에서, 가르쳐주는...선배 같은 마법소녀로 유명하고.

다른...마법소녀들도...동경하는….

최강자….

1위, 수호신….

태양 같은...마법소녀….

그런데 왜지?

나는 지금까지 래피드를 건드렸을 때, 그 사실을 들켰을 때 죽는다고 생각해왔다.

래피드의 성장을 멈추게 했을 때, 마법소녀의 성장을 돕는 최고의 마법소녀로서, 래피드의 동료로서, 인간의 편에서 네거티브를 막는 수호신으로서 자신의 동료인 마법소녀의 미래를 짓밟은 것에 분노해, 죽인다.

전부 틀렸다.

나는 그냥...귀찮으니까...죽이려 들었다.

내가 귀찮아지는 이유는, 뭐지?

에스더를 죽이는 건 마법소녀로서 당연한 일이다.

마법소녀를 죽이는 걸 봐 버렸으니까?

왜 마법소녀를 죽이지?

뭔가 이상하다.

왜 갑자기 애쉬가 리프가 있는 곳에 나타난거지?

리프를 죽인 이유는…?

모든 마법소녀를 죽이고 있지는 않아.

죽이는 마법소녀에 법칙이 있나?

대체...왜…?

[...당신.]

“우왁?!”

화를 풀다 말고 생각에 잠기게 된 나는 바닥에서 들려온 기계음에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애쉬에게 보여주던 자세 그대로, 일단 사죄의 자세부터 하고 본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언제 온지 모를...뭔지,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를 물건이...있었다.

카메라…가시...아니면, 발…?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망가진 기계가 올라탄 기계 벌레…?

기괴하게 생긴 물건이 내게 카메라 렌즈를 향하고 한쪽 발끝을 세웠다.

[제안이 있습니다.]

“어…?”

이 기계음, 음질이 좀 안 좋아 졌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듣기 싫을 정도로 듣고 있던 음색이다.

나는 한 박자 늦게, 기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X다.

머리 위의 카메라는...자세히 보니 머리 안쪽에 있던 기계의 반쪽이다.

머리를 받치는 다리는 뭔지 모를 것들을 비틀고 꼬아서 조립해 놓은 것 같다.

완전히 망가져버린 X는 강아지보다도 작은 기계 몸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와 거래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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