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 잿더미 (3)
“허억…?”
이상한 감각이 머릿속에서 느껴진다.
바늘 같은 게 뇌를 찔러 헤집는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다.
투명한 막 같은것에 막힌 것처럼...조금 간지럽기만 하다.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애쉬가 뭔지 모를 마법을 사용하고...내게 추궁 없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한 순간 머릿속에서 마력의 바늘이 뇌를 헤집었다.
이건, 거짓을 말한 순간 상대를 죽이는 마법이다.
근데...왜 안 죽지?
등골이 오싹해지려다 말았다….
“...흐음.”
애쉬는 아무렇지 않은 나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눈을 꾹 감았다.
머릿속을 찌르던 바늘들이 사라지고 약간의 간질거림만이 남는다.
다시 눈을 뜬 애쉬는 내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아도니스 Adonis.”
“읏…?!”
그러자 웅덩이를 만들던 피가 순식간에 내 몸속으로 되돌아오고, 두 손목이 저절로 내게 이어졌다.
나는 낯익은 감각을 느끼고 당황하며 손목을 쥐었다.
이건...래피드의 마법과 너무 비슷하다.
치료 마법이 아니라, 되돌리는 마법이다.
조금 전에 내가 원래대로 되돌아 온 것도 래피드가 온 게 아니라 애쉬가 사용한 마법 때문이다.
나를 원래대로 되돌려준 애쉬는 내게는 관심 없는 듯 고개를 돌렸다.
“최면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건 실험 뒤에 기억을 지운 건가...최면은 기억 삭제까지 완성, 키메라는 시도, X는 미완성...생체 실험에 대한 기억을 지운 건 역시 은밀성 실험 때문이겠지... 역시 이 시기가 제일 적절한 것 같네....”
애쉬는 내가 얘기를 듣는 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애쉬의 중얼거림을 듣고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어떻게든 위험한 고비는 넘긴 모양이다.
“하아...하아...하아….”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서 이렇게 된거지? 이번은 좀 이상하네...그레이프의 전투 기록도 그렇고, 에스더의 성장 속도는 평균인데 래피드의 친구라...귀찮아졌어…짜증나게....”
나는 숨을 헐떡이며 애쉬가 중얼거리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애쉬는 내가 들어도 상관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었다.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
“다음에 나올 에스더랑 한번 싸우게 하면 자기가 약하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 훈련 강도를 좀 더 올려도 될 것 같고...리프는...저 정도면 충분하겠지, 크리스탈은...정지한 걸 보니 X는 파괴...에스더인가? 그러면 완전히 부숴 놨을 테고…에스더가 왜 여기 있었는지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스타 포메이션도 그렇고 슬슬 허블 Hubble을 각성할 땐가...아마도....”
애쉬는 알 수 없는 얘기들을 말하다 말고 내게 시선을 향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건드린다.
생각에 잠겨있던 애쉬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할지, 그냥 버릴지를 고민하는 것 같은 말투로 살벌한 얘기를 꺼냈다.
“일반인...친구가 맞다면 멘탈이 조금 깎이겠지...그래도 역시, 죽이는 게….”
“자, 잠깐만요!”
이제 살 수 있나 싶었는데 갑자기 또 죽이겠다니?
나는 계속해서 눈앞에 내가 없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애쉬의 말을 듣고 애쉬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애쉬는 곧바로 다리를 붙잡은 내 팔을 다시 잘라버렸다.
“아아악!”
“한번 더 입 열면 턱을 없애버린다.”
나는 애쉬의 무심한 행동에 치를 떨었다.
차라리 가학적인 모습이, 때리거나 패면서 기뻐하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무섭진 않았을 것이다.
애쉬는 처음부터 계속 무표정을 유지했다.
나를 사람 취급을 해 주질 않는다.
정말로 귀찮은 벌레, 생각하고 있는데 집중을 깨는 소음 발생장치 정도로 밖에는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또다시 입을 열었다가는 분명 아무런 경고 없이 턱을 날려버릴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확신으로 느껴진다.
“래피드랑, 저, 그냥 친구가 아니라고요…!”
그런데도 지금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울며 말하자 두 팔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팔이 잘리고, 돌아오고, 다시 잘리기를 반복한다.
미쳐버릴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애쉬가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냥 친구가 아니면...뭐지?”
“네…? 엣, 엑...헥…!”
나는 숨 쉬기 어려울 정도의 살기라는 걸 느끼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눈빛이...내 심장을 쥐어 터뜨리는 것 같다.
대답을 잘못하면 바로 죽여버릴게 분명하다.
“치...친한...친….”
“친하다고?”
“어느, 정도는...애, 애쉬님 만큼은...아니지만…!”
“...얼마나 친한지 얘기해.”
“헉…! 헉…! 허억…!”
나는 애쉬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래피드의 함몰유두를 가지고 놀고 자지를 보지에 꾹꾹 눌러대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런 얘기를 입밖으로 꺼냈다가는 다시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 버릴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적당히 친하다는게 느껴지고, 과하게 친하지는 않고...애쉬가 래피드를 생각해 죽이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관계를 얘기해야만 한다.
“영화...같이, 볼 정도는….”
“영화?”
“로맨스! 제가...로맨스, 소설을...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라….”
애쉬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사형을 내릴지 집행유예를 내릴지 고민하는 재판관 같은 모습에서 살벌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애쉬는 하이힐의 칼날로 내 손등을 다시 짓밟았다.
“크으으윽!”
“친구...남자, 영화...그리고?”
“로맨스, 소설도! 취, 취미가 맞아서! 친해져서!”
“소설...래피드가 좋아하긴 하지….”
“단 음식도…! 케이크, 좋아하니까...정말, 정말로...친구…크악!”
나는 관통된 손목에 박힌 칼날이 비틀리는 고통에 새어나오는 비명을 애써 집어삼키며 나와 래피드의 사이가 좋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럴수록 칼날이 상처를 후벼파는 각도가 더욱 커져갔지만,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애쉬가 충분히 납득할만한 사이가 아니면, 손등이 아니라 머리와 목, 심장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그게 전부야?”
“네, 네엣...?”
“케이크라면 케이크당일테고 소설이면 서점...4번 구역에서 만난 것 같은데, 기껏해야 1주일에 한 번 보는 사이인 거잖아?”
“아아악…!”
애쉬의 발 밑에 달린 칼날이 천천히 손목을 자른다.
나는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 잘리는 지 모를 손목에 비현실적인 감각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손목을 자른 발이 위로 올라와, 머리 위에 닿는다.
1 주일에 한 번 정도, 4번 구역에서 가끔 만나는 사이 정도로는 설득되지 않는다.
머리에 올려진 칼날이 두피를 찢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 나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오, 오늘도…! 오늘도 만났어요! 아까! 애쉬 님이, 볼일이 있다고 오라고 할 때 같이 있었어요!”
애쉬의 발이 멈춘다.
몸에 생긴 상처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나는 상처가 나고, 상처가 낫기를 반복하는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에 정신이 지쳐 엎드린 채로 몸을 휘청거렸다.
“...아까 래피드랑 있었다고?”
“하, 하아...하아…네엣....”
“뭘 했지?”
“그...그건…여, 영화…! 영화 봤는데...요.”
나는 래피드와 영화를 봤다.
이건 거짓이 아니다.
솔직하게 사실만을 말했다.
“영화라….”
“지금 상영중인 명작 로맨스 영화가 있어서! 그걸...봤거든요?!”
“제목은?”
“사랑할 수 없어서...?”
애쉬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래피드처럼 갑자기 비전폰을 꺼냈다.
뭔가를 검색해보는 듯 손을 움직인 애쉬는 내 쪽을 힐끔거렸다.
잠시 나를 내려다보면 애쉬는 조금은 불안한...아니, 많이 불안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보고 난 뒤에는?”
“네?”
“상영시간 1시간 50분, 래피드의 외출 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남은 시간 1시간 40분동안 뭘 했지?”
심장이 떨린다.
1시간 40분...그동안 나는...래피드의 함몰유두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애쉬의 눈치를 봤다.
“고민...들어, 줬는...데요.”
“고민?”
“래, 래피드가...요즘, 고민이 있다길래….”
“흠…어떤 고민?”
“그건...그게….”
함몰유두가 고민이라는 사실을,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라는걸 알게 되면 애쉬는 나와 래피드의 사이가 생각 이상으로 가깝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죽는다.
두 조각이 아니라 네 조각, 여섯 조각이 나 죽게 될 게 분명하다.
“말 못해...아아악!”
대답을 거절한 순간, 애쉬의 손에 불타는 검이 나타나 내 허리를 관통했다.
나는 허리를 비정상적으로 꺾어 등을 젖혔다.
위장이 불에 타는 불쾌한 감각에 씁쓸하고 매운 액체가 목을 역류한다.
“다시 말해 봐.”
“허억…! 허억…! 헉…! 말 못합...아악!”
애쉬의 검이 허리에서 뽑히고, 다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다시 검이 꽂히고, 뱃속이 타들어간다.
다시 검이 뽑히고,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나는 끔찍한 고문에 눈물을 흘렸다.
차라리 죽이는게 깔끔할지도 모른다.
정말 잘못 했다가는 평생 죽지 못하고 태워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지만, 죽이지는 않는다….
나는 애쉬가 나를 죽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내 입장을 고수했다.
비밀을 말 못한다고 한 순간 쓸모없다고 생각했다면 바로 죽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봐.”
“모, 못해요…! 정말, 정말 말 못해…! 래피드의 비밀이라고요! 그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여 없애겠다고 한 애쉬가 나를 계속 회복시켜주고 살려주는 것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다.
나를 살려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거나 다름 없다.
그 예상대로, 애쉬는 더 이상 내게 검을 찔러 넣지 않았다.
“흠….”
“하아...하아...하아…웁?!”
“닥치고 있어.”
내게서 검을 치운 애쉬는 뭔가를 고민하며 비전폰을 조작했다.
고문이 멈췄다는 사실에 안심하던 내 입으로 애쉬의 발이 들어온다.
칼날이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단단한 금속이 씌워져 있는 앞굽이 입안을 피투성이로 만든다.
앞니가 깨진 것 같다.
나는 이번에는 또 무슨 고문을 하려고 이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내 귀에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애쉬...왜? 나, 나 연습 잘 하고 있는데….]
“뭐좀 물어보려고.”
래피드의 목소리다.
애쉬는 래피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입을 막힌 채 눈을 크게 뜨고 애쉬를 올려다봤다.
“오늘 뭐 했어?”
애쉬는 래피드에게 질문하며 내 목에 검을 겨눴다.
약간이지만, 상냥함이 느껴지는 애쉬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얘기한 것과 다르면,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 나오면 나를 바로 죽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