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잿더미 (1)
“아...아….”
대체 왜 여기에 애쉬가…?
왜...리프를?
어째서?
리프를 쫓고있던 게 애쉬였던 걸까?
그건 말이 안 된다.
리프는 방위군의 연구원, 애쉬는 방위군에 있는 마법소녀다.
쫓거나 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리프를 찾아갈 수 있다.
그런데 왜 리프를 죽이는 거지?
애쉬가 어떻게 여기에...리프를 왜…?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망상이 머릿속에 퍼진다.
래피드가 오늘 늦게 집에 돌아가는 걸 보고 뭔가 알아차렸나?
설마 나를 죽이려고…?
그럴리가 없다...그래선 안된다….
나는 철저하게...절대 들키지 않게...래피드랑, 비밀친구로….
하지만, 리프에게 들켰다.
애쉬도 리프처럼 눈치챘다면?
그래서 나를 죽이려고 찾아온 거라면...그러면 리프는 왜 죽이는 거지?
리프랑 애쉬가 하던 대화는 대체 뭐지?
협력, 이번에는...진짜…?
매번 같다고?
이런 일이 한번이 아니야…?
왜, 왜, 왜, 왜 리프를, 왜 여기에, 왜….
최면어플이 들키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선 안돼….
들켰으면 죽는다.
죽을 수 밖에 없다.
도망쳐야, 에스더에게 살려달라고 해야한다.
“에, 스더…?”
혼란과 공포에 휩싸여 에스더를 부른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에스더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버티기 힘들 정도의 열기가 피부를 차갑게 찔러온다.
“애쉬이이이!”
“잠…!”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에스더는 문을 박살내 버렸다.
마력을 일으켜 존재감을 드러내고 애쉬의 앞에 나타난다.
나는 이유 모를 돌발상황에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절망했다.
대체 왜 애쉬가 여기에, 왜 에스더가 갑자기, 왜, 왜, 왜.
이해가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애쉬는 에스더에게 시선을 향했다.
무표정하고 덤덤하게 리프의 뇌를 태우던 검을 뽑아낸다.
“에스더.”
“너...너….”
“여기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
“너였냐…?”
에스더는 애쉬를 노려보며 점점 몸을 숙였다.
날개를 펼치고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준비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다.
한계에 도달한 적대감이 불로 변해 에스더의 온몸을 휘감는다.
“대답해...애쉬….”
“...뭘?”
“마리아! 러스티! 다른, 녀석들도...파라웰도, 키린도,전부, 전부, 네가 죽인 거냐고! 묻잖아아아!!”
나는 에스더의 외침을 듣고 깜짝 놀라 애쉬에게 시선을 향했다.
마리아는...예전에 죽은 마법소녀...래피드가, 구하지 못한….
괴수에게 자궁, 심장, 뇌를 찔려 죽은 마법소녀다.
러스티는 최상위권에서 실종된 7위의 마법소녀다.
에스더는 러스티를 실종이 아니라 죽었다고 확정하듯 말하고 있다.
파라웰, 키린은 누군지 모르지만...내가 모른다면 아마도 하급이나 중급 수준의 마법소녀다.
“아...그래, 죽였지.”
“이, 새끼, 가아아아!!”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기울인 애쉬에게 에스더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시야에서 사라진 에스더가 순식간에 애쉬의 뒤쪽에서 나타난다.
순식간에 잘려나간 에스더의 한쪽 날개가 떨어져 꿈틀거린다.
애쉬는 칼날이 나와 있는 하이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리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움직임으로 에스더의 돌진을 반격, 발을 차올려 날개를 잘라버렸다.
“...꽤 빨라졌네 에스더.”
[NGD-5 결정체 사용.]
“역시, 성장이 빠르단 말야.”
애쉬는 높이 들어올렸던 다리를 천천히 내려 바닥에 바로 섰다.
불길한 기운이 애쉬의 다리를 뱀이 기어오르듯 타고 올라, 전투복으로 변한다.
온몸을 감싸는 타이즈 같은 전투복 위로 회로 같은 문양이 그려지며, 가슴 중앙에 붉은 크리스탈이 하나 나타난다.
“마침 잘 됐네...안그래도 슬슬 체크해 둘까 했는데.”
에스더는 한 번의 격돌만으로 느껴져버린 격차에 충격받았는지 이를 악물며 떨리는 손으로 불의 검을 쥐었다.
잘린 날개와 에스더의 잘려나간 날개가 서로 촉수를 뻗어 결합되어, 재생한다.
애쉬는 에스더가 회복해주길 기다려주며 검을 쥔 손목을 돌렸다.
“놀아줄게 에스더, 할 수 있는 거 전부 해봐.”
“죽어어어!”
에스더가 분노한 순간, 나는 이상한 감각에 휩싸였다.
에스더의 시간이 내게 얽혀온다.
내 눈으로 보는게 아닌 에스더의 눈으로 보는 광경이 내 시야와 겹쳐 보인다.
돌진한 에스더가 양손에 불의 검을 쥐고 회전해 달려든다.
애쉬가 그것을 가볍게 피해, 에스더의 목을 손가락으로 찌른다.
공격이 아니다...그냥, 찌른 것 뿐이다.
“크아아아아!!”
에스더가 꼬리 끝을 세워 슈팅스타, 뒤이어서 꼬리를 찔러 목을 노리고 불이 맺힌 손톱을 할퀸다.
애쉬가 그 모든 공격을 아주 조금만 몸을 비틀어 피한다.
슈팅스타는 회피, 꼬리는 손끝으로 잡아 비틀어 끝을 잘라버리고, 손톱은 휘둘러지는 궤적에 맞춰 검날을 대 손끝을 녹여버린다.
“왜, 왜, 왜!! 네가, 네가 왜!!”
공격을 전부 알고 있다.
에스더와 수도 없이 많이 겨뤄왔기 때문인 건가?
앞날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에스더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
“이 정도?”
애쉬의 검이 에스더의 날개를 찢어 가른다.
꼬리를 잘라내고, 목을 손가락으로 찌른다.
그 시점에서, 목을 찌르는게 무슨 행위인지 깨달았다.
“전부 써보라고 했을텐데?”
애쉬의 검이 에스더의 검을 가볍게 튕겨내고, 손가락으로 목을 찌른다.
에스더의 발차기를 애쉬가 날카로운 힐로 발목을 궤뚫고, 손가락으로 가슴을 찌른다.
에스더의 손목을 베어 떨어뜨린 애쉬의 손가락이 에스더의 아랫배를 찌른다.
이걸로, 다섯 번 죽었다.
“아아아아아!!”
에스더는 눈물을 흘리며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왼손에서부터 분노, 슬픔, 배신감, 절망의 감정이 뒤섞여 전해진다.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에스더를 보며 혼란에 빠졌다.
애쉬와 에스더의 몸놀림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에스더는 공격 사이사이에 발차기를 섞어 변칙적인 연계기를 사용한다.
애쉬는 상대가 빈틈을 보인 순간 칼날이 세워진 하이힐로 치명적인 일격을 남긴다.
근거리를 신경쓰지 않는 원거리 마법, 조금 거리가 벌어지려 하면 위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즉발성 마법을 사용해 속임수를 건다.
애쉬는 그런 행동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거리가 벌어진 순간 날아오는 마법을 검날로 되돌려 상대를 당황시켰다.
에스더의 공격은 에스더와 유사한 방식으로 애쉬에게 계속해서 반격당했다.
상대의 행동을 미리 알고있는듯한 예리한 움직임, 근접공격 위주로 싸우는 속력전, 반격기, 화력, 손톱, 손날.
인명구조보다 괴수처리를 우선하는 행동.
...불의 검.
애쉬는, 에스더가 가장 닮고싶어 한 마법소녀다.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애써봐야 이길 수 없다.
똑같이 새하얗게 타오르는 검인데도 둘의 검은 조금 다르다.
애쉬의 검은 차갑게 뜨겁고, 에스더의 검은 뜨겁다.
애쉬의 검은 좀 더 가늘고, 에스더의 검은 크다.
불의 검이 맞닿은 순간 에스더와 애쉬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에스더의 검이 녹아 떨어진다.
같은 불인데도...애쉬의 불에 녹아내린다.
“어째서어어어!!”
애쉬는 절규하는 에스더의 팔을 내리쳤다.
발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재생하는 촉수를 다시 잘라 벤다.
애쉬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에스더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클립스 써.”
“아아아아악!”
저항하듯이 반투명해진 에스더의 몸을 애쉬의 검이 통과한다.
이어서 이성을 잃은 에스더가 손톱을 휘두르자 애쉬의 검이 에스더의 심장을 찔렀다.
그 즉시 에스더의 몸에서 형형색색의 화염이 피어 올랐다.
“슈퍼 노바 Super nova….”
“애쉬이이이이이!!”
“이게 끝?”
애쉬의 검이 에스더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에스더가 등 뒤에서 불을 터뜨려 애쉬에게 돌진한다.
들이받는 뿔을 붙잡은 애쉬는 새하얀 불이 눈물처럼 떨어져 내리는 에스더의 목에 불의 검을 겨눴다.
“하아...하아...하아….”
“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보네.”
양쪽 날개는 잘려있다.
한쪽 팔은 어깨 밑이, 한쪽 팔은 팔꿈치 밑이 떨어져 나갔다.
가슴 밑으로도, 아무것도 없다.
애쉬는 엉망이 된 에스더 앞에서 흔적도 남지 않은 전투복을 해제했다.
손에 뿔을 붙잡혀 매달린 에스더가 들려 있는,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에스더는 애쉬에게 완전히 패배해 어딘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냐…?”
“뭐가?”
“나도...일부러...그런 거야…?”
“아...그래, 맞아.”
“설마...릴리...도?”
“...말이 많네.”
“하...하하….”
에스더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반 밖에 남지 않은 몸에 피어오르던 불을 지웠다.
아플 정도로 공허한 감정이 왼손에서부터 느껴진다.
에스더가 졌다.
나는 쉴 새 없이 떨리며 굳어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감싸안았다.
도망쳐야 한다.
당장...어떻게든, 어디로든 도망쳐야 한다.
에스더는 네거티브의 간부,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지금은 죽는다.
나를 지켜줄 수 없게 된다.
“...죽인다.”
에스더는 평소의 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드시, 너는...죽인다….”
“너한텐 불가능해.”
“해보지 않으면...모르는거야….”
“그래, 해보지 않으면 모르지...후후…2번.”
[나노단분자 커터, 가동.]
에스더의 한 맺힌 말을 들은 애쉬는 갑자기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밝은 웃음이다.
애쉬는 오싹하게까지 느껴지는 웃는 얼굴로 에스더의 심장을 쑤시며 말했다.
“에스더...이래서 널 미워할 수 없다니까.”
애쉬는 에스더의 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왼손을 통해, 에스더의 의식이 날아가버리는 게 느껴진다.
어딘가 먼 곳으로...에스더가 사라지고 있다.
애쉬는 점점 초점을 잃고 심장을 잘려나가는 잘려나가는 에스더를 웃는 얼굴로 지켜보며 한쪽 손을 들었다.
나는 갑자기 들어올려진 애쉬의 손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에스더의 눈동자에 갑자기 초점이 돌아와 불안하게 떨리며 내 쪽으로 향해진다.
“그만, 둬어…! 그건...제발…! 부탁이야…! 마법, 소녀잖아...! 너는...!”
"네거티브 답지 않네 에스더?"
"그만둬어어어!!"
"다음에 봐."
왼손에서부터 에스더의 의식이 되돌아오는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주 잠깐 반짝이들이 돌아온 에스더의 의식은 착각처럼 다시 사라져 버렸다.
불타듯이 발악하며 재구성되던 신체가 절망과 함께 부서진다.
“스타 포메이션 Star formation...아직인가….”
[냉각.]
애쉬는 점점 재로 변해 사라지는 에스더를 뚫고 있는 검을 내려놨다.
크리스탈 형태의 손잡이가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려 형형색색의 보석같은 것들이 가득한 내부를 드러낸다.
애쉬는 들어올린 손을 내 쪽으로 향하며 마법 주문을 외웠다.
“아도니스 Sun blade.”
애쉬의 검에 찔려있는 에스더의 심장이 완전히 사라진 그 순간, 왼손에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괴하게 겹친 목소리와 함께, 애쉬의 손에서 원반형의 화염날이 나타난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허리에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어…?”
갑자기, 등이 땅에 닿는다.
차가운 감각이 사라지고, 뜨겁게 변한다.
시야에는 상체가 없는 다리가...앉아있는 자세 그대로 세워져 있는 사람의 하체가 보인다.
불에 탄 것처럼 익어 있는 절단면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아 터져나온다.
지져진 상처에서부터 온몸을 찢어 떼어내는 통증이 위로 기어올라온다.
나는 뒤늦게 내가 애쉬에게 베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