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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66화 (266/299)

< 266화 > LEAP (5)

“하아….”

“자, 잠깐…!”

X가 쓰레기로 변하는 모습을 본 나는 에스더의 꼬리에서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내 생각 이상으로 에스더가 너무 잘해줘버렸다.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해 줄 줄은 몰랐다.

“내려줘!”

나는 에스더가 꼬리를 풀어 날 내려주자마자 X의 잔해로 걸어가 뜨거운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X는 내 최면어플이 든 데이터 칩을 들고있었다.

분명 가지고 있을 거다...있어야만 한다.

“아...앗!”

다행히 투명한 데이터 칩은 리프의 잔해중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밝게 빛나는 크리스탈에 붙어 있었다.

왜 이게 여기 붙어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살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데이터 칩을 손에 쥐었다.

“휴우우….”

최면어플을 되찾았다.

나는 그제야 에스더에게 시선을 향했다.

빨간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에스더가 보인다.

저렇게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피가 끓는 상대였던 걸까.

하급 마법소녀가 만든 발명품이니까 그저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예상 이상으로 강했다.

하지만 에스더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X가 약했던 것도 아니다….

에스더가 양손을 꺼내 싸우자마자 순식간에 끝나버리긴 했지만, 그 얘기는 달리 말하자면 에스더라 해도 양손을 써야만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는 얘기다.

즉, X는 중급 마법소녀 이상...상급 마법소녀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프도 마법 활용 능력만 따지면 체내와 손바닥 안에서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하급 마법소녀 수준이다.

X가 이렇게 강하다는 건 그 주인인 리프도 꽤 강하다고 생각해야 할까….

에스더가 와 줘서 다행이다.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에스더가 필요하다.

조금 전 처럼, 에스더에게 보호받아야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더에게 다시 안겼다.

“아이고...에스더님, 에스더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떨어져.”

“아...네.”

에스더를 한번 끌어안아 온몸을 밀착시키자마자 에스더에게 강하게 밀쳐져 버렸다.

얼굴이 조금 전보다도 더 붉어지고, 일그러져있다.

...인상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전투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서 접근하는 것도 거부할 정도로 예민해진 모양이다.

어쩐지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는 에스더를 자극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 조금 더 뒤로 떨어졌다.

그러자 에스더가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누가 그렇게 떨어지래?”

“어....”

“조금 떨어져.”

“이 정도…?”

“그리고 그거 가려.”

에스더는 내게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서서 손가락으로 내 자지를 가리켰다.

나는 곧바로 최면어플을 쥐지 않은 쪽의 손을 펴서 자지를 가렸다.

한손으로는 전부 가려지지 않아 끝부분이 손 밖으로 새어 나온다.

“기다려.”

“네? 아, 네.”

에스더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망가진 벽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손끝으로 벽을 그었다.

녹아내린 벽 안으로 손을 넣은 에스더는 안에서 철제 캐비넷처럼 생긴...철제 캐비넷을 꺼냈다.

그 안에는 리프의 옷으로 추정되는 하얀 가운과 하얀 셔츠, 검은 치마 한 세트가 들어가 있었다.

“입어.”

“네?”

“...빨리 입으라고.”

“어….”

난 남자인데...치마를…?

그보다 이건 나한테 맞지도 않아서 터지고 찢어질 것 같은데…?

설마 에스더는 그런 취향인가…?

나는 망설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셔츠부터 입었다.

작은 셔츠가 피부를 조이고, 가슴쪽의 단추는 하나도 잠겨지지 않아 우스운 모습이 된다.

치마는 허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다.

“이리 와.”

그 모습을 본 에스더는 흰색 가운을 들어 내게 긴 치마처럼 허리를 두르게끔 묶어 주었다.

흰색 셔츠에 흰색 치마라니...남자가 입을만한 옷이 아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서 에스더에게 불만을 말했다.

“무슨 웨딩드레스도 아니고...남자한테….”

“...닥쳐.”

“아, 옙….”

구해주신 은인이 닥치라면 닥쳐야지….

나는 순순히 치마가 된 가운을 허리에 두르고 가운 주머니에 데이터 칩을 넣었다.

어쨌든 옷을 입기는 해야 했고, 특이하게도 가운 주머니에는 내용물이 빠지지 않게끔 지퍼가 달려 있어 데이터 칩을 넣어두기에도 좋아 보였다.

에스더는 치마를 입은 나를 내버려두고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리프 이 자식...외부 구역에서 뭔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외부 구역?”

“여기, 외부 구역 지하야.”

외부 구역이라면...최면어플을 볼 때 애쉬가 있는 장소로 자주 나타났던 장소다.

네거티브에게 점령당한 구역...도시를 감싸는 방벽 밖에서도 구역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곳을 외부 구역이라고 부른다.

에스더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은 A시 근처의 외부 구역 지하다.

“뭐, 게임에서 나오는 비밀 연구소 같은 건가…여기에서 사람을 해부한다 이거지?”

“아...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저도...그랬고….”

“쯧…이 새끼....”

에스더는 아무 말 없이 내게 시선을 향하다 고개를 돌렸다.

눈을 감고 주변을 핥아 쓰다듬듯이 마력을 은은하게 내보낸다.

잠시 마력으로 주변을 살핀 에스더는 부서진 벽면에 손을 대고 기계장치를 끄집어냈다.

에스더가 기계장치를 손으로 부수자 벽면이 반쯤 열리다 멈춰섰다.

작동과 오작동 사이에서 신호가 끊겨 정지한 것 같다.

에스더는 부서진 벽에 발을 대고 가벼운 천을 들어올리듯 발을 올려 벽을 열었다.

“너는...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 아, 아니...나 혼자…?”

“그래.”

“왜? 같이, 같이 가는게…? 좋지 않을까?”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건 무섭다….

최면어플도 지금은 칩으로만 가지고 있어서 쓸 수 없고, 이렇게 망가진 기계들이 파직파직 거리는 공간을 보고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아 불안하다.

에스더랑 같이 있고 싶다.

“1번, 리프한테 갑자기 납치당한 것 같은데...그 년은 옛날부터 자기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년이야.”

“리프랑 아는 사이…?”

“그래, 그 년은 마법 관련된 연구원 중에서...능력만큼은 좋으니까.”

에스더는 갑자기 날카로운 손톱이 세워진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주먹을 쥐자, 손톱 끝이 저절로 줄어들어 손바닥을 찌르지 않는 형태로 변한다.

다시 손을 펴자 사람의 손톱이라고 말하기 힘든 붉은 빛의 손톱이 요사하게 빛났다.

“그 년이 세운 마력 이론은 꽤 도움이 됐어. 내 몸을 가지고 실험한 것도...기분 나쁘긴 하지만 상당히 도움이 되기도 했고…네거티브가 된 후에는...가설이라고 세운 마법소녀 감염에 대한 글을 올린 게...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기도 했지.”

“그...그렇구나….”

“그래서 알아, 그 미친년이 널 해부한다고 하고 이런 곳에 납치하기까지 했다면, 지금 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줘도 내가 없을 때 다시 달려들 거야. 그러니까...죽인다.”

에스더한테 미친년이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라니...어찌 보면 대단하다….

에스더의 말대로, 리프를 죽이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를 습격할 거라는 얘기에는 동의한다.

나는 리프를 죽여주겠다는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췄다.

나는...에스더를 부를 수 있다.

그런 내게 있어 리프를 죽이는 건 간단한 일이다.

리프도 내가 에스더를 불렀다는 걸 알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지 에스더를 부르면 되는데?

평소에는 그레이프한테 지켜달라고 하고, 오늘같은 일이 생기면 에스더를 불러서 해결해달라고 하면...난 안전한 게 아닐까?

“꼬...꼭, 죽여야 할까?”

“뭐?”

리프가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리프를 죽일 필요는 없다.

죽여버리고 싶지만...죽이는 건 아깝다.

아직 궁금한 것들을 리프에게 물어보지도 못했다.

“너...이, 미친 새끼가...지금, 리프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거야?”

리프는 죽여선 안 된다.

좀더 쥐어짜서 내게 필요한 정보들을 상납하는 생체 마진사 겸 컴퓨터로 이용해 줘야 한다.

나는 어이없어하는 에스더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스더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 내 멱살을 틀어 잡았다.

안 그래도 셔츠가 작아서 맞지 않았던 옷이 에스더의 손톱에 찢긴다.

에스더는 내 옷을 너덜너덜하게 만들며 화를 냈다.

“리프가 다른 마법소녀랑 같은 것 같아?! 널 죽이려 한 년을...지켜야 할 대상을…네가 그 년을 살려준다고 해서 그년이 네게 감사할 거라고 생각해? 이 멍청이가!”

“아니...고마워하지는 않겠지만….”

“그걸 알고도! 그딴 짓을 당해놓고도 마법소녀를...아니...그래….”

에스더는 화내다 말고 천천히 내 옷깃을 잡은 손을 풀었다.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린다.

에스더는 갑자기 기운 빠진 모습을 보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걸 바란 내가 할 말이 아니지....”

에스더는 조금 진정한 얼굴로 내게 눈을 맞췄다.

진지하고, 살벌한 눈빛이다.

에스더는 불의 마력을 일으켜 나를 위협하며 낮게 울리는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내가 좀 아낀다고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난 네거티브야. 네가, 그런 부탁을 했어도 내가 죽이고 싶으면 죽일 수 있다고.”

“그러니까 죽이기 전에 한번만 생각해 봐줄 수 없을까…?”

“이미 생각 해 봤으니까, 죽인다.”

“아니면! 그래, 일단 나를 데려가고...대화라도 조금 할 시간을...설득! 설득해볼테니까!”

리프라면 에스더를 데려간 순간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게 분명하다.

최면어플이 없어도 승산이 없다는걸 안 순간 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테고...리프의 비전폰을 뺏어 최면까지 걸어버리면 나의 완전한 승리다.

그렇게 되려면 결국 에스더와 함께 가는게 중요하다.

“네 눈앞이면, 결국, 죽이지 말라는 소리잖아...이, 개자식이….”

“아니...설득 시간만 달라는 거니까….”

“멍청한 새끼.”

에스더는 내게 욕을 하며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나를 한 팔로 안아 들어올렸다.

이어서 조금 전처럼 날개로 나를 감싸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에스더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개에 완전히 가려진 나는 에스더의 몸을 안아 매달리며 말했다.

“고마워 에스더...꼭 설득….”

“닥쳐.”

“아...응.”

감사 인사도 듣기 싫은 것 같다.

죽이겠다는 걸 못 죽이게 해서 화가 난 걸까...역시 네거티브다….

나는 에스더를 더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너처럼 멍청한 놈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야.”

“...그, 그렇겠지…? 내가 조금 멍청하긴 해.”

“시끄러워, 한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너부터 죽인다.”

“아...네...안하겠습니다.”

날개 틈새로 에스더에게 망가진 에스컬레이터로 보이는 어두운 계단을 계속해서 오르는 걸 보고 있자, 에스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에 대답한 내게 돌아온 건 앞뒤가 안맞는 폭언이었다.

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모르겠다.

“리프의 마력은...여기다.”

에스더는 계단을 계속해서 올라가다가 한 곳에 멈춰섰다.

아무것도 없는 벽면 앞에 선 에스더는 조금 전 처럼 벽에 손을 넣어 기계장치를 뜯어냈다.

그러자 벽이 아주 조금 열리며 어두운 공간에 세로로 가느다란 빛이 들어왔다.

“나는 아까부터 마력을 감추고 있으니까, 한번 설득인지 뭔지 맘대로 하고 죽이고 싶어지면 내가 알아서….”

“기...기다려...죽이지 말아줘….”

그때, 갑자기 문 틈새로 리프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스더와 나는 동시에 멈춰서 빛줄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 사이 어두운 곳에 익숙해진 눈이 천천히 밝은 빛에 적응하며, 안쪽의 광경이 드러난다.

리프의 서재처럼 생긴 방 안에는 깨진 모니터와 여러 연구자료로 보이는 책자, 두꺼운 책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난장판이 되어있는 방안의 중앙에서 리프는 발끝을 세우고 벌떡 일어서 있었다.

누군가에게 목을 졸려, 강제로...일으켜지고 있다.

“제발...부탁이야...협력, 협력...할게, 네, 네가 원하는 걸...알았…나라면, 나만이...들어줄 수 있어…!”

“매번 똑같은 대사네, 리프.”

“이, 이번에는…! 이번에는 진짜…! 각성을…! 쿠흑…!”

새하얗게 빛나는 가느다란 불의 검이 리프의 심장을 망설임 없이 찌른다.

말 없이, 무덤덤하게….기계가 반복행동을 해 공장에서 동물을 도축하는 것 같은 무감정한 움직임이다.

이어서 리프의 아랫배를 찔러 옆으로 베고, 반쯤 떨어진 하체가 불에 그을린 상처를 끓이며 덜렁거리게 되자 머리를 찌른다.

마법소녀의 마력의 근원인 자궁, 사람의 약점인 심장, 뇌를 헤집어놓은 새하얀 검은 리프였던 것에 열기를 남기고 깨끗하게 빠져나왔다.

피 한방울 나오지 못한 시체는 목을 잡고있던 손을 놔주고 나서야 바닥에 떨어져, 불에 지져진 상처에서 터지듯이 피를 흩뿌렸다.

리프는 그 상태로도 몸을 움찔거리며 피가 끓는 목소리를 냈다.

"진짜, 로옥...! 도울, 수...! 도와...!"

"생명 고정? 꽤 빨리 각성했네, 죽을때까지 기다려 줄게."

"카학...!"

나는 리프의 머리에 다시 불의 검을 꽂아 뇌를 지지는 상대를 보고 숨을 삼켰다.

잿빛의 은발 롤 머리, 움직이기 편한 운동복,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마법 보조구...롯드.

방 안에서, 애쉬가 리프를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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