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 LEAP (4)
이글거리는 화염이 X를 베어내려는 순간, X는 에스더에게 잡힌 팔을 떼어내고 그 절단면 같은 곳에서 불을 뿜었다.
제트엔진 같은 파동이 일어나 X의 몸을 밀어낸다.
튕겨나가듯 뒤로 쏘아진 X는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벽면에 등을 붙였다.
검의 궤도에서 빠르게 벗어나려 한 것 같지만, 에스더의 검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반대쪽 팔도 베인 X는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하게 팔을 떨어뜨렸다.
이어서 양쪽 벽면에서 또다른 팔이 나와 X의 몸에 결합했다.
[개체식별...에스더, 일치 89%...보고.]
[하에에에에?! 어, 어째서?! 어째서?!]
X가 다시 벽면을 내리치며 내 주변의 수술장치 같은 것들이 전부 숨는 것처럼 바닥과 천장으로 사라진 순간, 스피커에서 리프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넘어지는 소리와 노이즈, 무슨 일인지 모를 소리를 끝으로 재생을 멈춘 스피커가 숨어든 직후, X의 움직임이 조금 변했다.
조금 더 로봇같지 않게...약간 더 사람처럼 부드럽게 움직이게 된 X는 에스더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자율판단, 전투...임시 관리자 권한 활성화, 시설변화.]
벽면이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수많은 총기와 대포, 레이저, 원형톱 같은 것들을 꺼낸다.
추가로 X의 팔과 다리에도 장갑 같은 것이 씌워져, 누가 봐도 전투 태세라는게 느껴질만한 형태가 되었다.
이어서 내가 누워있는 수술대가 바닥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에스더가 불의 검을 수술대 밑의 바닥에 꽂았다.
“건방지게...어딜 데려가려고…?”
수술대를 망가뜨린 에스더는 순차적으로 나오며 점점 많아지는 무기들 너머의 X를 노려보며 나를 구속하고 있던 고리들을 꼬리로 잡아당겼다.
구속 고리가 너무도 간단하게 팅, 팅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이윽고 모든 고리가 떨어진 순간, 에스더가 나를 힐끔거렸다가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옷은?”
“케헥…! 쿨럭!
나는 옷이 어디있는지 나 자신도 몰라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에스더는 작게 혀를 차고 이 가는 소리를 내더니 나를 갑자기 확 끌어안아 한쪽 날개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내 몸을 감쌌다.
한쪽 손에는 불의 검을, 한쪽 손에는 나를 들고 있다.
나는 에스더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것이 느껴져 이제 안심이라는 생각과 주변의 무기들에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겹쳐 에스더에게 매달렸다.
끌어안듯 매달리자 에스더가 몸을 움찔거린다.
에스더가 내 허리를 고쳐잡듯 좀 더 세게 고쳐안은 순간, 총이 발사됐다.
에스더는 총탄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맞았다.
가끔 조금 몸을 움직이긴 했지만, 그건 날개에 감싸인 내가 발끝이나 머리를 맞을 뻔할 때 뿐이었다.
그 외의 총탄은 피하지도 않고 맞아주며 피부에 닿아 녹아내린 금속 방울을 흘리듯 떨어뜨렸다.
레이저가 발사되도 불의 검으로 그냥 삼켜버리고, 검이 휘둘러지면 마찬가지로 불의 검으로 받아 녹여 떨어뜨린다.
원형 톱날은 접근하자마자 녹이고, 그나마 잘 안잘리는 것처럼 보이는 특수한 금속들도 두번 정도 검을 받아내면 녹아버린다.
에스더와 X의 무력 차이를 두 눈으로 확인한 나는 좀 더 안심해 에스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콜록거렸다.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쿨럭…! 훅, 후우…! 나, 납치...실험, 해부...익, 사학, 쿨럭!”“
“해부…?”
“촉! 수…! 이거, 왼손...쿨럭! 때문에…에스더가, 말했더니, 이상하다...쿨럭, 쿨럭!”
“하아?”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를 낸 에스더의 머리 위에서 차가운 기운이 쏟아진다.
나는 에스더의 품 안에 있는 나와 에스더를 제외한 곳에 쏟아지는 액체가 안개 같은 연기와 함께 얼어붙는 걸 보고 그것이 액체질소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에스더는 액체질소를 무시하고 X를 보며 분노가 가득한 차가운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내가 촉수를 심어놔서...해부하려 했다?”
[...수치 이상.]
“내가, 심은 걸, 알고도...내 걸, 건드렸다? 이거지? 아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흐읍!”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 에스더는 이마에 손을 대고 고개를 젖히며 웃다가 갑자기 불의 검을 크게 휘둘렀다.
금속이 아닌 젤리처럼 녹아내리며 베인 무기들이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폭발한다.
에스더는 불의 검을 던져버리고 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마력을 끌어 모았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대담해졌네 리프? 마력은 느껴지지도 않게 줄어들어 놓고 말야?”
[...본 기체명은 X, 제작자와 별개입니다.]
“하아?”
“그, 그래...저건, 리프가 아니라...로봇….”
리프와 거의 동일한 외관에 X를 리프와 착각한 에스더에게 말하자, 에스더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살벌한 기운이 손에 모여, 다이아몬드 형태의 불의 창이 형성된다.
에스더는 기쁜 듯이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럼, 죽어.”
에스더의 작은 움직임이 일으킨 결과는 컸다.
손 위에 있던 창이 공기가 파열하는 소리와 함께 쏘아져나가 천장과 바닥의 타일들을 뒤집어 엎으며 지나간다.
드러나 있는 무기도, 타일 안쪽도 파괴하며 발사된 창은 X에게 명중했다.
[에너지 드레인 가동.]
“저건…!”
X는 곧바로 온 몸을 개방해 람지의 마법을 흡수했던 것처럼 에스더의 마법을 흡수했다.
하급 마법소녀의 마법만, 번개 마법만이 아니라 불 마법도 흡수할 줄이야.
썬더 캐논과는 다르게 에스더의 마법은 좀 더 강했는지 온몸이 그을리고 옷이 불타 있었지만,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는다.
“리프 이거,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들었네?”
[에너지...과충전….]
X는 한쪽 얼굴이 녹아내린 모습으로 붉은 빛의 카메라형 안구를 빛내며 가슴을 중앙을 열었다.
한 쪽에는 크지만 흐릿한 크리스탈이, 다른 한 쪽에는 작지만 크게 빛나는 크리스탈이 고정되어 있다.
가슴 중앙의 크리스탈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에 이어서 X의 손에 장착된 장갑이 변화해 한 손에는 빛으로 구성된 방패가 달린 대포를, 다른 한 손에는 기다란 장검을 만들어낸다.
[폼 체인지...넘버 6, 데이터 로드, 넘버 4, 넘버 6.]
에스더는 여유롭게 불의 검을 든 손을 까딱거리며 X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발 밑이 불타올라 녹아내리고, 나를 끌어안은 반대편의 날개가 펼쳐진다.
혀로는 입술을 핥고 꼬리를 흔들며...즐거워 하고 있다.
“훈련용 로봇이나 만들던 년이 말야!”
검이 닿는 거리까지 접근한 에스더는 불의 검을 휘둘러 X를 내리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X는 방패로 검을 받아내고 에스더에게 대포를 겨눴다.
에스더는 불의 검을 받아낸 X에게 놀랐는지 잠시 흠칫하더니, 곧바로 꼬리를 올려 슈팅스타를 발사했다.
“하아?”
X는 곧바로 검을 튕기듯이 휘어 에스더의 슈팅스타를 받아냈다.
파삭파삭 거리며 초근접 거리에서의 모든 탄환을 받아 흘려보낸 X의 검이 갑자기 찌르기로 변해 발사된 탄환처럼 에스더의 미간을 노린다.
에스더는 여유롭게 머리의 뿔로 검을 받아내 옆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유성호접검流星蝴蝶劍?”
“뭐…?”
나는 에스더의 품 안에서 들려온 말에 놀란 목소리를 냈다.
유성호접검은…나비처럼 흔들리며 유성처럼 쏘아지는 공방일체의 검법...지금 시대에는 가장 유명한 검법 중 하나...대 네거티브전으로 수정되어 이름세를 떨친 검법의 명칭.
은퇴한 마법소녀, 릴리의 기술이다.
[W.R.C 넘버 0, 넘버 2 활성화.]
살벌한 기계음과 함께 X의 가슴 중앙의 크리스탈이 빛난다.
나는 어째서인지 X의 카메라 렌즈가 서슬퍼런 눈빛같다고 느꼈다.
X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너무도 인간적인 몸짓으로 검을 휘둘렀다.
[전투개시.]
“흐응?”
에스더는 한쪽 날개를 움직여 X가 휘두르는 검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뒤쪽으로 조금 후퇴해 거리를 벌리자마자 X의 옆에 있는 바닥에서 전선들이 뱀처럼 솟구쳐 대포가 달린 방패에 이어진다.
그 직후, 시야가 쭉 늘어났다.
“하아...?”
“으앗?!”
다시 내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온 건 에스더가 자리에 멈춰서 X의 레이저 포격을 막아선 순간이었다.
불의 검으로 포격을 막고, 다시 이동하고 포격을 막는다.
계속해서 막고, 이동하고 막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이어지며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신기한 장난감이네?”
에스더의 비행을 전부 쫓아서...아니, 앞을 알아차린 것처럼 공격하고 있다.
로봇이어서, 뭔가를 분석해 예측한 곳을 공격하는 건가?
앞으로 뭘 할지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사격한다.
“거리를 벌리면 지면의 에너지로 일방적인 사격….”
시야가 또다시 늘어난다.
바로 앞에 X가 보인다.
에스더의 검이 밑에서 위로 휘둘러진다.
“아하?”
에스더는 웃음기 가득한 입을 살짝 벌리고 뾰족한 송곳니를 혀끝으로 핥으며 몸을 휘둘러 발차기를 날렸다.
돌진, 검격, 발차기로 이어지는 연속공격을 X가 곧바로 팔을 들어올려 방패로 막는 동시에 공격한다.
초근접 거리에서의 포격, 이건 피할 수 없다.
“으아악!”
“아하하하하!”
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에스더는 내가 맞지 않게끔 몸을 틀고 레이저 포격이 맞는 부위를 반투명하게 했다.
공격이 에스더의 몸을 통과하고, 포격 속에서 팔을 휘두른다.
에스더의 검이 X를 내리치기 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X의 검이 에스더의 불의 검을 막는다.
밀쳐내듯이 앞으로 뻗은 발차기, 측면으로 몸을 틀어서 회피.
숨어서 내밀어진 꼬리에서 나온 슈팅스타, 방패로 흘려보낸다.
검을 맞댄 순간의 뿔 찌르기, 목을 이상할 정도로 기이하게 꺾어 피한다.
“검이랑 방패가 안 녹는 거 보니까 고정 마법이라도 사용하고 있나 봐?”
[긍정.]
“웃기는 장난감이네? 지 본체보다 마법을 잘 쓰고 말야!”
놀랍게도, 에스더와 X는 거의 호각을 이루며 검을 겨뤘다.
엄청난 속도로 공격하고, 피하고, 베고, 막고, 피하고, 공격하기를 반복한다.
에스더야 그렇다 쳐도 X는...기계면서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
가장 놀라운 건 가끔씩 보여주는, 미리 뻗어져 있는 공격들이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분명히 X가 먼저 움직였는데, 에스더 스스로가 공격에 몸을 가져다 대는 것처럼 검을 향해 움직이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생긴다.
“그런데, 그게 끝?”
하지만, 아직 에스더에게는 여유가 있다.
에스더는 아직까지도 한쪽 팔로 나를 안은 채 한손으로만 싸우고 있었다.
그런 에스더가 X를 비웃으며 검을 휘두르자, X의 검이 갑자기 나를 향했다.
[약점 확인.]
“큭?!”
에스더는 급하게 몸을 틀어 몸으로 검을 받아냈다.
피부가 베이지는 않았지만, 명중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 순간부터 X는 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비등비등하던 균형은 순식간에 X쪽으로 기울었다.
에스더는 나를 보호하고 막기만 하고, X는 일방적으로 검끝을 폭우처럼 쏟아붇는다.
점점 검에 맞는 횟수가 많아진 에스더는 인상을 쓰며 이 사이로 불을 뿜었다.
“이 새끼가...놀아주니까...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네...?”
“우왓?!”
에스더는 한쪽 손으로 안고 있던 나를 풀고, 꼬리를 감아 등 뒤에 업었다.
나는 에스더의 등을 꼭 붙잡고, 에스더의 머리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에스더는 양쪽 날개를 크게 펼치고 한 손에는 불의 검을, 한 손에는 불이 감싸인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기계 주제에!”
[회피...불가능.]
앞날을 예견하듯 중얼거린 X는 방패를 앞에 세우고 몸을 웅크렸다.
에스더는 완전한 방어태세에 들어간 X를 난폭하게 다뤘다.
공격하거나 상대하는 게 아닌, 장난감을 다루듯이...손톱으로 할퀴고 검으로 내리치고 발차기하고, 터뜨리고, 녹이고, 자르고, 부수고, 으깨고, 박살낸다.
“죽어!”
화풀이를 끝낸 에스더는 양손으로 불의 검을 잡고 검의 크기를 압축시키듯이 줄였다.
그대로 휘둘러진 불의 검이 예리한 칼날처럼 X의 몸을 깔끔하게 베어 가른다.
그 직후, 이미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X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