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LEAP (2)
“하아...하아...진짜 최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거지? 그래...그러니까 내 글을 그렇게 많이 봤겠지….”
“그래,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크윽….”
“마력 검출량은 0인데 마력을 써야만 가능한 기술을 쓰는 기계라...R, W, B 삼색 시각파장 구성은 나랑 같은데...대체 어떤 쓰레기 자식이 내 아이디어를….”
나를 한대 때린 리프는 분이 풀린 듯 혼자 진정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정신병자같이 오락가락하는 리프의 정신상태를 보고 마음속으로 욕했다.
리프는 수술대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하며 X에게 명령했다.
“X, 부품 분해 끝났으면 검사 들어가...이상한 점 있으면 보고.”
[정밀검사 실행.]
X는 내 옆에서 비켜서 리프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가더니 두 손으로 부품이 든 케이스들을 하나하나 감싸쥐기 시작했다.
X의 바로 옆에 보이는 홀로그램 모니터에 여러 검사결과들이 떠오른다.
X에게 하던 일을 맡긴 리프는 내 자지에 메스를 가져다 댔다.
“히, 히익?!”
“네가 마법소녀들을 어떻게 꼬셨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아주 잘 풀렸어...최면어플을 써서 최면...아주 간단해...하지만, 최면 뿐만이 아니라 이 무지막지한 물건도 도움이 됐겠지?”
“그만둬...뭐, 뭘 하려는 거야?! 히약!”
“네 행동을 볼 때, 길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섹스를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쾌락 중시의 인간...뭐, 4급 네거티브니까 그럴 수 밖에 없지...그런 너한테 이 커다란 자지는 축복일거야...그렇지?”
나는 차갑고 얇은 것이 닿는 감촉에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잘린 느낌은 없다...아마도 지금 건 메스 날이 아닌 등 부분, 이건 협박이다.
내 자지를 인질로 잡은 리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잘리고 싶지 않다면 대답해, 네 몸 대체 뭐야?”
“무, 뭐가?! 뭘 말하시는 거죠?! 그렇게 질문하면 어떻게 알아들어요?!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질문해 주세요!”
“몰라서 물어? 비정상이잖아! 정액량이나 정자수는 그렇다고 쳐, 이 회복속도는 뭐야? 왜 약을 전부 해독해? 최면은 왜 안 걸려? 이 촉수는 대체 왜 이렇게 얌전해?”
“무슨, 뭘 물어보고 싶으신 건지 이해가 안되는데요!”
지금 내게 물어보는 거라면 아무리 대답하기 싫은 비밀이어도 전부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질문 범위를 제대로 잡아주지 않고 물어보는 이기적인 질문은 대답을 생각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다행히 리프는 인상을 쓰면서도 내 말이 합당하고 논리적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지가 똑같은 상황이 되어보니 나랑 똑같은 말 하는 게 열받네….”
“네? 무슨 말씀이시죠?”
“닥쳐, 니가 모르겠다 싶은 걸 설명해주면 대답하겠다 이거지? 설명해줄 테니까 더 짜증나게 하지 말고 한 번에 알아듣고 대답해.”
나는 그래도 아직 양심과 융통성이라는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리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프는 내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줘야할지를 생각하는지 말없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정액이나 정자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것...회복속도가 빠르거나 행동이 폭력적이 되는 것...이건 4급 네거티브이니까 당연하지.”
“저, 저기...4급 네거티브가 뭐죠…?”
“하아...1급은 간부라고 불리는 개체, 2급은 간부 밑의 소속된 괴수들, 3급은 감염체, 4급은...너 같은 놈들을 얘기하는 거야.”
“잠깐만요...제가 네거티브라고요?”
“왼손에 촉수 박혀있는 놈이 그럼 정상인이게?”
그건...그렇지….
내가 네거티브라는 충격적인 말에 반박하려던 나는 너무도 당연한 지적에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왼손에 촉수가 박혀있는 사람...그렇지...정상은 절대 아니지….
그러면 무언가에 기생당한 사람을 4급 네거티브라고 하는 걸까…?
“그런데...4급이면서 왜 혈중 네거티브 세포는 없고, 웹셀은 기관 형성은 해놓고 정지되어 있고...이런게 박힌 놈이 4급 수준이라는것도 웃긴데, 최면 면역은 대체 왜, 어떻게 있는거야?”
“최면 면역요?”
“그래! 아니...해독은 또 왜 되는데? 치료는 뭐고? 이런 게 가능한데 수치는 4급이라고? 말이 돼? 촉수는 무슨 얌전하게 애완동물처럼 자리잡아 있질 않나, 안테나도 멀쩡한 놈이 왜 공격을 안하는데?”
“안테나요?”
“상위 네거티브와 통신하는 웹셀 상위기관! 그게 있으면 파괴 충동이 계속 올 텐데 왜 얌전하냐고!”
그러니까, 내 손에 박혀있는 촉수는 상위 네거티브랑 통신할 수 있는 멀쩡한 네거티브인데 왜 나를 공격하지 않느냐...가 의문이라는 얘기다.
나는 상위 네거티브라는 얘기에 곧바로 이 촉수를 심어준 장본인인 에스더를 떠올렸다.
나는 리프에게 에스더와 있었던 일을 망설임 없이 고백했다.
“그...그건 아마도 이게 에스더가 심어준 거라서…그거! 그거 봤다고 하셨죠? 저 에스더한테 퀴즈 전부 답해서, 진짜 팬이라고 심어준 거거든요?!”
“에스더가…? 잠깐만, 그냥 기생 촉수가 아니라 에스더가 심어준 거라고…?”
“크악?!”
리프는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눈을 번쩍 뜨더니 내 팔에 망설임 없이 바늘 같은 걸 꽂았다.
몇 개인가 꽂힌 바늘에 전선 같은 걸 연결한 리프는 주사기를 꺼내 안에 여러가지를 섞어 주사하고는 바텐더처럼 흔든 주사기를 내 팔에 꽂았다.
차가운 액체가 촉수에게 흡수당하는게 느껴진다.
“나한테 뭘 주사한 거야!”
“네거티브 세포, 독성 물질은 흡수...양분이 채워지면 재생액…이 녀석이 뭘 하는지는 확인 됐고….”
“도, 독?! 미쳤어?! 이 쓰레기!”
“에스더가 이걸 심었다 이거지? 자기 판단하에 숙주를 보호…? 그래, 퀴즈를 다 푼 녀석을 그냥 놔줄 리가 없지!”
나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실험체로 보는 쓰레기같은 행위에 질색했다.
갑자기 네거티브 세포랑 독을 주사하다니, 만약 촉수가 흡수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끔찍하고 공허한 폐허같은 쓰레기 인성을 가진 리프는 얼굴이 창백해진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 중얼거리며 내게 최면 펜라이트를 들이댔다.
“정자수랑 정자량이 늘어나는 건 역시...그런데도 변질이 검출 안된다는 건 정말로 괴수의 장점만 얻고 단점은 배제시켜 주고 있는 걸테고, 그래서 이런 건가…? 괴수교에서 좋아할만한 얘기네...진짜 괴수랑 공존하고 있는 몸이 되어있으니....”
찰칵, 하는 셔터음과 함께 빛이 번쩍이고,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프는 최면에 걸리지 않는 내가 아닌 팔에 꽂힌 바늘의 전극의 센서값을 보여주는 홀로그램을 보며 손을 움직였다.
“이건 반응이 없는데...그래도 웹셀이 휴면 상태라는 건 안테나 역할을 자기가 하면서 기관 일부를 대체한다는 걸 테니까...아무리 소형이어도 마력 완전 은폐같은 짓이 가능한 개체면 상당한 상위개체일테고 최면에 대한 면역도 이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게…뭐야?”
[이상 보고.]
고민에 빠진 리프는 눈 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화면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X가 보여준 홀로그램 창을 본 리프는 X가 손에 쥐고 있는 병으로 시선을 향했다.
안에는 내 최면 어플이 들어있을 데이터 칩이 들어있었다.
“크리스탈…? 크리스탈 칩?! 이건...왜? 아니, 누가…? 이건 내가…지금…? 잠깐, 어떤 마법소녀 거야?!”
[측정 불가, 혼합 추정.]
“혼합…?! 윌 크리스탈 혼합?! 말도 안 돼! 테리토리 융합을 대체 뭘로 해결한거야?”
리프는 깜짝 놀라며 내 옆에서 떨어져 X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나는 자지에 메스를 들이대는 위험에서 벗어나고 긴장감이 풀려 숨을 헐떡였다.
옆에서 리프와 X의 대화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크리스탈 칩에 최면어플…! 비전폰이 아니라 이 칩이 최면어플이구나! 그래, 혼합 특성 중에 마력 관련된 게 있었다면 가능해...그러면마력 발생에 마력 은폐, 최면, 정신공격…? 융합을 했다 해도 대체 몇 가지를….”
리프는 내 데이터 칩을 쥐고 있는 X 앞의 홀로그램 창을 조작했다.
뭔지 모를 프로그램 창들이 홀로그램에 떠오르며, 코드가 가득한 화면이 나타난다.
그 화면을 빠르게 내려다보던 리프는 멍청한 목소리를 냈다.
“헤…? 잠깐...적용 비전폰 모델 14? X? 지금 최신 모델이 뭐였지?”
[10]
“내가 잘못 기억하는게 아닌데…? 적용 모델이 다르면 정상 실행이 안 되지 않나…? 아니 그보다...이거...코드가….”
화면에서 대체 뭐가 보이는건지 모를 속도로 리프는 계속해서 코드가 가득한 화면을 내렸다.
나는 나한테 질문하다가 갑자기 무슨 호들갑인가 생각하며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잠시 화면을 살펴보던 리프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이게 최면어플이라고?”
리프는 갑자기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걸...이걸 최면어플 같은 걸로 썼다고?”
“...네?”
눈빛에 한심함과 경악과 공포...그 외에도 내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는 게 느껴진다.
나는 리프가 나를 보며 한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생각했다.
최면어플이 아닌 걸 왜 최면어플로 썻냐는 듯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문득 최면어플의 존재를 처음 알게되었던 순간이 머릿속에 재생된다.
최면어플을 주운 나는, 칩 안에 있는 영상들을 보고 이 앱을 최면어플이라고 판단했다.
칩 내의 그 무엇도 이것이 최면어플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기능이...그래, 최면이 기초가 되는 건...맞아, 그렇구나, 그런데...그래도...이건….”
리프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화면을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뭔가 이상하다는게 느껴진다.
혹시...최면어플이, 최면어플이 아닌 건가?
최면을 걸 수 있었는데…그러면 최면어플이 아닌가?
만약 최면어플이 아니라면...최면도 되는 다용도 어플일 뿐이라면….
그럼 원래는 대체 뭐지?
“이게...이게 가능해? 이거, 이런게…? 아니, 말은...말은 되는데...말은…!”
[내부 파일, 깨짐 있음.]
“보, 복구해서 열어!”
[복구.]
내 최면어플이 들어있는 데이터 칩 안에는 깨진 파일들이 가득하다.
리프는 내가 한번 복구 프로그램을 돌리기 전의 파일들을 X를 통해 자체적으로 복구했다.
잠시 후, 커다란 홀로그램 창에 나도 본 적 있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낡은 노트를 촬영한 듯한 이미지에, 가로로 찍찍 그어놓은 알 수 없는 흔적들이 질서정연하게 그려져 있다.
필체가 무지막지하게 안 좋거나, 정말로 지금 시대에는 쓰지 않는 언어거나,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는 낙서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미지다.
저번에도, 이번에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맨 앞에 적혀있는 Leaf라는 단어 뿐….
“어?”
리프의 이름은 Leaf, R이 아닌 L이라고 분명히...내가 최면을 걸었을 때 말했었다.
파일에 적혀있는 글자와, 리프의 이름이 동일하다.
나는 전에 봐 놓고 다시 볼 일이 없어 잊고 있던 이미지에 적혀있는 단어를 보고 리프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거...설마....”
리프는 주머니에서 낡은 노트를 꺼내 펼쳐 들었다.
노트에 적혀있는 것과 홀로그램에 나오는 이미지를 대조해 본다.
말없이 자신의 노트와 내 데이터 칩 안의 이미지에 번갈아 시선을 향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이, 이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