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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62화 (262/299)

< 262화 > LEAP (1)

차가운 철제 침대에 구속된 채로 천천히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무것도 입지 못한 채 입을 막히고 온 몸을 수술대에서 튀어나온 철제 고리 같은 것에 묶여 있었다.

왼손에는 수도 없이 많은 센서와 전선이, 오른손에는 주삿바늘과 이어진 링거액 같은 게 꽂혀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내 몸에 주사되고 있다.

눈동자만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니, 천장도, 벽면도, 바닥도 전부 새하얗고 커다란 타일만으로 이어진 넓은 실내가 보인다.

공간감각이 이상해질 것 같은 하얀 공간이 계속해서 천장과 바닥의 타일을 뒤집고 덮기를 반복한다.

타일이 뒤집어 지면 안에서 기계장치가 튀어나오고, 다시 덮어지면 깨끗한 표면으로 돌아온다.

공중에는 투명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주변에는 기계와 연결되어있는 소형 모니터들이 계속해서 깜빡인다.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내 몸에 부착되어있는 센서의 결과들이다.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그래프를 살펴보던 내게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린다.

“정액량, 정자수 검사 아직이야?”

리프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내게 빠르게 해체되고있는 비전폰이 보인다.

가느다란 기계 관절들이 핀셋과 드라이버로 비전폰을 분해하 특수해보이는 용액에 담글 때마다 바로 옆의 모니터가 그래프를 바꾼다.

리프는 내 비전폰을 해체하는 기계 앞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액량, 정자수, 활동량, 생산량...각각 평균 대비 10배.]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던 내가 입을 막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밑 쪽에서 기계음이 재생되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해보니 병원 수술대같은 차가운 것 위에서 X가 손으로 내 물건 밑쪽을 받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스캔 기능이라도 쓰는 건지, 붉은 빛이 위 아래로 움직인다.

“좋아, 역시! 정상 수치가 아니야...변질은?”

[수치 0.]

“이상은?”

[없음.]

“하아아...진짜 어이가 없네...이것도 정상? 이딴 몸이 하이브리드가 아니라고…? 말이 돼? 혈액 다시 검사해.”

[채혈.]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는 대화와 함께 오른쪽 팔이 따끔거린다.

불알이 차가운 철판에 닿아 느껴지는 오싹함과 함께, 링거액이 주사되던 튜브가 붉은색으로 변한다.

내 피를 뽑아가고 있다.

[수치, 정상.]

“이해가 안되네 진짜...잠깐만, 수치 완전 정상이야? 뇌파는?"

[정상.]

"안 자고 있네? 와...수면제 해독이 벌써 다 끝났다고?"

[긍정.]

"...X, 입 구속구 해제해.”

리프의 명령을 받은 X가 내 입을 막던 물건을 풀어준다.

버튼식으로 열리는 이상하게 생긴 마스크를 벗은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리프를 노려봤다.

비전폰은 어느새 완전히 해부되어 부품 하나하나가 각각의 용기에 담겨있었다.

“이 자식이...내, 내 비전폰을…!”

“진정제 현재 투약량은? 투약량 5배로 늘린 거 맞아?”

[진정제 투약량 현재 35mg, 자백제 투약 중.]

“어이가 없네...진짜 어이가 없어….”

리프는 비전폰을 해체하고 있던 테이블에서 비전패드같이 생긴 얇은 태블릿을 들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왼쪽에는 X가, 오른쪽에는 리프가 서서 나를 실험체처럼 내려다본다.

리프는 해부당할 것 같은 분위기에 불안해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태블릿을 손으로 두드렸다.

“이딴 수치가 왜 자꾸 정상으로 나오냐고...마력수치 변동은?”

[마력감지 수치, 4급 네거티브.]

“그것도 이해가 안 돼. 대체 이 왼손의 촉수는 뭐야? 여기에서 측정되는 변이곡률이 이런데 4급 네거티브가 말이 돼?”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나는 내가 알아듣지 못할 얘기를 계속하는 리프에게 말했다.

리프는 차가운 태블릿을 내 배 위에 올려놓고 화면을 조작하다가 내 눈을 한번 힐끔거리고는 최면 펜라이트를 꺼냈다.

눈 앞에서 빛이 번쩍이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센서값.”

[헤일로 발생수치 0, 정신방벽 관측되지 않음.]

“아니...아오, 진짜...야, 너...정체가 뭐야?”

대체 나한테 뭘 해놓고 이러는건지 모를 리프는 손에 들고 있는 펜라이트를 가슴 주머니에 다시 꽂아넣으며 짜증냈다.

“웹셀은 형성되어 있는데 감염수치는 낮아, 그런 주제에 기생체인데 기생체가 일을 안해, 마력 저항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신방벽도 없는데 최면은 안통해, 해독능력은 심하고 왼손 악력은 그따구였던 주제에 근육 수치는 파열 외에는 정상이고….”

[근육 수치, 현재 치유.]

“그래! 저거! 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너 이거 대체 뭐야? 왜 기생체가 널 도와줘? 왜 뇌를 점거하지 않아? 말이 돼? 안테나가 제거된 것도 아니고, 변동 신호파는 계속 내보내고, 네거티브랑 연결은 지속적으로 하는 정상 촉수가 인간을 돕는 건 뭔데?”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나는 화를 내는 리프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나는 그나마 왼손이 치유되었다는 말을 알아듣고 왼손을 움찔거렸다.

리프의 말대로 혈관 안쪽을 촉수에게 긁혔던 왼손이 완전히 멀쩡해져있다.

“이거 봐, 대답 안하잖아...자백제도 안 통하는 거지?”

[혈액 수치 변동 없음.]

“하! 진짜! 어이가 없네!”

리프는 X의 말을 듣고 화를 내며 태블릿을 집어던졌다.

그러자 바닥쪽의 타일이 순식간에 뒤집어져 부드러운 쿠션을 꺼내 리프가 던진 태블릿을 받아냈다.

이어서 옆의 타일이 뒤집어지며 올라온 받침대에서 메스를 집어든 리프는 내 목에 메스를 겨누며 말했다.

“똑바로 말해, 너 정체가 뭐야?”

“지, 질문하면서 사람 목에 칼을 대다니…!”

“니가 나한테 했던 짓이잖아 이 쓰레기야!”

“히익! 이, 이름은 앵거! 글자는 A, N, G, E, R!”

“이름값 하는 놈이네 진짜, 자꾸 화나게 하지 말고 숨김없이 전부 불어!”

최면어플을 쓸 때 필요한 비전폰은 분해, 그레이프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다.

온몸은 구속, 오른팔로는 계속해서 진정제와 자백제라고 말한 차가운 액체가 몸 안으로 주사된다.

목에는 메스...방법이 없다.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은 리프에게 순순히 따르는 것만이 살길이다….

나는 서슬퍼런 기운을 풍기는 메스를 피해 최대한 고개를 비틀며 힘없이 말했다.

“불라고 해도...뭐, 뭐를….”

“숨기고 있는 게 있을 거 아냐? 그걸 전부 말하라고.”

“숨기고 있는 거라면….”

“진짜 답답하게 하네! 그래, 최면 어플...저거! 저거부터 말해! 저게 말이 돼?!”

최면 어플에 대해서 말하라고 해도...나는 아는 게 없다.

어쩔 수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리프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 목에 메스 날을 접촉시켰다.

예리한 날에 피부가 살짝 베여, 핏방울이 흘러 나온다.

“뭐, 뭘 말하라는 거야….”

“뭘 먼저? 그래...누가 줬어? 네가 저걸 만들었을리는 없고...어떤 놈이 만들었냐고!”

“모...몰라….”

[진실.]

내 말을 들은 X가 바로 옆에서 말하며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그래프가 가득한 홀로그램 모니터를 앞에 띄웠다.

나는 그제야 이마에 붙어있는 수많은 부착물들이 내 뇌파를 감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거짓말 탐지기다.

“모른다? 그럼 저게 어떻게 네 손에 있는건데.”

“주웠어…! 누, 누가 흘려서...!”

“주워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진실.]

“하?”

[진실.]

X의 거짓말 탐지결과를 들은 리프는 어이없어하며 X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X의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리프는 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너 말야...마법소녀한테 최면을 건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모...몰라….”

“강제 최면이라는 건 말야...레드 썬 한다고 해서 걸리는 게 아니라고, 마력광으로 특정한 시각파장을 일으켜 정신을 강제 무장해제 시키는 거란말야. 그럼 뭐겠어?”

“뭔데…?”

“...마력을 쓰지 않는 인간이, 마력을 쓰는 기술을 쓰고 있다는 상황이 정말 이해가 안 돼?”

최면어플을 주웠을 때 나도 잠깐 했던 생각이다.

대체 이게 뭐 하는 물건이길래, 마법소녀한테 최면을 걸 수 있는 걸까.

결국 답이 나오지 않아 포기했던 호기심을 리프가 자극한다.

최면어플은 마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으며, 리프의 설명대로라면 마력을 사용하는 특정한 기술이 필요하다.

일반인은 마력이 없으니,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마력을 써야만 가능한 최면을 쓸 수 있다는 건 방위군의 목표이자 난제인, 일반인에게 마법무기를 쥐어줘 네거티브를 잡는 군대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이 최면어플에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내가 간단하게 말하니까 별로 안 대단하다고 생각하나본데, 이건 천재 미소녀 박사인 나도 아직, 못 만드는 물건이라고.”

“아직…?”

“언젠가는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누가 흘려서 줍는다고? 그걸 안 찾으러 온다고? 말이 된 다고 생각해?”

“바로 옆에 시체가 있었어! 아마도 그 시체가...어플의 전 주인….”

“시체? 그 시체는 어떻게 생겼었는데?”

산 사람이 흘린 거라면 리프의 말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면어플을 되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최면어플이 만약 혼자 개발한 거고 그 당사자가 죽어 내게 넘어온거라면...같은 생각을 한 리프는 내게 시체의 외모를 물었다.

나는 최면어플을 주웠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 리프에게 시체의 특징을 설명해줬다.

“반으로 갈라져 죽어 있었고, 고간이 뻥 뚫려….”

“어떻게 죽었는지는 관심 없어, 얼굴을 말해! 어떤 놈이야...이걸 만들 정도의 개발자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어.”

“그건….”

나는 리프의 재촉에 시체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얼굴이...보였을 텐데, 봤던 것 같은데...충격적인 광경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도 얼굴이 뭉개진 것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몰라….”

[진실.]

“도움이 안 되네 진짜! 쓰레기가!”

“커헉!”

리프는 내게 화를 내며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성인 남성 수준의 완력, 하급 마법소녀치고는 약한 힘이지만, 아프긴 아프다.

나는 마법소녀면서 일반인의 얼굴을 공격하는 리프의 악행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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