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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60화 (260/299)

< 260화 > 2동 박사 (4)

“자, 잠깐!”

나를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나는 다급하게 최면어플부터 들어 올렸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왜 최면이 통하지 않는 거지?

통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상대는 아마도 기계, 인간형 로봇…이런게 존재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누가 봐도 기계 인간이다.

내 최면어플은 마법소녀에게만, 기계에게는 최면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점점 다가오는 기계 인간을 보며 머리가 아플 정도로 빠르게 생각했다.

외관이나 행동을 볼 때, 이건 리프의 적이 아니다.

리프의 아군, 아마도 리프가 만든 로봇이다.

리프는 분명 혼자서 왔다고…아니, 기계는 사람이 아니다.

질문에 답해주면서 이 녀석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최면을 걸 때, 내게 당했을 때에 대한 대비책이 있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신호를 어떻게 나 모르게 준 건지, 목에 주사한 약이 뭔지 모르겠다.

나를 죽이려 하는 이유는…당연히 내가 리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궁금해하거나 후회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가지?

목을 조이는 금속 고리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상대는 기계, 최면은 안 걸린다.

리프와 똑같이 생긴 기계 인간이 느린 걸음으로 묵직하게 걸어와, 손을 뻗는다.

죽는다.

머리에, 목에 저런 게 닿았다가는 머리가 바로 익어서 죽어 버릴 것이다.

“크아아아…!”

나는 점점 다가오는 공포에 발버둥 치며 온 힘을 다해 목에 걸린 고리를 벌렸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손안이 아프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악!!”

그 순간, 갑자기 왼손이 찢어질 듯 아파져 오며 고리가 터지듯이 벗겨졌다.

고리를 안쪽에서부터 밀어내던 힘이 그대로 튕겨 나가 가까이 접근한 기계 인간의 얼굴을 후려친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 인간이 주먹에 맞아 날아갔다.

“으아아아악…! 뭐, 뭐야아…!”

현관 앞에 쓰러지듯 떨어진 나는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왼손을 부여잡았다.

반쯤 펼쳐진 왼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혈관 사이사이를 긁어내는 것 같은 불쾌한 통증이 느껴진다.

대체 어째서인지 나는 그것이 촉수가 내 손 사이사이에 스며들었다가 돌아가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악력, 307kg….]

“허억…! 허억…! 헉…!”

철을 때린 주먹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던 나는 기계음과 함께 기계 인간이 다시 몸을 일으키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이 녀석에게는 최면도, 식칼도 통하지 않는다.

“어딜, 가려고….”

“큭…!”

그때, 도망치려는 내 발목을 리프가 붙잡았다.

리프가 몸을 움직이고 있다…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최면에서 풀려났다.

목에 주사한 약이 혹시 최면에서 풀려나는 약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약이다.

“307kg이면 677파운드…인간이 아니잖아…! 고릴라랑 섹스하는 사이라고 악력도 고릴…켁! 큭! 잠…!”

발목을 빼내려 해 보지만 잡은 손을 놔 주질 않는다.

나는 잡히지 않은 반대쪽 다리로 리프의 팔과 머리를 걷어찼다.

어서 도망쳐야 한다…최면이 안 통하는 마법소녀와 기계 인간이라니, 내게 너무 불리하다.

“개, 새끼…쓰레기얏! 여자를 발로 차다니…!”

리프는 내 발에 짓밟힌 채 내게 최면 펜 라이트를 내밀었다.

붉은빛이 번쩍하며, 내 머리를 강타한다.

그와 거의 동시에 황금빛이 퍼져 머릿속에서 붉은빛을 튕겨낸다.

“하아…하아…X 뭐하는 거야! 돕지 않고!”

[의식 정상화 확인, 임시 관리자 허용 상황 종료, 명령 대기.]

“저 실패작이…! 어…?”

“응?”

나는 내 발밑에서 화를 내며 몸을 일으키려는 리프와 눈을 마주쳤다.

…뭐지?

아무렇지도 않다.

“자, 잠깐…뭐야?! 왜, 왜?! 면역?!”

대체 어째서인지 리프의 최면이 내게 통하지 않는다.

나는 비전폰을 내밀어 리프에게 최면을 걸었다.

다시 최면에 빠진 리프가 몸을 딱딱하게 굳히며 바닥에 쓰러진다.

“아아아아아! X! 뭐 하는 거야아앗!”

[뇌파측정…상태 비정상.]

“이 자식 좀 나한테서 떼어…!”

“저 자식 멈추게 해!”

나는 리프에게 X라고 불리고 있는 기계 인간을 멈추게 하라고 명령했다.

둘의 대화를 볼 때 리프는 X의 주인, 아마도 발명자다.

그렇다면…최면에 걸리는 리프를 통해 X에게도 명령을 내리면, 둘 모두를 제압할 수 있다.

“머, 멈춰!”

[임시 관리자 코드 활성화, 명령 거부.]

“뭐?!”

하지만 X는 내 명령을 받은 리프의 명령을 거부했다.

리프는 그런 X의 반응을 보고 내게 비웃음과 승리감이 섞인 미소를 보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자율판단, 실험용액 3번 투약 개시.]

“강제 헤일로?! 뭘 그딴 판단을…잠깐! 진짜 멈춰헉!!”

X는 이어서 리프에게 손가락을 겨눠, 뭔지 모를 주사를 3개 정도 쏘아 보냈다.

미소를 지우던 리프가 기겁하며 고개를 젓는 순간 몸과 목에 주사가 박힌다.

흰자위가 다 보이도록 눈을 뒤집은 리프는 발작하듯이 몸을 떨었다.

“혹! 옥…! 욱…!”

리프는 내 발목에서 손을 떼고 바닥에 누워 등을 뒤로 젖혔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곧바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허억…! 허억…!”

엘리베이터를 타면 늦는다…좁은 곳에 갇히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계단, 계단으로 뛰어간다.

한층 한 층을 날아오르듯 뛰어내린 나는 순식간에 1층에 도착해 숨을 헐떡였다.

그레이프가 이것저것 먹여주고 섹스로 단련시킨 덕에 몸이 가볍다.

지금의 운동능력은 훈련병 시절 이상…이 정도면 상대가 날아다니지 않는 한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나는 집에서 벗어나 최대한 멀리 도망치려고 쉴 새 없이 달리며 생각했다.

“허억! 허억! 허억…!”

이럴 줄 알았다면 정보를 캐내기보다는 안전장치부터 걸어둘 걸 그랬나….

아니, 정보를 캐낸 건 잘한 행동이다.

리프가 최면에 걸린 순간부터 X라는 기계 인간에게는 명령도 통하지 않았다…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게 감지되면 명령을 무시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 녀석을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최면을 걸 수 있는 사실을 들켜버렸고, 상대에게는 최면이 걸리지도 않는다.

리프에게 최면을 걸면 X가 약을 주사해 풀어주기까지 한다….

확실히 느꼈다.

저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어떡하지…어떡하면 좋지?

“학! 학…! 학…!”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 도착한 나는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다.

피가 머릿속에 너무 돌아 생각이 잘 되질 않는다.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건 무리다….

잠시 멈춰선 나는 뒤늦게 든 생각에 비전폰을 꺼냈다.

오늘은 일요일, 그레이프가 돌아오는 날이다.

그레이프한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하면…그러면 그레이프가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다.

내가 상대할 수 없다면 상대할 수 있는 녀석에게…하급 마법소녀따위가 최상급의 마법소녀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레이프를 불러서 대신 싸우게 한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레이프…! 지금 나…!”

[멍청이!  내가 이런 짓을 생각해두지 않았을 것 같아?!]

“뭐…?!”

그레이프의 것이 아닌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비전폰을 귀에서 뗐다.

화면에는 그레이프의 이름이, 번호가 나와 있다.

그런데도 나오는 건 그레이프가 아닌 조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 리프의 목소리다.

[상점가? 하! 그레이프는 내일 점심에나 올 테니 포기하라고! 너는…너는 가만 안 둬! 내가 붙잡아서 실험체로 최면 기계고 너고 전부 해부, 해체를…!]

나는 기겁하며 통화를 종료하고 멍하니 비전폰을 내려다봤다.

뭐지…? 왜 전화가 저년한테…?

불안한 예감에 다급해진 나는 메신저를 열어 그레이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파가 좋지 않을 때나 나오는, 전송 실패 표시가 뜬다.

혹시나 해 래피드에게도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역시나 보내지지 않는다.

래피드에게서도…그레이프에게서도…메시지 같은 건 온 적이 없다고 나온다….

“해킹인가…!”

나는 리프가 최면에 걸려 했던 얘기들을 떠올리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했다.

비전폰을 원격 해킹…아니, 트루 비전의 통신사를 어떻게든 해킹했다고 봐야 할까.

나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최면어플을 작동시켰다.

최면어플은 작동하고, 래피드와 애쉬의 위치를 확인한다.

래피드는 0번 구역에, 애쉬는 외부 구역으로 통하는 곳 중 한 곳에 멈춰 서 있다.

왜 래피드의 위치를 알아보는 것도 가능한 건지가 조금 궁금해지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최면어플 외의 데이터망이 필요한 기능은 전부 작동하지 않는다.

래피드는 0번 구역, 그레이프는 통화도 메신저도 안 된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문득 리프가 전화 너머에서 입 밖으로 꺼냈던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왜 상점가라는 말을…어떻게 내가 지금 있는 곳을 특정했지?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

비전폰에 있는 GPS 신호, 내 비전폰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비전폰을 버릴 수 없다.

최면어플은 내 유일한 무기, 이걸 버리는 건 바보짓이다.

지하철의 마법소녀들은?

괜찮은 방법이지만, 역에 차량이 도착해 있을까?

운 좋게 도착시간이 딱 들어맞을 것을 기대하고 지하철로 걸어가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그나마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출근할 때 쓰던 지하철 정기 도착 표의 이미지를 찾아 열었다.

앞으로 5분 뒤…정말 운이 좋다면, 연착 없이 도착한 지하철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다.

도박이나 다름없는 방법을 선택한 나는 지하철 역을 향해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 앞에 도착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차량이 오랜 시간 연착 지연될 때 지하철 외부에서도 미리 알 수 있게 해 주는 전광판에 불길한 글자가 지나가고 있다.

“망할…!”

감염체 대량 발생으로 인한 운행 지연 안내.

지하철은 안된다.

나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다가, 근처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시선을 고정했다.

“아!”

비전폰을 해킹한 건 내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비전폰을 쓸 수 있다.

빌려서 그레이프에게…아니, 래피드에게 전화를 한다면…!

[다들, 주목!]

그런 생각을 한순간 머리 위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놀라며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킨다.

나는 불안한 예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의 하늘을 바라봤다.

X가 리프를 품에 안고 발밑과 등에서 푸른 화염을 쏘아내며 하늘을 날고 있다.

어두운 하늘을 등 뒤로 두며 잘 보이지 않는 리프가 손을 앞으로 뻗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손에 들린 펜라이트가 은빛으로 빛난다.

“다들, 최면 시간이야!”

붉은빛이 터지며, 안 그래도 초점이 흐려져 있는 사람들의 눈이 완전히 풀린다.

내 주변, 이 역에 있는 사람 전원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리프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아차리고 온 힘을 다해 사람들을 밀치며 도망쳤다.

“지금 움직인 놈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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