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2동 박사 (3)
미친놈이라니, 말이 심하다.
신중하다고 해 줬으면 좋겠다.
의식이 남아있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조금 당황스럽기는 해도, 이 정도면 최면에 걸린 게 맞다고 믿어줘도 괜찮을 것 같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상황에서 자기 약점을 드러내고 그 약점을 찌르게 해 줄 리가 없지….
충분히 안심한 나는 리프의 목에 겨눈 식칼을 치웠다.
겁먹은 리프의 시선이 불안하게 떨린다.
나는 공포심에 떨고 있는 리프, 2동 박사를 노려보며 입가를 만졌다.
그럼 이제…어떡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한 나는 가장 먼저 알아봐 둬야 할 것부터 질문했다.
“…너 혼자 행동한 거냐? 아니면 주변에서 도와주는 다른 사람이…마법소녀는?”
“그, 그래! 맞아! 내 개인행동이야! 개인, 인원은 나 혼자!”
혼자 행동한 건 확실한 것 같고…그렇다면, 최면을 좀 더 느긋하게 걸어도 괜찮겠지.
리프는 하급 마법소녀, 마력을 내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볼 때 나를 속인 것도 아닌, 정말로 최하급 수준의 마법소녀다.
하급 마법소녀 수준으로는 질문을 아무리 걸어도 최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히, 히익…미, 미쳤어…뭐, 뭐야앗…나, 나 마법소녀인데…주, 죽이려, 죽이려….”
“2동 박사라….”
“그, 그, 그래, 나, 나 박사라고, 천재, 이런 나한테, 그, 칼은, 인류의, 마법소녀의 손해라는 걸 모르는 거야?!”
리프에게도, 2동 박사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다.
하급 마법소녀면 내게 저항할 수도 없으니…안전장치는 조금 있다가 걸어도 괜찮겠지.
머릿속에 가득한 의문들을 참기 힘들어진 나는 리프에게 최면어플을 내밀어 질문했다.
“…내 방에는 왜, 나는 왜 찾아 온 거지?”
“크읏…래피드 머리카락…구하려고…안정적인 공급책…개인적 호기심, 마법소녀들이랑…어떻게…그렇게 섹스를….”
대답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머리카락은 대체 뭐에 사용하는 거지?
내가 마법소녀들하고 섹스했다는 건…어떻게 알고 있지?
“내가 마법소녀들하고 섹스했다는 건 어떻게 알아.”
“추적…해서, 추리를…CCTV, 기록 남으니까…지하철에서는, 방위군 측정의 마법소녀들 마력량이 올라서….”
“나를 추적했다고? 어째서? 뭐 때문에?”
“구, 궁금하니까…! 큭…! 왜 이런 놈이 마법소녀랑 섹스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고!”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 내가 마법소녀들하고 섹스한다는 건 어떻게 안 건데.”
내가 마법소녀와 섹스한다는 걸 알기 위해서는 추적을 했어야만 한다.
추적을 한 원인이 내가 마법소녀와 어떻게 섹스를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면, 두 이야기의 순서가 이상해지게 된다.
좀 더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자 리프는 이를 악물고 발음을 뭉개며 대답했다.
“처음 시작은…에스더, 퀴즈를 전부…아는 놈이 있다길래….”
“에스더 퀴즈…? 아, 그때인가….”
“에스더가, 퀴즈를 전부 맞춘 녀석이 있는데 풀어줄 리가 없다고! 그년이 그럴 리가 없고, 방위군에서 얘기가 나오니까 궁금했던 것뿐이야!”
“그래서 추적하다가…지하철에서 섹스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그래….”
“그걸로 나 혼자 섹스한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지? 다들 남자친구가 생긴 거였을 수도 있잖아.”
“테리토리 변질이 일어난다고 했잖아! 그 코드가 같으니 당연히 같은 대상이지!”
“쯧….”
뭔지 모르겠지만, 마법소녀들을 검사하며 나 혼자만 섹스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2동 박사는 방위군 소속…그것도 마법소녀 관련 연구부서 소속이다.
2동 박사 본인인 리프가 마법소녀들의 마력 측정 기록을 아는 건 이상하지 않다.
거기에서 꼬리가 밟혔다고 하면…방위군도 나에 대해서 아는 건가?
“방위군에게 내 얘기를 한 적은?”
“없어…전혀, 한 번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방위군에 내 얘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리프에게 다른 의문점을 질문했다.
“여기로 온 이유가 더 있는 거지? 전부 설명해.”
“그레이프의 기록도 겹치니까 대체 어떤 녀석이 마법소녀를 다섯이나…하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진사에 래피드 머리카락을 자꾸 공급하는 사람이 이상해서 조사하니까…동일인이라서…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최면을 걸어두고 천천히 호기심을 풀려고….”
“나를 추적했다는 건? 미행인가?”
“마진사 해킹, CCTV 해킹, 드론 해킹…방위군 자료 열람 서버 해킹….”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래….”
에스더를 만났을 때 방위군에서 드론으로 내 정보를 조사하며 만든 보고서가 방위군 내에서 조금 소문이 나고,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 해 조사…그 과정에서 점점 더 이상한 걸 발견하게 됐다….
추적 방법은 미행과 해킹, 그 과정에서도 이상한 점들이 계속해서 보였고, 결국 직접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딱히 꼬리가 밟힐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쯧….”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혀를 찼다.
어쩌면 요즘 CCTV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는 착각이 착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계속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면…누군가 보는듯한 시선이 느껴졌던 것도 이해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를 찾아온 이유가 부족하다.
이 녀석은 내게 마법소녀와 섹스하는 법을 물어보려고 온 게 아니라,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정기적으로 공급시키는 최면을 걸기 위해 찾아왔다.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하자마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머리카락은 왜 모으는 거지? 가공해서 뭘 만들겠다는 거야.”
“W.C.R 제작….”
“그게 뭔지 설명해.”
“위, 윌 크리스탈…래피드의….”
“윌 크리스탈?”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한 단어에 눈썹을 찌푸렸다.
그레이프의 무기 이름, 크리스탈 소드…루이가 사용하는 무기도 어떤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래피드의 머리카락이 그 크리스탈의 재료가 된다는 얘기인가…?
“윌 크리스탈이 뭐지?”
“마력 특성이 유지되는 특수 금속, 결정체….”
“어디에 쓰지? 범용적인 사용법 말고 네 목적을 말해.”
“무, 무, 무기…크읏…무기제작.”
“무기…? 그레이프의 크리스탈 소드 같은…?”
“그, 그래…그것도 비슷한 물건이야! 순도가 조금 다르지만….”
리프의 목적은 그렇다면…무기 제작인가?
무기 재료를 찾기 위해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수집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래피드의 머리카락이지…?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사용하는 이유는?”
“마력 특성 때문에…읏….”
“…마력 특성은 뭐지?”
“마력에 녹아들어 있는 원초적인 기원…뭔가를 멈추고 싶어서 각성했다면 고정, 더 움직이고 싶어서 각성했다면 활성화…크윽…이, 이 언제까지 이렇게 두려는 거야?!”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 끝날 때까지다.
나는 내 호기심을 하나하나 풀어주는 백과사전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목적은 그럼 래피드의 윌 크리스탈 제작이냐?”
“그래…!”
“방위군 소속이라면 래피드에게 그냥 요청하면 되는 거 아냐? 왜….”
“안 줄 게 뻔하니까 그렇지! 그리고…큿…들키잖아! 그랬다가 들키면…!”
들켜…?
누구한테…?
뭐를…?
누군지 모르겠지만, 리프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무기를 만드는 건 그 상대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인가?
새로운 의문점을 질문하려는 순간, 리프가 시선을 현관 쪽으로 향하며 큰 소리로 발악하듯 소리쳤다.
“이딴 일이…내 글 구매기록 보면서 설마설마 했는데…마법소녀한테 최면을 건다는 게 말이 돼?!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최면 펜 같은 걸 쓰는 네가 할 말이냐?”
“최면 펜이 아니라 최면 펜라이트! 내가 만들었으니까 더 잘 이해한다고! 뭐야 이건, 어떤 놈이 내 아이디어를 도둑질해 가서 개조하기라도 한 거야?!”
“만들었다고…?”
최면 펜 라이트를 만들어…?
그렇다면 역시 이 녀석이, 사람들에게 최면을 건 주범인가?
새롭게 떠오른 의문에 조금 전까지의 생각들이 덮어씌워지는 순간, 리프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 초 천재, 내 발명품! 촤면 펜라이트…! 방위군의 기억 제거 장치를 만들 때 생긴 아이디어로 만든 최고의 작품이야!”
“기억 제거 장치…?”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나밖에….”
“너…네가, 사람들한테 그 이상한 최면을 건 거냐?”
방위군의 기억 제거 장치는 또 뭐지?
나는 계속해서 생겨나는 의문을 뒤로하고, 가장 궁금했던 것을 리프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리프는 인상을 쓰며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현관문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둘 중 무슨 최면을 얘기하는 건진 몰라도 둘 다 내가 아니야!”
“둘…? 그건 또 무슨…?”
“아아아아! 진짜!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려는 거야! 아직도 약 조합이 안 돼?! 시간 끌기는 충분하악?!”
“뭣…?!”
창문이 깨지는 소리, 리프가 옆으로 넘어진다.
리프의 목에 조그마한 약통 같은 것이 박혔다.
계속해서 질문하던 나는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컥?!”
깨진 창문 사이로 날아온 무언가가 내 목에 감겨 현관문에 달라붙는다.
나는 현관 쪽으로 몸이 휙 하고 강력하게 끌어당겨지는 것을 느끼고 손으로 목을 만졌다.
순식간에 날아와 내 목에 감긴 철 목걸이 같은 것이 만져진다.
아마도 이건 자석이다…그것도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전자석이다.
현관에 목 뒤를 부딪치고 꼼짝 못 하게 된 나는 손으로 철로 된 고리를 잡아당기며 창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깨진 창문의 유리 조각을 밟은 무언가가 그림자에 가려진 채로 방 안으로 들어온다.
“큿, 웃, 앗…학…?!”
“뭐, 뭐야?!”
리프는 바닥에 누워 온몸을 움찔거리고 있다.
설마 리프를 쫓는다는 무언가가 찾아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한 내 앞에,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 달빛이 새어 들어온 빛줄기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퍼스널 리얼리티 피해 확인, 테리토리 변질…확인, 액상 마력 정화까지 앞으로 27초.]
리프와 똑같이 생긴 무언가는 입술을 벌리고 기계적인 목소리를 재생했다.
서버실에서 들을 수 있는 기계 작동음, 피부 위 관절 사이사이에서 반짝이는 LED,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무언가는 내게 손을 뻗은 채 손가락 끝을 열어젖혔다.
[개체식별, 4급 네거티브…분류추정, 마인드 컨트롤러.]
금속이 드러난 손가락 끝에서 파직파직 소리를 내며 전기가 튀어 오른다.
그것은 손끝을 세우고 내게 다가오며 기계음을 냈다.
[취급, 사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