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비밀, 친구 (3)
아냐...이런 생각을 해선 안된다….
마법소녀들을 쓰러뜨린 건 내가 아니야...그때 그 일은 커맨더 개체가 너무 뛰어나서 그렇게 된 사고일 뿐이다.
감염체들은 허접했고, 나는 그런 약골 감염체들만 모아뒀다.
종이를 모아뒀는데 종이로도 나무를 벨 수 있는 마법소녀가 나타나 나무를 벴다면, 그건 종이를 모아둔 내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원인을 생각하자면 내가 그런 상황의 시작을 만든 것도 래피드가 나를 오해하게 해서...래피드 때문이다.
커맨더랑 래피드가 나쁘다.
마음 속에서 나를 나쁜놈으로 만들어버릴 뻔 했던 나는 논리적으로 나 자신을 변호했다.
나는 나쁘지 않다.
나쁜 건 내가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상황이다.
“휴우….”
좋아...진정됐다.
지금은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이마의 땀을 옷소매로 닦으며 래피드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러면, 그걸...들킨 게 부끄러워서 그랬던 거에요?”
“읏...으...윽....”
래피드의 가슴 쪽을 힐끔거리며 묻자 래피드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문제는 함몰유두인 것을 들킨 것...확실하게 문제를 인지했다.
해결책은 세 가지...함몰유두인 것을 들켰다는 사실을 없애버리거나, 함몰유두인 것을 부끄럽지 않게 해주거나, 함몰유두라는 원인을 없애주면 된다.
들켰다는 사실을 없애버리려면 나를 없애거나, 내 기억을 없애야 하니 안된다.
가장 쉬운 건 두 번째, 함몰유두인 것을 부끄럽지 않게 해 주면 된다.
나는 웃는 얼굴로 래피드에게 말했다.
“뭐야...그런거 괜찮아요, 귀엽기만 한 걸요.”
“네…?”
“함몰유두인거 전혀 이상하지 않고 귀엽….”
“애, 앵거 씨?! 저, 저기…! 그런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그러는 그거, 그거거든요…?!”
“그거라뇨?”
“여자, 여자애한테 그러면 안돼요! 부끄러워서 죽는단 말이에요!”
“함몰유두가…?”
“앗! 아아...저, 정말...왜, 왜 말한거야...아아아 나 진짜 바본가봐...왜….”
래피드는 어두운 복도에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내 생각 이상으로 부끄러워 하는 것 같다.
이게 그렇게 부끄러워할 일인건가….
나한테는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할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래피드에게는 무척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지금처럼 괜찮다는 걸 알려주는건 래피드를 자극할 뿐이다.
나는 래피드를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저도...래피드한테 흥분한다는거...엄청 부끄러워도 말한건데….”
“...네?
“래피드는...저한테 비밀을 말 한게 그렇게 후회되요?”
나는 래피드에게서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속이 상했다는게 확 드러나는 표정을 지었다.
슬픈 생각...애쉬한테 죽는 생각...래피드가 나를 무시할 때의 기억을 떠올려 최대한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
“아, 아뇨?! 아뇨..그건, 그게 아니라….”
“래피드랑 저는 비밀친구잖아요…?”
“어? 그...렇죠?”
“서로 비밀 말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그런...데…어…?”
래피드에게 걸어둔 최면을 언급하며 말하자 래피드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밀친구는 서로 비밀을 말하고 공유하는 사이다.
그러니 이런 비밀을 공유하는 건 당연하고, 남들에게는 알리지 않아야 하니 비밀이 퍼질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래피드는...저를 못 믿나봐요….”
“아, 아뇨?!”
“저도 비밀 말해줬는데...래피드는 저랑 비밀친구 하기 싫구나….”
“그게 아니에요!”
래피드는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감추기 위해 입가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속상함이 넘쳐 흐르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자 래피드가 급하게 내 손목을 잡았다.
“애, 앵거 씨...그게 아니고...싫은게 아니라….”
“래피드가 함몰유두인 걸 제가 알게 된 게 싫잖아요….”
“아뇨?! 싫은게...싫은게….”
“싫죠…?”
“안...싫어요….”
좋아...일단 래피드가 내게 함몰유두라는 사실을 알려준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얻어냈다.
남은 건 말 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싫어하지 않게 만드는 것 뿐이다.
나는 래피드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힐끔거리며 말했다.
“정말로 싫지 않은 건가요?”
“싫은게 아니라...부끄러운...건데….”
“저는 래피드가 저를 엄청 싫어하게 된 줄 알고 계속 속상해 했는데….”
“죄, 죄송...해요...속상해했구나….”
“아까도...대화도 안 하려고 하고….”
“잘못했어요….”
“하아….”
나는 래피드의 진심어린 사과를 듣고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이, 래피드가 좋아서 참아준다는 의미의 한숨이다.
래피드는 내 한숨에 깜짝 놀라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음부터 이러지 말아주세요.”
“네에….”
“뭘 이러지 않을 거에요?”
“네?! 그게...함몰...유두...앵거한테 알려준 거...싫어하지 않을게요….”
“그거랑, 다른 건…?”
“다른 건...다른 건…여, 연락...문자 보면 답장 하고....”
“부끄럽다고 해서 도망가지 않기.”
“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역시 그레이프에게 사용하며 효과를 확인한 방법 답다.
죄책감을 자극당하고 용서받은 래피드는 기운이 빠진 듯 지친 얼굴이 되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래피드의 손목을 잡았다.
지친 래피드는 무력하게 내게 손목을 잡혀 내가 가자는 대로 끌려왔다.
래피드와 나는 어두운 복도를 나와 영화관 로비로 돌아갔다.
“그런데 함몰유두의 어떤 점이 부끄러운 거에요?”
나는 사람들이 조금 있는 곳으로 오자마자 정말로 이젠 괜찮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래피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런 걸 질문해도 얼굴을 붉히긴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흠칫 놀라거나 하지는 않는다.
래피드는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바로 옆에 있는 내게만 들리게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평범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좋은 거 아니에요…?”
“좋...다구요?”
“래피드가 흥분하면 바로 티나니까...엄청 귀여운데….”
“흐아아아….”
함몰유두라고 해도...래피드가 흥분하면 숨길 수 없는 반응이 나온다는 거니까 그냥 귀엽기만 할 뿐인데….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 래피드는 울 것처럼 눈가를 적시며 주먹을 쥐었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그런 점도...부끄러워요….”
“흥분한거 들키는거?”
“그건, 그게….”
“비밀친구니까 말 해도 괜찮아요.”
“읏...네에에…그게 제일...부끄러워요....”
역시...래피드가 부끄러워 하는 건 흥분하는 걸 내게 들키는 건가.
듣는것만으로 묘하게 흥분되는 대답에 아래쪽이 빳빳해진다.
나는 영화관 로비에서 나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래피드에게 속삭였다.
“그래도...래피드는 안을 때만 티 나잖아요...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티, 티났던 거에요…?”
“네?”
래피드를 위로해주던 나는 울 것 같은 목소리를 듣고 귓가에서 얼굴을 떨어뜨렸다.
래피드는 수치심에 젖은 얼굴을 하고 혼란에 빠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숨겨봤자 소용 없을거라는 생각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아아아아….”
“괘, 괜찮아요...귀여우니까….”
“아아아아...그런거어...전혀, 위로가, 안 돼요….”
“저도 래피드랑 손만 잡아도 흥분하잖아요, 래피드가 그러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읏...으으으….”
래피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소리를 냈다.
다행히 내가 위로해 주자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숨을 삼킨다.
래피드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고 다시 더 아래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로 갈아타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죄, 죄송해요...진정할게요, 괜찮은 거니까…괜찮은 거죠....”
“음...네.”
“괜찮아...괜찮아...후우...후우….”
정말 괜찮은 걸까…?
래피드는 눈을 감고 명상하듯 규칙적인 호흡 소리를 냈다.
잠시 진정하고 있던 래피드는 눈을 감은 채로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며 내게 말했다.
“...앵거 씨, 그런데 저...궁금한 거 하나만 질문해도 괜찮아요?”
“네? 네.”
“저...소, 손 잡으면...그러는 거...이상하지 않아요?”
“귀여워요.”
“아니이, 그게, 아니라아...그, 정상적이지...안잖아요….”
래피드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내게 지적했다.
내 손을 잡을 때마다 손에서 느낄 수 없는 쾌락을 느끼는 건 정상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
“정상적이지 않다뇨…?”
“그건, 그...앵거...씨는…? 흐, 흥분...해도…별로, 막, 이렇게...그런 건 없는...거죠? 반응이...그, 그런 거 까지는 안 하니까…?”
나는 래피드의 이상한 말을 전부 이해했다.
이건 내가 흥분해도 보지처럼 느끼거나, 절정하지는 않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나는 손을 잡아도 손으로 쾌감을 느끼는 건 아니니, 사정하거나 하지 않는다.
“저도 기분 좋아요, 래피드랑 손 잡고 싶어요.”
“아...혹시 더...뭔가, 엄청 기분 좋은 건…?”
“래피드랑 손 잡으면 엄청 기분 좋아요, 래피드가 그만큼 매력적이라서 계속 손 잡고 싶고요.”
“으, 응...으응...그...그렇구나….”
“뭔가 고민이 있는 거에요…? 저한테 비밀로 해야 하는…?”
“그게, 저는 좀 더...강한 것...같아서, 자극이...조금, 많이...그래서, 부끄러워서….”
나같아도 여자랑 손잡을 때마다 사정하면 창피해서 손도 잡지 못할 것이다.
나는 래피드의 부끄러움을 이해하면서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가만히 서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래피드는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자 충격을 받은 듯 시선을 피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잊어주세요….”
“혹시...래피드는 저랑 손을 잡으면 손이 많이 기분 좋은 건가요?”
“앗...네! 네….”
바로 긍정해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다 긍정하자, 래피드는 부끄러움을 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래피드의 귀여운 반응을 보고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고 해 급하게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눈을 찌푸린다.
“음...래피드 혹시 저랑 손 잡은게 처음으로 남자랑 손 잡은 건가요?”
“그건...네...처, 처음이에요...남자랑은….”
“그러면...남자랑 접촉한 적이 적어서, 래피드의 손이 너무 예민한 상태인 건 아닐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