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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50화 (250/299)

< 250화 > 비밀, 친구 (2)

“그야….”

사실 그렇게 강제적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강제로 덮친거나 다름 없으니까…?

나는 그레이프가 해준 조언을 떠올리며 솔직하게 사과하려다가 래피드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 표정을 알고있다.

이미 몇 번인가 그레이프가 했던 표정...하지만 그레이프를 볼 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과 다르게 래피드에게서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싫어한다거나 기분 나빠 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 당황하는...표정이다.

묘한 위화감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그러고 보니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생각을 묻는 대답이 조금 이상하다.

내 예상대로라면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래피드는 그건 충격적이었지만 괜찮아요 같은, 인사치레같은 말을 해야 한다.

그걸 내가 계속해서 사과해 그레이프가 말해준 대로 솔직하게, 사과를 받아줄 때까지 사과할 생각이었는데….

왜...왜라고 묻는다면,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는 거겠지?

내가 그런 실수를 저지른 이유를 묻는 거...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한테 물어보는 건...이런 사과를 하는 이유인가…?

...왜지?

사과를 하는 이유가 왜 궁금하지…?

의문에 빠져드려는 순간, 상영실 안으로 들어온 직원이 나와 래피드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손님! 청소시간 때문에 퇴실 부탁드립니다!”

“아, 네! 죄송해요!”

“어….”

래피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과하며 내 쪽을 힐끔거렸다.

...일단 나가야 겠다.

나는 사과하려던 상황의 분위기가 깨지는 걸 느끼며 래피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상영실 밖으로 나갔다.

“...앵거 씨, 왜 저한테 사과하는 거에요?”

“네?”

그렇게 상영실 밖으로 나오자 마자, 래피드가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에서 내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혼란에 빠졌다.

왜 사과하냐니...그야 잘못했으니까...엄밀히 말해서 그건 내가 잘못한 것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사과해야 래피드의 기분이 풀릴 것 같아서…?

“래피드를 부끄럽게 했으니까…?”

“그건...그래도...그건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요…?”

왜 이게 사과할 일이 아니지…?

혹시 이게 연애하는 남자들이 자주 겪는다는 그건가?

내가 사과받고 싶은게 정말로 뭔지 모르는거냐는 질문인가?

“그리고...앵거 씨랑 있는게 싫을...거라는 게 대체 뭐에요….”

“...싫잖아요?”

“안 싫어요!”

“...왜요?”

나는 래피드가 나랑 있는게 싫지 않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아니, 싫지 않은 게 싫다는 게 아닌데, 오히려 좋지만,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논리가 엉망진창이다.

래피드는 나를 좋아하게 되고 있었지만, 내 실수로 나를 무시할 정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그걸 어떻게든 하기 위해 나는 지하철의 마법소녀들을 써서 래피드에게 최면을 걸어, 상황을 원상복구 시켰다.

그런데 래피드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야...그...그건….”

래피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눈을 살짝 감고 입술을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래피드가 왜 나를 안 싫어하는 건지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답을 찾아냈다.

알았다.

내가 좋아하게 되는 최면을 걸어서 그렇다.

해답을 알게 된 나는 머릿속의 혼란함이 가시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휘젓고 겹쳐 강제로 비틀다보니, 최면을 건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래피드는 나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상태...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혼란스러우니, 래피드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과의 방향성을 수정해야 한다.

래피드는 나를 무시할 정도로 싫어하는 상태가 아니다.

지금 이건 좋아하면서도 놀랄만한 일이 생겨 당황하고 순간적이 거부감이 드는 상태...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과는 그 일에 대해서 래피드에게 사과하고 오해를 푸는 쪽으로 하는게 좋겠다.

래피드가 상대라면 남자는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을거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래피드가 좋아하는 로맨스에는 순수한 애정만이 아닌, 서로에 대한 욕망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방향으로 간다.

“제가 그런 짓을 해서...만나는게 꺼려지죠?”

“그런...짓?”

“강제로...그랬잖아요?”

“강제로…?”

“...네?”

다시 사과하려고 그때 일을 입밖으로 꺼낸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래피드를 보며 다시 혼란에 빠졌다.

정말로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는 모습이다.

그 때 있었던 기억을 지운 적은 없는데...왜 이러는 거지?

“앵거 씨…? 강제로라는게...무슨 얘기에요?”

“가...강제로...덮쳤 잖아요…? 제가…?”

“...아!”

“그래서...싫은 거죠?”

“아, 아니에요!”

...뭐지?

뭐지?

뭐지…?

...강제로 덮쳐진 게 싫은 게 아니다?

래피드는 그러면...강제로 덮쳐지는게 좋은 건가?

그레이프는 강제로 덮치는 걸 좋아하고, 래피드는 덮쳐지는 걸 좋아하는...그래서 서로 친구인 건가?

“강제로 덮치는게 좋...다구요?”

“아, 아, 아, 아뇨?! 얘기가 왜 그렇게 돼요..?!

“그...그쵸? 이게 아니죠?”

이게 아닌가…?

왜 이게 아니지…?

혼란이 잦아들지를 않는다.

“그러면 손 잡는 게 싫어요…?”

“아니, 그건...저기...시, 싫지...않은데….”

“혹시...싫은게 아니면...더 기분 나쁜 무언가인가요? 역겹다거나…?”

“아뇨?! 아니에요! 조, 좋아요! 손 잡는거 좋아요!”

손 잡는게 좋다고…?

래피드의 손은 보지처럼 느끼게 되어 있는데...그러면 내가 보지를 잡아주는게 좋다는 건가?

아니...아니다, 분명 래피드는 순수하게 손을 잡는 행위 자체가 좋다고 말한게 틀림 없다.

“...제가 흥분하는게 싫은거죠?”

“네? 그, 그건...그게….”

그렇다면, 래피드가 나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이것 뿐이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정답일거라 생각하며 자신있게 질문했다.

래피드는 내 질문에 우물쭈물거리며 내 다리 사이를 힐끔거렸다.

“싫죠?”

“싫은 건...그게...아, 아, 아니...아닌...것...같...기도...그건….”

...이것도 싫지 않다고?

그럼 뭐지...다 좋다는 건가?

왜…?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갸웃거리다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알았다...이것도 내가 래피드에게 나를 좋아하게 되는 최면을 걸어서 그렇다.

내가 원하는 건 해 주고 싶어지는 최면도 있어서, 이전에는 싫어했던 것도 좋아하는 걸로 기억하는...건가?

이상하다...최면은 그런게 안 될 텐데….

지금까지 내가 실험하며 알아본 대로라면 이 최면어플은 그렇게 편리하게 기억을 조작해주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설마...지금 이 대답들이 전부 최면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래피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까?

래피드는 처음부터...그렇게까지 나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니었다…?

그러면 왜 나한테 연락을 안하고 무시하고 있었던 거지…?

“대체 왜...제가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혼란스러워하는 도중 래피드가 얼굴을 붉히고 울기 직전까지 젖은 눈동자로 내 얼굴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나는 하던 생각을 접고 래피드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 질문에는 래피드도 뭐라고 하지 못할 명확한 증거에 기반한 대답이 존재한다.

“메시지 답장 안 했잖아요…?”

메신저 대화창에 나와있는 메시지와 메시지 사이의 긴 시간차이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무시의 증거다.

래피드도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래피드는 나를 무시했다.

“그거?! 그, 그렇구나...죄송해요! 그건, 진짜로…! 진짜, 제가 잘못한 게 맞는데…아, 안 그래도 사과해야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래피드의 눈을 보며 당황했다.

래피드를 좋아하는 나니까 알 수 있다.

이건 진심이다.

래피드는 진심으로 내게 메시지를 답장하지 않았던 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래피드에게 메시지를 답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최면 같은 건 건 적이 없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건, 저기...바빠서, 바쁘기도 하고...저, 저...마법소녀잖아요….”

“아무리 바빠도...며칠씩….”

“죄송해요...저, 정말로...그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몰라서….”

“뭐라고 말할지 모르다뇨…?”

“부...끄러워서...정말, 부끄러워서 그런거니까…! 싫은게, 싫은게 아니에요!”

부끄러워서...메시지를 안 보낸 거라고…?

그게 가능한가…?

아니, 가능...한가?

처음으로 남자한테 몸을 만져지고...껴안고...남자의 성기를 배에 눌러지고...끌어안겨지고...손을 잡히고...절정했다….

숨기고 있던 비밀인 신체적 특징, 함몰유두라는 사실까지 들켜 버렸다.

부끄러울 만 하다...확실히, 내가 이런 짓을 당했다면...회사에서 당했으면 곧바로 사직서도 쓰지 않고 무단결근을 한 달 정도 하고 싶었을게 틀림없다.

“저...그러면, 혹시...그, 부끄러운 것 때문에 연락을 안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네, 말을...하고 있는 거에요….”

“그것 뿐?”

“네에...그거 말고 다른 이유때문에 연락을 안한게 아니라…죄송해요...정말로, 싫어하는거 아니에요...정말, 무시한 것도...아, 앞으로 안 그럴게요!”

나는 래피드의 사과를 듣고 멍하니 있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래피드가 나를 무시한다고 느낀 건, 답장을 하지 않아서 뿐만이 아니다.

래피드는 내게 거짓말을 했다.

“파견은…? 그, 무슨 다른 지역 파견한다고…? 오늘, 그런데...나왔잖아요?”

“그, 그건…! 그건...갑자기, 방위군 쪽에서...그레이프로 바꾸게 되서….”

“네…?”

“기밀이라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조금, 심각한 일인 것 같아서...제가 간다고 했는데...방위군 측에서 그 후에 그레이프가 가는게 맞다고...갑자기 수정안을 내가지고 안 가게 된 거에요...그건, 얘기 안 해서 죄송해요….”

그러니까...방위군이 갑자기 그레이프를 보내라고 해서, 래피드는 남게 되었다는 거고...래피드는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아서 나한테 그 얘기를 못 했다…?

결국 나를 싫어하거나 무시하고 싶어진 게 아니고 그냥...진짜 그냥 부끄러운 것 뿐이었다?

나머지는 다 나 혼자 오버해서 생각한 오해…?

“조금, 그게, 시간이...필요해서...지, 진정할 시간이...저도 왜 그런 말을 해버렸는지 모르겠으니까...그게, 저, 저도 여자아이잖아요? 앵거 씨 말대로...저도, 부끄러운게 있단 말이에요….”

“아...그, 그렇죠….”

“늦게 연락한 건 죄송해요! 그치만, 영화 이번 주 까지라고 해서 꼭 연락하려고 하고 있었어요! 아슬아슬하게 연락해버렸지만...정말로, 그게…!”

“그렇구나...아...그렇구나.”

이건...최면을 걸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얘기니까...최면을 걸기 준 부터...그렇게 생각했다는 거니까…최면이 아니었어도 오늘 만나자고 연락을 했을 거라는 얘기겠지….

그렇구나...그냥 엄청나게 부끄러웠던 거구나….

함몰유두인 걸 들켜서...정말 한계까지...부끄러워서...래피드답긴 하다….

이 기분을 대체 뭐라고 해야할까....

래피드가 나한테 연락을 안한 게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다는 사실이 허탈하다.

그렇게 걱정하고, 최면을 걸어서 원상태로 돌려둔 걸 그렇게 기뻐했는데...사실은 전부 헛수고였다니….

“어….”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고 생각하자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면 난 대체 뭐 때문에 지하철의 마법소녀들을 그런 식으로 써먹은 거지…?

뒤늦은 죄책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긁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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