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조종 (6) [이종간]
나는 로제가 들어오자마자 다 먹은 감자칩 봉지를 운전석 밑으로 던져넣었다.
로제는 다급한 표정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온몸에 음액이 묻어 끈적끈적하다.
커맨더 개체를 찾아서 사라지더니, 결국 찾아서 잡고 온 건가?
아니면 찾는 걸 포기하고 온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이미 늦었다.
로제를 제외한 다른 마법소녀들은 깊숙한 곳을 음액에 절여지며 쾌락에 이성을 잃어가고 있다.
남은 마법소녀는 로제뿐…하지만 굳이 로제까지 감염체에게 던져줄 필요는 없다.
처녀를 내가 받아서 그런지 나만 쓰던 걸 감염체한테 던져주는 게 거부감이 드는 것도 있지만, 로제는 이성을 잃은 마법소녀들을 대신해 래피드에게 구조 요청을 해야 한다.
나는 로제를 보며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로제…다들 져 버렸어….”
“읏….”
“구조 요청을 해야 해.”
“구조 요청은…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로제는 귓가에 손을 대더니 내게 투명한 링 같은 것을 내밀었다.
나는 이게 뭔지 알고 있다.
마법소녀들이 귀에 보이지 않게 장착하는, 방위군과 교신하기 위한 직통 교신 장치다.
“잠금장치를 풀어 뒀으니, 선생님도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건…왜 나한테?”
“일단…한가지 시도를 해 보려고…”
“시도?”
“잘 되면 구조 요청은 안 해도 될지도 모릅니다….”
“뭐?”
이런 상황인데도 구조 요청을 안 불러?
나는 로제에게 대놓고 인상을 썼다.
그런 내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로제는 다급하게 운전석 패널을 조작하며 말하고 있었다.
“일단 선생님…차량부터 후진을, 제가 조작해 둘 테니 운전석에 타고 계세요…!”
“돌아가라고?”
“만약 전 역에 도착했는데도 여기에 연락이 없으면, 그때 선생님이 구조 요청을 대신 보내주세요….”
절대 안 된다.
모든 구조 요청은 방위군에 의해 기록된다.
구조요청을 불러야 하긴 하지만, 내가 불러서는 안 된다.
이건 로제가 나를 방위군의 비밀 요원으로 알고 있어 생긴 문제다.
차량을 타고 전 역으로 돌아가라는 것도 안 된다.
나는 래피드를 만나려고 온 거고, 구조 요청만 하길 기다리고 있는데…여기에서 돌아가면 래피드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나는 로제의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
“뭘 하려는 거야?”
“서, 선생님…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일반인이니까, 죽는다고요!”
뭔가 오해한 건지 이상한 말을 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인상을 쓰고 로제를 조용히 노려봤다.
그러자 로제는 입술을 깨물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조금…위험한 마법을…각성해서…사용만 하면 전부 없애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하철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뭐…?”
나는 깜짝 놀라 로제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놔 버렸다.
새로운 마법을 각성해서, 로제 혼자서…지금 상황을 전부 해결한다고?
이건…생각도 하지 못한 변수다.
하늘이 나를 돕는 거 아니었나…?
나는 진작에 로제를 제압하지 못한 커맨더의 무능함을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이런 변수를 남겨두다니, 멍청한 놈이다.
“읏?!”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차량이 갑자기 흔들린다.
내가 손을 놓은 사이 차량을 후진시키는 조작을 끝낸 로제는 내 팔을 잡아 운전석에 앉혔다.
내가 혹시라도 쫓아올까 봐, 벨트까지 메주고 일어난다.
“갔다 올게요!”
차량에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로제는 운전실 문 쪽으로 걸어가, 그대로 달리는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이대로 나를 전 역으로 보내버리고, 달리기 시작한 차량에서 뛰어내려 혼자서 감염체들을 전멸시킬 생각이다.
“선생님?!”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최종 단계에 온 작전을 망치는 로제에게 분노하며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이미 가속이 붙기 시작해버린 차량에서 떨어진 나는 철로 옆의 흙바닥을 굴렀다.
“무슨 짓을?! 아, 안돼!!”
움직이는 지하철의 바람에 딸려온 형광 나비들이 주변에서 반짝인다.
로제는 나보다 먼저 내린 만큼 더 앞에, 나는 더 뒤쪽에 있다.
로제의 앞에는 감염체가, 내 뒤에도 감염체가 있다.
가속이 붙은 지하철이 점점 멀어져 간다.
로제는 절박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형광 나비들로부터 나를 보호할 생각이다.
“읏?!”
하지만 나비들은 나를 지나쳐 로제에게 달려들었다.
나 같은 건 보이지 않는 것처럼…아니, 음액 한 방울 환각 가루 한 알도 닿지 않게 조심하며 비켜서서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본 로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왜, 왜…?!”
“쯧….”
내가 공격당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회피다.
나는 곧바로 로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읏…아….”
로제가 정신을 잃었다는 걸 느낀 형광 나비가 파삭파삭 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나는 버릇없이 최면 거는 중에 접근하는 형광 나비를 왼손으로 쳐냈다.
그러자 주변의 형광 나비들이 접근을 멈추고 주변을 날아다니며 몸을 밝혀 빛을 비췄다.
한 마리가 한 대 맞는 걸 보고 나서 좀 정신을 차린 것 같다.
빛도 비춰서 어두운 곳도 밝혀주고 기특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얌전해진 형광 나비들을 칭찬하며 멍한 눈을 하고 있는 로제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1분 전까지의 기억을 잊는다.”
일단 내가 공격받지 않는다는 걸 봐 버린 기억부터 지운다.
문제는 이 후부터다.
대체 어떤 최면을 걸어야 하는 걸까.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다.
너무 시간이 지나 버리면 감염체들이 각자가 차지한 마법소녀들을 각각의 둥지로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까지는 별로 원치 않으니, 빨리 처리해야 한다.
역시 최면을 걸어서 구원 요청을 하게 하는 게 좋겠지…?
나는 손에 쥔 방위군 교신 장치를 로제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대로 최면에 걸린 상태로 구원 요청을 하게 하려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손을 멈췄다.
구원 요청 시의 통화 내용은 방위군의 기록에 남는다.
최면에 걸린 상태로 한 구원 요청에서 혹시라도 이상하다는 게 느껴진다면…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 될 게 뻔하다.
아예 방금 각성한 마법을 잊게 하는 건…불가능하겠지?
그런데…아까 교신 기기의 잠금장치를 풀어뒀다고 하지 않았나?
나한테 연락해달라고 했으니, 그건 확실하다.
그러면…나도 조작할 수 있는 상태라는 얘기니, 굳이 로제가 구원 요청을 하게 할 필요는 없다.
조금 냉정해진 나는 방위군 통신병을 준비할 때 공부한 내용을 떠올렸다.
교신 장치로 구원 요청을 받은 통신병은 마법소녀에게 들은 위치 좌표가 교신 장치의 GPS와 다른지 확인해야 한다.
교신 장치에는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GPS 센서가 달려있다.
“…최면이 풀린 순간부터 30분 동안 정신을 잃는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길게 생각할 필요 없이 로제를 기절시켰다.
지금 상황에서 괜한 변수가 되는 로제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최면어플을 종료하는 것과 동시에 로제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흠….”
나는 쓰러진 로제를 내려다보며 주변의 형광 나비들을 둘러봤다.
이제 나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로제를 업고 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힘들 것 같고…그렇다고 두고 가자니 형광 나비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두고 가기로 결심하고 형광 나비들에게 자리를 비켜줬다.
괜히 새로운 마법 같은 걸 각성해서 귀찮게 하다니…괘씸하다.
감염체가 손대지 않게 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변했다.
형광 나비들은 내가 비켜주자마자 기뻐하며 로제의 몸 위에 내려앉았다.
그래도 이 녀석들은 다른 감염체에 비해 얌전한 편에 속한다.
형광 나비들은 로제에게 음액 가루와 환각 가루를 떨어뜨리며 다리 사이에 모여들어 소용돌이 형태로 구부려진 주둥이를 길게 뻗었다.
“응…! 응…!”
나는 흙바닥에 쓰러져 음액에 물들며 애액을 빨아 먹히는 로제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원래 있던 곳이 가까워지며 신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바닥에는 촉수뱀이, 공중에는 환각 나비가, 천장에는 커텐이 가득하다.
내가 가까이 가자 촉수뱀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비켜주며 길을 만들었다.
환각 나비들도 미리미리 멀리 떨어져 날거나 그대로 내려앉아 날개를 접는다.
길게 늘여져 앞을 가리던 커튼은 양옆으로 갈라지듯 치워진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중심지로 걸어갔다.
시에나를 가지고 즐거워하던 거대 두더지가 나를 보고 움직임을 멈춘다.
아르나의 보지를 쑤셔대던 커텐도, 루이의 안에 사정하던 촉수뱀도 얼어붙은 것처럼 꼿꼿하게 세워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좀 더 가까이 걸어가 지면에 교신 장치를 내려놨다.
그대로 잠금장치가 해제된 장치를 터치해 방위군에 직통 연결하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뒷걸음질 쳐 거리를 벌린다.
그러자 거대 두더지는 내 눈치를 보며 천천히 시에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옷, 오…! 훗, 후악…!”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자, 다시 움직임이 격렬해진다.
시에나뿐만 아니라 루이도, 아르나도 다시 원래대로 촉수에게 괴롭힘당한다.
아주 잠깐의 휴식 시간을 맞이해 움찔거리던 세 사람은 어두운 터널이 가득 찰 정도로 큰 소리로 울어댔다.
“후아아악! 후아아앙…! 아흐으으으…!”
“옥, 옷, 호옥, 옷, 오옥…!”
“헥, 헤엑! 헤엑! 학! 학!”
나는 통신 상태가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교신 장치를 내려다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걸 알 수밖에 없는 소리들이다.
이렇게 된다면, 통신병은 이 소리가 나는 상황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집단으로 그룹섹스 하다가 실수로 교신을 눌렀을 리는 없다.
화면에 뜨는 통신 위치는 지하철, 아마도 뒤로 후진하고 있는 차량 위치도 보이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할 수 있는 상상은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전멸한 마법소녀가 최후의 힘을 다해 승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통신을 걸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범해지고 있다.
이 상황을 인지한 통신병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최상위급 마법소녀의 지원 요청으로 처리, 즉시 투입을 요청한다.
지금 올 수 있는 마법소녀는 당연히…래피드 뿐이다.
“구오…?”
시에나를 잡고 흔들던 거대 두더지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나 또한 거대 두더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어두운 공간이 일렁거리며 일그러진다.
나는 비전폰을 손에 쥐고, 곧바로 최면을 걸 준비를 했다.
온다….
래피드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