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조종 (2)
“아하하하! 뭐야, 쉬운데?”
“시에나! 창끝에도 해줘!”
“으아아...이거 강해서 좋긴 한데, 파열음이 좀…!”
“내 검도 너무 뜨거워….”
루이와 아르나가 흥분에 젖어 웃음소리를 내고, 시에나와 로제가 합을 맞추면서도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루이와 아르나는 쉴새없이 쏟아지는 발톱을 하나하나 태우고 폭파시키며 두더지들의 팔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결국 두더지가 손을 모두 잃고 도망치려 하는 순간, 로제가 빙벽에서 뛰쳐나와 두더지에게 달려들었다.
“...살격殺擊.”
도망치는 두더지의 등에 발톱을 세우고 매달린 로제가 차가운 목소리를 내며 단검을 목 뒤에 박아넣었다.
이어서 단검에서 발끝에 세운 발톱처럼 마력의 칼날을 길게 뻗어 목을 관통하고, 랑아를 사용할 때처럼 교차시켜 목을 벤다.
나는 허공에 튀어오르는 거대한 두더지의 머리를 보며 감자칩을 입에 털어 넣었다.
넷 모두에게 내가 지하철 안에 있을 때에는 나를 신경쓰느라 공격이 빗맞게하는 최면을 걸어뒀지만, 거대 두더지가 너무 커서 그런지 최면이 별로 통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잔뜩 사정해 채워준 마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마법을 크게, 겁주듯이 사용하게 하는 최면은 오히려 마법 한방 한방의 위력을 높이게 되어 두더지에게 큰 타격을 입히기만 했다.
...생각보다 마법소녀들이 너무 강하다.
이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상당히 강해져 있다.
특히 아르나는...슬슬 중위권 마법소녀가 아니게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흥.”
이전처럼 강력한 마법을 마구잡이로 사용하지도 않고, 원거리 마법에 치중된 모습만 보이지도 않는다.
양 손에는 다트처럼 작은 침 같은 번개가 쥐어져 있고, 틈이 보일때마다 두더지의 몸에 하나씩 박아넣어 터뜨린다.
공격이 느려지거나 도망치려고 주춤거리기라도 하면 파직거리는 전기를 뾰족하게 세운 머리카락을 두더지의 몸에 박아넣어 번개를 흘려보낸다.
폭발적인 반응속도와 이동속도를 몸의 움직임에 집중시킨 아르나는 점점 손을 빠르게 움직이더니 아예 거대 두더지 두 마리를 한번에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전과 완전히 달라진 마력 분배와 근접전 능력에 신경을 태워버리는 번개 마법이 더해져 아르나는 점점 빨라지고, 적은 점점 느려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저 정도면...상대에 따라서 상위권 수준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쁘다….
거대 두더지는 손을 움직이는 것도 빠르고, 발톱도 강하긴 했지만 털이 가득한 몸은 약해 보였다.
코 끝의 촉수도 공격수단보다는 먹이를 먹을 때 쓰거나 감지능력밖에 없는지 제대로 된 공격은 보여주지 못했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공격은 두 팔 뿐이었다.
그래도 중위권 마법소녀가 열심히 막아야 할 정도면 공격의 위력이나 속도가 나쁜 건 아닌데...지능이 너무 떨어진다.
내가 저 두더지들이었다면 한 마리 정도는 바닥으로 들어가 방진의 아래를 노렸을 것이다.
땅굴을 파는 능력이 그렇게 좋으면서 왜 마법소녀들이 무방비한 곳에서 공격할 생각은 하지 못 하는건지 모르겠다.
“앗?!”
“뭐야?!”
“어?”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땅이 들썩거리며 날카로운 발톱이 루이의 바로 밑에서 튀어나왔다.
가시가 지면에서 솟구치는듯한 모습에 루이가 방패를 폭발시켜 약간 뒤로 몸을 움직였고, 두더지의 발톱은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가게 되었다.
곧바로 두더지가 발톱을 땅 속으로 되돌리고 숨어 버리자 루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 자식...밑에서도 나와! 조심해!”
그 즉시 아르나가 발톱이 빠져나간 구멍에 대고 번개를 뿜었다.
콰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차량의 계기판에도 전기가 올랐는지 잠시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곧바로 다른 땅굴을 파고 나온 두더지가 땅 밑에서 기어나왔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땅속에서 공격하는 것도 그렇게 잘 통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아르나의 번개를 맞고도 버티다니...땅 속에 있어서 전기가 별로 통하지 않았나?
덩치가 커서 그런지 맷집도 상당하다.
그렇다면...거대 두더지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감염체들도 전부 모여서 같이 싸우면 좋을텐데….
거대 두더지가 공격을 받아내고, 다른 녀석들이 귀찮게 하며 공격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저 네 명의 마법소녀들을 쓰러뜨리려면 좀 더 많은 감염체가 필요하다….
가까이에 모였으면 지금 싸워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거대 두더지들이 대신 맞아주며 마력을 소비하는 지금 싸워야만 승산이 있다.
따로따로 싸우면 절대 이기지 못할 정도로 네 명의 호흡이 너무 잘 맞는다.
“응…?”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운전실 창문에 뭔가가 떨어져 붙었다.
끈적끈적한 점막, 긴 촉수...이건...나도 뭔지 알고있다.
촉수뱀이다….
이것도 지하철에서는 이제 보기 힘들게 된 건데...왜 여기 있지?
나는 시야를 가리는 촉수뱀에게 왼손을 흔들며 저리 가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러자 촉수뱀은 뭔가에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며 창문에서 떨어졌다.
“어…?”
촉수뱀이 떨어지자마자, 천장에서부터 뭔가가 우수수 떨어진다.
숨어있던 촉수뱀들이 단번에 떨어져 지하철 창문에 달라붙었따가 펄떡 뛰어오르며 떨어진다.
갑자기 시작된 촉수뱀들의 굵직한 폭우는 지하철에서 점점 멀어져 마법소녀들의 머리 위에서도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뱀?!”
“이건 왜 여기에…?”
루이와 로제가 촉수뱀을 발견하고 놀란 목소리를 내자 아르나가 빙벽 위에 떨어진 촉수뱀들을 단번에 태워 죽여버렸다.
그 위로 촉수뱀이 더 얼어지고, 한쪽 팔을 잃은 두더지가 발톱으로 얼음을 깨부수기를 반복한다.
부서진 얼음 사이로 촉수뱀이 한 마리 들어가 루이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하앗?!”
“쯧!”
아르나는 맨 손으로 촉수뱀을 잡아 루이의 다리에서 떼내고, 손에 달라붙으려는 걸 그대로 태워 죽였다.
촉수뱀으로 빙벽 주변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로제가 빙벽 사이로 몸을 날려 밖으로 나왔다.
빙벽 안에서 뛰어올라 천장에 거꾸로 선 로제는 천장을 박차고 거대 두더지의 목을 노리려다가 그대로 허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앗?!”
로제의 발목에는 어느새 천장에서부터 늘어진 길고 가느다란 촉수들이 수도 없이 감겨 있었다.
저건, 훈련병 시절 질리도록 본 녀석이다.
특수한 덩굴 줄기가 감염되어 생겨난 감염체, 커튼curtain 이다.
나무 위에 덩굴처럼 매달려 있는 이 녀석들은 어두운 색의 촉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먹이를 찾으면 가느다라면서도 강인한 촉수로 사로잡아 매달아 놓고 식사를 한다.
식사는 주로 사냥감의 점막 흡수로 이루어지며, 어째서인지 남자에게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특이한 감염체다.
때문에 방위군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사냥하지 않고 내버려두기도 해 방위군 근처 숲 주변의 나무를 잘 살펴보다 보면 가끔 발견할 수도 있는 놈이었다.
분명히, 이 녀석은 나무나 밀림에서 사는 놈이다.
그런 녀석이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조금 이상하다.
근처에 감염체가 없어서 이 놈들이 모인건가…?”
그건 그렇고...커텐과 촉수뱀과 거대 두더지라니...두더지가 방어와 공격을 하면 촉수뱀이 틈을 봐서 덮치고, 커텐이 두더지에게 치명타를 입히지 못하게 방어하는 건가.
괜찮은 것 같지만 조금 부족한 연계다.
뭔가...하나 정도는 더 있으면 좋겠다….
높은 공격성을 지닌, 강한 네거티브가 한 마리 정도는 있어야 싸울만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아르나가 네거티브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처럼 마법소녀들의 움직임을 방해할 뭔가가 필요하다….
“앗…?”
그렇게 생각하자, 창문 밖에서 뭔가가 팔랑거리며 반짝였다.
커텐 사이에 앉아있다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는지, 숨어있던 것 같은 것들이 단번에 지하철 내부를 가득 채운다.
파닥파닥 하고 소리없이 날아다니는 놈들은 몸을 빛내며 지하철 창문에 내려 앉았다.
이건...형광나비다.
깊은 숲 속에서 밤중에 가끔 보이기도 한다는 감염체로,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크기의 곤충형 감염체다.
형광나비는 발광하는 날개와 날개에서 떨어지는 환각 가루를 뿌려 사람들을 유혹해 무리가 있는 곳으로 끌고간다.
멍한 눈을 한 사람이 무리 사이에 섞이면 사람에게 앉아 발에 묻은 굳은 음액가루를 묻히고, 식사를 시작한다.
남성에게는 꿀을 빨아먹듯 사정관을 삽입해 정액을 빨아먹으며, 여성에게서는 안쪽 깊숙한 곳의 애액을 빨아먹는다.
별로 공격성이 높은 녀석은 아니어서 사냥하는건 쉽지만...이렇게 많은 수가 좁은 공간에 모여있으면...환각 가루에 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도...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감염체가 아니다.
그나마 A시에서 이 녀석들이 나온다고 하는 곳은 17번 구역 숲속...7번 구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A시의 구석이다.
거기에서 여기까지 날아오기라도 한 건가…?
“어? 뭐, 뭐야...이거?!”
“로제! 처리 좀 해줘! 넌 안 통하잖아!”
“네, 네!!”
시에나, 루이, 로제는 나비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다급하게 외쳤다.
그 모습을 보고 아르나가 곧바로 공중에 번개를 뿌렸다.
하지만 나비들을 덮치려던 번개는 갑자기 몸을 던진 거대 두더지에게 막혀 버리고 말았다.
“이 자식들이…!”
촉수뱀들이 바닥에서 기어와 귀찮게 하고, 틈을 보이면 바로 몸을 타고 올라와 음액을 묻힌다.
형광 나비가 빛을 깜빡거리며 시선을 혼란시키고, 환각 가루를 공중에 뿌려댄다.
이런 두 감염체와 소형 괴수를 공격하려 하면 두 팔이 망가진 거대 두더지가 목숨을 던져 막아선다.
누가 봐도 서로 연계하는 게 느껴지는 감염체들의 움직임에 아르나가 짜증을 내며 지면에 전기를 흘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촉수뱀들이 일제히 타들어간다.
나는 감염체들의 움직임에 위화감을 느끼며 입가를 만졌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엉망이었는데...이렇게 갑자기 움직임이 변하고 서로 연계하게 되다니….
이런 걸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근처에...감염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녀석이 있는게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