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 조종 (1)
“뭐야?!”
“헥…?! 후우…! 하아…!”
땅이 점점 크게 울린다.
나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었다.
로제도 절정에서 급하게 벗어나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마력을 끌어올려 전투복을 입었다.
“마력 수치가...깨지지 않은 거 봐서 간부는 아닌데, 엄청 높아...이거 한 마리인가?”
“루이 선배! 정차!”
“아냐! 가속해요!”
“정차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루이의 선택은 정차였다.
차량을 정지시킨다는 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회피가 아닌 전투로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루이는 곧바로 차량의 긴급정차 레버를 올리고 마이크를 손에 들어 차량 내부에 방송했다.
[차량, 정차합니다. 반복합니다. 차량, 정차합니다! 손잡이 잡아주세요! 정차합니다!]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는 걸 미루고, 마이크를 내린다.
루이는 창과 방패를 들어올리고 차량의 전방 헤드라이트를 켰다.
비교적 밝게 비쳐진 선로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느낌에 셔츠 단추를 잠그며 인상을 썼다.
뭔가...뭐지, 이건...크다.
큰게, 거대한 게...여러마리...발 밑에 있다…?
“차량 후진시켜!”
“네?!”
“빨리!”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외친 명령에 루이가 흠칫거리자 아르나가 운전석으로 바늘같은 번개를 던졌다.
운전석 계기판이 파직거리고 차량이 철로에서 불꽃을 튀기며 멋대로 후진한다.
그와 거의 동시에 쿠구구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전체가 흔들리며, 선로 주변에서 빛나는 붉은색의 마력 경보등 펑펑펑펑 하고 연속으로 터져나갔다.
“구오오오오오옹!!”
“구오오오오!!”
“히익!!”
지하철 철로를 망가뜨리고 땅밑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무언가가 귀를 터트릴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내 뒤쪽에 서있던 로제가 손을 뻗어 내 귀를 막아준다.
나는 지하철을 울리는 떨림에 힘겹게 균형을 잡으며 운전실 앞 창문 너머로 보이게 된 녀석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커다란 털복숭이처럼 생긴 지하철만한 공들이 바닥에서 기어나와 한쪽에서 가느다란 촉수를 길게 뻗고 있다.
거대 털 촉수…마리모 말미잘…?
대체 이걸 뭐라고 하면 좋은 걸까?
“아니...저거 뭐야?!”
“하이브리드…? 돌연변이?”
루이도, 아르나도 모르는 녀석인지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때, 털뭉치 사이로 묵직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커다란 뭔가가 튀어나왔다.
네 갈래로 갈라진 발톱 같은 것을 본 순간 나는 훈련소에서 봤던 감염체 사진을 생각해냈다.
“이거...그거다! 두더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돌연변이 괴수의 일종이라고 써져 있었던 게 기억난다.
지하 깊은 곳에 서식하며 특이하게도 다른 감염체들을 잡아먹고, 물 속을 왔다갔다 하며 사는 놈이다.
조그마한 두더지가 감염체가 되며 무지막지하게 커진 경우로, 코 끝의 촉수가 길고 가느다랗게 뻗은 것이 특징이다.
“두더지면...히익?! 이거 위험한 녀석이잖아!”
이 거대한 두더지는 지하철에서 발견되면 즉시 사살해야 하는 위험한 녀석이다.
물속에서, 터널에서 사는 습성을 가져 지하철과 지하 수로를 연결해 침수시켜 버리기도 하고, 감염체가 되며 발톱이 무지막지한 강도를 지니게 변해 지하철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기도 한다.
철로도 다 부수고 지하철 자체를 무너뜨릴수도 있어 유해 감염체 순위에서 최상위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그런 만큼 도심지 주변에서는 확실하게 몰살시켜 뒀기 때문에 보기 힘든 감염체였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게 되어 희귀 감염체 취급을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다니...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
루이는 깜짝 놀라며 운전실 문을 열었다.
“루이 선배...저거 잡으려고요?”
“또 지하철 푹 꺼져서 상황 보고서 쓰라고?! 닥치고 나와서 잡아!”
“선생님은 안에 계세요!”
“흐, 흥...이렇게 될 줄 알고 퇴근하지 않고 대기한 거라고요.”
루이가 밖으로 나가자 시에나, 로제, 아르나가 따라서 운전실을 나갔다.
나는 넷이 모두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서 있다가 냉장고 쪽으로 가 안주거리를 가져왔다.
운전석에 앉아 음료수를 옆에 놓고, 전투를 구경할 준비를 한다.
“구오오오오….”
“구오오오옹…!”
“오오오오…!”
“하나, 둘, 셋...다섯 마리? 아닌가…? 너무 커서 몇마리인지 잘 안보여….”
“하아...루이 선배, 이거 진짜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거 맞아요?”
“연습한 대로 해 연습한 대로, 선생님 때문에 연습한 거 있잖아.”
“그거 아직 실제로는 한번도 안 해봤잖아요….”
“좋아...그럼, 벙커로 해 볼까?”
루이와 시에나가 먼저 앞으로 나서고, 시에나가 루이 뒤에 서서 검 위에 얼음을 씌운다.
루이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기울여 몸을 완전히 드러낸 이상한 자세로 서서 창을 지면에 꽂았다.
그 모습을 본 근처의 거대 두더지가 코에 가득한 촉수를 더듬거리듯 내밀며 다가왔다.
“로제, 단검.”
“이, 이번에는 성공 하는 거지…?”
“설마 저번처럼 터지겠어?”
그 바로 옆에서, 아르나와 로제도 뭔가 하고 있었다.
로제가 양 손에 든 단검을 내밀고, 아르나가 단검의 날을 잡는다.
아르나와 시에나는 거의 동시에 루이의 방패와 로제의 단검에 마법을 걸었다.
“프로즌 쏜 Frozen Thorn.”
“라이트닝 블레이드 Lightning Blade.”
로제의 단검이 파직파직 거리며 빛나고, 루이의 방패에 얼음 가시가 삐쭉삐쭉 솟아난다.
근접 무투계열의 마법소녀인 루이와 로제의 무기를 강화한 아르나와 시에나는 거의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손을 내밀었다.
둘의 손 끝에는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 두더지의 촉수가 있었다.
“아이스 더스트 Ice dust!”
“썬더 웨이브 Thunder Wave!”
“구오오오오!!”
거대한 검은색 털뭉치에 날카로운 얼음 가루가 박히고, 그 위로 번쩍이는 번개가 빠르게 퍼져 뻗는다.
깜짝 놀란 거대 두더지는 촉수를 움츠리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다.
그 즉시 루이가 앞으로 나와 가시돋힌 방패로 두더지의 팔을 막았다.
“하앗!”
그대로 루이가 방패에 대고 폭발 마법을 사용해 두더지의 팔에 얼음조각을 박아넣었다.
찢어발겨진 팔에서 가죽이 너덜너덜해진다.
그 위로 로제가 달라붙어 단검을 위아래로 교차시켰다.
“랑아狼牙!”
로제의 몸에서 흩뿌려진 마력이 거대한 늑대의 형상으로 변하며 거대 두더재의 팔을 물어뜯는다.
거대 두더지는 팔을 떨어뜨리고 울부짖으며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쳤다.
얼음을 박아 번개를 피부 밑으로 침투시키고, 신경을 태워 움직임을 둔화시킨 뒤 돌아오는 공격을 막으며 다시 얼음을 박고 상처 안에서 얼음을 폭파, 그 위를 물어뜯는다...제법 잔인한 연계기다….
“구오오오….”
“구오오오오…!”
“오오오오!”
그 상황을 코의 촉수로 느낀 두더지들이 일제히 반응하며 털뭉치에서 발톱을 꺼냈다.
커다란 두더지들은 털복숭이 아저씨가 달려드는 것처럼 가장 앞에 있는 루이를 일제히 덮쳤다.
나는 촉수견처럼 빠르면서도 묵직한 두더지들의 공격에 기대감을 품으며 음료수를 삼켰다.
“좋아!”
하지만 두더지들의 공격은 아쉽게도 마법소녀들에게 닿지 않았다.
뾰족하게 세워진 발톱은 순식간에 올라온 빙벽에 막혔고, 그 위로 아르나의 번개가 다시 한 번 작렬했다.
경직한 두더지를 발견한 루이가 창을 찌르고, 상처에 대고 다시 폭발 마법을 사용한다.
그 위로 로제가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발톱을 세운 발차기를 날려 상처를 크게 찢는다.
이 연계 과정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무지막지하게 빠르다.
분명 거대 두더지 한마리는 촉수견 한마리 이상으로 강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전혀 상대가 안 되고 있다.
나는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네 사람의 모습에 놀라며 감자칩 봉투를 뜯었다.
“구오오오!”
“오오오!”
거대 두더지의 발톱과 촉수가 차례로 루이와 시에나를 덮친다.
발톱의 대부분은 시에나가 빙벽을 세워서, 빙벽이 깨져나간 부분은 루이가 방패를 들어 막아낸다.
로제는 공격하지 않고 기다리며 틈이 생기는 걸 기다리고, 아르나는 빙벽에 발톱이 닿을 때마다 고압전류를 흘려 두더지의 내부를 태운다.
함부로 뛰쳐나가거나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연계할 준비를 한다는게 느껴진다.
시에나가 속도를 포기하고 방어에 전념하는 것도, 아르나가 공격력을 포기하고 감염체의 운동능력 저하에 마법을 집중시키는 것도 인상적이다.
시에나와 루이가 공격을 막고 있으면 아르나가 로제의 검에 번개를 실어주고, 아르나와 로제가 공격하거나 번개로 신경을 태워 경직시키면 시에나가 루이의 방패에 빠르게 얼음 가시를 세워준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빙벽과 약해지는 곳을 막아주는 방패를 중심으로 설계된 카운터 위주의 방진 연계인가….
이건...신기할 정도로 상당한 완성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실속을 추구한, 단단한 살육 벙커다.
루이가 벙커라고 말한 방어 위주의 연계는 상당히 단단하게 유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