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화 > 유인 (5)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온 뒤 그레이프와 나는 언제나처럼 섹스했다.
섹스하다 잠들고, 일어나면 밥을 먹고, 같이 별것도 아닌 얘기를 하다가 섹스하고, 샤워하고, 섹스하고, 밥먹고, 섹스하고, 근처에 바람좀 쐬러 가고, 섹스하고….
마법소녀가 아니었으면 벌써 임신해버렸을 것 같은 하루를 보낸 뒤 또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레이프가 D시로 떠나야 하는 날 아침, 그레이프와 나는 또다시 섹스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섹스하고, 같이 샤워하면서 섹스하고, 짐을 싸다가 섹스한다.
D시에 있는 숙소에 필요한 것들을 방위군이 다 준비해주게 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레이프가 쌀 짐은 얼마 없었다.
A시에서 D시로 이동하는 건 차량으로는 어렵다.
충각을 앞에 달고 길에서 만나는 괴수나 감염체를 찢어발길 수 있는 특수한 기차를 타야만 한다.
오후로 예정되어있는 기차 시간까지 그레이프는 몇 번이고 내게 섹스를 졸라댔다.
“크윽...읏...하아…그레이프...슬슬 가야....”
“한번만 더...쪼옥...쯥, 쯔읍, 움, 응….”
이번이 몇 번째 사정이었지.
11번...아니, 13번이었나…?
아침부터 시작한 섹스의 순서를 떠올리며 천천히 생각해보니, 12번 정도 싼 것 같다.
“쭈으읍...꿀꺽...꿀꺽...후아….”
그레이프는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현관에서 쪼그려 앉아서 내 자지를 입에 물고 놔주지 않더니, 결국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사정을 입에 받아내고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냄새를 입 안에 가득 묻히려는 것처럼 혀로 입 안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목을 움직인다.
나는 정말 더는 안 된다는 의미로 급하게 바지 지퍼를 올리며 숨을 헐떡였다.
“하아...하아….”
온몸이 쾌락에 마취당한 것처럼 몽롱하다.
나는 힘이 풀려버린 허리를 벽에 기대며 힘겹게 그레이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레이프는 내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구두를 신었다.
“빨리 갔다 올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저 없는 동안 밥 굶으면 안돼요?”
“응….”
“반찬 다 해놨으니까 냉장고에서 꺼내 먹고...아, 약 먹는거 잊지 말고요...그리고 음료수 그렇게 자꾸 마시면 안돼요.”
“제로칼로리로 마시니까 괜찮아….”
“안돼요...마셔도 적당히 마시고, 취업준비 힘내고...아,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 꼭 하고요.”
“키가 크는 것도 아닌데….”
“더 클 수 있어요! 아무튼 꼭 하고, 그리고…음....”
걱정되는 걸 이것저것 말해주는 그레이프에게 나는 빨리 가라는 의미로 팔을 벌렸다.
요즘 나가기 전마다 이걸 안 해주면 자꾸 방에서 나가는 걸 망설인다.
그레이프는 활짝 웃으며 나를 꽉 끌어안고는 내 목에 얼굴을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하아….”
“그레이프...너무 문지르지 마...냄새 나….”
“냄새요…?”
“정액 냄새 나….”
그레이프의 몸에서 내 정액 냄새가 어렴풋이 난다….
하루 종일 가슴에, 자궁에, 입에, 얼굴에, 등에, 정액을 받아댔으니...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레이프는 갑자기 정액 냄새 나는 몸으로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앵거 냄새 나요…?”
“나, 나니까 그만...나 내 냄새 싫어.”
“앵거한테서도 제 냄새 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문질러대니까 그렇지.”
애액을 그렇게 퓻퓻 싸대고 서로 땀과 애액과 정액에 절어서 몸을 비벼댔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샤워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게 된 냄새를 맡으며 조금 인상을 썼다.
어쩐지 그레이프의 몸이 좀 더 뜨거워진 기분이 든다.
“한번만 더 할까요….”
“기차 진짜 늦어….”
“가면 며칠동안 못 하잖아요….”
“갔다와서 하면 되잖아….”
“진짜 진짜 마지막…?”
“그만,”
그레이프와 나는 이렇게까지 섹스했는데도 흥분하는 몸을 끌어안고 비벼대며 서로에게 눈치를 줬다.
몸은 반응한다고 해도 더 이상 섹스할 생각은 없었던 나는 그레이프를 혼냈다.
마지막이라고 한 게 벌써 세 번째다.
“그럼, 다녀올게요…?”
“조심해서 갔다 와.”
“앗...진짜 이거 한번만 더….”
“하아...이건 진짜 마지막이지?”
나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는 그레이프에게 허리를 내밀어 줬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어제부터 이게 하고싶다면서 하게 해달라고 졸라댄다.
그레이프는 내 자지 옆에 얼굴을 대고 볼을 문지르며 내 자지 근처에 키스했다.
“쪼옥...쪽...쭙….”
벌써 몇 번이나 이런 짓을 당한 자지 주변의 피부에는 진한 붉은색의 자국이 가득했다.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되는 이상한 취향이다….
나는 이번엔 배꼽 밑에서 조금 옆의 뼈 근처에 키스하는 그레이프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다가 슬슬 간지러워질때 쯤 머리를 밀어 그레이프를 떼냈다.
“후후후….”
“대체 왜 이런 걸 좋아하는 거야…?”
“그, 그냥 기분 좋잖아요….”
자지를 빠는 것도 아니고 자지 옆을 빨아대며 기분 좋아한다니…너무 변태적인 취향이다....
튀김을 사서 튀김옷을 벗기고 튀김옷과 고기 사이의 기름만 빨아먹는 걸 좋아하는 변태같다....
이해하려 하지 말자....
“다녀오겠습니다~”
“잘 갔다 와...차 조심하고.”
“역 까지는 건물 위로 갈 거지만...조심할게요!”
나는 충분히를 넘어서 과하게 만족했다고 해야 할 그레이프를 현관에서 배웅했다.
그레이프는 나한테 하고싶은걸 다 하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밝은 얼굴로 현관에서 옆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건물 옥상에 올라간 그레이프가 곧바로 변신하고, 바이저로 얼굴을 가린 채 저 멀리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후우….”
그레이프를 배웅한 나는 곧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끈적끈적할 정도의 피부를 깨끗하게 씻어낸 후 수건으로 머리를 올리고 샤워실을 나온다.
그레이프가 해준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고, 전자렌지에 데운다.
나는 몸에서 물기를 닦은 뒤 옷도 입지 않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손에는 전자렌지에서 데운 반찬이 담긴 그릇이 들려 있다.
식사를 하며 마진사에 접속, 남은 포인트를 전부 써 가며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찾는다.
“흐흐흐흐….”
필요한 정보가 모일수록 계획이 퍼즐처럼 짜 맞추어진다.
이건 될 거라는 확신이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해 하나의 문서로 정리했다.
“좋아….”
주의점, 해야 할 것, 알아 둬야 할 것들을 노트북 화면에 띄운 뒤 종이를 가져와 전부 옮겨 적는다.
나는 계획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한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노트북의 전원을 껐다.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시간을 확인한다.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려면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는게 좋다.
시간은 저녁…오늘은 평일...마침 퇴근 시간이 가깝다.
나는 나갈 준비를 마친 뒤 집에서 나와 지하철로 향했다.
“어? 선생님….”
“앗!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차량에 탑승한 나는 근무중인 시에나와 로제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며 운전실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만난 시에나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로제도 반가워하며 다가와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지하철 마법소녀들 중에서도 가장 말을 잘 듣는 시에나와 내게 가장 순종적인 로제라...밑준비를 하기에 좋을 것 같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시에나와 로제에게 차량을 출발시키게 한 뒤 둘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시에나, 잘 지냈어?”
“신기하게 서로 타이밍이 안 맞아서 오랜만에...그때 일 이후로 처음 보네요, 다른 애들한테 선생님이 무사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시에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앗...네에에….”
나는 시에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보는 시에나는 기억속에 있던 모습보다 더 친근한 목소리를 내며 내게 접근했다.
얼음 마법을 쓰는 마법소녀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녹아내리는 것 같은 목소리다.
“...선생님, 시에나는 애가 아닌데 머리를 쓰다듬는 건….”
“...로제도 쓰다듬어 달래요.”
“그래?”
“시에나?! 난 그런 말 한 적…으으....”
로제에게 손을 내밀자 로제가 스스로 인상을 쓰며 다가와 머리로 내 손을 밀어올린다.
나는 로제와 시에나의 머리를 손끝으로 살살 만져주듯이 쓰다듬었다.
둘 모두 가만히 허리를 숙여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모습이 귀엽다.
턱 밑으로 손을 대자 둘이 거의 동시에 턱을 들어올려 턱 밑을 만지게 해준다.
나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귀여워해주듯이 두 사람의 목과 턱을 긁어줬다.
...이럴 때가 아니다.
“로제, 요즘 감염체는 많이 나와?”
“하아...네? 아뇨, 아직...나오긴 하지만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시에나가 일할 때는 어때?”
“어...나오기는 해요, 하지만...근처에 둥지가 숨어있지는 않은 느낌…?”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시에나와 로제는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아르나였다면 생각도 못할 반응이다.
루이도...루이는 말해주기 전에 왜 그런걸 묻는지를 물어볼 것 같다.
적당히, 조금씩 나오긴 해도...나오긴 나오는 건가.
그렇다면...잘만 하면 이번 주 안에도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로제와 시에나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만지던 손을 내려 주머니에 넣었다.
“아…?”
“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비전폰과 계획이 적힌 종이였다.
로제와 시에나는 내가 갑자기 말없이 손을 떼고 눈앞에서 종이를 펼쳐 보기 시작하자 당황하는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에게 시선도 향하지 않은 채 비전폰을 내밀어 최면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