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 유인 (3)
D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네거티브가 나타나기 전에는 이름도 달랐고, 좀 더 도시다운 곳이었지만, 어느새인가 D시는 낙후된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을 전부 겪어왔기에 D시에 대해서 잘 알 수밖에 없다.
“훈련병 하기 전에...그러니까, 뭐, 태어났을 때부터 살았나….”
“그, 그래요…? D시였구나...어…조, 좋은 곳이에요…! 통조림도 별미고....”
그레이프는 당황하며 급하게 D시를 칭찬했다.
하지만 칭찬할 게 생각나지 않는지 쉽게 말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나는 그레이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칭찬 안 해도 돼, D시가 안 좋은 곳인 건 맞으니까...그레이프는 처음부터 A시에 산 거지?”
“네...그, 어릴때부터….”
“음...D시에 아직 하고 있으려나...D시 3번 구역에 가면 반찬을 파는 할머니가 있는데, 점심 일찍 가게가 열리자마자 가면 진짜 계란으로 계란말이를 해줘…할머니가 닭을 키우고 있거든.”
“앗, 네, 가 볼게요.”
“어릴 때 자주 먹었는데...그 할머니도 나이가 많으셔서 이제 안 할지도 몰라.”
“꼭 가 볼게요!”
“그거 말고는...아...6번 구역에 야채가게 아저씨한테 웃돈을 주면 직접 기른 야채를 조금 줘...이건 주에 한 번인데, 운 좋으면 먹을 수 있을 거야. 8번구역에서 할아버지가 하는 통조림 가게에 가서 할아버지 얘기를 듣는 척 해주면 할아버지가 먹으려고 남겨둔 통조림을 가끔 주는데...그레이프는 이쁘니까 얘기만 들어줘도 기분이 좋아서 바로 줄수도 있어.”
“거기도 어릴 때 가본 거에요…?”
“아...응, 나 어릴때 그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이 아직도 벽에 붙어있을지도 모르겠네...그 할아버지가 사진기를 쓸 줄 모르겠다고 해서 가르쳐 준 적이 있거든.”
“꼭! 꼭 갈게요!”
나는 그레이프에게 D시에서 괜찮은 자연식을 먹을만한 방법을 하나하나 얘기해줬다.
그레이프는 비전폰을 꺼내 내가 준 정보를 전부 메모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저기...그러면, 앵거...부모님 댁은….”
“어...없어.”
“네?”
“부모님 안 계셔.”
“아….”
활기가 넘치던 그레이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회사에 다닐때, 술자리에서도 하지 않았던 얘기다.
해봤자 좋을 것도 없어서 안 한 거긴 하지만 뭐...그레이프한테는 얘기해도 되겠지.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네거티브 1차 습격때 돌아가셔서 없어.”
“아….”
“동네 사람들도 그걸 알아서, 어릴때는 가끔 할아버지랑 할머니들한테 가면 자연식을 주면서 용돈을...음…? 아, 그래서 자연식을 준 건가…? 그레이프, 가게 갈 때 자연식 안 주면 내 친구라고 얘기해.”
“아, 아뇨...그게...미, 미안해요….”
그레이프는 내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레이프의 반응에 웃으며 머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레이프가 왜 사과해…?”
“아니, 말실수 해서….”
“말실수 아니야, 뭐...네거티브한테 부모 잃은게 나 뿐인가…? 특히 1차 습격때는 더 심했잖아.”
네거티브는 기본적으로 쾌락과 공포, 절망을 먹어치운다.
처음...마법소녀라는게 보이지 않았던 첫 습격때는 쾌락보다도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려는 행동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만큼 사상자가 많았다.
지금은...남자는 죽여도 여자는 가축으로 삼으려 하긴 하지만, 예전에는 남녀 모두 죽여서 고기로 먹어치웠다.
“으으...그래도….”
“난 진짜 신경도 안 쓰는데...그래도 D시 얘기 하니까 옛날 생각 난다...아, 나 옛날에 살던 집 가볼래…?”
“가볼래요!”
“음...집주인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면 옥상에 내 방이 있을 거야. 나 나가면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면서 창고로 쓰고 있겠다고 하셨거든. 안에 내 가족사진이랑 어릴때 앨범도 있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레이프에게서 비전폰을 받아 내 옛날 집 주소를 적어줬다.
부모님하고 친했던 할머니가 빌려준 방에 살다가 A시로 올라오며 옛날 물건을 전부 그대로 두고 왔었다.
별로 들고 와서 좋을 것도 없어 보였고, 할머니도 두고가면 보관해주겠다고 했으니까...집주인 할머니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아직 그대로 있을 것이다.
“봐, 봐도 돼요?”
“있으면…? 보고 싶으면 구경해….”
말을 하던 나는 문득 지금의 D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D시의 중위권과 상위권 마법소녀 전원이 공백 상태라는 건 그만큼 D시에 사는 사람들이 위험해 졌다는 얘기다.
마법소녀가 막아주지 않으면 감염체는 도망치는게 늦은 노인부터 사냥하고는 하니, 어쩌면 그레이프에게 말해준 모든 사람들이 다 이미 죽어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진짜로 다 가볼거면 누구 없을 때 나중에 얘기해 줄 수 있어?”
“네? 왜요…?”
“마법소녀가 없는 상황이면 누구 하나 죽었을지도 모르니까...다 죽었을지도 모르고.”
누가 죽었다면 그래도 죽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두고 싶다.
그레이프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깜짝 놀라며 등을 곧게 폈다.
그대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괘, 괜찮아요! 아무도 안 죽을 거에요! 제가 가서 다 해결하고 올게요!”
“이미 죽었을….”
“아뇨! 안 죽었어요! 아무튼 앵거는 이상한 거 걱정하지 말고 있어요.”
“어...응….”
나는 그레이프의 기세에 눌려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억속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면 감염체가 없어도 슬슬 죽었을 것 같은데….
왠지 그런 말을 더 했다가는 그레이프한테 혼날 것 같다.
분위기가 어색하다.
괜히 사람 죽는 얘기를 한 건가.
나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레이프를 내버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도 깼는데...샤워나 하고 나올게.”
“아, 네! 그럼...요리 하고 있을게요!”
“응.”
더는 자려고 해봤자 잠도 안 올 것 같다.
나는 샤워실에 들어가 이른 아침의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샤워실 문 앞, 주방을 대신하는 좁은 공간에서 그레이프가 요리를 하고 있다.
“샴푸 다 썼네...둘이 써서 그런가.”
“벌써요? 음...이따가 같이 장 보러 갈래요?”
“그럴까...요리는 어때?”
“하나 남았어요, 앵거 머리 말리면서 잠깐 쉬고 있으면....”
“남은건 뭐야?”
“야채 볶음 하려고 하는데….”
하나쯤은 같이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몸의 물기를 대충 닦다가 내 앞치마를 꺼내 입었다.
요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니까, 그냥 맨 살에 입고 요리하고...식사 다 하고 나서 옷을 입어도 될 것 같다.
옷에 기름이나 소스가 튀면 괜히 세탁만 하게 되어서 혼자 살며 가끔 하게 된 방법이다.
“뭐, 뭐 해요…?”
“요리 도와주려고.”
“오...옷은...요?”
“다 하고 입게...좀 보기 그런가?”
“아뇨?! 좋은데요?! 좋아요!”
아무리 그레이프가 편하다고 해도 혼자 있을때나 하던 옷차림을 눈앞에서 보여주는건 역시 좀 싫으려나 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그레이프 옆에서 야채를 써는 걸 도와줬다.
팬에 야채를 넣으면 그레이프가 볶고, 접시를 내가 꺼내면 그레이프가 담는다.
“요즘 그레이프때문에 계속 아침밥을 먹는 것 같아….”
“예전에는 안 먹었다는 거에요…?”
“응...대신에 브런치를 먹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거 회사에서 편의점 샌드위치 먹어놓고 브런치라고 하는거죠.”
“아침 겸 점심이면 브런치잖아.”
그레이프와 별것 아닌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준비한다.
이제는 일상이나 다름 없게 된 익숙한 상황이다.
내가 물을 뜨면 그레이프가 수저를 놓고, 그릇을 가져다 놓으면 설거지를 해준다.
“이거 맛있다....”
“다행이다, 너무 달지는 않아요?”
“음...응, 딱 좋아. 이거 또 먹고싶을 것 같아.”
“그러면 다음에 또 해줄게요...슬슬 앵거 입맛이 어떤지 알 것 같아요.”
“어떤데?”
“음...어린애같으면서도 어른스러운 입맛…? 달고 자극적인걸 좋아하는데 그냥 무작정 달기만 한 건 싫어하는….”
“잘 아네.”
끈적끈적하고 꾸덕꾸덕한 크림 소스에 감자를 쪄낸 요리가 맛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드는 소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냥 인스턴트 스프를 사서 대충 우유를 조금 섞어 크림소스라고 생각하면서 먹는데...그레이프가 만든 건 좀 더 계란 맛이 강하고 고소하다.
그레이프와 식사….
그레이프와 서로 마주보며 식사를 하고 있자 래피드가 나와의 식사를 거부했던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머리에 손을 올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으….”
“어? 왜, 왜 그래요?”
“아니...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아파요?! 왜요?!”
“...머리 아픈 일이 있어서 그런가봐.”
“무슨 일 있어요…?”
나는 그레이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래피드와 있었던 일을 말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말하면...그레이프도 최상위권의 마법소녀고 래피드의 친구니까 뭔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취업 때문에.”
“아….”
그레이프에게 래피드를 만나는 일을 얘기하는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아무리 친구사이에 섹스하는 거라고 해도 섹스는 섹스...잘못 말했다가는 내가 그레이프와의 섹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줄 알 수도 있다.
래피드랑 섹스하고 싶어하는 성욕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짜내버릴지도 모른다.
대충 둘러대고 넘겨야겠다.
“퇴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좀 더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려나….”
“앵거는 좀 쉬어야 돼요! 식비같은 건 정 뭐하면...제가 사주면 되고….”
“음…식사는 같이 하고 있으니까...근데 그러면 방세는?”
“바, 방세...는...그러네요….”
“같이 사는 건 아니잖아.”
“그쵸, 아직은...음...만약 같이 살면...같이 살면...방세도 제가 내도 되고….”
“방세에 식비에...누가 들으면 나 사육하려는 줄 알겠어….”
나는 웃긴 대화라고 생각해 큭큭 웃으며 요리를 집어 먹었다.
그레이프도 재미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는지 작게 웃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웃음소리가 묘하게 오싹하다.
“그런데 취업이 왜...힘들어요?”
“음...면접을 안 받아줘서?”
“어? 왜요?”
“...그레이프는 예쁘니까 그런 일 없겠지만, A시는 원래 면접도 잘 안 받아줘….”
나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며 취업 얘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레이프는 회사가 왜 면접도 안 봐주냐는 듯이 반응했지만, 이건 그레이프가 예쁘니까 할 수 있는 반응이다.
이력서의 사진만 봐도 일단 보고싶어 할만한 그레이프와, 사진을 안 봐도 이력서를 쓰레기통에 던질만한 나는 취업의 시작점이 다르다.
보통은, 평범한 A시의 회사들은...자신들이 고용해주는게 피고용자에게 엄청난 특혜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특권을 한계까지 누린다.
심한 곳은 여자 면접자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곳도 있다.
전에 다닌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취업 준비를 할 때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강조하며 면접관을 유혹하려 하는 여자를 본 적도 있다.
그런 짓을 해도 면접자는 면접을 봐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A시는 고용주들이 그래도 괜찮은...어쩔 수 없는 곳이다.
나는 훈련병 시절에 성적이 좋았던 덕에 방위군의 취업 추천장을 받기도 했고, 군 생활을 했다는 게 네거티브가 나타나기 전 군대 경험이 있는 상사들에게 좋게 보여 운 좋게 채용되었지만, 다른 면접자들은 조금 과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전부 면접을 봐 줘야만 가능하다….
공채는 적고...채용이 되려면 우연히라도 회사의 채용 담당자를 만나 인사를 나눠, 천천히 가까워지고 자신의 이력서를 한번 봐 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채용 담당자는 그런 사람들을 귀찮아하고, A시에서 취업을 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피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쩐지 내 상황과 비슷한 얘기다….
래피드를 만나고 싶어하는 나와, 나를 피하는 래피드….
나는 그레이프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레이프는 그레이프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면 어떡해?”
“네?”
"그러니까...그레이프를 피하고 있는 사람이랑 만나고 싶으면 어떻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