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Dayte (5)
게임이라면 사람을 즐겁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인형 뽑기는 나를 불행하고 짜증 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게임이 아니다.
게임이 아니니, 쓰레기 게임도 아니다.
인형 뽑기는 쓰레기다.
분노한 나는 인형 뽑기의 갈고리 하강 버튼을 떨리는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화가 나서 그런지 목이 조금 간지럽다….
인형은 이번에도 올려졌다가 다시 떨어지려고 하며 갈고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인형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멈춰진 것처럼 추락을 멈췄다.
“어?”
“앗! 뽑혔어요!”
방금 뭐였지?
갈고리에 잡혀있는 게 아니라, 갈고리가 인형을 감싸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인형 택이 갈고리에 걸리기라도 했던 건가.
뽑힐 듯 말 듯 하며 뽑히지 않던 인형이 갑자기 뽑혔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 코인 잘 먹었으니 슬슬 가져가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온 인형을 본 나는 성취감보다도 찝찝함을 먼저 느꼈다.
뽑았는데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뽑은 인형을 손에 들고 살펴봤다.
래피드의 머리카락 색하고 비슷한 갈색에 곱슬곱슬한 느낌의 장모종 고양이 인형…무게감도 나쁘지 않고, 봉재 상태도 괜찮다.
하지만, 사용한 코인의 개수를 따져보면…값을 못 한다고 해야 할 만한 품질이다.
“…여기요.”
그래도…일단 뽑긴 뽑았다.
나는 래피드에게 고양이 인형을 내밀었다.
“저 주는 거예요…?”
래피드는 내가 내민 고양이 인형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는 어쩐지 부끄러운 듯이 손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인형은 내가 가져가 봤자 쓸모가 없다.
인형을 좋아하는 래피드에게 줘야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같이…오락실 온 기념으로 가져가 주세요.”
“고, 고마워요…그럼, 저기…잘, 간직할게요….”
래피드는 기뻐하며 작은 인형을 입가에 가져갔다.
좋아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형을 줄 거면 인형 뽑기 같은 건 하지 말고 그냥 사서 주고 싶다….
“네…잘때 꼭 끌어안고 자 주세요….”
“끌어안고요?! 그, 거언…네에….”
나는 잊지 않고 래피드에게 간접수면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래피드는 부끄러운 듯 인형으로 입가를 가리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래피드의 귀여운 반응을 보고 조금 기분이 풀려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인형 뽑기를 하고 조금 지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좀 마음 편히 할만한 놀이가 없나 찾아봤다.
좀 더 정당하고, 돈을 내면 그만한 가치를 하고, 즐겁고, 기분이 좋을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오락실 구석에 설치된 커다란 기계를 발견했다.
“…같이 사진 찍을래요?”
“네? 아…사진은…저, 지금 그거 하고 있으니까 안 찍힐 텐데….”
“그러니까…그것도 저거에 들어가면 풀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나는 오락실 구석에 보이는 스티커 사진 기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설치된 지 좀 되어 보이는 스티커 사진기는 두꺼운 커튼으로 기계 내부가 가려져 있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저거라면, 래피드와 오락실에 온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아…! 아…근데…코인이….”
“다 썼나요…?”
래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인 주머니를 만졌다.
인형 뽑기에 너무 많은 코인을 써 버려서 코인이 부족하다.
곧바로 래피드는 등을 돌려 코인을 더 환전하기 위해 환전기로 뛰어갔다.
“먼저 가 있으세요, 바꿔올게요!”
나는 사진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래피드의 말대로 스티커 사진기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와서 보니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기계다.
기계와 주변 벽면에는 이 기계에서 촬영한 학생들이 붙인 듯한 스티커 사진들이 수도 없이 많이 붙어있다.
“윽…응…?”
타일처럼 보일 정도로 많은 사진을 보던 나는 갑자기 미세한 두통을 느끼며 물처럼 흐르던 시선을 멈춰 세웠다.
마스크를 쓴 여자아이들이 가득한, 오래된 스티커 사진이 보인다….
그 스티커 사진 속의 여자들을 알아본 나는 조금 놀라며 손가락으로 변색된 사진을 닦았다.
색도 변해 있고 모두가 알아보기 힘들게 가면이나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래피드…에스더…마리아…러스티…릴리…로제…그 외에 내가 모르는 마법소녀도 보인다.
래피드가 다른 마법소녀들과 같이 놀러 왔을 때 찍은 사진인가.
…문득 래피드가 이 오락실에 놀러 왔던 얘기를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실종, 하나는 네거티브에게 감염된 마법소녀들이 사이좋게 놀러 왔던 오락실이라니….
기분이 복잡할 만도 하다.
“바꿔왔어요!”
래피드는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내게 코인을 내밀었다.
래피드가 어떤 마법소녀들과 이 오락실에 왔었는지를 알게 되고 기분이 이상해진 나는 말없이 래피드를 내려다봤다.
그런 내게 래피드는 왜 그러냐는 듯이 순진한 눈으로 가만히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럼 같이 찍을까요?”
“네!”
래피드와 함께 커튼 안으로 들어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티커 사진기의 내부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밖에서 안이 안 보이는 만큼 안에서도 밖이 안 보이는 좁은 내부…스티커 사진기 안은 개방된 듯 밀폐된 묘한 구조였다.
한쪽 벽면을 붙인 탓에 출입구는 하나뿐, 무릎 바로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두꺼운 커튼이 오락실 밖에서부터 들리는 소음을 가볍게 차단한다.
“…신기하네요.”
“네?”
“아뇨, 제가…스티커 사진기가 처음이라서….”
스티커 사진기는 실시간으로 래피드와 내 모습을 화면에 띄우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이리저리 일그러져 보이던 래피드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보이는 모습과 같은 형태로 변한다.
래피드는 남들이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던 마법을 해제하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저…저도 남자랑 하는 건 처음이에요…그것도 단둘이….”
래피드는 얼굴을 붉히고 손가락으로 귀 옆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기계를 조작했다.
나는 열심히 스티커 사진기용 펜으로 화면을 터치하는 래피드를 구경하며, 래피드의 뒤로 가까이 다가갔다.
좁은 공간 안에 래피드와 단둘…밖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후우….”
…심장이 두근거린다.
래피드와 좁은 곳에 단둘뿐…달콤한 냄새가 후각을 통해 들어와 머릿속을 장악한다.
조금 위에서, 뒤쪽에서 내려다보며 보이는 커다란 가슴 사이의 깊은 가슴골과 넓게 벌어진 골반의 라인이…무지막지하게 야릇하다.
“앗….”
래피드는 화면을 조작하다가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뒤에서 몰래 래피드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던 나는 스티커 사진기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아무 일도 없던 척하며 화면을 살펴봤다.
화면에는 혼자, 커플, 여러 명이라고 적혀있는 스티커 사진기 모드 선택 창이 떠 있었다.
“저희…는, 둘…이죠?”
“그쵸.”
“그러면…두…두사람이니까! 커…커프을…! 사진, 이네요…!”
한 사람이 그려져 있는 혼자, 두 사람이 그려진 커플, 세 사람이 그려진 여러 명의 아이콘 중 래피드는 커플을 선택했다.
이어서, 화면에는 하트가 다섯 개 그려진 그림이 나왔다.
래피드는 화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트를 펜으로 눌렀다.
“…평점 같은 걸까요?”
“그런가…?”
“전엔 이런 거 못 봤는데…다섯 개로 하면 되겠죠…?”
사진을 찍기 전에 평점부터 받다니, 협박 같은 평점 시스템이다.
좋은 평가를 하지 않으면 화질이 떨어지는 프로그래밍이라도 해둔 걸까….
그보다 왜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것도 아니고, 스티커 사진기에 평점이 필요한 거지.
[포즈를 취해주세요!]
“어…?”
그런 생각을 한순간, 화면에 푸른색과 붉은색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반투명한 그림자로 그려진 남자가 여자를 뒤에서 끌어안는 모습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그림자는 카메라의 센서로 래피드와 나를 감지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크기를 나와 래피드에 맞춰 변화했다.
“…이게 뭐예요?”
[포즈를 취해주세요!]
갑자기 왜 이런 화면이 나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래피드는 터치펜을 들고 화면을 이리저리 눌렀다.
어디를 눌러도 촬영 버튼이 나오거나, 촬영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지 않는다.
나는 화면을 보고 뭔가를 깨달아 래피드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거…포즈 안 하면 안 찍히는 거 아니에요?”
“네?!”
커플 모드에 하트 선택…커플 모드라는 게 이런 포즈 가이드를 하는 모드고, 하트 선택이 포즈의 단계를 선택하는 거였다면, 이 상황이 이해된다.
아마도 이 스티커 사진기는 포즈를 인식해야만 촬영을 시작할 것이다.
래피드 또한 내 말을 듣고 상황을 파악했는지 당황한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얼굴을 붉혔다.
“어, 어떡하죠…? 이런, 이런 건 줄 안 게 아닌데…이게, 저기…저도 이런 건 처음이고….”
“저도 처음이라서…어떡할까요?”
“그건, 그게, 그러니까…앗….”
나는 당황하는 래피드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놨다.
움찔하고 떨리는 어깨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멈춘 숨소리와 손에서 느껴지는 심장소리…하지만…뿌리치지는 않는다.
“사진기가 하라니까…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아, 읏.”
이건…인형뽑기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최고의 게임기다.
게임을…스티커 사진기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할 기회다.
나는 래피드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사진 찍어도 괜찮아요…?”
“그건, 저기…그게….”
“안을게요…?”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 사진기가 이렇게 해야만 촬영되니까….
래피드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며 거부하기 힘든 스킨십을 시도한다.
아직은…거절하지 않는다.
아직, 아직…조금 더, 좀 더….
어깨에서 팔로, 가슴 옆을 살짝 지나 가슴 바로 밑에서 살짝, 조금씩…팔을 조인다.
나는 래피드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하아, 읏….”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