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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21화 (221/299)

< 221화 > Dayte (3)

“우와~잘한다, 저 테트리스 이렇게 하는 거 오랜만이에요.”

테트리스는 블럭을 어디 떨어뜨릴지를 생각하는 게임이 아니라, 어디 떨어뜨릴지는 전부 외우고 다음에 나올 블럭이 뭘지를 생각하는 게임이다.

다음 블럭을 생각하는 속도는 게임의 속도보다 조금 더 빨라야만 한다.

게임 속도는 순식간에 가속해 내게는 벅찬 속도가 되었지만, 래피드는 아직도 여유가 있는 듯 말을 하며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즐거운 듯 웃으며 게임을 하는 래피드를 힐끔거리고 이를 악물었다.

깔끔하게 지면 졌지, 봐주는 건 못 참는다.

진짜 실력도 못 보고 지는 건 더더욱 못 참는다.

“…제대로 해요.”

“네?”

“봐주지 말고 제대로 하라고요….”

“어…그치만…아, 알았어요….”

래피드는 내 요구를 듣고 곧바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그 후 이어진 테트리스는 내 예상보다 훨씬, 필요 이상의 진심이었다.

래피드에게서 피어오른 마력이 내 피부를 간지럽히고, 게임기의 전자장치를 자극해 화면을 살짝 일그러뜨린다.

“어?”

인간이 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래피드는 기계처럼 스틱을 또닥거리며 정확한 각도, 정확한 위치에서 빠르게 블록을 떨어뜨렸다.

블록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떨어져야 할 장소에 블록이 나타난다.

순식간에 래피드와 점수 차가 벌어지게 된 나는 그대로 래피드에게 순살 당해버렸다.

“어….”

내 화면이 흑백으로 변하는 걸 본 나는 패배감보다는 황당함을 느끼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한참 테트리스에 빠져있을 때는 네트워크 대전으로 프로하고도 붙어본 적이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잘한다.

“괘, 괜찮으세요…?”

“아…네….”

래피드는 패배한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실수했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적당히 차이가 나야 패배감을 느끼지…이건 내가 패배감을 느끼는 게 래피드에게 실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저기…일반인이니까…저는 마법소녀, 그것도 최상급이고….”

“그…렇죠.”

“못하신 게 아니에요! 일반인 중에서는 정말 잘하신다고 생각해요. M이라고 하셨지만 GM 정도는….”

나는 내가 패배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래피드를 멍하니 바라보며 해탈한 웃음을 지었다.

래피드는 공간을 다루는 마법소녀다.

테트리스도 어찌 보면 공간을 다루는 게임…뭔가 공통점이 있어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게 아닐까.

래피드가 최상급 마법소녀여서 내가 졌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레이프도 최상급 마법소녀인데…나는 그레이프한테도 이겼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 래피드가 테트리스를 너무 잘해서 진 거다.

나는 래피드의 실력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우와…어떻게 이렇게 잘해요?”

“네…?”

“대단하네요, 저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

이렇게까지 개운하게 지니까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

내 솔직한 칭찬을 듣고 당황한 래피드는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래피드는 그대로 솔로 플레이가 되어버린 게임을 빠르게 끝내며 말했다.

“마, 마법부터…공간 마법이잖아요, 저는…그리고, 시간도…그렇고.”

“마법이라고요?”

“딱히 마법을 쓴 건 아니지만…아, 마지막에 조금 쓰긴 했어요, 판단 가속 이라는 마법인데…그걸 쓰면 사고속도가 훨씬 빨라지거든요. 그걸 안 써도 저는 시간 감각이랑 공간 감각이 좋으니까….”

래피드가 하는 말은 잘난 척을 하거나 내가 이렇게 뛰어나니 너는 질 수밖에 없다 하는 기만이 아니다.

래피드는 전 인류 중에서 가장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고, 마법소녀다.

어디까지나 사실을 덤덤하게 말할 뿐이라는 걸 느낀 나는 테트리스로는 래피드에게 이길 수 없다는 걸 깔끔하게 인정했다.

“저는 진짜 학창 시절 동안 테트리스만 했는데…이렇게 압도적으로 질 줄은 몰랐어요.”

“저는 에스더랑 왔을 때 처음 해봤지만, 생각보다 잘하는 것 같아서…에스더가 게임 레벨이 GM이라고 했거든요.”

전에 같이 왔다는 마법소녀들 중에 에스더가 있었나 보다.

에스더는 게임스타라는 실력파 게임 방송 컨텐츠를 할 정도로 게임을 잘하는 마법소녀였다.

그런 에스더를 이길 정도면…아마도 누가 와도 래피드를 테트리스로 이기진 못할 것이다.

“…괜찮아요?”

“네?”

“아뇨…앵거는, 져도 화 안 내는구나 싶어서….”

“아….”

나는 래피드의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게임에 지면 확실히 분하고 화가 나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에 이기려고 온 것도 아니고, 래피드랑 놀러 온 거고…어찌 보면 나는 래피드가 마법을 사용해서 이길 만큼 게임을 잘한다는 거니까…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래피드랑 놀러 온 건데 게임 졌다고 왜 기분이 상해요.”

“아…그, 그쵸?”

“재미있었어요, 다른 게임도 할까요?”

“네!”

나는 래피드와 다른 게임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트리스는 포기다.

래피드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내가 이길 수 있는 다른 게임을 찾아봐야겠다.

테트리스 다음으로 잘하는 건 마법소녀를 모티브로 한 격투 게임이지만, 그 게임은 패스다.

그레이프의 반응도 너무 안 좋았고…나는 래피드의 캐릭터를 잘 쓸 줄 모른다.

자연스럽게 끌어안거나 손을 만질만한…여자가 잘 안 할만한 게임이 뭐가 있을까….

“이거 할래요?”

“좀비 버스터….”

고민 끝에 구석에서 총 쏘는 게임을 발견한 나는 망설임 없이 게임기에 코인을 넣었다.

좀비 게임이면 분명 공포 게임 요소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총 쏘는 건, 방위군에서 질리도록 연습해봐서 자신 있다.

“와~이거…뭔가 리얼한 것 같으면서도 안 리얼하네요….”

“안 무서워요…?”

“괴수 중에 비슷한 게 있거든요…좀비는 아니지만, 아…좀비라면 좀비려나?”

“좀비 비슷한 괴수가 있어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닌데…죽은 괴수 사체를 끌어모아서 육체를 만드는 플라즈마계 부정형 괴수가 있거든요.”

“…혹시 청크 캐리온chunks carrion?”

“앗, 네…처음에는 무서워했는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청크 캐리온은 썩은 고깃덩어리라는 뜻의 괴수다.

나는 실물로 본 적이 없고, 사진 자료도 존재하지 않아 설명으로만 접해서 썩은 고기 슬라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좀비랑 비슷하다고 말하다니…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가 팔에 소름이 돋는다.

“그거에 비하면 냄새도 안 나고, 공기가 끈적하지도 않고….”

“에어컨 공기 덕에 시원하네요.”

“네, 그러니까…음…뭐랄까…재밌네요!”

래피드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게임을 잘해도 너무 잘했다.

전혀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서서 손목만을 까딱여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조준점을 맞춘 래피드는 모든 좀비의 머리를 빠르게 터뜨려 버렸고, 보스에 도착해서도 빠르게 약점을 파악해 팔, 다리, 머리를 반복해서 노려 순식간에 스테이지를 끝내버렸다.

나는 래피드에게 끌려다니듯이 별다른 활약을 하지 않고도 빠르게 마지막 스테이지를 볼 수 있었고, 래피드는 마지막 보스도 어렵지 않게 이겨버렸다.

“와아…실제 괴수도 이렇게 쉬우면 좋겠다….”

“음…그러게요….”

래피드의 감상을 들은 나는 조금 허탈하게 장난감 총을 내려놨다….

게임이 어렵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게임같이 쉬우면 좋겠다고 말하다니….

그 말을 들으니 평소에 래피드가 겪는 일에 비해 지금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난이도가 얼마나 낮을지 알 것 같다.

“다음 게임 해요!”

그나마 다행히도 래피드는 오락실 데이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적극적으로 내 손목을 잡아 다음 게임기로 끌고 갔다.

다음 게임은 에어하키…이번에도 내가 래피드를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한 게임은 아니었다.

게임 테이블 위에 공기가 뿜어져 나오며 가볍게 미끄러지게 된 작은 원반 같은 퍽을 벽면에 튕기거나 해 상대방의 골대에 집어넣으면 되는 게임이다.

“…에잇!”

“앗!”

에어하키도 이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래피드의 압승이었다.

내가 상상도 못 할만한 방향으로 보내 일부러 벽에 튕기고 반사된 퍽을 두 번 튕겨 집어넣는 건 몇 번을 당해도 반응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냥 순발력으로만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르게 래피드는 나보다 더 좋은 순발력으로 각도와 힘 계산과 반사되는 시간과 속임수까지 생각해 게임하고 있다.

나는 게임에서 이기는 걸 포기하고 래피드에게 집중했다.

게임을 하며 점점 신이 났는지 래피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게임에 집중하며 커다란 가슴을 출렁거리고 있었다.

게임보다 래피드의 가슴 흔들리는 걸 보는 게 훨씬 즐겁다….

“앗…어떡해요, 저만 너무 즐겼죠….”

“아뇨, 저도 재미있어요.”

“죄송해요, 저 집중하면 다른 생각을 못 해서…자꾸 혼자 게임을 하는 것처럼….”

“정말로 재미있어요…전 래피드가 신나 하는 거 보고 있잖아요.”

신나서 가슴을 흔드는 래피드의 모습은 정말 눈으로만 보지 않고 녹화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래피드는 나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 얼굴을 붉히고는 가슴 위에 손을 살짝 올렸다.

그대로 얼굴을 붉히는 래피드를 보며 나는 혹시 가슴을 보던 걸 들켰나 싶어 시선을 피했다.

“그렇, 구나…그, 저는 오락실이 오랜만이라 너무 신나서…가! 같이 할 수 있는 게임 할까요? 인형 뽑기…라던가? 아니면 경품 사격게임…?”

“사격게임…할까요?”

나는 래피드의 제안에 바로 응하며 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다행히 내가 가슴을 본 걸 들키지는 않은 것 같다.

인형 뽑기와 사격게임 중에 고르라면 그나마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할 가능성이 있는 사격게임을 고르고 싶다.

“…래피드…는, 사격…잘…하죠?”

“사격게임은….”

사격게임은 한 번에 올라오는 과녁을 순서 없이 제한 시간 안에 제한된 탄환으로 맞춰 전부 맞추면 경품을 주는 방식이다.

나는 래피드와 함께 사격게임장에 나란히 서서 공기총에 총알을 넣으며 자신 없게 질문했다.

래피드는 총 게임을 그렇게 잘했으니 사격게임도 당연히 잘할 것이다.

“아앙, 어떡해…하나도 안 맞아….”

“내가 가르쳐 줄까?”

그때, 옆에서 이미 사격게임을 하고 있던 학생 커플 중 여자애가 과녁을 빗맞히고 분해하며 총을 내려놨다.

그 모습을 본 남학생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여학생의 등 뒤에 서서 몸을 살짝 밀착시켰다.

손을 여학생의 손에 덮고, 서로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너…허리에, 손…닿잖아….”

“손 안 대면 못 가르쳐 주잖아….”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부러워하며 아쉬움 섞인 한숨을 작게 내뱉었다.

원래는 나도 래피드한테 저럴 생각이었는데….

래피드가 나보다 게임을 다 잘해서 아쉽다.

“…자,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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