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Dayte (2)
“오락실요…?”
“이 구역이 학생이 많아서 오락실도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레이프와 데이트한 뒤 오락실이라는 장소도 충분히 데이트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비전넷에 오락실 데이트를 검색해봤다.
알아보니 오락실 데이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매력 있는 데이트였고, 래피드와의 데이트에서 첫 행선지로 선택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락실 데이트는 원래 게임을 가르쳐 준다는 걸 핑계로 스킨십을 하는 곳이다.
테트리스 게임을 할 때도 키를 알려주며 손을 잡으면 되고, 사격게임이나 농구 게임을 할 때도 손이나 허리에 손을 대면 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래피드와 오락실 데이트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음….”
“…별로인가요?”
“네? 아뇨…좋아요, 가요!”
오락실로 가자는 말에 래피드는 어쩐지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혹시나 래피드가 오락실을 싫어하는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래피드와 함께 오락실로 향했다.
3번 구역의 오락실은 전에 그레이프와 갔던 곳과는 완전히 달랐다.
학생들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인지 인테리어가 좀 더 밝게 되어있었으며, 벽면에는 게임 캐릭터들이 수도 없이 많이 그려져 있다.
게임의 종류도 앉아서 하는 전자 게임기보다는 좀 더 활동적이고 직접 몸을 움직이는 쪽의 게임이 더 많다.
“예전하고 똑같네요….”
래피드는 오락실에 들어오자마자 내부 구조를 아는 것처럼 안에 들어가더니 카드를 꺼내 코인 환전기에 가져다 댔다.
코인이 쏟아지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놓여있던 오락실용 코인 주머니를 꺼낸다.
나는 3번 구역의 오락실이 익숙해 보이는 래피드의 반응을 보고 조금 놀라며 물었다.
“와 본 적이 있나요?”
“좀…예전에요! 요즘은 잘 안 왔는데, 예전에…?”
래피드가 오락실이라니, 그것도 3번 구역에…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래피드에 대한 정보로는 일반인 중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였지만, 그런 정보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방송에서도, 마진사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방문지라면…래피드가 사적으로 몰래 방문했다는 뜻이다.
“예전이라면…?”
“음…아실지 모르겠는데, 스노우드롭 여학교….”
“아~”
스노우드롭 여학교는 3번 구역에 있는 마법소녀 여학교다.
설립 이유와 교육내용, 등교자에 대한 정보는 전부 특수 기밀 정보로 취급당하고 있으나, 한가지 정보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어 있다.
스노우드롭 여학교는 애쉬와 래피드, 릴리가 미성년 마법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었다.
“아시나요…?”
“래피드한테 관심이 많아서…그런데 그거랑 오락실은 왜…?”
“시설 건축 중일 때 몇몇 마법소녀들이 학원에 필요한 건물들이 뭔가에 대해 얘기하려고 찾아간 적이 있거든요.”
“마법소녀들이라면…최상위권에서요?”
“최상위권도 있고, 중위권, 하위권에서도 조금씩 와서 정말로 필요한 게 뭘까에 대한 얘기를 했었어요. 마법을 어떤 식으로 연습해야 좋을지, 어떤 시설이 가장 필요할지…오락실은 그때…다른 마법소녀랑 몰래 놀러 온 적이 있었어요.”
마법소녀들끼리 오락실이라…생각만 해도 그사이에 끼어들어 보고 싶은 상황이다.
마법소녀라고 해도 결국은 여자아이, 여럿이 모여 길을 걷다가 근처의 오락실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었을 만하다.
상상만 해봐도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을 것 같지만 래피드는 어째서인지 씁쓸하게 웃었다.
안 좋은 기억이라면 오래 떠올리고 있게 놔둬서 좋을 건 없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는 건지는 몰라도 지금은 옛날 일을 추억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와의 오락실 데이트 시간이다.
나는 오락실 기계를 손바닥으로 치며 래피드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면, 무슨 게임 좋아해요?”
“네? 아…저는…그렇게 잘하는 게임이 없어서…그나마, 테트리스?”
“어?”
래피드의 입에서 익숙한 게임을 들은 나는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래피드가 나처럼 테트리스를 좋아한다니….
이건 분명 운명이다.
“저도 테트리스 좋아하는데….”
“앗, 그래요…? 그럼…테트리스 먼저 해볼래요?”
래피드와 나는 자연스럽게 테트리스 게임기 앞에 앉았다.
설마 그레이프에 이어서 래피드와도 테트리스를 하게 될 줄이야.
테트리스로 그레이프를 이미 압살해버렸던 나는 코인을 넣으며 여유롭게 스틱을 흔들었다.
아무리 잘한다 해도 나보다는 못할 테니까 적당히 봐주면서 해야겠다.
일단 아슬아슬하게 이기고…래피드가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게임을 좀 더 잘하는 내게 관심을 가지게 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손을 살짝 덮어 잡으며 가르쳐주면…래피드는 손을 잡혀 기분이 좋아지고, 자연스러운 터치에 두근거림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데이트 계획이다.
“근데…잘해요?”
“음…그냥 그럭저럭 하는 것 같아요….”
게임이 시작되고, 블럭이 떨어진다.
테트리스는 여러 모양의 블럭을 떨어뜨려 화면 안에서 가로로 가득 채운 층을 만드는 옛날 게임이다.
블럭은 처음에는 떨어지는 속도가 느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블럭을 맞춰 없앤 점수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더 빠르게 떨어지게 된다.
때문에 처음에는 초보자가 하기에 좋은 속도였고, 이 말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 하기에는 답답한 속도라는 뜻도 됐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테트리스에는 스틱을 위로 올리면 블럭이 가속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래피드를 배려해 점수를 올리지 않으려고 블럭을 일부러 천천히 떨어뜨렸다.
“…스틱 위로 올리면 빠르게 떨어져요.”
그러자 내 화면을 힐끔거린 래피드가 내게 필요 없는 조언을 건네줬다.
래피드를 배려해서 이러고 있는 건데 더 빨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다니.
나는 나처럼 느리게 블럭이 떨어지는 래피드의 화면을 보며 대답했다.
“래피드는 빠르게 안 해요?”
“…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이상한 질문을 하는 래피드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래피드는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블럭을 빠르게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래피드에게 대답하는 동안 잘못 맞춘 블럭을 없애기 위해 블럭을 스핀 시켰다.
T자 형태의 블록을 조금 특수한 방법으로 돌려 들어갈 수 없어 보이는 곳에 블럭을 끼워 넣는 고급 기술이다.
그 모습을 본 건지 래피드의 손이 움찔 떨리며 블럭의 가속이 멈췄다.
래피드는 내 쪽을 힐끔거리며 조금 전과 똑같은 질문을 건네왔다.
“혹시 테트리스 잘하세요…?”
“그럭저럭 해요.”
“그럭저럭…어느 정도요?”
“그래도 래피드 만큼은 하지 않을까요?”
그 정도만 하고 적당히 봐줄 생각이다.
래피드가 질 것 같으면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옆에서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그 정도는 아니실 텐데….”
“네?”
“아, 아뇨…저, 사실…테트리스는 그나마 잘…하거든요.”
“그래요…?”
래피드의 화면을 보면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밑에서부터 쌓여 올라온 블록이라거나, 올리는 형태라거나…깔끔함과는 거리가 멀다.
블럭이 떨어질수록 래피드의 화면에는 이상한 빈틈이 밑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저는 상당히 잘하는 편인데….”
“상당히면…혹시 레벨은 몇 까지 가세요?”
“레벨요?”
“상당하시니까 EX? 아니면…M?”
“그건 모르겠는데, 38레벨까지는 잘 가고…40레벨도 딱 한 번 가본 적 있어요.”
“아…게임기마다 등급이 다르죠…38레벨…가장 높은 레벨이 몇이었어요?”
“음….”
나는 래피드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하던 버전의 테트리스는 한계 레벨이라는 게 없다.
계속해서 블록의 속도가 올라가며 그 속도에 버티는 것 자체가 레벨인…말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속도가 40이고 자신 있게 나올 수 있는 수준이 38인 셈이다.
테트리스 세계대회에서의 기록이 45였고, 프로 선수가 42 정도는 된다고 들었으니 준프로라고 해도 괜찮을 만한 레벨이다.
“아무리 못해도 M…아닐까요?”
“M…이시구나.”
래피드는 굉장히 묘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스틱을 손가락으로 두 세 번 정도 쳤다.
곧바로 자세를 달리 한 래피드는 블록을 빠르게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1초에 한 번, 아니…0.5초에 한 번 정도 속도로 블록이 빠르게 채워진다.
“이 정도…?”
“응…?”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게임에 집중했다.
내가 떨어뜨리는 속도에 맞춰 래피드가 블록을 떨어뜨린다.
내가 한 줄을 쌓아 없애면 래피드도 없애고, 층을 쌓아 올려 한 번에 없애려 하면 래피드도 층을 급하게 만들어 같은 양을 없애 내 공격을 상쇄시킨다.
나는 래피드에게 조금이라도 공격을 돌려주기 위해 블록을 더 빠르게 쌓았고, 그럴수록 래피드의 속도는 더 올라가기만 했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점점 블록을 쌓는 나와 다르게 래피드는 여유롭게 눈을 깜빡이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태도에서, 움직임에서부터 래피드의 지금 실력이 진심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큭…!”
“앗, 죄송해요, 조금 빠르죠…?”
래피드는 갑자기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를 하며 블록을 떨어뜨리는 속도를 늦췄다.
일부러 이상한 곳에 쌓기도 하고 나보다 아주 약간 더 늦게 쌓아 내게 여유를 준다.
나는 래피드가 내가 블록을 쌓는 게 흐트러진 걸 보고 이런다는 것을 눈치챘다.
테트리스에는 내 학창 시절이 통째로 들어있는데….
테트리스로 나는 그레이프도 이겼는데….
그런 나를 봐주다니…그것도 여유롭게 내 화면의 상태를 체크하고 적당히 이 정도면 놀 수 있겠지 하고 봐주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