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Date (1)
옷차림, 문제없다.
머리 모양, 나쁘지 않다.
입 냄새, 없다.
정액, 지하철에서 혼자 근무 중인 루이에게 잔뜩 싸줬다.
자지, 안 선다.
약속 시간…아직 안 늦었다.
래피드를 만나기 전에 필요한 걸 전부 체크한 나는 급하게 약속 장소로 걸어갔다.
땀이 나지 않게, 그러면서도 느리지 않게…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15분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빨리 가야 한다.
래피드가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래피드와 만나기로 한 곳은 3번 구역이었다.
0번 구역인 방위군 본부, 트루비전의 본사가 있는 1번 구역, 고위층이 사는 2번 구역을 넘어가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2번 구역의 상류층 주거지와 4번 구역의 사이, A 시의 모든 미성년자가 한 번쯤은 거쳐 가는 곳이다.
3번 구역에는 학생들이 많은 학원, 학교가 밀집되어 있다.
학교가 아닌 건물은 주로 기숙사 위주, 그 외에 학생들을 위한 식당이나 몇 가지 오락시설들이 자리한 이곳은 평일에는 학생들이 가득하지만, 주말에는 놀라울 정도로 허전해진다.
모든 학생이 기숙사를 떠나 가족을 보러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특유의 분위기가 언제나 맴돌고 있는 이곳은 연인들의 이색적인 주말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위해 조성된 곳인 만큼 성인을 위한 시설은 많지 않았고, 이색적이기는 해도 확실한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어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나는 그런 줄 몰랐지만, 비전넷을 찾아보니 그렇다고 한다.
래피드와 만나기로 한 곳은 그런 3번 구역의 학생들을 위한 번화가였다.
식당과 푸드 카트, 학생들을 위한 가게가 가득한 거리의 중앙, 공터에 자리한 시계탑 밑이 오늘 래피드와 만나기로 한 장소다.
비전폰으로 미리 래피드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던 나는 곧바로 래피드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
“후우…! 일찍 와 있었네요?”
“앗, 네, 늦을까 봐…?”
비전폰을 거울처럼 써서 머리를 만지고 있던 래피드는 내가 다가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가 놀란 얼굴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아직 10분 전, 래피드도 나도 약속 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래피드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잘 지냈어요?”
“저야…앵거는요…?”
“저야 다른 마법소녀들이랑…래피드 덕에 잘 지내고 있죠.”
“그건…다행이네요.”
나와 래피드는 서로 인사한 뒤 그대로 입을 다물고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어색한 공기, 미묘한 분위기가 래피드와 내 주변을 감싼다.
역시, 친해졌어도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비전넷에서 알아본 대로라면 데이트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어색한 사이가 데이트를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일단은 이 분위기부터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게 좋겠다.
나는 얘기를 하며 주변에 보이는 푸드 카트들을 둘러봤다.
아이스크림, 크레이프, 핫도그, 와플…전부 다 래피드가 좋아할 만한 것들 뿐이다.
미리 알아본 대로, 지금 시간에도 전부 장사를 하고 있다.
래피드와의 식사 약속은 조금 이른 저녁, 아직은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1시…뭔가 먹고 돌아다녀도 좋은 시간이다.
“음…만나자마자 갑작스럽긴 한데, 혹시 와플 좋아해요?”
“와플요?”
“오면서 보니까 저기에, 와플 카트가…맛있어 보이던데…아, 블루베리 와플도 있대요.”
나는 미리 계획한 대로 래피드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말했다.
래피드는 내가 턱짓한 방향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말한 메뉴를 듣고 빠르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좋아하고 기대한다는 게 훤히 보이는 솔직한 반응이다.
“우와, 블루베리 엄청 많아요!”
“그러게요…?”
와플 가게 아저씨에게 와플을 받은 래피드는 행복하게 웃으며 위에 가득 올려진 블루베리를 먹었다.
나는 래피드의 와플을 보고 묘하게 내 와플에 올려진 블루베리의 수가 적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와플을 한입 베어 물었다.
와플과 블루베리, 생크림, 초콜릿 시럽, 잼…맛있긴 한데 왜 내 와플은 블루베리가 적은 걸까….
와플 가게 아저씨의 눈은 초점이 나가 있었으니, 4번 구역처럼 래피드를 위해 뭔가 하는 사람이어서 래피드를 편애한 건 아니다.
래피드를 못 알아본 걸 보면 분명 인식 저해 마법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래피드에게 블루베리를 많이 준 건 어째서일까.
분명 여자한테는 블루베리를 더 많이 주는 성차별 아저씨인 거겠지….
나는 불공평함을 느끼며 와플을 먹다가 옆 가게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눈길을 돌렸다.
문득 부족한 블루베리 대신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더 맛있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 그거 뭐예요?”
“아이스크림 넣었어요.”
“이런 메뉴가 있었어요…?”
“아뇨, 옆 가게 아이스크림도 맛있어 보이길래…그냥 넣어달라고 했어요.”
역시…훨씬 맛있다.
혹시 처음부터 이렇게 먹길 바래서 아이스크림 카트가 바로 옆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맛있다.
옆에서 보기에도 아이스크림 와플이 맛있어 보였는지 래피드는 내가 먹는 걸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래피드에게 내가 먹던 아이스크림 와플을 내밀었다.
“먹어볼래요?”
“네? 네?! 이, 이거요…?”
“훨씬 맛있어요.”
래피드는 내가 내민 와플을 멍하니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먹는 걸 망설이던 중, 와플에서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른다.
곧바로 아이스크림이 녹는 곳을 한입 문 래피드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다가 입을 완전히 닫았다.
“으, 음…마, 맛있네요…훨씬….”
와플을 한입 베어 문 래피드는 얼굴을 붉히고 혀로 입술을 핥으며 눈을 반쯤 감았다.
역시 블루베리만 가득 들어간 와플보다는 아이스크림이 추가된 와플이 더 달콤했나 보다.
그대로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내 와플을 힐끔거리는 래피드를 보고 있던 나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턱짓하며 말했다.
“래피드도 아이스크림 넣는 건 어때요?”
“아! 네!”
와플에 정신이 팔려있던 래피드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고 아이스크림 카트로 걸어갔다.
나는 접혀져 있던 와플을 펴서 아이스크림을 받는 래피드를 보며 내 와플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까 이러면 래피드랑 간접키스 아닌가?
와플 한 쪽에 내 입보다 훨씬 작은 입 모양으로 자국이 나 있다.
나는 래피드의 입이 닿았던 곳을 살짝 빨아먹었다.
래피드와의 간접키스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맛이 났다.
“잘 먹을게요!”
래피드는 아이스크림 가게 아저씨에게도 활짝 웃으며 인사한 뒤 내 옆에 서서 행복한 얼굴로 와플을 먹기 시작했다.
…묘하게 나한테 줬던 것보다 아이스크림이 많아 보인다.
이 아저씨도 여자를 남자보다 더 좋아하는 성차별 아저씨인가.
바로 옆에 선 래피드를 내려다보게 된 나는 키가 작은 래피드의 얼굴을 보며 자연스럽게 가슴골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가슴이 보이는 옷이다….
나는 뒤늦게 래피드의 옷차림에 집중했다.
래피드의 옷차림은 어깨를 드러내고 팔랑거리는 셔츠에 데님 반바지였다.
전체 길이 때문에 길어 보이지만, 다리 쪽은 상당히 짧은 반바지는 허리까지 올라와 꽉 조여졌고, 팔랑거리는 셔츠는 커다란 가슴의 라인을 보여주면서도 살짝 가려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몸매가 드러나 야하면서도 언뜻 보면 그리 드러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청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옷차림이다.
“옷…예쁘네요.”
“아…! 네, 네에, 좋아하는, 코디…에요.”
“옷이 되게…귀엽고, 청순하고…예쁘고…섹시해서, 래피드한테 잘 어울려요.”
“그, 그래요?”
래피드는 내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웠는지 머리카락을 만지며 입꼬리가 올라간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야하다고 말하려다가 섹시하다는 말로 바꿨지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정도 얘기는 해도 괜찮은 건가.
나는 래피드의 눈치를 보며 주머니에서 비전폰을 꺼내 손에 쥐었다.
혹시라도 대화하다가 반응이 안 좋으면 곧바로 최면을 걸어서 기억을 지워버릴 생각이다.
래피드와 기쁘게 얘기를 나눌 준비를 마친 뒤, 오늘의 계획을 빠르게 정리한다.
래피드와 어느 정도 친해진 건 좋다.
데이트를 다시 하게 된 것도 좋다.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좋다.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가 됐다.
지금 이 상태에 만족해서는 래피드와의 관계는 진전되지 않는다.
이성이 자신을 성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을 꺼리는 래피드와 친해져 봤자, 친구가 끝이다.
래피드를 향한 이성의…내 성적인 시선을 당연하게 볼 수 있도록, 래피드의 성에 대한 거부감을 녹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면 돌파…계속해서 내가 래피드를 성적으로 본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설득시킨다.
과격한 방법이지만, 최면어플이 있는 내게는 가장 빠르고 적절한 방법이었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긴 하지만, 래피드는 진짜…그, 남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외모네요…엄청 두근거려요.”
“네…?”
“아, 미안해요…이런거 싫어하죠?”
“어? 아, 아뇨…? 그게…두근거린다뇨…?”
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시선을 피했다.
불쾌하지 않게, 미안해하면서도 솔직하게…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칭찬에 섞어 남자로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당연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도 남자니까 당연한 거지만, 래피드가 너무…자극적이니까….”
“자극…요?”
“아…아니에요, 그냥…지금 제 옆에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예뻐서 그래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애매하게 말을 끝냈다.
때로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게 상상을 자극시킨다.
시선을 래피드의 가슴과 골반으로 슬쩍 보내자, 래피드의 눈동자가 밑으로 한번 향했다가 올라온다.
나는 눈을 살짝 감고 얼굴을 붉히는 래피드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이번에도 싫어하지 않는다.
단순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이 정도는 불쾌해하지 않고 조금 부끄러운 칭찬으로 들어주는 건가….
어찌 됐든, 한번 자극했으니 이제는 다시 주의를 환기 시켜줘야 한다.
나는 래피드의 앞에서 손뼉을 치며 일부러 화제를 전환했다.
“아! 근처에 오락실 있다는데…식사하기 전에 조금 놀다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