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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16화 (216/299)

< 216화 > 데이트 (5)

나는 그레이프의 손을 잡고 느긋하게 주변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그레이프를 힐끔거리는 사람, 그레이프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사람, 그레이프의 가슴을 보는 사람, 그레이프의 엉덩이를 보는 사람….

여러 사람들 사이로 이미 몇 번인가 부품이 교체된 흔적이 보이는 가게들이 보인다.

“뭐 봐요?”

“그냥, 가게 구경.”

“관심 있는 거라도 있어요?”

“응? 아니, 그냥 구경해.”

“아이쇼핑 같은 거 좋아해요?”

“아니?”

그레이프는 그냥 걸어가는 게 심심했는지 계속해서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나는 그레이프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며 계속해서 지면의 상태를 살폈다.

모든 구역에서 이렇게 타일이 섞여 있는 바닥을 사용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만 걸어가면 그레이프의 손을 놓아도 괜찮은 곳이 나올 것이다.

예상한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일이 별로 보이지 않는 구역이 나왔다.

나는 바닥을 보며 그레이프의 손을 슬쩍 놨다.

그러자 조용히 길을 걷던 그레이프가 갑자기 내 손을 다시 꽉 잡으며 말을 걸어왔다.

“오늘…쭉 생각해봤는데….”

“응?”

“저…앵거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엄청 많네요…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뜬금없이 왜 이러는 거지…?

그레이프는 대체 어째서인지 어딘가 속상해 보이기도 하고,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전에 오락실에서만 해도 기분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저 앵거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응…?”

“전부, 제가 그냥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 것뿐이고…앵거 말대로, 가까워지기 위해서 별로 뭔가 한 게 없었구나 싶고….”

“그래서…?”

“그냥, 그런 것 같아요….”

나는 그레이프의 뜬금없는 얘기에 고개를 기울이며 그레이프를 흘겨봤다.

그래서…뭐 어쩌라는 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나 잘 이해가 안 돼.”

“그러니까, 앵거랑…저랑 어쩌면 생각보다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

“안 가까워…?”

“가, 가깝지만…가까우면, 좋겠는데….”

“지금 정도면 꽤 가까운 거 아냐…?”

질내사정도 잔뜩 하고, 섹스도 하고, 같이 놀러도 나오고, 손잡고 어깨를 부딪쳐도 뭐라고 하지 않고….

이 정도면 엄청나게 가까운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레이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그레이프의 팔을 슬쩍 잡아당겨 어깨를 부딪쳤다.

“가깝잖아?”

“아, 아니…그게…지금은, 그쵸…가깝, 지만….”

“그럼 된 거 아냐?”

“그치만, 예전에 앵거 회사 다닐 때는 기분 상하게도 했고….”

“그러니까, 예전에 뭘 했건 지금 가까우면 되는 거 아냐…?”

“어….”

그레이프는 할 말을 잃고 조금 바보 같아 보이는 목소리를 냈다.

나는 정말로 순수하게 왜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복잡하게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단순하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뭐 회사에서 안 좋은 일 있었던 건 오해라면서?”

“오해…인데….”

“그럼 오해인거지…지금은 그리고 가깝잖아, 지금 가까운 것보다 예전에 안 가까웠던 게 중요해?”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아닌데….”

“그러면 남은 건 뭐야?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은 거?”

“그…쵸?”

그레이프는 자기가 모르는 말을 듣고 열심히 말뜻을 생각하는 훈련병처럼 조용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그레이프는 예전부터 별것 아닌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파견 팀장으로서 회사에서 팀장 일을 제대로 해도 될지 고민할 때도 지금하고 비슷한 상황이었던 적이 있다.

나는 이상한 걸 고민하는 그레이프를 보고 옛날이랑 변한 게 별로 없구나 싶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옆에서 물어보면 되잖아?”

“어…?”

예전에 안 친했으면, 지금 친하면 된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된다.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가르쳐 줄게.”

“읏….”

내가 웃으며 말하자 생각보다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그레이프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네요…물어보면, 되는거죠…계속….”

“왜 그런 별거 아닌 생각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던 거야?”

“그, 그러게요!”

그레이프는 기분이 갑자기 나아졌는지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내게 팔짱을 꼈다.

양손으로 팔을 잡아 한 손은 팔짱을 끼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등에서부터 손을 깍지 껴 잡는다.

나는 갑자기 갑갑하게 팔에 매달리는 그레이프에게 어깨를 털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레이프…너무 붙었어.”

“조금만 붙어서 갈게요, 네?”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식당 갈 때까지만 이렇게 가요, 가깝잖아요?”

“으으음….”

비가 온 직후라 찝찝한데….

주변 사람들의 이상할 정도로 날카롭고 살벌한 시선도 따갑고, 몸을 나한테 완전히 기대는 것도 조금 무겁다….

다른 것보다 가슴이 팔에 닿아서 하반신이 멋대로 반응한다.

“가슴 닿아.”

“닿으면 안 돼요?”

“밖이잖아…남들도 보고….”

“뭐 어때요? 보려면 보라고 해요.”

“그래도 너무 많이 닿는 거 아냐…?”

“닿는 게 아니라 닿게 하는 거니까요.”

뭐지…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나는 급격하게 가까워진 그레이프의 거리감에 당황하며 눈을 감았다.

커다란 가슴이 팔을 완전히 끼워버려서 머리가 뜨거워진다.

“…밥 먹고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요.”

“그럼…?”

“그냥…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리에서 가슴을 내 팔에 문지르는 게 좋다니….

그레이프가 원래 자위영상을 올리는 계정을 운영했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조금 당황스러운 변태적 노출 취미다.

커다란 물건이 점점 빳빳해지며 걸음에 맞춰 바지 안에서 흔들린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거리에서 흥분하는 노출 변태가 되어버린다.

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그레이프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커지는 거 티 날 것 같으니까 조금만 적당히 해주면 안 될까…?”

“…티 안 나게 바지 안에 손 넣어서 잡아줄까요?”

“변태야?”

역시 첫경험을 건물 옥상에서 한 여자다운 노출 욕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까지 노출 취미를 공유시키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내 물건에 자신이 넘쳐도 나는 내 것을 야외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다….

문득 주변에 사람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그레이프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장소다.

전에 칵테일을 마셔서 취했을 때 그레이프랑 왔던 모텔 거리…조금은 화려하고 은은한 조명이 건물을 야릇하게 비춘다.

어느새 모텔 앞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로 가면 식당이 나온다면서 모텔로 오다니….

설마 그레이프가 말한 식당이라는 게 모텔은 아니었을까?

“그레이프…바, 밥 먼저 먹을 거지?”

“네? 당연하죠?”

“근데 왜 여기에 온 거야…?”

“어…지나가는 길에 있어서요?”

분명 오늘은 초밥집에서 밥 먹을 거라고 했는데 대체 왜 눈앞에 모텔이 있는 걸까.

혹시 내가 밥이고 그레이프가 생선이라는 저질스러운 농담의 초밥집은 아니겠지…?

나는 그레이프에게서 어깨를 살짝 떼며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아, 혹시 하고 싶어 졌어요?”

“어? 아니, 하기로 하긴 했는데…일단 우리 밥부터 먹어야 하지 않을까…? 나 배고픈데…?”

“커졌는데.”

“이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거든…? 그레이프가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안 커져?”

나는 아무리 그래도 굶기고 섹스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그레이프를 설득했다.

그레이프는 내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웃기다는 듯 풉 하고 웃었다.

그레이프는 이어서 고개를 들어 눈가를 적시고 활짝 웃는 얼굴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앵거는 왜 매번 나중에 하자고 말하면서 지금 당장 하고 싶다는 듯이 말해요?”

“내, 내가 언제? 안 그랬어!”

“진짜로…? 그럼 나랑 하기 싫어요?”

“어? 아니…그건…아닌데…내 말은, 어디까지나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지 않을까…몸을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잖아…?”

“음…그쵸? 순서라는 게 있죠? 맞는 말이에요.”

그레이프는 드디어 내 말을 이해해줬는지 내 손을 잡고 모텔 앞에서 이동했다.

나는 밥 먹기 전에 섹스하는 건 피했다고 생각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이프는 그런 나를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그럼 오늘은 진짜로 손만 잡고 잘까요?”

“어?”

…갑자기?

지금 왜 이런 얘기를 했느냐는 둘째치고, 의문부터 든다.

그레이프가 정말로 손만 잡고 잘 수 있을까…?

언제나 섹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마구 섹스해댄 그레이프가…정말 그게 가능할까?

불신감에 젖은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레이프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레이프는 활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앵거 하는 거 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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