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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14화 (214/299)

< 214화 > 데이트 (3)

나는 내 눈치를 보는 그레이프의 점수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박수를 쳐줬다.

농구 게임을 하는 사이 주변에는 이상한 남자들이 가득해져 있었다.

그레이프같은 미녀가 가슴을 출렁거리며 농구를 하는 게 시선을 잡아끈 거겠지.

“자, 잘하시네요…저기, 농구게임 좋아하세요?”

“다음은 무슨 게임 할까요?”

“그러게, 격투게임이라도 할까…? 해본 적 있어?”

“어…아뇨, 해본 적 없는데….”

“어? 저기요? 잠시만?”

모르는 사람이 그레이프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레이프와 나는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다른 게임기로 걸어갔다.

다음은 격투 게임이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격투 게임은 나의 대학 시절 2년이 녹아있는 격투게임…마법소녀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미소녀 격투게임이었다.

“이건 딱히 커맨드가 있는 게 아니니까 하기 쉬울 거야.”

네거티브가 나타난 이후에 나온 게임 중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제작 당시 유명했던 마법소녀들을 모티브로 해 캐릭터를 디자인한 이 게임은 여러 괴수들을 상대하는 스토리 모드와 마법소녀들끼리 대전하는 대전 모드가 나뉘어 있었다.

아쉽게도 스토리 모드는 괴수에게 패배했을 때 마법소녀가 이런저런 짓을 당하는 내용이 미묘하게 암시되는 연출 때문에 삭제되었지만…이렇게 대전게임으로 살아남아 명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던 캐릭터인 불의 마법소녀를 선택했다.

그레이프의 선택은 치유의 마법소녀…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나는 대전화면에서 일단 그레이프에게 게임의 규칙부터 설명해줬다.

“공격 키는 이 네 가지, 약 손, 강 손, 약 발, 강 발…강한 공격은 강한 대신 아주 약간 느리고, 약한 공격은 조금 더 빠른 대신에 데미지가 약해. 앞 손, 위 손, 아래 손, 점프 손같이 방향키 조작에 따라서 공격 방향이 바뀌니까 그걸 잘 신경 써서 하면 되고.”

“어, 잠깐, 잠깐만요….”

“약한 공격은 콤보를 쌓기 좋지만, 체력 게이지 밑에 있는 가드 크래시 게이지가 잘 안 쌓이니까…상대가 막을 때는 강 공격을 잘 섞어서, 아, 막는 키는 뒤로 걸어가면 저절로 막혀, 상단 공격은 서서, 하단 공격은 앉아서….”

“잠깐만요! 천천히…!”

“맨 밑에 있는 게 마력 게이지, 마력이 차면 스펠 카드가 열리는데 이게 스펠 카드 교체 키, 각 게이지에서 원하는 스펠을 빠르게 장전해두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게 핵심이고, 아, 가드 크래시 게이지도 신경쓰면서…아, 이걸 누르면 마력을 채울 수 있는데….”

“천천히 해달라니까요?!”

이 정도면 꽤 알기 쉽게 필요한 것만 정리해서 알려준 건데….

나는 그레이프가 게임을 이해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며 구석에서 마력을 채웠다.

한동안 혼자서 캐릭터를 조작해 본 그레이프는 모든 키를 하나씩 눌러본 뒤 캐릭터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어라…? 이거 뭔가…이상한데요…?”

“왜?”

“음…그게…이거 게임…이죠? 기술이 미묘하게…눈에 익은 것 같은데…이거, 이렇게…이렇게 하면….”

나는 치유의 마법소녀 캐릭터가 움직이는 형태를 보고 조금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치유의 마법소녀는 지독한 수준의 근접 격투 콤보 캐릭터다.

그레이프는 그런 캐릭터의 최고 난이도급 콤보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입력하고 있었다.

“어…? 진짜 비슷한데….”

“음…아마 비슷할 거야, 이거 실제 마법소녀를 모티브로 한 게임이거든.”

“네? 어? 그런 게 있었어요?”

“봐봐.”

나는 불의 마법소녀 캐릭터로 스펠을 선택해 마법을 사용했다.

캐릭터가 멋있게 자세를 잡으며 손끝을 뻗어 슈팅 스타 레이라는 마법 시동어를 외친다.

이름이 약간 다르지만, 에스더가 사용하는 슈팅 스타였다.

“어?! 이거 에스더…!”

“응…?”

그레이프는 에스더의 마법을 사용하는 캐릭터에 놀라면서도 곧바로 모든 마법을 하나하나 패링해 받아쳤다.

나는 초보자가 패링을 한다는 이상 현상에 기겁하며 곧바로 캐릭터를 공중에서 대쉬시켜 위에서 공격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그레이프의 캐릭터가 곧바로 카운터를 하고 공중 콤보를 걸어왔다.

“에에에엥?!”

“이제 게임 시작하는 거 아니었어요?”

“아, 아니…맞아! 덤벼!”

나는 공중을 박차는 패시브 스킬을 사용해 공중 콤보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그레이프는 곧바로 나와 같은 스킬을 사용해 내 캐릭터를 따라붙었다.

회피 경로를 그대로 읽어서 내려찍기, 바닥으로 내리쳐진 캐릭터에 쫓아와 콤보….

초보자의 실력이 아니다.

“이 게임 처음 해보는 거 아니지!”

“처, 처음인데….”

“거짓말하지 마, 에어워크는 이 두 캐릭터밖에 못 쓰는 기술에 커맨드 스킬이란 말야. 처음 하는데 커맨드를 어떻게 알아?”

“앵거가 입력한 거 보고 따라 한 건데요….”

남이 키 입력하는 걸 훔쳐보다니…그레이프는 비열한 마법소녀다.

더 이상 봐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레이프가 모를만한 기술들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강 공격, 스펠 사용 직후 커맨드 입력으로 모션캔슬, 기술을 끼워 넣어 콤보를 강제 연결해 가드 크래시 상태를 만든 뒤 타격을 연결한다.

“어?! 그거 어떻게 해요?”

“안 가르쳐줘!”

나는 아직 스펠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그레이프에게 스펠을 마구잡이로 사용해 강제 연결 콤보를 쉬지 않고 걸었다.

결국 압도적인 승리를 따낸 나는 게이머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인공지능 대전 모드에 들어섰다.

나는 인공지능 대전상대로 나온 검의 마법소녀를 여유롭게 상대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이겼다….”

“…조금 봐주면서 하면 안 돼요?”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잖아.”

나는 그레이프의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봐주기는 무슨…방심했다가는 질뻔했다.

역시 마법소녀라 그런가…격투 센스가 엄청났다.

“근데 그레이프 이거 잘하네…한 판 더 할래?”

“아뇨…한판하고 지쳤어요…정신적으로, 보니까 괴로운 움직임이라서….”

“음….”

나는 그레이프의 말에 조용히 동의했다.

불의 마법소녀도, 치유의 마법소녀도…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레이프라면 괴로울 만 한 움직임이긴 하겠지….

그레이프는 내 옆자리에 앉아 내가 검의 마법소녀를 농락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근데 되게 신기한 게임이네요…마법소녀를 모티브로 하다니….”

“미묘하게 다르지만 말야…게임적인 해석도 많이 들어갔고, 실제 마법소녀의 마법이나 자세를 모티브로 한 거지…똑같은 건 아니니까.”

“다른 캐릭터도 있어요? 그…저기, 그레이프도 있으려나….”

그레이프는 혹시라도 주변의 누군가가 들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본인이 나오는지를 물었다.

나는 검의 마법소녀를 게임 속에서 농락하며 등장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애쉬, 래피드, 에스더, 릴리, 러스티, 그레이프…최상위권의 7인뿐만 아니라 게임 제작 당시 유명해졌던 마리아도 게임에 나온다.

“있어. 예전부터 최상위권이었던 마법소녀는 일단 전부 다 있을걸?“

“이거 되게 재미있는 게임이네요…잘 만들었고…그런데 제가 모르는 캐릭터도 많은가 봐요, 지금 상대하는 건 누굴 보고 만든 건지 모르겠어요.”

“마법소녀를 모티브로 했다고 해도 결국 상상이니까…게임에서 사용하는 마법 같은 건 다 영상 자료 같은 거나 소문을 토대로 만들어낸 거라서 좀 많이 다를 거야.”

예를 들면, 래피드는 제작 당시 여기저기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해 단순한 고속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캐릭터 이름은 속도의 마법소녀, 그럭저럭 강한 캐릭터다.

애쉬는 히든 캐릭터…학살의 마법소녀…실제로 별명이 괴수 학살자이기도 하고 괴수를 너무 잘 죽여서 그렇게 지은 것 같지만, 전혀 마법소녀 답지 않은 이름이다.

사용하는 마법은 없다…당시 자료가 너무 없어서 그냥 엄청난 이펙트와 함께 검을 빠르게 휘두르는 것만 구현되어 있다.

“아까 그 캐릭터는 꽤 비슷하던데요…?”

“그건…본인이 찍은 무술 입문 영상이 뷰튜브에 올라가 있었잖아. 그것 때문이야.”

“아…어? 에스더는요?”

“에스더는…이거 게임 제작자 중에 에스더 팬이 있어서….”

팬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 제작사 이름부터가 슈팅 스타 크리에이터즈다.

검의 마법소녀를 구석에 몰아넣은 나는 에스더의 캐릭터로 궁극 마법인 메테오 차지를 사용해 각성한 캐릭터의 앉아 약 공격으로 쉴 새 없이 구타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별것 아닌 공격에 꼴사납게 얻어맞는 모양새다.

“…에스더가 할 것 같은 짓이네요.”

“어, 그래?”

“에스더가 게임 방송할 때 이런 짓 하는 거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알아보다니…그레이프도 상당하다.

그레이프의 말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격은 게임사에서 공식적으로 에스더의 방송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해준 기술인 에스더식 농락권이었다.

캐릭터의 데미지와 속도를 올려주는 각성기인 메테오 차지를 사용해놓고 굳이 속도 강화만 되는 앉아 약 공격으로 쉴 새 없이 공격해 상대방의 멘탈을 공격하는 콤보다.

“앵거는 어떤 마법소녀가 제일 좋아요?”

“응? 게임에서…?”

“아, 네! 맞아요…게임에서 어떤 마법소녀를 제일 자주 써요?”

“그야…지금 쓰는 거?”

“…이게 좋아요?”

“응…?”

검의 마법소녀를 쓰러뜨린 뒤 인공지능에게도 봐주지 않고 도발을 걸던 나는 묘한 오한을 느끼고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

밤이라서 추운 건가, 아니면 오락실 안에 에어컨이 강해서 그런가…?

나는 어깨를 떨며 그레이프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게 제일 사기캐릭터거든…그레이프가 아까 쓴 캐릭터도 좋은 캐릭터긴 한데, 이건 조금…제작사의 편애가 많이 들어가서.”

“아하아…그렇구나…게임이니까, 그럴 수 있겠네요.”

이상하다…뭐지…?

대답하고 나자 갑자기 오한이 사라졌다.

“그런데…그레이프는 어떤 캐릭터에요? 세요?”

“어? 어….”

계속해서 앉아 약 공격으로 검의 마법소녀를 농락하던 나는 그레이프의 말을 듣고 손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보자 그레이프는 기대감에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던 행동을 후회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이건데….”

“네?”

“그러니까…그, 지금 내 상대….”

그레이프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는 지금까지 내가 농락하고 있던 캐릭터, 검의 마법소녀였다.

실제 그레이프와 싸우는 방식도 다르고, 나쁘지 않은 캐릭터였지만…엄청 좋은 캐릭터는 아니다.

나는 게임 캐릭터인데도 지금까지 신나게 패던 걸 그레이프가 보고 있었다는 게 신경 쓰여 그레이프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에게 일부러 맞아주며 말했다.

“내, 내가 쓰는 캐릭터가 지금 너무 세서 그런 거지 초보자가 하기에도 좋고…평가는 그리 좋지 않지만 다들 처음 입문할 때 한 번쯤은 사용해 보는…그게, 괘…괜찮은 캐릭터야!”

조금 전까지 게임에 져도 활짝 웃고 있던 그레이프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게임 화면을 노려봤다.

화면 속에서는 피가 전혀 남지 않은 그레이프의 캐릭터가 피가 가득 찬 에스더의 캐릭터를 열심히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각성기를 사용해 버린 사기 캐릭터는 아무리 때려도 피가 닳지 않았다.

“하하하….”

“하, 하하….”

그레이프는 힘없이 웃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을 때려도 데미지를 조금밖에 입지 않은 내 캐릭터는 결국 얼마 남지 않았던 시간제한이 끝난 뒤 승리 판정을 받았다.

그레이프의 캐릭터가 자리에 쓰러지며 분한 목소리를 낸다.

그 직후, 그레이프는 활짝 웃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쓰레기 게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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