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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12화 (212/299)

< 212화 > 데이트 (1)

“더워….”

덥다….

곤히 잠들어있던 나는 그 생각만으로 정신을 차렸다.

아직 그렇게 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방안의 온도도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았는데…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아니, 덥다기보다…뜨겁다….

왜 이렇게 덥지….

나는 이상할 정도로 갑갑한 더위에 눈살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으….”

눈을 뜬 나는 곧바로 더위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 그레이프가 나를 잠잘 때 껴안는 인형처럼 안고 잠들어있다.

그레이프와 나는 둘 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체…맨살을 밀착시키고 잠을 자고 있었으니 더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기 전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젯밤의, 나에게 매달리고 더 해달라고 졸라대며 계속해서 밑에 깔려있는 만족스러운 섹스가 끝나고…그레이프가 나한테 매달리는 게 기분 좋아서 그대로 잠들었다.

잘 때는 지치기도 하고 밤이었기에 덥다는 걸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는 몸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레이프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밀어봤지만, 그레이프는 자고 있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의 몸이 아니라 부드러운 것으로 감싼 철골 구조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단하다.

“그레이프…일어나…그레이프?”

“으으음…으….”

“아악! 아파!”

잠을 깨우려고 허리를 툭툭 치며 말을 건 내게 그레이프는 말없이 세게 끌어안는 것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레이프의 허리를 꼬집으며 소리쳤다.

“헥?! 네?! 죄송해요!”

다행히 그레이프는 내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깼는지 깜짝 놀라며 끌어안은 팔을 놓아줬다.

아침부터 죽을뻔한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비전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출근할 시간이 지나있다.

“그레이프! 출근!”

“어?! 벌써…? 아, 앵거 잘 잤어요…?”

“빨리 씻어!”

“어? 음…네….”

어제 네 번인가 싸고 그대로 잠들어서 알람을 듣지 못 들었나?

일단 그레이프부터 샤워실로 보낸 나는 막 일어났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깔끔한 그레이프의 몸을 바라보며 매트리스 주변을 정리했다.

섹스하면서 나온 애액을 닦는데 써버린 그레이프의 속옷이랑 밤에 입었던 셔츠를 세탁기에 넣고 옷장에서 그레이프의 새 속옷을 꺼내준다.

샤워기 물소리가 들리는 동안 아침에 대충 먹을만한 걸 준비한 나는 그레이프가 나오자마자 먹을걸 쥐여줬다.

마력으로 말렸는지 젖은 머리카락은 이미 찰랑거릴 정도로 말라 있었다.

식사는 찬장에서 꺼낸 인스턴트 수프와 커피, 둘 다 마시는 거긴 하지만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

“와~앵거가 타준 커피다~”

“왜 그렇게 느긋해? 늦었는데?”

“음…여기에서 회사까지면 늦어도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요…?”

“응…?”

적당히 미지근하게 탄 수프를 마시고 내가 준 속옷을 입는 그레이프를 보며 나는 그제야 그레이프의 출근 시간이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한테야 이미 지각이 확정된 시간이지만…그레이프한테는 아직도 여유 있게 갈 수 있는 정도다.

그레이프는 느긋하게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며 회사에 가기 싫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진짜 오늘은 가기 싫어요….”

“팀장이 안 가면 어떡해? 휴가 작작 쓰고 그냥 출근해.”

“출근 안 하고 앵거랑 놀고 싶어요….”

“퇴근하고 놀면 되잖아.”

“회사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평소에도 그런 생각 하면서 회사 다녔던 거야?”

나는 이렇게 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한 그레이프의 출근 싫어 발언을 듣고 그레이프를 달래줬다.

성실하다고만 생각한 그레이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그레이프랑 같이 있을수록 지금까지의 내가 알던 그레이프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 하면서 다닌 건 아닌데…요즘 회사는 별로…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본사에 보고할 내용 때문에 바빠져서 그래?”

“아뇨, 그건 뭐…대충 보여줄 프로토타입이나 계약 같은 것도 끝나서 이제는 바쁘진 않고…그냥 정말 순수하게 회사에 가기 싫어요….”

“그러면 뭐 하고 싶은데?”

“음….”

그레이프는 내 얼굴과 자지를 힐끔거렸다.

…출근 안 하고 섹스하고 싶다는 얘기로밖에는 안 느껴진다.

나는 밑쪽을 손으로 가리며 변태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레이프를 흘겨보며 말했다.

“…갔다 와서 하면 되잖아.”

말을 하면서도 문득 내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가 끝나고 내 방으로 퇴근해 와 섹스하는 걸 너무 당연시하면서, 갔다 와도 섹스해줄 테니까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하는듯한 인사라니….

그레이프가 내 방에서 출퇴근하는 거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닐까?

뭐…이제는 그래도 상관없긴 하다.

이제는 그레이프가 내 자지를 길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레이프를 불러 성욕을 해소하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순종적이게 다리를 벌리기만 하고, 함부로 올라오지 않으려 하는 그레이프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

섹스하는 게 당연해도 섹스의 주도권이 내게 있다면 괜찮다.

나는 그레이프를 자지로 절정시켰다.

하룻밤의 섹스로 자신감이 가득 차게 된 나는 여유를 잃지 않으려 하며 그레이프의 허리를 두들겼다.

얼른 출근이나 하고 놀고 싶으면 퇴근해서 또 상대해주겠다는 손짓에 그레이프의 얼굴이 붉어진다.

“거기 그렇게 치면 안 돼요…."

“어? 으, 응 미안…퇴근하고 하자…?”

자신만만하게 그레이프의 허리를 두들긴 나는 그레이프의 끈적한 목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제 네 번 해놓고 아침부터 하자니…자지가 서 있긴 하지만, 아직 체력 회복이 안 됐다.

그런 걸 허락해 버렸다가는 또다시 그레이프에게 깔려버리고 말 게 분명하다.

“음…퇴근하고?”

“으, 응…퇴근하고 하자? 응?”

“음….”

퇴근하고 나서 섹스해주겠다는 내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레이프는 그대로 멈춰서 고민에 빠졌다.

역시 네 번은 그레이프한테는 부족했던 걸까?

내가 직접 할 때가 아닐 때는 그레이프 맘대로 최소 9번 이상 싸게 만들었으니…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면…저녁에…앵거는 시간 되는 거죠…?”

“으, 응…그러니까 저녁에…밥 먹고, 하자?”

“그러면…저기…있잖아요…이따가….”

다시 한번 내게서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섹스하자는 말을 들은 그레이프는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또 반차를 쓰겠다며 덮칠까 봐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녁에 대체 얼마나 많이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걸까…?

나는 저녁에 시간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레이프를 보고 이틀 동안 쌓인 게 상당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체 어떤 걸 하고 싶어서, 뭘 하자고 하려고 이렇게까지 망설이는 거지….

잠시 후, 그레이프가 눈을 질끈 감으며 한 말을 들은 나는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 저녁에…! 데이트! 하지 않을래요?!”

# # #

데이트….

비전넷에 검색해 볼 때 데이트라는 것은 연인 혹은 서로 애정이 있는 이들이 함께 만나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또는, 친구 사이에…드물게는 가족 간에 하는 만남도 데이트라고 칭하기도 한다고…하는 것 같다.

그레이프와 나는 연인 혹은 서로 애정이 있는 관계인가…?

아니다.

그레이프와 나는 가족인가…?

아니다.

그레이프와 나는 친구 사이….

하지만, 데이트는 친구 사이에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레이프의 갑작스러운 데이트 신청을 수락했다.

그것뿐인가…?

그것뿐이지…?

잘 모르겠다.

그레이프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 이유는 굳이 정하자면 정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여자랑 정식으로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기도 했고….

물론 래피드랑 만나건 데이트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일방적이라고 생각하는 데이트에 래피드는 데이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역시 데이트라고 하면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데이트라고 해도 좋을까.

데이트 경험이 쌓이면 당연히 데이트를 하는 것도 능숙해질 테고, 래피드랑 만날 때 좀 더 연애 경험이 많아 보이는 남자로서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테고, 애초에 모든 건 많을수록 좋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데이트 경험도 많은 게 좋을 게 틀림없다.

아무튼, 데이트는 하면 할수록 좋다.

그러니까 한다.

그레이프랑 데이트하는 게 싫은 것도 아니고….

데이트라고 해봤자 별거 아니다.

어차피 데이트라는 건 그냥 단둘이서 밥을 먹고, 놀러 다니고, 구경하는 게 전부다.

긴장할 필요 없다.

그레이프와의 데이트는 어디까지나 공부와 자료조사.

래피드와의 데이트를 더욱 즐겁게 하기 위한 경험일 뿐이다.

그레이프랑 같이 밥을 먹거나, 같이 뭘 구경하거나, 얘기를 나눠본 적은 이미 몇 번이고 있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긴장된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머리가 자주 지끈거린다.

그레이프와 데이트한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해서 이러는 건가?

다행히도 아플 정도는 아니다.

그냥 조금 눈 주변이 긴장되고…약간 따끔거리는 정도…?

그레이프의 말대로 요즘 너무 안 좋은 것만 먹어서 몸이 안 좋아진 건 아니겠지…?

나는 갑갑하고 찝찝한, 묘한 기분을 느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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