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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06화 (206/299)

< 206화 > 변화 (3)

이제는 상사가 아닌데도 과장의 부탁을 들어주다니…나는 정말 착한 전 직원이다.

나 자신의 선량함에 감동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울먹이게 된다.

[어? 왜, 왜, 어? 왜 그래요? 어…?]

사과를 받고 당황한 그레이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 또한 그레이프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게 당황스럽다.

하지만, 무려 전 직장의 상사이신 과장이 사과하라 했으니 사과할 수밖에 없다.

[네…? 아니, 저기, 어…? 무슨 일인데요? 뭐? 과장님이 뭘 했어요?]

“아, 아니에요…죄송합니다….”

[가, 갑자기 왜 사과하는 건데요?! 말 좀, 잠깐, 얘기를…!]

“제가 할 얘기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잠깐…오해에요, 아무튼 오해에요! 집, 집 가서 얘기해요! 오늘 집 가서!]

얘기를 해 보라고 해도 나는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건지 모르니 할 말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 그레이프는 내게 더는 들을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화를 내며 우당탕탕 하고 뭔가가 넘어지는 소리를 냈다.

식사하다가 식탁을 그대로 넘어뜨린 듯한 소리다.

[죄송합니다, 변상할게요! 이거 제 연락처니까 여기로…이따가 연락해주세요!]

“그레이프 씨가 싫으면 집에도 안 오셔도 됩니다….”

[아니. 네?! 무슨…과장님이 제가 앵거 싫어한대요?]

“아닙니다…죄송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아…! 아니, 가, 갈 거예요! 갈 거니까! 가도 되죠?! 아니, 갈 테니까! 뭔지 몰라도 무조건 오해니까…! 가서 얘기할게요, 네?!]

“아, 네…그러면 나중에 얘기해주세요…끊겠습니다…”

그레이프에게 할 말을 마친 나는 천천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린 소리로 볼 때 어딘가로 급하게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할 말도 더 없고, 급하게 어딜 가는데 전화하고 있는 것도 민폐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레이프에게서 곧바로 다시 전화가 오더니 2초 만에 끊어져 버렸다.

곧바로 메신저 알림이 울리고, 그레이프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나는 냉장고에서 먹을 걸 찾아보며 메시지를 읽었다.

<집에 가서 얘기해요, 오해 다 풀 수 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딱히 그레이프가 잘못한 건 없는데.

사과받자마자 사과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자신이 사과하는 그레이프의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이것이 나 같은 말단 직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팀장급의 처세술이라는 걸까.

[네, 집에 오는 거 기다릴 테니까 집 와서 얘기해 주세요.>

<네!! 기다려주세요!!]

나는 그레이프를 적당히 달래 진정시켜줬다.

사과해야 할 만큼 잘못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사과할 필요 없는 그레이프가 사과한 것처럼 이것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처세술이라는 거겠지….

과장과 여직원이 원하던 대로, 할 일을 다 한 나는 싸구려 커피를 찬장에서 꺼내 설탕을 가득 넣어 타 마셨다.

몸이 개운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커피가 더 달콤하다.

나는 커피를 마신 컵을 설거지하며 잠시동안 회사 생각을 했다.

설마 나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그렇게 안 좋아졌을 줄이야….

대체 어째서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 때문이라고 하니…마음이 아프다.

부디 나의 사과를 받아준 그레이프가 마음을 고쳐먹고 회사를 밝고 깨끗하고 평화롭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퇴사한 직원이 사과하기까지 하고, 혹시라도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입을 꾹 다물어줬는데…이 정도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나는 마음속으로 과장을 응원했다.

일이 잘 풀려서 분위기 좋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슬슬 점심시간이 끝날 시간이다.

그레이프는 지금 모두에게 요즘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겠지…?

과장도 웃는 얼굴로 드디어 회사의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다며 기뻐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니면 과장을 직접 불러서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하고 있을까?

그레이프는 공적이어도 사적이어도 직원 간 개인적인 대화는 따로 해야 한다며 나를 따로 부른 적이 꽤 많았으니, 과장도 그렇게 따로 불렀을지도 모른다.

상상하면 할수록 흐뭇한 광경이 떠올라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건 그렇고 나한테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으면서 회사에서는 내가 퇴사했다는 사실에 짜증 내고 화내고 있었다니….

그렇게 퇴사한 사람 일을 끌어들이는 건 팀을 이끌어나가야 할 팀장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실망하며 옷장에서 파란색 팬티를 꺼내 입었다.

꺼내 입고 보니 그레이프가 좋아하는 색이었다.

속옷을 입고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가 적당히 먹을만한 것들을 사 왔다.

그러고 보니…그레이프가 저녁에 오면 밥도 안 먹고 오겠지.

그레이프가 먹을만한 계란이랑 햄도 사 두자.

집에 돌아온 나는 어제오늘 사이 생겨난 쓰레기로 가득한 방을 느긋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튀김, 과자를 먹은 포장지가 가득 찬 쓰레기봉투가 세 개나 나왔다.

나는 오늘은 아직 분리수거일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쓰레기봉투를 방구석에 모아뒀다.

청소를 하다 보니 또다시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면에 떠오른 번호를 본 나는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이 부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사과한 뒤 그레이프가 회사를 행복하게 해주기 시작해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건 거겠지.

곧바로 전화를 거절한 뒤 부장의 번호를 차단한다.

퇴사한 사람한테 이렇게 전화를 걸어대다니…아무리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 해도 정말 예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예의 없는 행동에도 관대한 나는 회사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져 기쁜 마음으로 청소를 계속했다.

침대 시트를 갈아두고, 콘돔도 매트리스 옆에 잘 올려준다.

어차피 그레이프가 집에 오면 섹스할 테니까…그레이프가 원하면 바로 섹스해도 괜찮게끔 방안을 정리해둔다.

청소를 끝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그레이프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내 몸에서 땀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확인한 뒤, 프라이팬에 햄을 굽기 시작했다.

햄을 적당히 구운 뒤에는 계란을 꺼내 계란말이를 할 준비를 한다.

계란에 햄을 올려 돌돌 말아 접으면…그레이프가 왔을 때 언제든 데워 먹을만한 햄 계란말이가 완성된다.

그렇게 정확하게 계란을 만 타이밍에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그레이프인가 싶어 시간을 확인해본 나는 퇴근 시간으로부터 3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누군가 싶어 조용히 현관문 앞에 다가갔다.

그러자 미세한 마력이 문틈 사이로 뻗어와 내 몸을 살짝 간지럽히고 지나간다.

어째서인지 그레이프의 마력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레이프?”

[문…문 열어주세요…!]

“아, 응.”

나는 그레이프가 한번 망가뜨려 헐렁해진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정장 안에 마법소녀의 전투복을 입은 그레이프가 현관 앞에 서 있다.

마법소녀인데도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어 굉장히 다급해 보인다.

정말로 3분 만에 회사 구역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건가….

트루비전의 드론으로도 불가능한 속도다.

그레이프는 땀에 젖은 이마를 손으로 닦더니, 긴장한 모습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애, 앵거…그게…일단, 오해…거든요?”

“너무 급하게 온 거 아냐? 물 마실래?”

“네? 아, 네…네?”

나는 숨이 차 보이는 그레이프에게 태연히 말하며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을 건네줬다.

그레이프는 현관으로 들어와 내게서 물을 받아 마시더니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리며 구두를 벗었다.

나는 빈 컵을 받아 싱크대로 걸어가 계란말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밥 먼저 먹을래? 햄 계란말이인데…맛은 보장 못 해도 그럭저럭 맛있을…걸?”

“어…? 아, 어…앵거가 한 거예요?”

“퇴근하고 오면 배고플 것 같아서…싫으면 편의점에서 뭐 사 올까?”

“네?! 아뇨?! 먹을래요! 주세요!”

그레이프는 내가 버리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급하게 프라이팬을 뺏어 들어 조금 못나게 갈라놓은 계란말이를 손으로 하나씩 집어 먹기 시작했다.

빠르게 입을 오물거리며 삼키는 모습이 누가 뺏어갈까 봐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배고팠던 걸까…만들어 두길 잘했다.

“맛있어요! 최고예요! 매일 먹고 싶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아…? 그냥 편의점에서 사 온 재료들로 대충 한 건데.”

“편의점 재료여도 앵거가…아니…이걸 먹을 때가 아니라…오해에요!”

그레이프는 프라이팬을 다시 내려놓은 뒤 불안해하며 내 손을 잡았다.

매달리는 것처럼 꼬옥 잡고 놔 주질 않는다.

나는 그런 그레이프에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무슨 일이었는데…?”

“그러니까…아무튼, 전부 오해고…! 이상하게 제가 앵거한테만 차별대우하는 거 아니냐고, 왜 그렇게 잘해주려고 하냐면서 불만이 쌓여있어서…그래도 제가 다시는 그런 짓 못 하게 해놨으니까…!”

“응, 응.”

“혹시라도 또 그런 짓 하면 그런 사람 말 믿지 말고 곧바로 저한테 연락부터…그런데, 괜…찮아요?”

“응?”

계속해서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말하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화 안 났어요?”

“안 났는데…?”

“속상하지는…않아요?”

“응, 괜찮아.”

“어…? 그치만 아까는…어?”

아무래도 조금 전의 전화에서 조금 오해를 해 버린 것 같다.

하긴…내가 그렇게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으니 어떤 오해든 할 만하긴 했다.

나는 그레이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두들겨주며 말했다.

“아까는 그냥 갑자기 전화해서 다들 뭐라고 하니까 정말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괜찮아! 그레이프랑 전화하고 조금 생각해 보니까 마음이 편해졌어.”

“어…?”

“…그레이프가 오해라고 했으니까, 오해인 거 아냐? 그래서 오해구나 해서….”

“아, 네! 맞아요! 맞아요! 아아아…! 다행이다! 아아아아…!”

그레이프는 내 말을 듣자마자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더니 손으로 눈을 비비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걱정이 사라져 안도한 얼굴에 웃음기가 보인다.

완전히 진정하게 된 그레이프는 다시 계란말이를 손으로 집어 먹으며 말했다.

“맞아요, 오해니까! 애초에 그런 사람들이 앵거랑 제 사이에 끼어드는 것도 잘못됐고, 싫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아무튼, 앵거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제가 회사에서 뭐라고 해서 그런거고…앵거는 아무 잘못 없어요! 저도 앵거한테 뭐라고 한 게 아니니까, 절대 이상한 의미인게…이, 일단 회사 사람들 번호부터 전부 차단하죠!”

“어…차단해?”

“네! 이상한 소리나 해대니까! 비전폰 주세요, 연락처 저장해 왔으니까 저 말고 다른 회사 사람들 번호 전부 차단해요!”

그레이프는 내게 비전폰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최면어플이 든 비전폰을 그레이프의 손에 맡길 수는 없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대신, 그레이프의 앞에서 연락처를 열어 회사 사람들의 번호를 함께 차단하기 시작했다.

“어…? 부장님하고 과장님이랑 이분은 왜 벌써 차단돼있어요…?”

“아까 전화를 자꾸 하길래….”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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