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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03화 (203/299)

< 203화 > 충동 (9)

“흐으으음….”

글을 전부 읽은 나는 묘한 감상과 함께 이를 문 채 한숨을 쉬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이 마법소녀에 대해 느낀 감각보다 이 글이 좀 더 공감된다는 느낌이 든다.

평소보다 폭력적인 행동…이성을 잃고 섹스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마력에 반응하고 무력화된 마법소녀에게 흥분한다는 말이…특히 공감된다.

확실히…나는 약해진 상태의 마법소녀에게 흥분한다.

예전의 나는 네거티브에 의해 최면에 걸려있었고, 그게 네거티브의 기본적인 행동양식이라 하면…말은 된다.

그리고 지금도…왼손에 촉수가 박혀있으니…하지만,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만약 왼손의 촉수가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괴수 성분의 약을 섭취할 때마다 반응하는 거라면…?

로제가 몸속에 괴수 성분이 쌓여 있다고 했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평소에는 잠자코 있다가 약을 먹으면 몸속에 괴수 성분이 쌓여 네거티브로서의 충동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건가.

꽤 그럴싸한 상상이다.

하지만 네거티브의 충동이라니…생각만 해도 오싹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꼭 내가 네거티브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왼손에 촉수가 박힌 나는 평범한 인간이 맞을까?

인간 감염체는 방위군의 방역 대상이다.

에스더는 촉수가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에스더를 믿어도 되는 걸까…?

하루 만에 근육통이 사라진 건…아마도 촉수가 내 몸을 치료해 준 덕분이다.

최면에서 풀려나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고, 정력도 더 좋게 해주고, 자지도 잘 서게 해주고….

내게 해를 끼칠 생각이 있었다면 옥토 플라즈마라는 괴수처럼 왼손이 아닌 뇌에 자리 잡았겠지.

“하아….”

나는 왼손을 일부러 쥐었다 펴기도 하고, 손등의 핏줄을 오른손으로 눌러 보며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촉수를 만져봤다.

확실히, 만져보면 다른 핏줄보다 좀 더 조직이 세밀하다는 게 느껴진다.

핏줄보다 고무 튜브를 만지는 촉감과 비슷하다.

이렇게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기는 한데….

만약 이 촉수가 없어지게 되면 나는 다시 네거티브의 최면에 걸리게 되는 걸까.

지금처럼 빠른 체력회복도 힘들어지고, 정력도 안 좋아지고, 자지도 잘 안 서게 되고…?

그건…별로 내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이 촉수는 나한테 딱히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얌전히 잘 있는데 괜히 괴수 성분이 들어와 폭주하게 된 쪽에 가깝겠지.

하지만…나는 네거티브에게 최면을 당해 오면서도 내가 최면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것도, 언제부터 조종당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 촉수도 내가 모르게 나를 조종하고 있다면…?

내가 갑자기 흥분한 것이 촉수가 날 조종해서 그렇게 된 거라면…?

아니, 그건 말이 안 되지….

만약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최면에 걸려있을 때의 나는 이런 걸 의심조차도 하지 않았으니…지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증명이 된다.

발정 나는 것도 나를 조종한다기보다는 음액에 중독되거나 본능이 앞서는 상태가 되는…일종의 폭주 상태에 가깝다.

폭주가 끝나면, 성욕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나면 상태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나를 조종하려는 거라면 굳이 이렇게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즉, 왼손의 촉수는 나를 조종하고 있지 않다…조종할 생각도 없다.

단순히 내가 먹은 약 때문에 조금 안 좋은 영향이 나타났을 뿐….

내가 약을 먹지 않는다면 촉수는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는 왼손으로 주먹을 쥐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 왼손에 촉수가 박혀있기 때문에, 내게는 약의 부작용이 더욱 크게 일어난다.

약의 부작용은 네거티브가 흥분했을 때 마법소녀에게 하는 행동들과 비슷하다.

촉수는 내가 약을 먹지 않는 한, 내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왜 하필 그런 타이밍이었던 걸까….

정말 약 때문이었다면 래피드를 만난 순간부터 흥분했어야 하지 않나?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다.

…로제가 마사지를 해 줘서 그런 걸까.

이전에는 그레이프가 매일같이 만족을 넘어설 만큼 섹스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다가, 그레이프랑 하루 안 만나는 것만으로 몸속에 괴수 성분이 쌓이게 되었고…그게 뭉쳐있을 때는 문제가 없다가 풀어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약의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던 건 그레이프 덕인가….

래피드에게 갑자기 흥분한 건 운 나쁘게 일이 겹쳐서 생긴 우연이라고 봐야 하나…?

뭔가 마음에 걸리지만…일단 정리는 되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싱크대 쪽으로 가 그레이프가 사준 영양제를 손에 들었다.

지금까지의 내 추리를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약을 먹어서 부작용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지금까지 내가 했던 생각의 대부분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일어나지 않는다면…다른 요인이 있는 것이다.

그땐 또 다른 이유를 찾아봐야겠지.

2동 박사의 글을 읽고 난 뒤여서 그런지 추리만으로 상황을 추측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2동 박사처럼 확실하게 센서와 감지장치 같은걸 써서 내 상태를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 몸에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 있다 보니, 확실하고 자세한 분석 결과를 보고 싶어진다.

그건 그렇고…2동 박사의 이 글을 보면 상당히 거친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하급 마법소녀에게 실험을 하며 4시간 동안 풀어주지도 않다니….

설마 그것도 실험 결과의 하나라고 구경하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변태 같은 사람이다.

2동 박사처럼 실험 결과를 바로바로 관측하는 장비가 설치된 실험실이 있는 것도 아닌 내게는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최면어플에 나오는 래피드의 현재 위치는 0번 구역….

내가 지금 이 약을 먹어 즉시 부작용이 발생한다 해도 래피드와 만날 일은 없다.

나는 곧바로 약을 삼켰다.

“음….”

차분하게 뱃속의 느낌을 느껴보려고 노력하자 위장에서부터 무언가가 녹아내려 몸속에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약간 매운 느낌…아니, 묵직하고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

맵고, 끈적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 위장이 힘겨워할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잠시 후 왼손의 핏줄이 멋대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 생각대로 약에 있는 괴수 성분에 반응하고 있는 건가?

뱃속에 열기가 들어차며 자지가 빳빳하게 발기한다.

그게 전부였다.

“뭐지…?”

그 뒤로 두 시간 정도 상태를 지켜봤지만, 부작용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발기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 말 그대로 좀 더 쉽게 발기하는 정도였다.

혹시 마법소녀가 눈앞에 없거나 해서 그런 걸까 싶어 그레이프와 래피드의 사진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자지가 갑자기 확 발기할 뿐, 발정 났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 정도면 약을 먹은 사람이 적어둔 부작용이 뭘 얘기한 거였는지도 이해된다.

그냥 좀 더 기운이 넘치는…평소보다 약간 더 빳빳한, 정말 말 그대로 섹스하고 싶어서 가끔 곤란하겠구나, 성기능이 정말 좋아졌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다.

딱히 폭력적이 된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어제 느꼈던 것과는 다르다.

겨우 이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지하철까지 걸어가 다른 마법소녀와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렇다는 말은…내가 지금까지 한 추리가 틀렸다는 걸까?

아니…완전히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섹스하고 싶어지는 부작용이 있는 건 맞으니까…단지 그 정도가, 농도가 심하게 옅을 뿐이다.

지금까지 먹어서 몸에 쌓인 걸 로제가 풀어줘서 이렇게 별 느낌이 안 드는 걸까?

그렇다면 한 주 이상 복용하고 나서야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마법소녀가 근처에 없어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수도 있다.

지금 몸속에 쌓인 것이 화약이라면, 마법소녀라는 트리거가 있어야만 발화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일단은 그레이프를 만나봐야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려나.

그레이프와는 내일 만나기로 해 둔 상태다.

내일 그레이프와 만난다는 것은 내일 그레이프와 섹스한다는 뜻이다.

그레이프와 섹스하는 상상을 하자 자지가 멋대로 움찔거린다.

…만나기도 전에 이렇게 몸이 반응하다니, 역시 마법소녀가 트리거가 맞는 걸까.

하지만 지금 이 반응이 약에 의한 것인지, 그레이프와 섹스하는 데에 너무 길들여져서 이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레이프에 대한 내 자지의 반응을 신용할 수 없다.

약 때문에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레이프랑 섹스하면 기분 좋으니까 기대하는 것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약이 없어도 그냥 정액이 쌓이면 지금처럼 자지가 멋대로 발기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레몬을 상상하면 신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그레이프를 상상하면 섹스와 기분 좋은 쾌락이 떠올라 자지가 발기한다.

…그레이프한테 반응하는 걸 약의 부작용이 시작되는 트리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마법소녀가 아니라 래피드에게 반응하는 건 아닐까.

갑자기 발정 날 때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래피드의 냄새를 맡고, 래피드의 이름을 부르고, 래피드가 이름을 불러줬다.

나는 방 안에서 갈색 양 인형과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꺼내 냄새를 맡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음으로 래피드가 이름을 불러주는 건…래피드와 만나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실험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래피드에게 최대한 발정나지 않으려고 실험하는 건데 래피드의 앞에서 발정 나는 걸로 이유를 알아본다니, 새우 알러지를 가진 에스더가 자신이 새우 알러지가 맞는지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새우를 먹어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보짓이다.

일단, 부작용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전부 생각한 대로인 것 같으니, 약을 먹었을 때 래피드를 만나는 것이 트리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평소에는 약을 먹으며 그레이프와 섹스하고, 래피드를 만나기 전에는 미리 약을 끊고 있으면 되겠지….

만약을 위해 래피드를 만나러 갈 때마다 지하철에서 다른 마법소녀와 섹스하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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