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Dayte (9)
“뭐,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계속 파스타를 먹다 말고 점원을 부르는 벨을 눌렀다.
래피드도 식사를 다 한 것 같으니, 다음은 디저트를 먹을 시간이다.
주문은 레몬 라임 트위스트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과 베리를 올린 크렘 브륄레.
시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내가, 따뜻하고 달콤한 푸딩은 래피드가 시켰다.
디저트가 나오기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걸리니, 적당히 먹고 있으면 나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식사를 마치고 있자 래피드가 수저를 완전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고 더 먹을 생각이 없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자 래피드가 내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보통 그런 말 안 해요, 마법소녀가 여자아이라거나…그런,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는 듯한 말은….”
“마법소녀라고 무적은 아니잖아요.”
에스더는 강하지만, 무적이 아니었다.
더욱 강하길 바랬지만, 그런 척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래피드도 마찬가지다.
강하길 바라고, 강하지만, 무적은 아니다.
“그건, 그치만…그래도…애쉬는….”
무적이라고 할만한 마법소녀가 없는 건 아니다.
마법소녀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강자…애쉬는…무적이다.
어떤 괴수가, 어떤 간부가 나타나도 애쉬는 언제나 가볍게 처리한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한 명이 무적이라고 해서 다른 모두가 무적이 되라고?
쟤는 저럴 수 있는데, 왜 너는 못 하냐고?
“…래피드 씨는 애쉬가 아니잖아요?”
“아….”
래피드도 잘하고 있다.
애쉬처럼 빠르게, 강하게, 압도적으로 싸우지는 못해도…최선을 다한다.
언제나 2위일 뿐이지만, 언제나 2위일 정도로 열심히 한다.
“그래도, 애쉬처럼…애쉬만큼….”
“래피드 씨가 애쉬처럼 할 수는 없어요.”
애쉬가 잘 싸워봤자, 래피드처럼 사람들을 하나하나 신경 써주지는 않는다.
구조를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잘 보호해주는 것도 아니다.
괴수를 갈아 죽이는 마법소녀, 괴수 학살자.
애쉬는 수호신이라기보다는…그냥 와서 병균만 처리하고 사라지는 백신이다.
“그리고…지금도 잘하고 있잖아요?”
파스타를 삼키며 말을 마친 순간 점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래피드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니 내가 래피드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해 버린 것 같다.
방위군의 직원도 아니고 정말 평범한 일반인 주제에 마법소녀를 평가한다니, 불쾌할 만 한 일이긴 하다.
애초에 래피드와 애쉬는 전투 성향이나 행동의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그런 걸 떠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두 마법소녀를 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
“…뭐, 그게…좀 주제넘은 얘기였네요.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
“네? 아, 아뇨! 아니에요….”
“기분 나쁘셨으면…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헛소리 했다고 생각하고 넘겨주세요.”
너무 생각 없이 말하고 있었다.
래피드랑 데이트 하는 데에 들뜬 것도 있고, 음식이 예상보다 맛있어서 긴장을 너무 풀어버렸던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 전의 대화를 잊게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점원이 빨리 디저트를 놓고 가주기를 기다렸다.
“기분 나쁘다뇨?! 전혀…! 오히려…아니….”
“오히려…?”
“조, 좋았…좋은, 얘기였는걸요….”
“네…?”
점원이 나가고, 곧바로 최면을 걸려던 나는 래피드가 한 말을 듣고 비전폰을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가만히 보니…확실히 속상해하는 얼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굳이 기억을 지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비전폰을 손에서 놓고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먹었다.
레몬 셔벗과 라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섞여 부드럽지도, 너무 시지도, 과하게 달콤하지도 않은 맛이 혀 위를 적신다.
맛있다.
“…그레이프가 앵거 씨를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네?”
디저트의 맛에 잠시 빠져있던 나는 래피드가 한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레이프가 나를 좋아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래피드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친구로서, 친구로서 좋아하는…이유를 알 것 같아요.”
“아….”
그레이프가 나를 좋아한다니…아니, 그레이프도 나를 좋아하냐 싫어하냐로 물어보면 좋아한다고 말하긴 하겠지만, 그레이프가 날 연애 대상으로서 좋아한다고 착각할 뻔했다.
래피드는 오해할 만한 말을 하고 본인이 더 놀랐는지 얼굴을 붉히고 사과했다.
“죄송해요…저기, 둘은…친구, 죠?”
“그레이프 하고요?”
“네…친구…맞죠?”
“전에도 물어보시지 않았나요…?”
나는 전에도 래피드가 같은 질문을 한 것 같아 입에 티스푼을 문 채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레이프랑 나는 친구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주자 래피드는 작게 고개를 끄떡이며 중얼거렸다.
“그레이프, 하고요….”
래피드에게 대답한 뒤 아이스크림을 떠먹던 나는 그제야 래피드가 디저트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래피드는 분명 디저트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배가 그렇게 많이 부른 걸까?
래피드는 티스푼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빙글빙글 돌리더니, 먹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다시 상 위에 내려놓았다.
“저, 앵거 씨…?”
“네?”
“저희도 친구…죠?”
래피드랑 친구….
나는 래피드랑 친구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는 이유로, 그레이프의 친구인 나와 그레이프의 친구인 래피드는 친구가 되었다.
같이 번호 교환을 하는 순간, 그러기로 했다.
“…그쵸?”
“저기…그러면, 그게….”
래피드는 티스푼을 다시 손에 쥐어 크렘 브륄레에 올렸다.
푸딩 위의 벽처럼 얇게 쳐진 캐러멜 층을 살짝 눌러,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부수며 들어간다.
래피드는 그대로 안쪽의 부드러운 푸딩 안으로 스푼을 넣으며 말했다.
“저희도…말, 놓을까요?”
“말요…?”
“네! 그게…앵거, 라고…불러도 돼요?”
말을 놓고 싶다…앵거씨가 아니라 앵거라고 부르고 싶다는 건 좀 더 친해지고 싶다는 거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에는 없다.
나는 래피드가 갑자기 이런 걸 물어봤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흥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그대로 호흡을 멈췄다.
너무 신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진정하고, 침착하게 반응해야 한다.
나는 최대한 무표정하게…태연하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당연하죠. 그럼 저도 래피드라고 부르면 되는 건가요?”
“네? 아, 네! 네…! 그, 그러네요…래피드…라고, 불러주세요.”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테이블 위를 뒤덮는다.
입안에 들어간 디저트보다도 공기가 더 달콤해져 버려 아이스크림 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참기 위해 입 안에서 혀를 깨물었다.
별로 대단한 얘기도 안 한 것 같은데도 이렇게 더 친해지고 싶어 하는 건 역시 최면 덕분이겠지.
내 의도대로, 생각한 대로 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예상 이상으로 상황이 잘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린다면 굳이 최면을 걸 필요는 없다.
지금 상태의, 지금 이 분위기를 흐르는 그대로 놔둔다.
이 상황에 최면을 걸어서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건 바보짓이다.
나는 비전폰에서 손을 떼고 디저트를 먹으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뭔가 살짝 간지럽네요, 부끄럽다고 해야하나…그냥 이름 부르는 건데 말이에요.”
“그…그러게요, 이름…부르는 건데.”
“아무래도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죠…?”
“아! 그렇…겠죠? 저…남자 이름을 이렇게 부르는 건 처음이라서….”
나는 아이스크림을 떠내던 티스푼을 그대로 멈췄다.
래피드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린 남자.
그것이 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번개 같은 쾌감이 등골을 타고 달려 몸이 마비되어 버렸다.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심장이 두근거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나와 마찬가지로 붉어진 래피드의 얼굴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충동적으로 래피드에게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서로…이름 불러볼까요?”
“네? 아…네….”
주변의 공기가 전부 깃털로 변해 피부를 간지럽힌다.
귓속에 꿀을 채워 넣은 것처럼 고막이 달콤하게 끈적거린다.
래피드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조용히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래피드.”
“애, 앵거…?”
“래피드.”
“앵거….”
그렇게 내 이름을 딱 두 번 부르고 난 래피드는 얼굴에서 가슴까지의 피부를 완전히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밑으로 푹 숙여버렸다.
귀여운 반응에 심장 밑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콧김을 길게 내뿜으며 머릿속까지 차오른 열기를 힘겹게 내보냈다.
“왜, 왠지 부끄럽네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죠…?”
“네에…아, 아마도요? 그렇…겠죠?”
래피드는 그 말을 끝으로 부끄러움을 회피하듯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저트를 한 스푼 떠서 위에 여러 종류의 베리를 얹는다.
달콤한 한 입을 삼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디저트를 먹으려 했지만, 내 아이스크림은 손의 열기 때문인지 어느새 녹아 있었다.
손의 열기를 자각하자, 몸속을 흐르는 열기가 느껴진다.
배꼽 바로 아래…아니, 그 밑이 무지막지하게 뜨겁다.
“어…?”
나는 그제야 내가 무지막지하게 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전혀 흥분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자지인데, 대체 어디에서 힘이 났는지 빳빳하게 세워져 있다.
아래쪽이 뜨거워졌다는 사실을 깨닫자,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래피드는 남자가 발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빨리 자지를 가라앉혀야만 한다.
고개를 들어 보니, 래피드는 아직 디저트를 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입에 스푼을 물고 멈춰서, 눈을 크게 뜨고 테이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라기라도 한 걸까?
다 먹기 전에 어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
나는 래피드가 디저트를 먹는 동안 머릿속에서 슬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