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Dayte (7)
시신경을 자극하는 빛에 잠시동안 눈을 찡그린 나는 래피드를 따라 밖으로 나오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두운 곳에서 나오자마자 화려한 기념품 가게가 눈 앞에 펼쳐진다.
펭귄 인형, 돌고래 키링, 거북이, 열대어 등…동물을 모델로 한 상품들이 가게 안에 가득하다.
“우와, 이거 봐요…엄청 크다!”
커다란 북극곰 인형에 안긴 래피드는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이다.
마법소녀로서 바쁘다 보니 이렇게 놀러 나오는 일이 별로 없었던 건지, 구경하는 모든 걸 신기해하고 있다.
“와아…이런 것도 있구나….”
북극곰 인형의 품에서 빠져나온 래피드는 이번엔 움직이는 인형 키링을 손에 들었다.
네거티브의 습격으로 인해 수요가 많아진 의수, 의족 기능을 사용해 만든 반응형 인형이다.
이제는 나온 지 몇 년 지난 인형이고, 이미 유행도 지나서 잘 팔리지도 않는 상품이었다.
“신기해요, 살아있는 것 같아.”
바다뱀 모양의 인형은 래피드가 손가락을 대자 곧바로 반지처럼 엮어 손가락 사이를 타고 움직였다.
처음 본 사람들은 다들 래피드처럼 신기해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정해진 움직임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며 인형은 인형이구나 하는 감상으로 변한다.
“앗…이거는 물속에 넣으면 움직인대요.”
“목욕할 때 같이 목욕할 수 있겠네요.”
“아! 그렇구나…그렇게 노는 장난감이구나.”
이어서 래피드가 손에 든 건 디스커스라는 물고기를 본떠 만들어진 목욕용품이었다.
물속에 넣고 목욕물을 틀면 저절로 그 흐름으로 조금씩 에너지를 얻어 움직이는, 단순한 구동 방식으로 제작되어있다.
“이거 있으면 혼자 목욕 안 해도 되겠다….”
“네?”
“아! 그게…목욕할 때 조금 외롭잖아요? 심심하기도 하고…?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잘 사겠구나 해서요.”
갖고 싶은 건가?
래피드는 목욕장난감을 한동안 들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상품 진열대에 내려놓았다.
내려놓으면서도 아쉬운 듯, 몇 번이고 장난감을 힐끔거린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나도 모르는 본능 같은 것이 일어나며 래피드가 이 장난감을 사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싶어요?”
“네? 아뇨, 아니…별로….”
래피드는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직감적으로 래피드가 이걸 굉장히 갖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진다.
나는 곧바로 장난감을 집어 들어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러자 래피드는 당황하며 다급하게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 저기요?! 잠깐…앵거 씨?”
“사줄게요.”
“네? 아니…저, 저 갖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내게는 느껴진다.
물건을 갖고 싶어 할 때의 태도, 본능적인 망설임, 시선, 아쉬워하는 몸짓….
사면 안 되겠지 하며 망설이는 것뿐, 래피드는 이걸 가지고 싶어 하고 있다.
“그냥 제가 사주고 싶어서요. 기념품으로.”
“아니, 저…이거, 애들 장난감이잖아요.”
“뭐 어때요.”
애들 장난감이건, 성인 장난감이건…그런 건 상관없다.
어차피 돈은 어떻게든 채울 수 있다.
이런 물질적인 것으로 래피드의 호감을 살 수 있다면, 언제든지…뭐든지 사주고 싶고, 사줄 수 있다.
“너무…애 같지 않아요…?”
“그럼 뭐 어때요…? 래피드 씨가 마음에 들면 되는 거죠.”
“아…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자 래피드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미 구매를 결정한 나는 무인 판매대로 가져가 제품을 결제한 뒤 작은 종이봉투에 담은 장난감을 래피드에게 내밀었다.
래피드에게 주는 첫 선물이다.
“자, 받아요.”
“아….”
선물을 내밀자 래피드는 망설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종이봉투를 받았다.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이걸 정말 가져가도 될까 하는 망설임이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마음에 들었는지 래피드는 웃는 얼굴로 선물을 받아 쥐었다.
“고…고마워요.”
“이제 목욕할 때 블루하트랑 같이 하면 되겠네요.”
“블루하트요…? 아!”
내가 래피드에게 사준 장난감은 파란색의 디스커스 장난감이었다.
나는 래피드가 디스커스를 처음 봤을 때 지어준 이름을 얘기해주며 웃었다.
그러자 래피드는 눈을 크게 뜨고 기뻐하며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얘 이름은 블루하트네요!”
이름을 지어주고 벌써부터 장난감에 정이 들었는지 래피드는 장난감이 든 봉투를 꼭 끌어안았다.
혹시나 했는데…목욕할 때 조금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겠다는 얘기는 래피드 본인의 얘기였던 것 같다.
나는 기뻐하는 래피드를 보며 문득 지금 시간이 궁금해져 비전폰을 꺼내 들었다.
어느새 레스토랑 예약 시간이 다 되어있다.
“래피드 씨, 슬슬 예약 시간이에요.”
“앗, 벌써요?”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는 동안 50분이라는 시간이 녹아내린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별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시간이 지나는 걸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아쿠아리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래피드를 데리고 기념품 가게 바로 옆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대기 번호 보여주시겠어요?”
입구에서 대기 예약을 할 때 비전폰으로 보내진 메시지를 점원에게 보여준 뒤, 점원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레스토랑 안은 아쿠아리움처럼 어두웠고, 벽처럼 설치된 수조에 장식된 어두운 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 한눈에 봐도 나쁘지 않은 자리에 도착한 나는 먼저 래피드가 앉을 의자를 꺼내준 뒤 내 자리에 앉았다.
“메뉴 정하시면 옆쪽에 벨 눌러주세요~”
레스토랑의 안쪽은 이미 리뷰로 확인해 뒀지만 특이하게도 커다란 수조로 된 벽이 쳐져, 각 테이블이 작은 방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형태로 되어있었다.
점원이 메뉴판을 두고 나가자 래피드는 곧바로 장난감이 든 봉투를 허공에 집어넣었다.
마음에 든 것 같다.
“메뉴 정하셨어요?”
“아! 네.”
래피드와 나는 메뉴를 정한 뒤 점원을 불러, 각자 먹고 싶은 걸 시켰다.
나는 랍스터 파스타, 래피드는 조개관자와 문어구이, 해산물 스프다.
점원이 들어오고 메뉴판을 가져간 뒤, 래피드와 나 사이에 침묵이 맴돈다.
아쿠아리움을 그럭저럭 괜찮게 구경한 것 같은데…이상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지질 않는다.
역시 첫 데이트여서 어쩔 수 없는 걸까.
“아쿠아리움…재미있었네요.”
“네? 네! 재미있었어요.”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얘기를 꺼냈는데, 그대로 다시 대화가 멈춰버렸다.
어색하다….
어색한 것도 귀엽긴 하지만…이건 조금 힘들다.
알려진 정보대로라면 래피드는 분명 활발하고 밝은 성격인데…이렇게 대화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얌전하다.
아무래도 낯을 많이 가려서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래피드는 팬미팅을 열었다가 여러 팬들이 흥분하는 걸 보고 트라우마를 얻었다는 일화가 있으니…아마도 그 때문이겠지.
아직은 래피드와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으니…어쩔 수 없다.
이런 분위기가 되지 않으려면 더욱 친해져야만 한다.
래피드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미 내가 래피드에게 걸어둔 최면을 최대한 이용한다.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자연스럽게…최면에 걸렸다는 것을 의심하지도 못하게 만들며 가까워진다.
시작은 어떤 대화여도 상관없다.
나는 래피드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대화를 시도했다.
“래피드 씨는…평소에는 4번 구역만 가시는 거예요?”
“네? 아, 맞아요…4번 구역….”
먼저, 래피드가 좋아하고 얘기를 많이 할만한 화제를 꺼낸다.
내가 래피드에게 건 최면은 나와 대화를 나눌수록 내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비밀을 공유하고 싶어지며, 더욱 친해지고 싶어지는 최면이다.
대화를 시작해 조금 이어가기만 해도 래피드는 나와 계속해서 대화하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4번 구역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디예요?”
“다 좋아해요, 어딜 가도 그게…옛날 느낌이 나니까.”
“옛날 느낌…그쵸, 4번 구역은 그것 때문에 가는 게 좀 있죠?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요. 옛날 상가 같은 느낌…? 사람들도 활기가 넘쳐서, 옛날부터 장사하던 시장 사람들 같아요.
“아하하…다들 그래 보여도 장사한 지 얼마 안 되셨다고 해요.”
그야 그렇겠지.
내가 알기로 4번 구역 사람들은 그분이라는 사람에 의해 상가에 머물게 된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상가에서 장사하던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다들 엄청 잘하시던데요? 케이크당 아저씨도 케이크를 잘 만드시고….”
“아! 아저씨는 원래 케이크를 만드는 분이셨어요. 다치고 난 뒤 자기 가게를 여신 거에요.”
“역시…하긴, 그 맛은 하루 이틀 해서 나올 수 있는 맛이 아니죠.”
대화가 시작되자 래피드의 표정은 눈에 띄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구경하고 나온 아쿠아리움에서 있을 때와 다르게, 점점 나를 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게 확실히 눈에 보인다.
그렇게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려던 나는 문득 래피드가 4번 구역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 짧은 고민에 빠졌다.
4번 구역 상가는 래피드를 위해서 만들어진 상가다….
그렇다면 래피드는 4번 상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화하면서 슬쩍 떠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