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Dayte (5)
래피드는 또다시 내 옷소매를 잡고 나를 따라 천천히 걸어왔다.
사람이 많이 없는 아쿠아리움 안을 래피드와 함께 걸으며 나는 오싹해질 정도로 커다란 쾌감을 느꼈다.
래피드랑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 현실감이 서서히 찾아와 쾌감으로 변한다.
[괴수가 나타났을 때 대피로는 이렇게! 다들 확인해 주세요! 침착하게 대피해 주시면 제가 구하러 갈게요!]
“앗….”
아쿠아리움의 입구에 있는 화면에서 래피드가 커다란 팻말을 들어 올리는 영상이 나온다.
팻말에는 CG 처리된 아쿠아리움의 대피로가 그려져 있다.
아쿠아리움에서 따로 제작한 것이 아닌, 어떤 곳을 봐도 볼 수 있는 피난 안내 영상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래피드의 앞을 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에는 몇 명인가 사람이 보이지만, 아무도 나와 래피드를 보고 있지는 않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고 있자 래피드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괜찮아요.”
“아…그건가요?”
“네, 인식 방해 중이에요.”
분명…공간을 비틀어서 알아보기 힘들게 하는 마법이었나…?
래피드는 지금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사실이 또다시 내게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바로 눈앞에 모니터에 나오는, 누구나 알아보는 마법소녀와 몰래 데이트한다니….
래피드는 데이트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내게 있어선 너무도 자극적인 경험이다.
나는 래피드가 잡은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겨 좀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와….”
처음 만들 때부터 제대로 계획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아쿠아리움의 내부는 시작부터 화려했다.
이제는 보기 힘든 여러 열대어가 풀어져 있는 커다란 원통형 수조가 천장에서부터 바닥으로 이어져 수많은 열대어를 꽃처럼 흩트려놓는다.
어두운 실내에서 화려한 별빛처럼 반짝이는 물고기들을 본 래피드는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느릿한 걸음으로 수조에 다가갔다.
“안녕…?”
수조에 대고 래피드가 손을 흔들자, 열대어들이 인사에 화답하듯 동시에 헤엄쳐 퍼진다.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다르다.
조금 거리를 떨어뜨린 열대어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래피드의 손이 있는 수조의 유리창에 입을 부딪친다.
“음…손을 먹이로 착각하는 걸까요?”
“그런가…? 배고픈 걸까요?”
“아마 배가 고프진 않을 거예요.”
이 아쿠아리움은 단순히 구경을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바다에서 활동하는 괴수가 나타난 뒤 다급하게 실행된 동물 보호 프로젝트…이제는 이미 자연에서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물고기들을 기르는 곳이다.
그런 만큼 철저히 관리되고 있으니, 굶기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이름일까요…? 하트 모양이니까 하트 물고기…?”
“어….”
“이 애는 파란색 하트니까 블루하트일까요…? 얘는 옐로하트?”
내 눈에는 별로 하트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래피드에게는 하트로 보이고 있나 보다.
하트 물고기라니, 귀여운 생각이다.
하지만 물고기의 이름은 블루하트 같은 게 아니었다.
“설명을 보니까 디스커스라는 물고기래요.”
“디스커스…무슨 뜻이에요?”
“여기 보니까, 원반형의 물고기라고 디스크라는 글자에서 따왔대요.”
원형의 디스크를 닮았으니까 디스커스.
래피드와 다르게 학자들은 이 물고기가 원반을 닮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트가 아니구나….”
“…그래도 하트 모양 같네요.”
“앗, 그쵸?”
내 눈에도 딱히 하트 모양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래피드의 생각에 맞춰주며 말하자 래피드는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래피드는 다른 열대어가 많은데도 디스커스가 마음에 든 듯, 계속해서 디스커스를 찾아다니며 열대어가 있는 구역을 지났다.
“여기는 강에 사는 물고기들이래요.”
“와아….”
그렇게 적혀있기는 하지만…연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래피드와 서로 나란히 어두운 곳을 걸으며 수조를 천천히 구경했다.
래피드는 수조의 물고기를 구경하고, 나는 수조의 물고기를 구경하는 래피드를 구경한다.
만족스러운 데이트 코스다.
“다음은…동물?”
“아, 펭귄!”
그다음 코스는 거북이, 펭귄, 개구리…물과 육지를 오가는 동물들이 보인다.
커다란 뱀도 있고, 물개, 수달과 해달…그리고 대체 어째서인지 하마도 있었다.
하마는 동물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안녕? 잘 지내니?”
래피드는 보이는 동물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다.
처음에는 그저 순수하고 순진한 행동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래피드가 인사하는 동물들이 모두 하나둘씩 반응하는 걸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래피드의 인사를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법소녀니까…마력같은 걸 사용해서 인사를 하고 있기라도 한 걸까?
언어가 아니라 다른 걸 통해 반갑다는 의사를 동물에게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모두 래피드가 인사할 때마다 시선을 래피드에게 집중했고, 하마는 물속에서 고개를 크게 몇 번이나 흔들어 파도를 만들기까지 했다.
“…혹시 동물하고 인사하는 거예요?”
“네…아, 네? 아뇨, 아…어…하는 걸까요? 음…네에….”
래피드는 내 질문에 깜짝 놀라더니, 곤란하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뭔가 마음먹은 듯, 조용한 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음…마법소녀는, 그…아마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테리토리 라는 게 있거든요. 퍼스널 에리어, 라고도 했었는데…요즘은 테리토리가 좀 더 단어적으로 맞다는 해석이 있어서…아, 아무튼 그게 평범한 사람에게는 없는 감각이에요.”
“네에….”
“그게…음, 그 테리토리를 이렇게 쭈욱~늘려서, 동물한테 덮어 씌우면…제 감각의 일부를 흐릿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게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거라서….”
텔레파시…?
테리토리라는 단어는 2동 박사가 쓴 글에서 본 적이 있다.
퍼스널 에리어…개인만의 공간…평범한 사람에게는 없는 감각….
테리토리라는 건, 마법소녀만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각을 얘기하는 건가…?
“어…그러면 그 테리토리라는걸 저한테 씌우면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는 건가요?”
“아, 그건 안돼요. 앵거 씨도 테리토리가 없는 건 아니라서…아아, 이렇게 얘기하니까 헷갈리실텐데…뭐라고 해야하지…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문제가 생기기 쉽고, 위험해요….”
뭔가…궁금해 하던걸 이해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얘기가 갑자기 꼬여버렸다.
테리토리라는 건 마법소녀가 가지고 있는 감각인데, 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없다….
“으…저한테는 이제 당연한 건데, 이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저한테 없는 감각이니까 뭐….”
“아무튼, 앵거 씨랑 저는 테리토리의 밀도가 달라서…아마 제가 덮어씌우면 큰일 날 거예요. 동물이야 그만큼 구조화 되어 있지 않으니까 쉽지만, 사람은…그게, 구멍이 크게 뚫린 그물을 통과하는 거랑 촘촘한 그물을 통과하는 건 차이가 있는 거랑 같으니까….”
“음…그렇군요. 대충 이해했어요.”
정말로 대충 이해했다.
마법소녀들이 테리토리라고 부르는 뭔가가 있고, 사람은 동물보다 더 구조가 복잡하며, 때문에 래피드가 내게 테리토리를 덮어씌울 수는 있지만…그랬다가는 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뭔지 모르겠지만…어쨌든 대단한 거라는 건 알겠다.
“아, 마법소녀끼리는 테리토리를 잠시 겹칠 수 있어서, 그걸 통해서 의사전달을 하기도 해요. 아주 빠르게, 문장이 아닌 생각을 그대로…이것도 꽤 훈련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신기하네요….”
머릿속에 저절로 그레이프와 래피드가 연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리 오래 합을 맞췄다고 해도 힘들 만한 그 초고속의 연계는 서로 생각을 잠시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대단한 얘기지만, 말하는 것만큼 간단한 기술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래피드가 하는 얘기는 결국 테리토리를 연결하면 무지막지한 연계가 가능해, 마법소녀의 수가 많을수록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게 쉽게 가능했다면 이미 마법소녀들 모두가 테리토리를 연결해 무지막지한 적을 쓰러뜨렸을 것이다.
그게 되었다면 네거티브 같은 건 이미 사라졌을 것이고, 지금은 네거티브가 계속해서 습격해 오고 있으니…당연하게도 이 기술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죄송해요, 마법 얘기나 하고…저 이런 것 밖에 모르니까…재미 없죠?”
“아니에요, 마법 얘기 좋아해요.”
나는 진심으로 흥미가 있는 얘기를 들어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래피드는 내 대답을 듣고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그냥 래피드를 배려해 줘서 대답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잠시 긴장해 있던 래피드는 일부러 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 저희…로맨스 소설 얘기 할까요? 서로 같은 취미가 있으니까….”
“아, 음….”
나는 그런 얘기보다는 마법 얘기를 더 듣고 싶다.
하지만 이미 래피드에게 나를 로맨스 소설을 읽는 취미가 있는 남자로 각인시켜 뒀으니…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맨스 소설에서 아쿠아리움에 가는 장면이 자주 나오나요?”
“앗, 아뇨…자주 나오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니까 왜 안 나오는 걸까요…? 이렇게 예쁜데.”
“글쎄요, 글로 쓰기 힘들어서 그런가…?”
여러 가지 물고기들이 춤추는 모습이나, 색이 빛나는 것이나, 어두우면서도 사이키델릭한 느낌의…해저 깊은 곳을 나타내는 듯한 보라빛과 주황, 푸른빛으로 물드는 조명들.
파도치는 물결에 빛이 비쳐 나타나는 파문 형태의 반사광, 그 빛이 이성을 비춰주며 보여주는 몸의 굴곡, 어둡게 가려져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얼굴.
조용하면서도 낮은 소리가 울리는 실내, 조금만 숨으면 아무도 보지 못할듯한 어두운 공간, 일상에서 쉽게 맡지 못하는 물의 냄새.
이 모든 걸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겠지.
쉽게 나오지 않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래피드와 나는 구역과 구역 사이를 지나, 다음 장소로 넘어갔다.
"와아…."
다음 구역은 이 아쿠아리움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유리 터널 구간.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거대한 메인 수조에 바다의 생태계를 그대로 구성해 놓고 구경하는, 만들어진 바다 밑의 산책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