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Dayte (3)
“하지만 그래도 성욕에 미친 원숭이인 건 맞았나 보네요.”
“응?”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오자마자 침대부터 앉다니…당신, 그런 생각으로 온 것 아닌가요?”
오늘따라 아르나가 나를 좋게 봐주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날아온 매도에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자기가 잘못 봤다고 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곧바로 성욕에 미친 원숭이라고 모욕하다니….
나는 팔짱을 끼고 가슴을 들어 올려 도도하게 서있는 아르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흥! 그런 일이 있었으면 당연히 지하철 같은 덴 오기도 싫을텐데…한 주가 지났다고 곧바로 이렇게 하러 오다니…원숭이가 아니면 뭐죠?”
“아니, 아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나를 뭘로 보고…성욕에 미친 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지만, 원숭이는 아니다.
아니, 성욕에 미치지도 않았다.
지금의 나는 그레이프가 너무 짜내서 성욕이 한 톨도 남지 않은 선량하고 맑은 명경지수의 상태다.
“지금 그러니까…내가 아르나랑 로제랑 섹스하려고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저, 저도 말씀이십니까? 앗, 오늘은, 그게…샤워가 아직….”
“그럼 아니라는 건가요?”
“아닌데?”
“아, 음…그렇구나….”
아르나는 아닌데 라는 나의 당당한 한마디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네가? 감히? 이번에도? 또? 거짓말이 아니고?
굉장히 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는,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다.
“그럼 대체 왜 운전실에 들어온 거죠?”
“아니…무슨 말을 내가 매번 섹스하려고 들어온 사람처럼….”
“매번 하셨지 않나요?”
나는 아르나의 말을 부인하지 못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매번 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건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마력회복이었고….”
“이번에도 마력회복 아닌가요? 필요하니까, 섹스하겠다?”
“지금은 필요 없잖아? 감염체가 그렇게 많이 몰려왔는데…이 주변은 다 전멸한 거 아냐? 요즘 감염체 나왔어?”
웨이브가 한번 크게 일어나고 나면, 한동안 감염체 습격에 공백이 생긴다.
차원문 너머로 네거티브가 습격하는 일이 좀 더 쌓이고 다시 감염체들의 개체 수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지하철은 그 어떤 것보다 안전한 교통수단이 된다.
아마도 그 때문에 오늘 차량에 사람이 몰려있는 것일 테고, 이 당연한 사실은 아르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감염체가 안 나오고 필요 없는데도 욕구를 풀기 위해서….”
“아니, 할 생각 없대도? 이 얘기 또 해야 해? 이번에도 자지 만지게 해줘? 확인할래?”
“저질스럽기는…그런 말을 해놓고 제 손이 그곳에 닿길 바라는 게 아닌가요? 저번에도 그걸 노린 게….”
“아오 답답해, 아니라니까? 안 섰다니까? 섹스할 생각 없다니까? 섹스 안 해!”
나는 답답함을 참지 못해 인상을 쓰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근육통이 느껴지는데도, 그 근육통보다도 갑갑함이 더 기분 나쁘다.
그러자 아르나는 갑자기 발을 올리더니 딱딱한 하이힐을 내 바지 위에 올려 압박했다.
“흥!”
“윽…! 뭐, 뭐야!”
붉은색으로 칠해진 가죽 밑창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게 자지를 압박한다.
축 처진 자지를 살짝 굴려 정말로 전혀 발기해 있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잠시 자지를 밟은 아르나는 곧바로 발을 치우더니 무척 불쾌해하며 말했다.
“말씀하신 건 사실인 것 같네요.”
“아니…지금 이거 자지 섰는지 확인해 본 거야? 아르나 너 이런 취향이야? 변태였어?”
“쯧…생각하는 거 하고는…당신이야 말로 성 기능에 장애가 있으신 건가요? 간헐적 발기부전인가요?”
아르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할 말을 잃게 된다.
발기부전이라니, 성 기능에 장애가 있냐니.
그레이프랑 섹스할 때 내가 얼마나 발기하고 정액을 줄줄 흘렸는지 알게 되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 다른 말을 해서 모욕하겠지.
“아니면 자존심을 위해 약이라도 드신 거겠군요.”
“뭐…?”
“그렇게까지 해서 제게 흥분하지 않는 척하고 싶으신가요? 멍청하긴.”
약을 먹은 건, 먹고 있는 건 맞지만…자지가 서지 않는 약은 아니다.
그런 약은 먹지도 않았고, 먹을 생각도 없다.
“저기…아르나? 혹시 세상 모든 남자는 자신에게 흥분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같은 걸 하고 있는 거야?”
“당연하죠, 뭔가 잘못됐나요?”
대화 끝에, 나는 그제야 아르나가 왜 이러는지, 왜 그랬는지를 깨달았다.
아르나에게 있어 남자들은 자신에게 흥분하는 게 당연한 존재다.
아마도 자신의 외모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아르나에게 있어 내가 발기하지 않는다는 건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고, 정상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그 때문에 저번에도 무척 자존심이 상했던 거고, 이번에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르나의 행동을 이해한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음…전에도 얘기했던 말을 또 하게 되는데, 나는 별로…아르나만 봐도 흥분한다거나 그러지 않거든….”
아르나의 몸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건방진 말투와 대비되는 귀족적인 몸짓, 고압적인 태도와 반대되는 음란한 몸매, 도도한 눈빛과 다르게 쾌락에 약한 몸….
건방진 부잣집 아가씨라는 사실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야하다.
하지만 커다란 엉덩이도, 커다란 가슴도, 사회적 지위도, 외모도…그레이프가 더 아름답고, 래피드가 더 야하고, 귀엽다.
에스더가 더 도도하고, 강하다.
초콜릿을 먹고 과일을 먹으면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그레이프와 잔뜩 섹스해 정액을 완전히 털린 내게 있어 아르나의 몸은 그냥 몸매 좋구나 하는 감상밖에 전해주지 못했다.
“또 그런 얘기를….”
“아르나가 받아들이든 말든 그건 아르나 자유인데…아무튼 섹스하려고 온 게 아니야.”
“그럼 뭘 하러 왔다는 거죠?”
“그냥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편히 가려고 운전실로 온 건데?”
정말로 그게 전부다.
당당하게 할 말을 다 한 나는 아르나에게 손을 내밀어 휘휘 저었다.
어서 빨리 가서 할 일이나 하라는 손짓이다.
“아르나 혹시 나랑 섹스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계속 왜 섹스 안 하냐고 따지는 거야?”
“뭐, 뭐라고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게 아니면 일이나 해, 난 5번 구역 도착하면 내릴 거니까.”
“읏…! ”
나는 그대로 침대에 풀썩 누워버렸다.
푹신한 침대가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익숙해져 가고 있기는 해도, 근육통이 끊이지 않는 몸으로는 빠져나오기 힘든 안락함이다.
“아…로제는 이리 와서 나 마사지 좀 해줘.”
“네?! 마, 마사지 말입니까…?”
나는 옆에서 아르나와 나 사이의 눈치를 보고 있던 로제를 침대로 불렀다.
로제는 움직임이나 손짓이 섬세해서 마법소녀여도 날 아프지 않게 마사지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자 아르나가 나를 노려다 보고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심해하며 말했다.
“또 그곳으로 마사지를 하라는 변태적인 행위를 할 생각인 거죠? 흥, 마사지라고 해놓고 쾌감을….”
“ 그럴 리가 없잖아…아르나 너 혹시 욕구불만이야…?”
나는 정말 이번에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어 힘 빠진 목소리로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보지로 마사지라니…하긴, 최면을 걸어서 그런 적이 있기는 하다.
그치만 그렇다고 해도 마사지하라는 말을 보지로 자지를 마사지하라는 말로 알아듣는 건 변태나 하는 짓이다.
“아, 펴, 평범한 마사지인 거군요….”
“음…팔하고 다리부터 해줘, 근육통 심하니까 살살….”
로제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침대 위로 올라왔다.
고맙게도, 손을 대자마자 내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아차린 로제는 마력을 일으켜 몸 안쪽을 구석구석 마사지해주기 시작했다.
근육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안 좋은 느낌들이 빠르게 사라진다.
“으음…하아…좋다….”
“…괴수 피해가 좀 남아있으신 것 같네요. 기운이 느껴집니다.”
“응? 어…음, 그래?”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로제는 내 아랫배에 손끝을 대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뭔가 뜨거운 것이 확 올라와 몸 구석구석으로 흐름을 타고 퍼지는 게 느껴진다.
몇 번인가 느껴본 적 있는 느낌이다.
나는 그제야 로제가 어떤 걸 괴수 피해라고 말한 건지 알아차렸다.
아랫배쪽에 모여 있는 이상한 기운이라는 건 아마도 그레이프가 먹인 약에 있는 괴수 성분이다.
그것도 괴수의 기운이라면 기운이라 할 수 있으니…마력으로 몸을 살피며 습격 때의 피해가 남아있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로제의 손길을 멈추려던 나는 잠시 생각해본 뒤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쨌든 이건 괴수 성분이긴 하고…풀어준다는데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뜨거운 느낌이 안쪽에서부터 퍼지는 게 상당히 기분 좋다.
기분이 좋아지니…졸리다.
아프지 않고 편안한 마사지에, 안쪽에서 흐름을 만드는 마력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게 로제의 마력 특성이 아닐까…어떤 특성인지는 몰라도 마사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마력이다.
성실히 마사지해주는 로제의 손길에 저절로 긴 하품이 나온다.
“흐아아아암….”
몸에 피로가 쌓여있어서 그런지 금세 졸음이 쏟아진다.
어쩐지 아르나가 째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아르나의 시선을 무시하며 로제에게 말했다.
“로제…5번 구역 도착하면 깨워줘.”
“앗, 네…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