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dayte (2)
요 얼마간, 질릴 정도로 반복해서 드는 의문이 있다.
나는 왜 래피드를 좋아하는 걸까.
이제는 이 의문 자체가 의문이다.
사람들에게 최면을 건 자는 누구일까.
최면어플은 무엇인가.
에스더는…왜 나를 최면에서 풀려나게 해줬는가.
조금씩 풀려가거나, 위험해 보여서 피하거나, 내게 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의문들은 그럭저럭 무시해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이상하게 계속해서 의문으로 남아 맴돈다.
난 왜 래피드를 좋아하는 거지?
래피드를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건 아니다.
귀엽고, 예쁘고, 강하고, 상냥하고, 계속해서 좋아해 왔고, 야하고…내 취향이다.
그런데도 자꾸 의문이 사라지질 않는다….
이 감각을 뭐에 비유하면 좋을까.
코드를 짰는데, 왜 돌아가는지 모르겠을 때와 비슷하다.
일단 왜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이해된다.
왜 코드가 돌아가는지, 목적에 부합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치만…뭔가 빠져있다.
문제는, 뭔가 빠져있다는 걸 감각적으로는 느끼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것이다.
뭔가 부족한데,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다.
뭔가가, 뭔가가 이상한데….
“후우….”
생각하지 말자….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어쩌다가, 왜, 어떻게 래피드를 좋아하게 되었느냐가 아니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상대와 데이트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차량 도착. 승객들은 차단벽에서 떨어지도록 하세요.]
가만히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지하철 차량이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주변 사람들의 초점 나간 눈을 보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고 있던 것이다.
주변에는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이 지하철 차량에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차량이 도착하고 차단막이 올라가자 사람들은 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인원이 탑승한 차량 안으로 몸을 밀고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짧은 고민에 빠졌다.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멍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차 안에…타야 할까?
타고 싶지도 않고, 탈 필요도 없다.
나는 언제나처럼 옆으로 슬쩍 비켜서 차단벽 안으로 들어간 뒤, 사람들이 모두 탑승하고 차량 문이 닫힐 때 운전실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운전실의 문이 열렸다.
“당신…!”
운전실 문을 열고 나온 아르나는 놀란 표정을 짓고 그대로 얼어붙어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선명한 눈빛이 내게 향해 복잡한 감정을 전해온다.
아르나는 잠시동안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굳어있다가, 내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우왓?!”
“어?! 선생님…!”
“로제, 알아서 방송해!”
아르나는 차량 문을 곧바로 닫아버리며 방송 없이 발차 버튼을 눌러버렸다.
당황한 로제는 마이크에 대고 급하게 방송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르나에게 손목을 잡혀 운전실 구석으로 끌려갔다.
그대로 당황한 나를 벽에 밀친 아르나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살았으면 살아있다고 연락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응?”
갑자기 차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나는 내게 저항도 하지 못하는 중위권 마법소녀 주제에 감히 내 팔을 잡아당긴 아르나에게 분노하며….
…아니, 분노할 게 있나?
나는 멍한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연락?”
“정신을 차리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일반인이, 마법소녀를 올려보내고 일반인이 거길…!”
“아….”
그 얘기인가….
그레이프랑 남아서 지하철 마법소녀들 전부를 위로 긴급탈출 시킨 걸 얘기하고 있다.
마법소녀로서 일반인을 걱정해준다는, 모범적이고 당연한 행동이다.
전혀 화낼 일이 아니다.
“아르나, 그러니까 그레이프 언니랑 있던 거면 괜찮다고….”
“그레이프인지 뭔지 알 게 뭐야! 상위권 마법소녀면 마법소녀에 대해서 더 잘 알 것 아냐! 능력도 없는 사람한테 무슨 짓을 시키는 건데!”
“아…죄송해요 선생님, 아르나가 선생님 걱정을 많이 해서….”
“걱정?! 누가 걱정을 해! 나는 당연한 얘기를 말하고 있는 거야!”
차량 안내방송을 끝낸 로제가 아르나와 내 사이에 끼어들며 말하자 아르나는 귀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처럼 귓가를 손으로 쳐올리며 뒷걸음질 쳤다.
금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흐트러지고, 커다란 가슴이 크게 흔들린다.
그런 아르나의 모습을 본 로제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며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말했다.
“어? 아르나…그때부터 매일 여기저기에 생존자 목록 다시 확인해달라고 연락을….”
“그건 마법소녀로서 당연한 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는 확인해야 할 것 아냐!”
“그러니까, 그레이프 언니랑 갔으면 쉘터 인원하고는 별개로 산출되니까 전산으로는 못 찾을 거라고 했는데도….”
“매번 지하철에 내려오지도 않는 그레이프를 어떻게 믿어!”
“걱정해 준 거야?”
“누가…!”
로제의 얘기를 가만히 들으며 아르나가 왜 이러는지 파악한 나는 웃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아르나는 얼굴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격한 감정을 확 가라앉히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바로 섰다.
냉정하게, 내가 알고 있는 아르나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누가 걱정했다는 거죠? 명확히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뭘?”
“그것도 모르시나요? 자기가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멍청한 평민이, 주제도 모르고 행동해 목숨을 내던지는 바보짓을 하지는 않았는지…설마 그런 짓을 하는 얼간이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정말 그랬다면 앞으로는 그런 행위를 하는 저능아를 상정한 행동을….”
“아르나…그냥 솔직하게 걱정했다고 하는 게….”
“로제? 닥치지 않을래?”
…이상한 기분이다.
예전에는 아르나가 이러면 그냥 건방져 보이기만 했는데, 지금은 귀엽다.
그러고 보니…로제도 원래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귀여워 보인다.
말하는 것도 그냥 자존심이 강해서, 부끄러워서 저러는 것뿐이라는 걸 알겠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기분이 나빠져 최면을 걸어 벌을 줄 생각을 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솔직하지 못한 애구나 싶기만 하다.
나는 아르나와 로제를 두고 운전실에 놓여진 침대로 걸어가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자살행위 해서 미안했어.”
“누가 지금 사과하라고…사과를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라…!”
“응응, 미안, 아르나 걱정하게 해서 미안.”
“큭…!”
놀림을 받은 게 분했는지 아르나는 두 주먹을 꾹 쥐며 보기 싫다는 듯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보여서 나는 작게 웃고 말았다.
나는 침대에 편히 앉은 채 로제를 바라보며 조금 늦은 인사를 했다.
“로제, 오랜만.”
“아, 오랜만입니다.”
“로제는 나 걱정 안 했어?”
“그, 그게…저는 어머니께 연락하니까 방위군 기록을 조금 알려줘서…문제가 없으시다는 걸 미리 확인해뒀습니다.”
로제의 어머니라면…그렇지…충분히 방위군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무사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었겠지.
걱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뭐?! 로제, 그걸 왜 나한테는…!”
“말해줘도 안 들었잖아….”
가만히 삐져있던 아르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며 화를 냈다.
그리고 로제의 대답을 들은 뒤에는 다시 삐져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웃음이 나오나 보네요, 그딴 짓을 해놓고….”
“그딴 짓이라니?”
“몰라서 물어요? 이래서 저능한 평민은…당신같이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은 안전한 곳이나 찾아서 숨기나 하면 되는 거예요, 능력도 안 되고 감염체한테 물리면 바로 죽어버리는 주제에 어딜 감히 저를 구하겠다고 먼저 긴급탈출 시키는 거죠?”
“음…아르나를 생각해서 했다기보다는 다른 마법소녀 전부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이래서 멍청한 하층민은…당신이 마법소녀를 왜 걱정하죠? 저나 다른 마법소녀를 지하에 두고 당신이 올라가는 게 당연한 사고방식 아닌가요?”
정확하게는 그땐 내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게 맞긴 하지만…그래도 로제를 같이 위로 보낸 건 마법소녀들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레이프는 나를, 지상으로 탈출한 로제는 무력화된 마법소녀를 지킨다.
나는 거짓을 조금 숨기며 진실만을 얘기했다.
“로제랑 셋이 올라가면 지상에 괴수가 있어도 상대할 수 있잖아. 그렇다고 로제를 두고 갔다가 만약 괴수가 있다면 전부 당했을 테고.”
“그러면 로제랑 당신이 올라가는 게….”
“무력화된 마법소녀를 밑에 두면 그레이프에게 짐이 되었겠지?”
“멍청하긴…마법소녀는 감염체 정도에는 끌려가도 죽거나 하지 않는다고요! 그냥…큭!”
죽지 않는다.
구조될 때까지 죽도록 범해질 뿐이다.
거기까지 말한 아르나는,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린 듯 혀를 찼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는 건가요?"
"음…그치."
"그래서, 싫어해도 억지로 마력을 회복시키고…어떻게든 자기가 미움받고 희생해서라도 마법소녀인 우리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여주겠다?"
"그…치?"
이렇게 아르나의 입에서 내 행동이 어떻게 보였을지를 들어보니, 굉장히 숭고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이게 정말 나에 대한 얘기라니, 믿기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라니….
“그렇게까지 저한테 인정받고 싶다 이건가요…?”
“아니…무슨 소리야?”
“모른 척하지 마세요, 선생님으로서 고상한 희생을 보여줘서 저에게….”
“저기…아르나 전부터 생각했는데 자의식 과잉 아니야? 그냥 그래야 할 것 같고, 그게 맞으니까 그런 건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맞았다는 사실은 로제가 옆에서 얘기해 주었다.
“선생님 말이 맞아…올라가자마자 촉수 괴수들 있어서 고생했다고 했잖아.”
“역시 그랬던 건가…내 선택이 맞았네.”
“그래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정답이라는 걸 알아도 그 상황에서 남는다는 판단을…마법소녀도 아닌 일반인이신데.”
“그래도, 그…으윽…으으으…!”
로제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본 아르나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입에서 끓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꽉 쥐고 있던 손을 풀고 떨어뜨리며, 긴 한숨을 내쉰다.
뭔가 포기한 사람처럼 힘을 품고 무표정이 된 아르나는 침대에 앉아있는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뭐…선생님이니까.”
“큭…그래요, 선생님…자격이 있어요.”
지하철의 선생님이라는 꾸며낸 신분의 내가 할 만한 말을 한 나는 아르나의 대답을 듣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얌전하다니, 아르나 답지 않다.
아르나는 갑갑한 한숨을 푹 내쉬며 눈을 질끈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사과하죠…당신,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쓰레기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쓰레기…?”
“흥…아니면 성욕에 미친 원숭이라고 해드릴까요? 자기 쾌락만 찾고 제대로 된 역할은 할 생각이 없는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는데…제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요.”
상당히 뜨끔한 말이다.
선생님이라고 최면을 걸어 거짓말을 하고, 섹스할 생각밖에 없는 나를 꿰뚫어 보다니….
역시 여러 사람을 어린 시절부터 만나왔을 부잣집 아가씨여서 그런 건지 사람 보는 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