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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185화 (185/299)

< 185화 > Dayte (1)

“후우….”

그레이프가 나가고 난 뒤 나는 곧바로 방안으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섹스로 인해 점점 쌓여가던 피로를 푸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하게 12시간 정도였다.

방 한구석에 대충 던져둔 시계는 그레이프와 출근할 때와 비슷한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고, 바깥은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져 버려 오전에서 오후로 변해있었다.

나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정신을 차렸다.

근육의 줄기 하나하나를 찢었다가 다시 꿰매고 있는 듯한 통증이 사라지질 않는다.

섹스만으로 생겼다고 하기에는 비정상적인 근육통이다.

“으으윽….”

주말 동안 그레이프가 집에 찾아오지 못하게 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주말 간 섹스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신체가 쾌감에 마비되었던 신경을 일깨우며 내 몸이 얼마나 망가져 가고 있었는지를 알려온다.

골반과 연결된 척추, 다리의 관절들이 으직으직 소리를 낸다.

역시 그레이프는 위험하다….

만약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보처럼 쾌락에 빠져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미래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걸 알아차려서 다행이다.

안도하며 비전폰을 손에 든 나는 메신저 알림이 쌓여있는 걸 보고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래피드와 그레이프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그레이프에게서 온 메시지는 하나, 오늘 미안하고 기분 풀리면 전화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딱히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한 적은 없지만…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메시지다.

전화를 하기라도 하면 그레이프가 곧바로 약속을 무시하고 집으로 찾아올 것 같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답장을 하지 않고 래피드와의 메신저 대화창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나 해서 연락드려요!]

{저희 내일 보는 거죠…?]

{4번 구역 상가에 있을게요!]

주말이 다가와 만나기 전에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일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자 래피드와 만난다는 현실이 점점 다가와 심장을 때린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곧바로 맞다고, 내일 보자고 답장을 보내려던 나는 손가락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4번 구역은 안 된다.

그 외에 래피드랑 갈만한, 래피드가 좋아할 만한 장소….

고민 끝에 장소를 정한 나는 래피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4번 구역 말고 그 옆에 5번 구역은 어떠세요? 맛있는 가게가 있다는데.}

비전넷에서 식당 하나를 검색한 나는 래피드에게 링크를 보내주며 메시지를 보냈다.

식당의 이름은 홀 아쿠아, 5번 구역의 아쿠아리움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가 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그레이프가 슬쩍 말해준 적이 있어 알게 된 레스토랑이었다.

이 아쿠아리움의 레스토랑은 커다란 수조를 벽처럼 사용해 좌석 사이사이를 나눠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적고,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다.

단점이라 한다면 조금 비싼 가격이라 할 수 있지만, 그건 이미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팔아서 해결했다.

{4번 구역에서 먼가요?]

[바로 근처에요.}

{괜찮겠죠…?]

마침 비전폰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래피드는 내 메시지에 곧바로 답장했다.

래피드는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레스토랑의 평가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좋은 수준이다.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넵! 이라고 소리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언젠가 팀 모두에게 선물이라며 그레이프가 사줬던, 귀여운 강아지가 경례하는 이모티콘이다.

{앗! 이거 저도 있는데….]

래피드는 내가 보낸 것과 같은 이모티콘을 보내며 답장했다.

그레이프와 래피드의 취미나 취향이 비슷하다더니, 이모티콘도 같은 걸 좋아하는 걸까?

래피드와 나는 잠시동안 서로 같은 이모티콘을 보내며 글자 없는 대화를 나눴다.

{저는 애쉬가 불러서….]

{그러면 내일 점심에 5번 구역에서 봐요!]

한동안 이모티콘을 보내며 놀던 래피드의 말에 다시 경례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대화를 끝낸 나는 기대감에 젖어 한동안 메시지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내일, 래피드와 식사를 한다.

단둘이, 지하에 있는 아쿠아리움에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내게 있어 이것은 평범한 식사가 아니다.

이건 데이트다.

내일 나는 래피드와 데이트를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내일 입을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다.

분홍색 패턴이 들어간 검은 추리닝은 안된다.

죽죽 찢어진 청바지…예전엔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조금 거지 같아 보인다.

훈련병 시절에 산 밀리터리 셔츠…데이트에 입을만한 옷은 아니다.

결국, 나는 평소에 입는 양복바지와 하얀 셔츠를 선택했다.

역시 무난한 게 최고다.

제대로 말리지 않고 넣어뒀었는지 냄새가 나긴 해도, 그건 방향제로 해결할 수 있다.

잘 되면 식사만으로 끝내지 않고 같이 아쿠아리움을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물고기에 대해서도 조금 공부해 둔다.

하지만 그 전에, 이번 약속의 메인은 식사다.

뭘 먹으면 좋을지 미리 메뉴부터 찾아보는 게 우선이다.

비전넷을 통해 찾아보니 이곳은 해물을 사용한 요리를 하는 식당이었다.

허브를 가미한 연어구이, 조개관자 구이, 랍스터 파스타….

커다란 수조 옆에서 살아있는 생선을 보며 먹는 해산물이라니

조금 잔인하지 않나 싶어진다.

어차피 괴수들 때문에 바다로 나갈 수 없게 된 현재로서는 모든 요리가 합성육으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 상관없으려나.

가격은 제법 비싸다.

같은 메뉴여도 다른 식당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나가는…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무척 부담스러워 할만한 가격대다.

하지만, 애쉬의 머리카락을 팔았으니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아직 애쉬의 머리카락을 배송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그레이프랑 섹스하느라 완전히 깜빡하고 있었다.

구매 확정 후 24시간 안에 택배를 보내지 않으면 구매자에게 거래 이상 신고 버튼이 생기며, 이를 누를 경우 판매자 평가점수가 뚝 떨어진다.

나는 급하게 노트북을 열어 마진사에 접속했다.

다행히 구매자는 아직 나를 신고하지 않은 상태였다.

뒤늦게 확인해본 구매자의 메시지는 이번에도 이전과 동일했다.

언제나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꼬박꼬박 사 주는 단골손님이다.

이 사람 이제는 애쉬의 머리카락도 모으는 건가?

이렇게 포인트가 많다니…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포인트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뒤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배송 코드를 확인했다.

편의점 무인 택배 기기에 대고 주소지에 이 배송 코드를 적으면 배송지가 저절로 암호화되어 입력된다.

나는 곧바로 편의점에 가 물건을 보낸 뒤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택배 배송이 확인되었는지, 구매자에게서 새로운 쪽지가 와 있었다.

[믿고 구매합니다. 대단하시네요, 앞으로는 애쉬의 머리카락도 이 정도 등급으로 정기 수급하시는 건가요?]

이런 메시지가 온 건 처음이다.

언제나 기계처럼 복사해 넣은 듯한 메시지만 보내왔던 사람인데…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채취한 애쉬의 머리카락을 구매했다는 게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던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자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애쉬의 머리카락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아뇨, 애쉬의 머리카락은 어렵습니다.]

래피드의 머리카락은 언제든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애쉬는 다르다.

평소 도심 습격보다는 구역 바깥에서 괴수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애쉬는 래피드처럼 사람들 앞에 자주 나타나지도 않고, 최면도…아마 걸리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우연히, 운이 좋아야만, 애쉬의 머리카락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애쉬의 머리카락이다.

구매자에게 솔직하게 대답해준 뒤 마진사를 종료하려던 나는 문득 전에 올렸던 글이 떠올라 질문게시판으로 들어갔다.

내가 쓴 글은 그사이 다른 글에 파묻혀 있었지만, 걸어둔 포인트 때문인지 꽤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중 어디에서도 그럴싸한 답변은 보이지 않았다.

[2동 박사 : 흠….]

“어…?”

단 하나, 신경이 쓰이는 댓글이 있다면 내가 마진사에서 매번 찾아보는 글의 작성자인 2동 박사가 댓글을 달았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댓글조차 아무런 내용도 없는 댓글이었으며, 그냥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다니 자기도 하나 달아봤다는 느낌뿐이었다.

이건…2동 박사도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건 모르는 걸까…?

어쩌면 2동 박사 본인도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말하기 어렵다는 의미의 흠…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사회의 모든 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최면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려봤자 일어나는 건 사회적 혼란뿐이다.

말해서,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이 글은 노출해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미 원인과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긴 했으니…이 질문글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나는 글을 삭제한 뒤 마진사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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