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Day to (5)
무인 버스는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수단임에도 마법소녀가 지켜주지 않는다는 점과 이용료가 조금 더 많이 드는 탓에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 늘 빈자리가 있는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지금의 무인 버스 안에는 나처럼 지하철을 타려다가 포기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버스 안을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남기고 가득 차 있었다.
탑승구 차단기에 ID카드를 터치해 조금 갑갑할 정도의 차량 내부로 들어선 나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후우….”
일단 집에 갈 준비를 마치고 조금 차분해지게 된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말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에스더와의 대화를 통해 궁금한 것 중 몇 가지를 풀 수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된 건 에스더에게 촉수를 심어지며 뭔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내게 이 촉수가 심어지게 되면 네거티브에게 공격받지 않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최면에 걸려있는지에 대해선, 네거티브에게 피해가 가는 발언을 할 수 없다는 대답을 했다.
즉, 사람들에게 최면을 건 것은 네거티브의 누군가다….
4번 구역에는 나처럼 네거티브의 최면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람들을 모은 건 그분이며, 목적은 래피드를 위한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나에게는 접근하지 않았다….
그 얘기는, 그분이라는 자는 네거티브의 최면을 인식하고 있으며, 최면을 풀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내게 접근하지 않은 건 내가 그분을 통해 최면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래피드를 위한다고 했으니…래피드에게 최면을 걸어 섹스하려 하고 있는 나와 적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래피드와 그레이프…마법소녀는 사람들이 최면에 걸려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분은 누굴까…마법소녀인가, 아니면 마법소녀가 아닌 무언가일까….
뭔지는 몰라도 4번 구역 하나를 통째로 사용한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어딘가 높은 사람이고, 위험한 사람일 게 틀림없다.
가까워지지 않는 게 좋겠다.
대충 정리를 끝낸 나는 그분이란 대체 누구인가 하는 한 가지 의문에 집중하며 고개를 들었다.
창밖을 보니 버스는 어느새 집에 가까운 곳까지 와 있었다.
버스 안에는 여전히 사람이 가득하다.
한 명도 내리지 않은 것처럼…가득하다.
“…응?”
그 사실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싹한 감각이 척추를 긁어 올라온다.
사람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다.
“뭐, 뭐야….”
대놓고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멍한 눈으로 계속해서 힐끔거린다.
혹시 내 뒤에 엄청난 미녀라도 서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자리를 옮겨 봐도 시선이 그대로 따라온다.
둘러보는 사람마다 전부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소름이 돋아 곧바로 하차 버튼을 누른 뒤 열린 버스에서 도망치듯 내려버렸다.
나를 따라 내릴까 고민한 것처럼 몇 명인가가 버스에서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허억…허억….”
버스에서 내리자 차가워진 공기가 느껴졌다.
어지럽다.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위험했다.
아니, 위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름이 돋았다.
왜 쳐다본 거지…?
마법소녀가 아니라,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계속해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도망쳤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내 쪽을 힐끔거린다.
문득 그레이프를 힐끔거리던 남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인기 있는 남자라는 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차라리 그런 욕망에 담긴 시선이라는 게 느껴졌다면 그냥 변태들이 많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멍한 눈으로, 아무것도 안 보는 듯한 눈이 전부 내게 향해있다는 게 기분 나쁘다.
주변 사람이 전부 비정상이라는 걸 알고 나니 시선이 무섭게 느껴진다.
속이 메스껍다.
“하아….”
한숨을 쉬며 머리를 한번 싸맨 나는 일단 내가 내린 곳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했다.
버스에서 내려버렸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나는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을 살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버스 안에서와 다르게 사람들은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스쳐 지나갈 때 가끔 내 쪽을 힐끔거리며 뒤돌아보는 게 느껴지거나, 보인다.
혹시 나한테 냄새가 나나, 뭔가 묻었나 싶어 가까운 유리창에 몸을 비춰 보기도 했지만…이상해 보이는 건 없었다.
대체 왜 쳐다보는 거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을 만큼, 시선이 예민하게 느껴진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볼 때 나는 이렇게 많이 쳐다볼만한 외모가 아니다.
외모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
최면 때문에 보는 건가…?
그렇다면 왜 하필 나를 보는 거지?
네거티브가 내게, 다른 사람들에게 건 최면이 뭐지?
한 명 더, 모르는 사람이 내 쪽을 보다가 지나간다.
비전폰에 래피드와 애쉬를 캐릭터화한 열쇠고리가 달려있는 남자였다.
남자의 시선 같은 건 질색인데도, 계속해서 남자들과 눈이 마주친다.
길을 걸으며 점점 숨이 막혀오기 시작한다.
이 주변에서 나만이 최면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게 된다.
이러다 시선 공포증에 걸릴 것 같다.
지금도 벌써 감시카메라까지 나를 쫓아다니는 것 같다는 착각이 사라지질 않는다.
시선을 피해 사람이 오지 않는 건물 사이로 숨어들어 이동한다.
그제야 조금 숨을 돌리게 된 나는 아무도 없는 길만 찾아 움직이며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감시카메라가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훨씬 낫다.
사람들을 피해 움직이다 보니 당연한 생각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라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주말에 래피드와 만날 때는 4번 구역이 아닌 곳으로,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만나야겠다.
상가 사람을 통해 래피드의 옆에 모르는 남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을지도 모르는 4번 구역에서 래피드에게 뭔가 하는 건 위험하다.
그리고…최면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내 주변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고 싶다.
지금 가방 안에 있는 애쉬와 래피드의 머리카락은 부족하다.
포인트를 벌어서 마진사에서 지식과 정보를 찾아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하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을 마친 나는 마침 도착한 내 방 현관 앞에서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집안에 들어가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어 현관문을 잠그고, 도어체인까지 건 나는 문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일단…샤워부터 하고 싶다.
샤워실에 들어가 찬물을 틀고 나니, 시선을 느끼며 쌓여오던 스트레스가 조금씩 풀린다.
나는 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젖은 머리와 허리에 수건만 두르고 밖으로 나와 가방을 뒤졌다.
물기를 털어내기 전에 먼저 애쉬와 래피드의 머리카락부터 제대로 포장해 둬야겠다.
애쉬의 머리카락은 최상급, 래피드의 머리카락은…잘려 나간데다 먼지투성이다.
애쉬의 머리카락은 한번 먼지를 털어낸 뒤 좀 더 깨끗한 팩에 밀봉하고, 래피드의 잘려 나간 머리카락들은 잘 모아 잡아 한번 털어준 뒤 상태를 다시 한번 체크한다.
“킁킁….”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지퍼백 안에 넣은 뒤 냄새를 맡아봤지만, 냄새는 별로 나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선 냄새가 더욱 모여 진하게 느껴지게 되는데도 이 정도라는건…이건 잘 받아도 하급이다.
하급은 가닥이 아닌, 그램 단위로 판매된다.
무게를 재고 따로 포장, 상품 준비를 마친 나는 곧바로 마진사에 글부터 올렸다.
애쉬 머리카락 판매, 래피드 머리카락 판매 글을 올리자 4초도 되지 않아 판매 완료가 되었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구매하는 듯한 엄청난 속도와 함께 포인트가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어?”
“어…? 응.”
배송 준비를 하기 위해 구매자를 확인하려던 나는 갑자기 현관문이 열려 도어체인에 걸리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마진사 사이트를 종료하고 오래된 노트북을 덮었다.
현관 쪽에는 그레이프가 문밖에 서서 도어체인을 당기고 있었다.
나는 젖은 머리를 뒤늦게 수건으로 털어 말리며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자, 잠깐만…열어줄게….”
내가 현관문을 안 잠갔었나…?
현관으로 걸어간 나는 그레이프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어체인을 풀어줬다.
그러자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 보게 된 그레이프는 문을 여느라 허리를 숙인 나를 묘한 눈빛을 하고 내려다보더니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샤워하고 있었어요?”
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까 씻었는데 뭐 좀 하느라…아, 잠깐만."
머리를 털다 보니 허리에 대충 매 두었던 수건이 흔들려 그대로 풀려 떨어지려 한다.
급하게 허리의 수건을 잡아 살짝 풀었다가 다시 맨 나는 머리에 올려진 수건을 목에 두르고, 젖은 머리를 대충 넘긴 뒤 치마처럼 가려진 수건을 잘 붙잡았다.
수건이 흘러내리지 않게 잡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가 그레이프와 눈을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이성을 잃기 직전인 것처럼 무지막지하게 떨리고 있기는 하지만, 초점이 나간 사람들보다는 훨씬 보기 좋고 편한 눈빛이다.
이상한 사람을 보다가 정상적인 상태의 사람을 보니 안심이 되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나는 살짝 웃으며 그레이프를 바라보다가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그레이프도 샤워 먼저 할래? 아니면 밥?"
"앵거요."
"응…?"
그레이프가 거칠게 현관문을 닫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