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Day to (3)
갑자기 뭐지…?
너무 뜬금없는 데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그런데도 묘하게 심란해 보이는 표정에서 지금 제대로 마음에 드는 대답을 꺼내지 못하면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거라는 예감이 든다.
“붉은 머리가 가끔 불처럼 보이는 게 화려해서 좋고, 가슴이 무척 미형이라거나 몸매가 일단…그리고 활동적인 성격과 털털하면서도 상냥한….”
“하아….”
일단 무난하게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에 에스더의 팬클럽 사이트에서 봤던 매력 목록들을 그대로 출력하듯이 말하던 나는 에스더의 한숨 소리와 함께 왼손이 따끔거려 입을 다물었다.
이게 아니었는지,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
“그건 팬클럽에 있는 소개 문구잖아.”
“어…그치만, 그런 매력이 있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하는….”
“그래서 그냥 뭐 평범하게…보다보니 팬이 됐다?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지?”
“음….”
에스더의 불만 어린 목소리를 들은 나는 에스더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진지하게 에스더의 매력을 생각했다.
일단 조금 전의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확실하다.
듣기 좋은 말을, 너무 무난하지 않으면서도 내 생각이 섞인 말을 하는 게 좋겠다.
“…방위군 준비할 때.”
“뭐?”
“예전에, 방위군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그때 영상을 보면서 위로가 되었어.”
“방위군? 너…아니…무슨 영상이 위로가 됐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에스더의 방송을 통해 래피드의 소식을 들으며 목표 의식을 더욱 자극받았다.
래피드가 나오지 않아도 에스더의 방송은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이기도 했다.
“위로받은 방송이면…게임스타?”
“그걸로 위로를 어떻게 받아…? 내가 본 건 좀 더 에스에스야.”
“하필 왜 그거야….”
게임스타라는 건 에스더가 했던 방송 중에서도 제일 성공했던 콘텐츠, 에스더의 게임방송이다.
좀 더 에스에스를 망친 뒤 마법소녀의 피지컬 자체가 좋아서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쉽게 하는 걸로 건방진 게임천재 컨셉의 방송이었다.
참고로 나는 처음에는 조금 봤지만, 래피드도 나오지 않고 맨날 게임 얘기랑 시청자들이랑 게임 관련 소통밖에 안해서…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 점점 안 보게 되었던 방송이다.
좀 더 에스에스라는 건 방위군의 파워체크에서 최상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더블에스(SS) 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보자는, 훈련 컨텐츠다.
릴리가 가르쳐주고 애쉬에게 질문, 래피드와 같이 생각하고 그레이프를 샌드백으로 써대며 훈련한다는 내용 때문에 폐지된 방송이기도 했다.
에스더에게는 노력이지만, 다른 중하위권 마법소녀들과 그들의 팬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항의 때문이었다.
“망한 컨텐츠잖아. 애초에 그거 제목부터 이상했어…그레이프한테 작명을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최상위권 마법소녀도 이렇게까지 노력하는구나 싶어서.”
그리고 래피드가 제일 많이 나오는 방송이기도 해서…정말 매번 챙겨봤다.
하지만 래피드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재미있는 방송이기도 했다.
여러 마법을 훈련하고, 연습해…네거티브에 감염되기 전에는 애쉬의 마법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방송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의 에스더는 선 블레이드라는 이름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녀석 따라 하려고 발버둥 치는 게 웃기기만 했겠지.”
“내가 못 하는 걸 언젠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방송이었잖아?”
“그래봤자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야.”
“해낸 것도 있잖아.”
“선 블레이드? 하, 그래봤자 가짜는 가짜야. 애쉬는 처음부터 열기가 압축되어있지만, 내 건 그렇지 않잖아?”
애스더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손에 자그마한 과도 크기의 선 블레이드를 불러일으켰다.
엄청난 온도에 촉수 소파가 괴로워하며 오그라든다.
작은 불이 나타난 것만으로 너무 더워서 오히려 춥게 느껴진다.
“세련되지 않고 투박해, 이런 마법이 선 블레이드라니…짜증나는 이름이야.”
아주 잠시동안 마법을 사용한 에스더는 짜증을 내며 검을 없애버리고 촉수 소파에 눕듯이 몸을 기댔다.
긴 한숨 소리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진다.
“난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뭐가.”
“그래도 결국 노력해서 해낸 거잖아? 선 블레이드 말고 릴리의 비상호접무도….”
“그건…! 야, 그 방송 얘기 더 하지 마.”
비상호접무는 릴리가 사용하는 공중 발판 마법이다.
에스더는 유사한 효과를 내기 위해 발끝에서 일시적으로 화염을 폭발시키는, 루이의 버스트 마법 순간 가속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에스더는 릴리처럼 이 마법을 제대로, 효과적으로 유연하게 사용해 공중에서 이동, 회피하기 위해 흙에 얼굴을 수십 번 가까이 문질렀다.
옷도 찢어지고, 진흙탕에, 콧물에, 릴리가 실전적으로 가르쳐준다며 추격과 공격까지 해 피까지 난…에스더가 가장 많이 망가진 방송이기도 하다.
“하아…대체 그 방송을 왜 재미있게 본 거야? 다른 시청자는 너무 쉽게 한다며 연기하는 거 아니냐고 불평하던데.”
“비상호접무 훈련할 때는 다른 방송 할 때도 발 위치나 주변 사물 위치 파악하는 훈련 계속하고 있었지? 시선을 반대로 주는 속임수 훈련이라거나…쉽게 한 게 아니라 언제나 훈련 생각만 하고 있으니 빨리 배운 거라고 생각해.”
“…흥.”
“마법소녀도 힘들어하고, 노력하고, 망가질 정도로 열심히 한다는 게 보이니까…난 좋은 방송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너 내가 망가지는 걸 즐긴 거야? 악질이었구나?”
“어….”
부정하기 힘든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악질 팬에 가깝긴 했다.
매번 채팅창에 래피드 얘기해 주세요, 래피드 보여주세요 라는 채팅만 써서 밴을 먹은 적도 있다.
“그 방송…항의 엄청 많았는데.”
“어떤?”
“뭐, 마법소녀가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 사회적 불안감이 조성된다거나…나한테 바란 천재성이 퇴색된 것 같아 애쉬한테 더 눈길이 가 애정이 식어가는 게 느껴져 걱정이라거나…너 취향이 좀 이상한 거 아냐? 그런 방송이 진짜 좋았던 거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에스더처럼 강한 사람도 똑같이 노력한다는 게….”
“노력은…나보다 다른 애들이 더 하지.”
에스더는 옛날 일을 떠올리듯 눈을 감고 살짝 웃었다.
“그레이프는…큭큭, 릴리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건 걔 뿐일 거야, 그 암컷 고릴라…애초에 릴리가 말하는 마력의 우회 개념이라는 말이나 응용법부터가 난 이해가 안 돼서.”
“마법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거?”
“그래, 마력 자체가 마법이라면서 신체 강화만으로 싸우는…뭐, 릴리는 원래 무술가였다고 하니까…래피드는, 애쉬가 그렇게 괴롭히니까…그걸 다 해내는 것도 대단한 거지. 안되는 걸 된다고 하는 애쉬한테, 노력만으로 정말 따라가려 하고 있으니까.”
…뭔가 묘한 말이다.
에스더랑 래피드는 이제 서로 완전히 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들을수록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이상해진다.
“래피드를 그렇게 싫어하진 않나 봐?”
“하? 무슨….”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꺼내버린 나는 곧바로 실수했다고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에스더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전에 했던 말이 이상하긴 했는지 말을 하다 말고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너한테 마법을 걸고 나서부터 상태가 조금 이상하단 말야.”
“뭐?”
“아무튼, 그 방송 얘기는 그만…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하는 거야?”
“응…?”
그러고 보니…뭐지?
너무 아무렇지도 않고 당연하게 느껴져서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언제부터 에스더한테 반말하게 된 걸까…?
“어…존댓말 할까요? 죄송합니다…?”
“누가 존댓말 하래? 흥…그냥, 자세도 그렇고…내가 편하냐는 질문이야.”
혹시 기분 나빴던 걸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에스더는 내 쪽을 힐끔거리더니 한쪽 날개를 약간 펼치고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도 내가 편하냐는…거야, 정신을 차리니까 뭔가 이상해 보이진 않아?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네거티브의 간부고? 괴수, 괴인…마법소녀가…에스더가…아니, 지 않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에스더는 에스더인데, 왜 에스더가 아니라는 거지…?
“어…에스더는 에스더잖아?”
“흐, 흐응….”
“뭘 얘기하고 싶은 거야?”
“아니, 아냐…음…그럼 너 언제부터 내 방송 본 거야? 어떤 것부터?”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좀 더 자세히 물어보자 에스더는 바로 말을 돌려버렸다.
별로 대단한 질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새 질문에 대답했다.
“라디오 방송도 포함돼? 밤하늘의 슈팅스타 부터 봤는데.”
“아니…대체 왜 그런 것만….”
밤하늘의 슈팅스타는 마법소녀 최초의 방송이라고 할 만한 기념비적인 라디오 방송이다.
에스더는 마법소녀가 되기 전에 원래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었어서 그 팬들에 대한 팬서비스로 시작했던 방송이었고, 마법소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한 사람들로 인해 점점 본래 취지를 잃게 되어 종영하게 되었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라디오 방송에 들어간 사람 중 하나였다.
방송은 에스더가 별똥별을 대신해 소원을 들어준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들어주기만 하고, 이루어주지는 않는다.
결국 그냥 청취자들의 개소리를 에스더가 읽어주며 대답해주는 방송이었다는 얘기다.
컨텐츠 자체의 구조가 그랬던 탓에 다른 마법소녀들의 팬이 몰려들어 대신 연락을 전해주세요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많아지면서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고, 종영 직전에는 에스더의 팬들도 자포자기해 익명 메시지로 에스더를 놀리는 방송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무슨 질문 했었는데?”
“어…팬티색….”
“너 진짜 악질이었구나?”
래피드에 대한 질문을 제외하면 나는 에스더에게 오늘 팬티색 가르쳐주세요 라는 질문밖에 하지 않는 악성 청취자였다.
하지만 이건 내가 이상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게 아니고 내가 방송을 접했을 때 이미 모두가 그런 질문만 하는 방송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단 한 번도 내게 팬티색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하아…하긴, 거기에 입까지 대는 애가 평범한 애일 리 없긴 하지….”
나는 에스더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에스더의 다리 사이를 힐끔거렸다.
그러자 에스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냈다.
“뭘 봐, 지금은 팬티 안 입었거든? 눈 치워라?”
팬티를 안 입었다니…그러고 보니 전에 보지를 빨았을 때도 지금 눈에 보이는 짧은 바지 같은 옷 밑에 팬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점액이 흘러내리는 촉수보지가 되며 팬티를 입기 힘들어진 걸까?
시선을 돌리는 게 더 힘들어졌다.
“변태 새끼….”
눈을 치우라는 말을 무시하고 가만히 바라보자 에스더는 나를 매도하면서도 꼬리를 위로 쭈욱 들어 올렸다.
살짝 인상을 쓰고 날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기분 나빠 하는 것 같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야…너 진짜 내 몸이 아무렇지도 않아? 변태야?”
“마법소녀일 때랑 그렇게 달라진 것도 없잖아?”
“…거기가 이상하지 않냐고. 기분 나쁘지 않아? 지금도?”
“거기라니…보지?”
에스더는 조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나는 갑자기 묘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침을 삼켰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정신을 차리고 보니 에스더의 보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진짜 기분 안 나빠? 취미 너무 이상한 거 아냐?”
“어…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다시 한번 볼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