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Day to (2)
“이미 말 해줬잖아? 다른 녀석들이 널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
“그거 외에도…뭔가 더 있는 거 아냐?”
“더라니?”
나는 에스더가 오히려 내게 질문하는 걸 보고 당황했다.
에스더에게서 촉수가 심어진 순간부터 뭔가 이상해졌다는 걸, 주변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는 걸 모르나?
아니면 내 질문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건가?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의문이 하나라도 풀렸으면 좋겠다.
나는 에스더에게 좀 더 직설적으로 질문했다.
“…주변이 이상해.”
“흐응?”
“주변 사람들의 상태가 이상해. 손에 이게 심어진 뒤부터 그걸 느끼게 됐어.”
“뭐가 이상한데?”
“뭐가라니…모르는 거야?”
“말해 봐.”
정말로 모르는 것처럼 더 말해 보라고 부추기라는 에스더의 태도에 나는 지금까지 쌓여있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의문이 풀릴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진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자포자기하듯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초점이 안 맞아.”
“그래서?”
“그래서라니…이상하다고, 마법소녀만 보면 갑자기 멈춰 서지 않나…마법소녀한테밖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야….”
“흐음….”
에스더는 잠시 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 가만히 멈춰서 입가를 가렸다.
턱을 괸 채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이상한, 묘한 말을 꺼내왔다.
“그런 마법이구나, 이해했어.”
“뭐…?”
이어서 에스더는 너무도 덤덤하게, 태연하게 말했다.
“아마도 네가 정신을 차린 건 내 마법의 영향이야.”
“잠깐…정신을 차리다니, 그 말은….”
놀란 심장이 빠르게 뛴다.
정신을 차렸다는 건, 내가 무언가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다.
“뭐야?”
“뭐가?”
“나는 뭐에 정신이 나가 있던 거야…? 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다.
사람들은 대체 왜 이상해져 있는 거지?
나는 왜, 언제부터 이상해졌던 거지?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뭐? 어째서….”
“말해줄 수 없게 되어있으니까.”
애매한 대답에 곧바로 주머니에서 비전폰을 꺼내 최면을 걸어 버리려던 나는 뒤쪽에 서 있는 111번 촉수를 떠올리고 손을 놨다.
가만히 에스더를 바라보자, 작게 미소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서 에스더가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애매한 대답을 한 게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숨을 몰아쉬며 잠시 생각해보니…대답 자체가 조금 이상하긴 하다.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해줄 수 없는 거다.
알고 있는데도…말해주고 싶어도 못 한다.
“…네거티브?”
“흥.”
중얼거리듯 말하자 에스더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뒤쪽에 기다리던 촉수가 다가와 새 음료수를 에스더에게 건네줬다.
이번에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자도 있다.
“…말하는 거에 제약이 있는 거야?”
“말하는 것뿐만은 아니야.”
“네거티브에게…피해를 줄 수 없다?”
촉수 괴수에게서 과자와 음료수를 받아먹던 에스더는 내 말을 듣고 놀란 눈을 하며 내 쪽을 바라봤다.
“꽤 똑똑하네? 보통 그렇게까지 빠르게 그런 생각을 하진 못하는데.”
에스더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은 무언가에 조종당한다는 생각이나 그 내용을 쉽게, 이렇게까지 빠르게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직접 최면을 걸고…같은 명령을 내려본 입장으로써 당연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 에스더의 상황을 빠르게 추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네거티브로 감염되었다 해도, 마법소녀로서의 기억이 전부 남아있는 에스더가 순식간에 네거티브로 전향하는 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세뇌나 최면…네거티브의 간부 중에는 정신공격에 특화된 마인드 컨트롤러라는 녀석이 있다.
에스더를 감염시키고, 세뇌한 것도 그 녀석이다.
네거티브도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걸 수 있다….
최면을 걸 수 있는 건…나 뿐만이 아니다.
“잠깐만….”
나는 문득 든 생각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초점이 나가 있는 모습, 멍하니 시키는 대로 하는 듯한 움직임.
자신이 조종당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듯한 모습.
전부 내가 알고 있는 행동이다.
왜 이걸 지금에서야 눈치챈 거지?
내가 마법소녀에게 걸던 것과 같다.
그제야 나는 한가지 가능성을 새로이 떠올렸다.
지금까지 내가 공부하고, 경험하며 알게 된 정보와 같은 행동이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해서, 나만 할 수 있다고 해서 완전히 가능성에서 배제해 두고 있었다.
내가 최면을 걸 수 없는 일반인 모두에게 최면에 걸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최면에 걸려있었을지도 모른다.
초점이 제대로 돌아왔다는 건 그 최면에서 풀려났다는 뜻이다.
하지만…그렇다면, 대체 어떤 최면이지?
에스더에게 질문하고 싶지만, 에스더는 알고 있어도 대답해 줄 수 없다.
…이건 내가 직접 알아내야 한다.
“네 말대로, 난 네거티브에게 피해를 줄 수 없게 되어있어서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이건 말해줄 수 있어. 네가 지금 그런 상태가 된 건 내 마법 때문이 맞아.”
“그게 무슨 마법인데?”
나는 에스더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하던 걸 정리하며 질문했다.
에스더가 나를 최면에서 풀어준 마법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상가 사람들이 어떻게 최면에서 풀려 났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영역 위성화.”
“뭐?”
“하아…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너한테 내 일부를 심어서 나쁜 걸 막아주는 마법이야.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고, 네가 이해할지도 모르겠고.”
“잠깐만, 네 마법이잖아, 네가 모르면 어떡해.”
마법을 쓴 당사자가 무슨 마법인지 모른다면 대체 누가 알까.
내겐 너무도 당연한 의문에 에스더는 인상을 팍 쓰며 대답했다.
“흥…그래, 아무리 너라고 해도 모르겠지…마법소녀가 마법을 어떻게 각성하는지 알아?”
“어…? 아, 아니….”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강렬한 소망, 이런 마법을 원한다는 마음이 강해지면 각성하는 거야.”
이건…처음 듣는 얘기다.
마진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얘기는 보지 못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강해지면, 그걸 할 수 있는 기적…마법을 각성하는 거지. 쉽게 말해주자면 나무를 베고 싶다고 하면 도끼가 나타나는 거야. 하지만 칼이나 창, 톱날이 나올 수도 있지. 굳이 도끼가 아니어도 벨 수 있으니까.”
“원하는 결과를 꺼낼 방법을 각성한다…?”
“머리가 좋네, 그리고 그 칼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쓰는지, 어떤 식으로도 쓸 수 있는지, 뭐로 만들어졌는지는…알 수도 있지만 모를 수도 있어.”
꽤나 알아듣기 쉬운 설명이다.
즉, 에스더는 내게서 나쁜 것들을 막아주는, 나를 보호하는 마법을 원했고…그걸 각성해, 사용했다.
때문에 나는 내게 걸려있던 나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게 다야?”
“뭐?”
“이…왼손에 이걸 만든 마법은 날 보호하려는 소망으로 만들어진 것뿐이야?”
말은 된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마법소녀가 아니게 된, 네거티브에게 세뇌되어 네거티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에스더가…정말 나를 보호해주는 마법만 걸어뒀을까?
“정말로 그게 다야?”
“그게 다가 아니면 어쩔 건데?”
잠시 에스더를 의심하던 나는 에스더가 웃는 걸 보고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다.
꼬리도 밑을 향해 뾰족하게 세워져 있다.
화났다.
“건방지게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 이거야?”
“아니…어…뭔가 더…특별한, 특별한 소망이 있으면 좋겠다….”
에스더는 어디 더 말해 보라는 듯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앉은 채로 날 내려다봤다.
이상하게 에스더가 너무 편하게 느껴져서 실수해버렸다.
에스더는 네거티브의 간부, 이렇게 막 말하고 대해도 괜찮은 상대가 아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에스더의 기분을 맞춰 아부했다.
“뭐, 뭔가, 그게…너무 황송해서…에스더가 나를 이렇게 아껴준다니…정말 이게 현실일까…?”
“흥….”
“좀 더 뭐랄까~마침 왼손이고! 혹시 이건 뭔가 엄청난 의미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 망상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마, 망상이지! 평생 함께! 이건 너무 갔나? 그치만 유성우는 언제나 함께니까, 1번이면 그 정도는 망상해도 좋지 않을까…해서…?”
말을 이어가던 나는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하는 에스더의 꼬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표정은 그대로지만 입꼬리도 조금 올라가 있고…기분이 풀린 것 같다.
나는 안도하면서도 조금 이상한 생각을 해 버렸다.
…너무 쉽다.
일단 에스더의 기분을 풀고 마음을 놓은 나는 소리 없이 속으로 한숨을 쉬며 옥상 밑에 펼쳐지는 광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루이와 시에나가 도착해 아르나, 로제와 함께 진형을 짜며 촉수견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에스더에게 어떤 소망으로 만들어진 마법이냐고 물어보며 더 자극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나는 네 명의 마법소녀가 힘을 합쳐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말을 돌렸다.
“와~꽤 괜찮게 싸우네.”
“…그래.”
지형을 잘 이용해 체력을 아끼기도 하고, 돌발상황을 대비해 마력을 아껴두고 있다.
전에 한번 가르쳐 준 뒤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나 마법 연계를 계속해서 연구해봤다는 게 느껴지는 전투방식이다.
“중위권 애들이어도 저렇게 호흡이 잘 맞으면 상위권 한 명 정도의 힘은 나오지 않을까?”
“저 정도로? 흥…그레이프만 가도 한 손가락으로 다 끝낼 수 있을걸?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나 때랑은 다르게 가르치는 것 같네.”
나는 에스더의 말을 듣고 에스더가 마법소녀였을 때를 떠올렸다.
그레이프, 래피드, 에스더…때때로 애쉬도 끼어들긴 했지만 주로 이 셋은 하나처럼 움직이며 전투하고, 성장한 마법소녀들이다.
그렇게 힘을 합치는 전투방식은 릴리가 교육한 것으로 가르쳐져 있으며, 연계가 상당히 좋아 강한 간부들을 차례로 쓰러뜨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어…그러고 보니까 에스더도 원래는 같이 싸웠잖아? 선배로서 보기에 그렇게 엉망이야?”
밑에 있는 넷은 굳이 따지자면 내가 연계 방법을 가르친 마법소녀들이다.
내 방식이 그렇게 엉망인 걸까 하며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에스더는 혀를 차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짓이야.”
“어?”
“약한 놈들이 힘을 합쳐봤자, 개인이 약하다는 건 안 변해.”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긋난 답변 같지만,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뭔가 경험이…뼈가 담긴 말이다.
에스더는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밑에서 싸우는 마법소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가 주변에 감돈다.
밑을 보고 있는 에스더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에스더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어쩌다 내 팬이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