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인식 (9)
[3번 구역에 늑대인간 출현! 경고합니다, 구조 요청은 비전폰을 사용해주세요, 음성 요청은 상황에 따라 무시될 수 있습니다!]
“이런….”
3번 구역이라면 지금 있는 4번 상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주 구역이다.
늑대인간은 인간을 흉내 내 속아서 다가온 마법소녀, 방위군을 노리는 교활한 수법을 자주 쓰는 괴수다.
속임수를 잘 쓰면서 육탄전도 강하고 집단행동을 주로 해 한 마리를 상대하는 사이 주변을 포위, 또는 소모전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적인 전투방식을 보인다.
래피드는 그런 늑대인간의 천적에 가깝다.
특출나다고 할 정도의 공간인식 능력으로 늑대인간과 인간의 형태를 보지 않고도 구별할 수 있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원거리 마법으로 하나하나 처리하는 전투방식을 사용하기에 쉽게 포위되지도 않는다.
멀지 않은 거리, 자신이 제일 잘 처리할 수 있는 상대, 거주 구역에서의 습격.
래피드가 직접 갈 만한 상황이다.
곧바로 래피드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이미 케이크당에서 사라져 있었다.
변경된 위치는 3번 구역, 공간이동 마법을 마구 사용하고 있는지 위치가 쉴 새 없이 바뀌고 있다.
이미 전투에 들어간 걸 봐서는 오늘 만나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잠시 자리에 멈춰서 한숨을 내쉰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경보가 울리면 법적으로 인접 구역에 위치한 사람들은 임시 피난을 하게끔 되어있다.
그 때문에 4번 상가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쉘터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피난을 하는 건 손님들 뿐이다.
가게 주인들은 모두 가게 셔터를 빠르게 내린 뒤 쉘터가 아닌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피난 중인 손님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살짝 어려있는 것과 다르게 초점이 맞는 사람들은 일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을 얻은 직장인처럼 피곤해하고, 느긋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전혀 긴장되지 않는 모습.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들이 절대 죽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는 태도다.
대피하는 게 아니라, 대피하는 척만 하는 모습…비정상적이다.
왜 쉘터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까.
그분이라는 자의 밑에서 일해서…?
저 방향에는 대체 뭐가 있지?
상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라지는 걸 보던 나는 아주 잠시동안 그들을 따라갈까 고민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튀김가게 아저씨가 나를 보자마자 신입이라고 말했다는 건 그만큼 소속된 이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처음 보는 사람이 섞여 들어간 순간 곧바로 눈치챌 게 분명하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왜 다른 이들과 따로 행동하는 건지 궁금하지만…섣불리 섞여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나는 상가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래피드와 우연히 만나는 건 아쉽지만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에 더해, 이곳에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도 꺼려진다.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4번 구역의 상가에서 우연히 만나는 건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래피드를 위해서라며 뭔가를 하고 있는…꽤 위험한 인물인 건 확실하다.
4번 구역 상가는 이미 그분에게 장악되어 있다.
서로 목적은 다를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분도, 나도 래피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래피드와 섹스하는 것이다.
그분이 래피드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분은 나를 적대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래피드와 섹스하고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지, 래피드를 적대하려는 게 아니다.
그분이 래피드를 해치려 한다면, 내가 그분을 적대한다.
정황상 그분은 사람들의 초점이 나가 있는 것과 내게 일어난 알 수 없는 일과 관련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둘 중 어느 쪽이어도 굳이 그분의 구역인 이곳에 찾아오는 건 위험하다.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라니, 그런 것과 관계되고 싶지 않다.
우연한 만남은 포기하고 4번 구역이 아닌 곳에서 약속해 만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나는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걸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냥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주변의 이상을 알아차려 버렸다.
의문이 하나 풀릴까 하면 새로운 의문이 여럿 떠오른다.
코드에서 오류를 하나 해결했더니 오류가 여러 개 떠오르는 것처럼 짜증 난다.
지금까지 생긴 모든 의문들은 래피드와 조금씩 연결되어 있다.
그분은 래피드를 위해 4번 구역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4번 구역 상가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상해진 사람들은 마법소녀, 래피드의 영상을 볼 때 이상 행동을 보인다.
최면어플에는 래피드가 최면에 당해 섹스하는 영상이 있었다.
래피드를 추적하는 기능이 있다.
…내 주변에 생긴 일들이 전부 래피드와 연결되어 있다.
결국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기 위해선 래피드와 좀 더 가까워져야만 한다.
래피드에게 직접 정보를 얻기 위해서,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팔아 마진사에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서, 섹스하기 위해서…해야 하는 일은 같다.
하지만 그중 하나, 래피드와 굳이 친해지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흐음….”
이미 상가 사람들은 쉘터가 아닌 곳으로 갔는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제정신을 가지고 내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옆으로 새어 나와 쉘터에 들어가기 직전에 빠져나왔다.
습격이 일어난 3번 구역은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최면어플을 얻기 전에는 늘 해오던 일이다.
나는 오랜만에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채집하기 위해 네거티브의 습격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파괴 시 빠른 수리를 위해 블록형으로 설계된 도시는 건물 사이사이에 작은 길들이 나 있다,
대로를 피해 좁은 골목을 달리기만 해도 대부분의 감시카메라는 피할 수 있다.
나는 오랜만에 감시카메라를 피할 때 사용하는 마진사 회원 전용 어플을 켜 주변의 작동 중인 감시카메라를 주의하며 움직였다.
3번 구역이 가까워지자 작동 중지되어 움직이지 않는 감시카메라의 수가 많아졌다.
습격이 있는 곳은 보통 마법소녀와 네거티브의 마력으로 인해 감시카메라와 도로 통제용 기계장치의 작동이 중지된다.
이때부터는 굳이 건물 사이로 숨어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다.
나는 아무도 없는 시가지를 걸으며 최면어플을 켰다.
래피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 흔적을 채집할 확률을 높인다.
그렇게 생각하며 최면어플의 추적기능을 켠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
3번 구역에 있는 좌표 표시가 하나가 아니다.
하나는 래피드, 하나는 애쉬.
가까이에 애쉬가 와 있다.
추적기능이 켜진 지도안에서 애쉬는 손가락으로 커서를 드래그하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실제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가고 있다는 뜻이다.
미친 듯한 속도로 지도상에 선을 그으며 애쉬의 좌표가 어플을 난도질하듯 움직인다.
[아우우욱!]
늑대인간의 하울링 소리가 저 멀리에서 시작되자마자 끊어져 사라진다.
끓어오르는 듯한 늑대인간의 비명에서 늑대인간의 목에 열기가 응축된 검을 꽂아 넣은 애쉬의 모습이 머릿속에 재생된다.
그리고 잠시 뒤, 지도안에서 래피드와 애쉬의 좌표 표시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모든 괴수를 처리하고 래피드와 함께 돌아간 것 같다.
애쉬는 늘 이런 식이다.
빠른 속도로 괴수를 전부 죽여버리고 난 뒤엔 곧바로 돌아가 버린다.
애쉬가 갑자기 나타나 괴수를 전부 쓸어버리고 사라지는, 가끔 있는 일이 일어났다.
늘 있는, 이상한 것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어째서인지 마음에 걸린다.
네거티브의 간부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래피드가 가장 잘 상대하는 괴수가 나타났는데 왜 애쉬가…?
래피드에게 맡겨도 될 일에, 겨우 늑대인간 좀 나타난 정도에 굳이…?
지금까지 래피드를 쫓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주변의 다른 마법소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된 내가 느끼기에 이건 애쉬답지 않은 행동이다.
하지만…마법소녀인 애쉬가 괴수를 사냥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래피드와 친하니까 도와주러 올 수도 있다.
최면어플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둘이 같이 붙어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걸 보면 뭔가 약속이라도 있어서 빨리 처리하려고 도와주러 왔던 거겠지….
잠시 떠오른 의문을 다시 가라앉힌 나는 애쉬와 래피드가 있었던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습격지가 가까워지자 애쉬와 래피드가 저지른 마법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둘로 갈라진 지면, 녹아내린 아스팔트, 유리처럼 반짝이게 된 건물 외벽…눈에 익은 광경이다.
나는 비전폰으로 마력 감지 어플을 켜 주변의 마력을 체크했다.
방향을 바꿔보고 움직여보며 마력이 강한 곳을 찾는다.
마력 반응이 강한 괴수의 시체를 피하며 돌아다니자 잠시 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마력 반응이 일어난다.
이런 곳을 잠시 찾아보면 마법소녀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에 발견한 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찢어진 옷자락이었다.
옷감을 보니 이건 래피드의 전투복 일부인 것 같다.
옷자락은 머리카락과 다르게 마력의 휘발 속도도 빠르고 마법소녀의 것이라는 확신을 하기 어려워 쉽게 팔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옷자락이 잘린 것으로 보아 이건 래피드가 일시적으로 늑대인간에게 접근전을 허용해 손톱 공격을 피했다는 뜻이다.
그 순간 머리카락 일부가 잘려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자 예상대로 손바닥 한 뼘 정도로 잘려 나간 머리카락 뭉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먼지도 많이 끼고 모근도 없어 상태는 좋지 않지만, 그래도 양이 많이 이 정도면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방에서 지퍼백을 꺼낸 나는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넣은 뒤 잘 밀봉했다.
“응?”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묘한 빛으로 빛나는 실선을 발견하고 천천히 비전폰을 가까이했다.
머리카락이라고 하기에는 무지막지한 수치의 마력 반응이 나타난다.
이건…애쉬의 머리카락이다.
래피드보다 훨씬 구하기 어려워 높은 가격에 팔리는 물건이다.
나도 지금까지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마진사에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팔리는 수집품이기도 하다.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보니 끝부분이 점점 가늘어지는, 잘려 나간 적 없는 형태에 모근까지 제대로 살아있었다.
이 정도면 최상급 품이다.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희소성을 생각할 때 래피드의 머리카락 5개 정도 가격으로 팔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상태를 봐선 10개 정도의 가격도 노려볼 만할 것 같다.
먼지가 앉지 않게 조심스럽게 공중에 한 번 털어준 뒤 새 지퍼백에 애쉬의 머리카락도 챙긴 나는 채집한 것들을 가방 안에 잘 정리해 넣었다.
이걸로 마진사의 포인트를 벌어 더 많은 정보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래피드와 4번 구역에 대한 의문만 생긴 하루였지만, 그래도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헥!”
“우왓?!”
곧바로 이 구역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며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내 뒤에는 어느새 촉수견 한 마리가 접근해 있었다.
뒤늦게 애쉬가 늑대인간을 죽이는 순간 마지막에 들려왔던 하울링 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늑대인간은 촉수견과 마견들을 애완동물처럼 부리며, 언제든지 부를 수 있다.
하울링을 들은 촉수견이 애쉬와 래피드가 사라지고 이제야 나타난 모양이다.
기겁하며 거리를 벌린 나는 얌전히 서서 촉수로 된 꼬리를 흔들고 있는 촉수견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헥! 헥!”
“어…?”
이 촉수견, 날 공격할 생각이 없다.
그제야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며 왼손을 슬쩍 내려다봤다.
에스더가 촉수를 심어주고 말한 대로 네거티브가 날 공격하지 않는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촉수견에게 다가갔다.
왼손을 내밀자 평범한 개처럼 다가와 촉수로 된 혀를 내민다.
분명 감염체고 괴수인데, 중급 마법소녀 이상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녀석인데…너무 개 같다.
왼손으로 촉수견을 쓰다듬은 나는 괜히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켜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거리를 벌리며 촉수견에게 손을 흔들었다.
저리 가라는 의미를 전달하자 신기하게도 촉수견은 곧바로 내 말을 알아듣고 맨홀 뚜껑을 촉수로 열었다.
그대로 맨홀 안으로 들어간 촉수견은 촉수를 흔들어 인사한 뒤 다시 맨홀을 덮으며 사라졌다.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다.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날 죽이려 들던 괴수가 지금은 이렇게 개 같은 모습을 보인다니….
심지어 그냥 개도 아니고 내 말을 잘 알아듣는 잘 훈련된 개다.
대체 왼손의 촉수가 뭐길래 이런 게 가능한 걸까.
래피드와 관련된 이상 현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어 잠시 잊고있었지만…이것도 의문투성이다.
에스더에게도 몇 가지인가 궁금한 걸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에스더와 만나는 건 어쩔 수 없이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래피드는 꼭 만나려면 최면어플로 추적해서 만날 수도 있고, 이젠 연락처를 아는 사이가 되었으니 따로 약속을 잡아도 된다.
반면에 에스더는…대체 어떻게 만나면 될지 모르겠다.
비전폰도 안돼, 연락도 할 수 없어, 그렇다고 위치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다른 차원에서 머무른다.
“에스더….”
방법은 몰라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에스더가 내게 이런 걸 심어뒀다는 건 뭔가 목적이 있어서일 테니, 나중에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
나는 에스더의 이름을 중얼거린 뒤 방위군의 드론이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엑?”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광경을 인식한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소리 없이 찢어졌던 공간이 조용히 줄어들어 사라지고 있다.
그 앞에 대체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에스더가 반투명한 상태를 유지하며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