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인식 (1)
래피드와 함께 식사하기로 정한 주말까지는 아직 며칠인가 더 지나야 한다.
평소 다른 마법소녀보다 훨씬 바쁜 시간을 보내는 래피드는 정해진 시일이 아니면 크게 시간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잠깐만이라면 래피드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다.
오게 할 수 있다.
[래피드 씨,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나는 래피드에게 일단 메시지를 보낸 뒤 추적기능을 사용해 래피드의 위치를 확인했다.
애쉬와 래피드의 위치는 0번 구역, 둘이 함께 훈련 중인 것으로 보인다.
네거티브와 전투 중인 건 아니니, 잠시 기다리면 답장이 올 것이다.
{네, 무슨 일이세요?]
왔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내게 돌아온 답장을 보고 나는 곧바로 래피드가 올 만한 메시지를 생각해냈다.
래피드는 자신이 구해준 사람을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신경 쓰고, 상태를 확인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게 아니고, 제 상태가 조금 이상한데 혹시 마법소녀로서 아는 게 있을까 해서요.}
{머리가요?]
[네,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는데…그런 일이 있었다 보니 조금 불안해서….}
{어디세요? 많이 아파요?]
아프다, 마법소녀인 래피드가 해결해 줘야만 한다는 키워드를 주자마자 래피드는 내 의도대로 반응했다.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래피드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는다.
나는 래피드에게 곧바로 내가 있는 위치를 설명해줬다.
{편의점요? 잠깐만요, 바로 갈게요.]
“앵거 씨?”
그러자 곧바로 내 옆에서 바람이 불어오며 래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래피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상하게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게 느껴진다.
달콤한 체취가 평소보다 더 강하게 느껴져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번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어…래피드 씨?”
“앗, 저기…목소리는 최대한 작게….”
나는 래피드의 대답과 주변에서 느껴지는 마력, 그리고 때때로 반짝이며 흐릿하게 조각조각 드러나는 래피드의 모습을 보고 현재 상태를 직감했다.
아마도 투명화 마법과 공간이동 마법을 함께 사용한 것 같다.
“이거 투명 마법인가요?”
“네, 투명…일까요? 공간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잠시 보이지 않게 하는 것 뿐인데…아직 계산속도가 느려서 조금 보이죠?”
이건 굉장하다.
투명화에 공간이동을 합친다는 생각만 해도 여러 가지 응용 방법이 떠오른다.
래피드가 이런 마법을 쓴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마법도 쓸 수 있었어요?”
“지금 훈련 중이에요, 애쉬가 가르쳐줘서…그것보다, 일단 이쪽으로….”
투명한 래피드가 내 어깨를 잡아당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래피드가 이끄는 대로 장소를 옮겼다.
“시간이 없어서…화장실 간다고 하고 왔거든요. 잠깐 이마 좀 만질게요?”
편의점 건물 옆의 커다란 쓰레기통 뒤, 아무도 오지 않을만한 뒷골목으로 들어간 나는 이마에 이질적인 감각이 접촉하는 걸 느꼈다.
공간이 이리저리 비틀려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래피드의 손이 닿은 내 이마에서 피부가 거꾸로 뒤집힌 느낌이 든다.
“…뇌에 이상은 없는데.”
“아픈 게 아니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서 그래요.”
“이상한 느낌? 힛?!”
래피드의 마력이 피부가 거꾸로 뒤집힌 이마의 내부를 깃털처럼 가볍게 긁어대는 느낌을 참기 힘들어진 나는 대충 여기쯤일 것이라 짐작하며 래피드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내게 손을 잡힌 래피드가 조각조각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지금흔?! 공간 비틀기 때문에 엄청 예민해져 있으니깟…!”
“앗, 네.”
나는 래피드가 무슨 상태인지를 생각하며 래피드의 손을 놔줬다.
클리를 꺼내고 꽉 잡힌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조금 야한 목소리에 몸이 반응하지만,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다.
애쉬에게 화장실에 간다 하고 왔다 하니, 필요한 것만 하고 빨리 보내줘야 한다.
잠시 래피드가 진정하기를 기다려준 나는 곧바로 궁금한 걸 질문했다.
“저…주변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데요.”
나는 질문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비전폰을 쥐어 최면어플을 켰다.
혹시라도 래피드가 이상한 반응을 하면 최면을 걸어볼 생각이다.
뭔가 알고 있지만 숨기는 것 같으면 최면을 걸어서 질문한다.
“주변 사람들요?”
투명화 마법 때문에 래피드의 반응을 세세히 살펴보기 힘들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느껴진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다.
“네, 이상하지…않나요?”
“음…정확하게 어떻게 이상하신 거에요?”
“…모르시겠어요?”
“그냥 보기에…이상하신 거예요? 아니면 사람들이 무서우신 건가요? 어쩌면 괴수에 의한 PTSD 같은 거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군요.”
래피드의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들은 나는 질문하기를 멈췄다.
모른다.
래피드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걸 모른다.
왜 모르지?
마법소녀는 일반인보다도 감각이 더 예민하다.
그런데도 모를 수 있나?
나는 입을 다물고 비전폰을 쥔 손을 천천히 바지 주머니 밖으로 꺼내며 생각에 잠겨 들어갔다.
그러고 보면 의문점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최면어플이 들어있던 칩은 무엇인지, 어떻게 래피드의 위치가 추적되는지….
최면어플은 내가 제어할 수 있고…일단 내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으니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내 주변에는 내가 모르는 일투성이다.
모든 게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최면어플은 뭐지?
영상은 뭐였지?
왜, 어떻게 래피드와 애쉬의 위치가 추적되지?
사람들이 왜 이런 거지?
나는 왜 이걸 이상하다고 인식할 수 있지?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불길한 느낌이 든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작업량이 너무 많을 때는 한 번에 하지 말고 하나씩 해결한 뒤 조립해보는 게 좋다.
가장 먼저, 지금 제일 궁금한 건…사람들이 왜 이상한지와 나는 왜 아무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다.
내가 변화한 부분…내가 갑자기 바뀌게 된 이유….
왼손의 촉수….
에스더를 만나고, 촉수가 심어지고, 정신을 잃고 깨어난 후부터 나 자신의 뭔가가 달라졌다.
마법소녀도, 일반인도 느끼지 못하는 감각….
내게 박힌 이건 마법소녀 에스더가 박아넣은 것일까, 네거티브의 간부 에스더가 박아넣은 것일까?
래피드는 모른다.
마법소녀는…느끼지 못한다….
만약 이게 내 손에 박힌 촉수 때문이라면….
생각을 정리한다.
“…앵거 씨?”
“아.”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래피드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나는 일부러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목소리 때문에 잠깐 멍해졌어요.”
“네?”
“원래 그렇지 않나요? 목소리가 좋으면 이렇게 멍하게….”
“소, 소설에서 본 것 같기도….”
“매력을 느끼고 있는 이성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가끔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으, 응…네….”
일단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푼 나는 래피드에게 웃는 얼굴로 얘기를 계속했다.
불안하게 만들어 찾아오게 했으니, 이젠 안심시켜줘야 한다.
“괜찮아요, PTSD까지는 아니고 일시적인 충격상태 같은 것 같아요. 래피드 씨가 옆에 있으니까 점점 진정되네요.”
“진정되신다고요?”
“음…뭐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가 갑자기 습격할 것 같아서 불안해한 것 같은데…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는 걸 보니…혹시라도 뭔가 문제가 생기면 구해주고, 지켜주겠구나 하고?”
“아….”
“와줘서 고마워요.”
“네, 네에.”
내 말을 들은 래피드의 몸이 다시 조각조각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투명해진 상태라 래피드의 반응을 제대로 알긴 어렵지만, 목소리만 들어봐서는 꽤 부끄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물어본 거니까 이렇게 와 주지 않으셨어도 됐는데….”
“그래도, 그게, 걱정되니까….”
“바쁠 텐데 미안해요, 그래도 저는 이렇게 잠깐이라도 목소리 들으니까 좋네요.”
“아! 저는, 그게, 맞아요, 바빠서…저기…이제 돌아가 봐야 해서….”
래피드는 부끄러워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훈련 도중에 정말 잠깐 시간을 내서 찾아온 거였으니 빨리 돌아가야만 한다.
나 또한 애쉬에게 잘못 걸리고 싶지는 않아 래피드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저기…일단 괜찮으시다니까, 혹시라도 그래도 문제 있으면 연락해주시고…주말에 봐요?”
“네, 좋아요. 갑자기 오게 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제가 멋대로 온 거니까…그럼, 저는…이제….”
하지만 일단 필요한 건 받고 보내야 한다.
나는 내게 인사하는 래피드에게 최면어플을 내밀었다.
“아, 래피드 씨? 잠깐 여기 좀….”
“에? 에….”
래피드는 곧바로 투명화 마법이 풀리기 시작하며 깨진 유리 조각이 모이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입을 작게 벌린 채 완전히 멍해진 상태가 되어있다.
래피드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나는 잠시 멍해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손을 움직였다.
나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급하게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기 시작했다.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채집한다.
한 가닥 한 가닥을 손으로 잡아 정리해 손에 쥔 나는 적당한 양의 머리카락을 얻은 뒤 머리카락을 쥔 손을 등 뒤에 숨기고 래피드에게 명령했다.
“지금 한 번, 최면에서 풀려나기 전에 스스로 투명화 마법을 건다.”
래피드가 최면에 걸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끔 한 나는 이어서 최면어플을 종료했다.
“…어?! 저, 저…어라?”
멍해진 상태에서 돌아온 래피드는 잠시 당황하더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력이 느껴져 래피드가 아직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온다.
나는 최면에서 풀려났는데도 어째서인지 가만히 있는 래피드의 이름을 불렀다.
“래피드 씨…?”
“네? 아, 네! 갈게요! 나중에 봐요!”
혹시 최면에서 풀리며 위화감을 느낀 걸까 싶었지만, 그냥 멍하니 있었던 것뿐이었는지 래피드는 곧바로 공간이동 마법을 써 눈앞에서 사라졌다.
래피드가 사라지며 비게 된 공간이 채워지며 순간적으로 바람이 분다.
“후….”
나는 최면어플의 추적기능을 통해 래피드가 확실히 돌아간 걸 확인한 뒤 손에 쥔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내려다봤다.
래피드를 부르려 한 건 질문을 해보려 한 것도 있지만 머리카락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것으로 마진사에 질문글을 올리고, 이것저것 조사해 보는데 사용할 포인트를 벌었다.
내가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계속해서 혼자 쥐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다.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정보를 더 구해 볼 생각이다.
나는 손에 땀이 나지 않게 조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