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위화감 (7)
머릿속에 의문이 맴돌기 시작할 때쯤 점원의 고개가 옆으로 틀어졌다.
조금 전보다도 더 심하게 초점이 나가는 모습에 따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그레이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얇은 티에 반바지라는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가슴이 살짝 흔들리는 모습에 저절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미안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 아, 아뇨? 아닙니다.”
“별로 안 기다렸어, 그것만 계산하면 돼.”
내게 말하는 그레이프에게 대답하는 점원을 무시한 나는 묘한 느낌에 점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이 작게 벌어진 채 침이 꿀꺽하고 삼켜지고 있다.
목을 계속해서 움찔거리며 멍한 눈을 빠르게 깜빡여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상태로 돌아온다.
그 반응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뇨…? 이미 받은 봉투에 담으면 될 것 같아요.”
“아, 네….”
그레이프는 이미 내가 점원에게서 받았던 봉투에 샴푸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내게 봉투를 건네줬으면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한 반응이다.
나는 왼손이 살짝 짜릿해지는 오싹한 느낌에 급하게 그레이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레이프, 빨리 가자.”
“핫! 에? 네!”
이상한 감각이 주변을 휘감는다.
그레이프의 손을 잡아끌기 시작한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이 훨씬 강렬해진다.
주변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들의 시선이 따갑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피하듯 마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빠르게 했다.
지하철 안에서 감염체들, 네거티브의 괴수에게 쫓길 때처럼 끈적하고 불쾌한 감각이 피부를 날카롭게 긁고 지나간다.
공기가 따갑다.
필터를 청소하지 않은 지 오래된 에어컨이 생각나는 꿉꿉하면서도 차가운 공기가 폐를 갑갑하게 만든다.
시선이…시선이 아닌 무언가가 내 쪽으로 모인다.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그레이프 쪽으로 모이고 있다.
그레이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마법소녀인데, 감각이 예민한데 왜 이걸 모르는 거지?
“아~뭐야?”
“아, 죄송합니다….”
기괴한 감각에 휩싸여 점점 걸음을 빠르게 해 마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나는 문 주변에 서 있던 남자와 어깨를 부딪쳤다.
곧바로 사과하며 고개를 들어 남자와 눈을 마주친 나는 흠칫 놀라며 살짝 인상을 썼다.
이상할 정도로 눈 주변이 퀭하다.
정상적인 상태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다.
남자의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이며 코가 움찔거린다.
그레이프를 보고, 그레이프의 냄새를 맡고 있다.
불쾌감이 왼손을 찌르고 들어온다.
“죄송한 게 아니라 뭐냐고~? 어?”
덩치를 부풀리고 고개를 쳐들며 나를 겁주려 한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상대가 얼마나 별것 없는 수컷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압박하며, 암컷에게 자신의 남성적인 우월성을 뽐내는 구애 행동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실비실하게 생겨선,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다야? 어? 사람한테 부딪혀놓고.”
어이없는 이유로 화를 내면서도 시선은 계속해서 내 옆에 서 있는 그레이프를 힐끔거린다.
내게 부딪힌 게 화나는 게 아니라 트집을 잡는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트집을 걸거나 조금 이상한 접근을 시도하는 건 그레이프와 같이 다닐 때마다 겪은 일이었다.
그레이프에게는 언제나 이상한 남자가 꼬인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외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도 오늘따라 이상하게 위화감이 멈추지 않는다.
이전에는 못 느꼈던 것들이 미세하게 느껴져 신경을 자극한다.
뭔가 이 사람의 상태가 이상하다.
동공 떨림, 확장, 호흡이 가빠짐, 좌상 박의 근육 긴장.
괴수의 체액을 사용한 각성 물질의 과다사용 증세와 비슷한 반응이나, 미묘하게 다르다.
그레이프를 보고 단순하게 흥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좌상 박의 근육 긴장이 걸린다.
어깨 바로 밑, 심장에서 조금 더 가까운 쪽에서 운동량이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는 유연한 근육 기관이 계속해서 긴장과 이완을 1초에 4번꼴로 작게 반복한다.
괴수의 체액을 사용한 각성약물 중독증세와 유사하지만, 타액이 거품져 떨어지거나 동공의 반사운동이 정지해 있지는 않다.
내가 아는 여러 약물 부작용, 중독증세 중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없다.
하지만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야, 대답 안 해?”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어딘가 이상증세를 보이는 남자가 갑자기 내 어깨를 향해 팔을 뻗었다.
상당히 강하게, 때리듯이…아니,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때리려 한다.
맞는 순간 넘어질 게 분명한 공격행위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때, 왼손이 살짝 저릿해지는 것과 동시에 귀가 먹먹해지는 감각이 파도치듯이 안쪽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눈을 질끈 감은 내 뒤에서부터 작은 바람이 부는 게 느껴진다.
그 직후, 내 앞에 서 있던 남자는 그대로 쓰러져 바닥에 엎드린 채 정신을 잃고 토하기 시작했다.
“우웁, 웁…!”
“어?”
눈을 다시 뜨자마자 보인 광경에 나는 어쩐지 지금 이것과 같은 광경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볼을 비비고 벌레처럼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남자가 끈적한 액체를 쉴 새 없이 토해낸다.
더럽고 역겨운 광경에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가 내 뒤에 서 있던 그레이프에게 안기게 되었다.
“낮부터 술 마신 사람인가 보네요. 무시하고 빨리 집에 가요.”
“어, 응…그래 보이진 않던데?”
“취했어요, 저 마법소녀잖아요.”
내가 느끼기엔 전혀 술에 취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레이프의 감각에는 술기운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내 어깨를 감싸 안은 그레이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뒤 그대로 남자에게서 나를 멀리 떼어놓으며 걸음을 옮겼다.
“빨리 가서 고기 구워 먹어요.”
나는 마트 출입문을 나서며 그레이프의 말에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고 더러운 기억을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택시 타자.”
마트를 나오자마자 빨리 집에 돌아가서 텅 비어버린 배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진 나는 택시 승차장으로 걸어갔다.
승차장에는 이미 많은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어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탑승할 수 있었다.
“앵거는 얼마나 굽는 게 좋아요? 미디엄? 미디엄 레어?”
“글쎄….”
택시에 탑승한 뒤 그레이프는 내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도 나보다 더 기대되는지 내게 계속해서 고기를 어떻게 먹으면 좋겠냐는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자꾸만 나와 어깨를 부딪친 남자가 신경 쓰여 그레이프의 질문에 대충 대답해주면서 남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차분히 생각해보니…초점이 나가 있었던 건 그 남자뿐만이 아니다.
그냥 불법 약물 중독자였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그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 왜 신경 쓰이는 걸까?
그걸 모르겠는데도…신경쓰인다.
“도착했습니다.”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택시기사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살펴봤다.
어느새 집 근처에 택시가 도착해있었다.
제대로 집에 돌아온 것을 확인한 나는 당연하게 그레이프를 바라봤고, 그레이프는 곧바로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택시비를 계산했다.
“감사합니…응?”
나는 계산을 마친 뒤 다시 마트에서 본 사람들을 떠올리며 택시에서 내리다가 먼저 내리던 그레이프의 커다란 엉덩이에 몸을 부딪쳐 좌석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곧바로 다시 일어서려던 내 시야에 뭔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백미러를 통해 멍하니 그레이프의 엉덩이를 보고 있는 기사 아저씨의 얼굴이 보인다.
초점이 나간 눈동자, 거친 숨소리…그리고 왼쪽 팔의 경련 같은 움직임.
…이상하다.
“앵거?”
“아, 응.”
나는 그레이프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몸을 움직여 차 밖으로 나온 뒤 멍하니 택시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본 반응이었다.
“왜 그래요…? 뭐 두고 내렸어요?”
“아니…아냐.”
멍하니 대답한 나는 그레이프가 내민 손을 잡고 내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몸은 다른 곳으로 걸어가지만, 정신은 마트와 택시에 남아 초점이 나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내 방 현관문에 열쇠를 꽂아 넣으면서도 이상한 의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레이프, 혹시 아까 사람들 이상하지 않았어…?”
“…아까 사람들요?”
나는 현관문에 꽂은 열쇠를 돌리며 그레이프에게 가볍게 질문했다.
그러자 그레이프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줬다.
“…뭐가요? 누가…?”
“…아무것도 아냐.”
그레이프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 이럴 것 같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레이프는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걸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나는 내 방 안으로 들어가며 점점 알 수 없는 의문에 빠져들어 갔다.
이상하다.
정말로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