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위화감 (6)
그레이프는 밑에만 전부 벗은 뒤 자켓을 벗어 내리고 대충 떨어뜨리며 내 쪽으로 서서히 걸어왔다.
그대로 멍청한 목소리를 내며 당황하고 있는 내게 다가온 그레이프는 말없이 날 내려다보며 이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내 위에 올라탔다.
이어서 내가 힘겹게 올렸던 바지를 내리고, 빳빳하게 서 있는 자지 위에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질구를 가져다 댔다.
“어…?!”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나는 그레이프의 밑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그대로 허리를 잡혀 꼼짝 못 하게 되어버렸다.
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자 침을 꿀꺽 삼키는 그레이프의 모습이 보인다.
뭔가 오싹한…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을 자극한다.
“자, 잠깐…덮쳐도 돼요?”
“어?! 엇?!”
가만히 내 위에 올라타 있던 그레이프는 귀를 의심할만한 말을 하며 그대로 내 위에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 자위하며 잔뜩 자극하고 있던 자지가 손으로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극에 움찔거리며 곧바로 사정할 준비를 해버린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사정을 참으며 다급하게 그레이프의 손목을 잡았다.
“왜?!”
“덮쳐도 돼요?!”
“왜?!”
너무 당황스러워 머릿속의 사고회로가 완전히 정지한다.
이게 본인의 자위 영상을 보며 자위하는 이성을 목격한 여자의 정상적인 반응인가?
그레이프는 내게 말로는 허락을 구하며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허리를 살살 흔들기 시작했다.
빨리 허락하라고 협박하는듯한 움직임에 자지에서 멋대로 울컥울컥하는 사정감이 느껴진다.
“앗, 아…!”
“덮쳐도 되는 거죠?!”
“왜, 갑자기 왜!”
“그걸 몰라서 물어요?!”
이유를 알 수 없어 묻는 내게 화내듯이 소리친 그레이프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허리를 위로 올렸다가 밑으로 한 번에 내리찍었다.
철썩! 하는 소리가 크게 나며 큰 자극을 받고 긴장이 풀려버린 자지에서 강제로 정액이 사정된다.
그레이프는 곧바로 사정을 재촉하듯 자지를 꾸욱 쥐어짜며 말했다.
“끝나고 고기 사줄 테니까…! 덮칠게요! 잠깐이면 돼요!”
“아아아앗! 아아아…!”
“고기 사줄 테니까!”
고기를 사줄 테니 순순히 따먹히라니…너무도 짐승같은 발언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보통 사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마법소녀에게 덮쳐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쾌감에 덮여 무력감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그레이프는 내게 정말 마지막 자비라는 듯이 말하며 허리를 좌우로 잔뜩 돌려버렸다.
“싫으면 싫다고 해요!”
그레이프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끝없이 덮쳐 들어오는 쾌감에 차마 싫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손에 힘을 푼 내게 그레이프는 잔뜩 흥분한 짐승처럼 헥헥대는 숨소리를 내며 눈치 보듯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얌전해졌다는 걸 확인하고 난 뒤부터 점점 난폭하게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정액을 짜내버렸다.
# # #
“고기 말고 다른 것도 사줄게요…네?”
저녁까지 정액을 강제 무한리필해준 나는 만족하면서도 내 눈치를 보게 된 그레이프의 손에 이끌려 마트에 데려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또다시 덮쳐진 것에 자존심이 상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그레이프는 그런 나를 달래주기 위해 이것저것 뇌물을 먹이려는 음흉한 짓을 계속했다.
"케이크 사줘요?"
"케이크는 왜…."
"케이크 좋아한다면서요…?"
그건 래피드 때문에 좋아한다고 한 것뿐이고…원래 나는 케이크같이 너무 단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케이크당 같이 케이크를 잘 만드는 집의 케이크는 먹을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파는 아무렇게나 만든 케이크는 먹기 싫다.
"마트에서 파는 케이크는 별로…."
"다, 다른 것도 사줄게요! 뭐 먹고 싶은데요?"
"그레이프…."
이번에도 나를 덮쳐놓고 먹을 거로 없던 일 취급하려 하다니…그레이프의 인성이 의심된다.
그래도 최면 때문에 덮쳤을 때와는 다르게 계속해서 나한테 싫으면 싫다고 말해달라 했으니 강간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그레이프는 최면 같은 게 없어도 성욕이 많다는 것이다.
성욕이 너무 많으니까 자꾸 참지 못하고 날 덮치는 것이다.
이런 걸 계속 봐줬다간 나중에는 이래도 되는 줄 알고 계속해서 날 덮치다가 최면 같은 게 없어도 강제로 강간하려 할지도 모른다.
이런 건 미리미리 확실하게 버릇을 잡아둬야 한다.
안 그러면 섹스하고 싶을 땐 강간하고 돈 내면 된다는 못된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잘못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그레이프를 가만히 노려보며 말했다.
“왜 자꾸 덮치는 거야?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렇지….”
“…그렇게 싫었어요?”
“싫었냐 좋았냐가 문제가 아니라…그레이프랑 하면 너무 기분 좋으니까 그러지.”
“네?”
싫었냐 좋았냐를 따지면, 좋았다.
좋았다는 게 문제다.
너무 기분 좋아서 거절할 생각이 들지 않게 해 버리니까 섹스하기 시작하고 나면 그땐 이미 늦어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거절 못 할 정도로 기분 좋아서 곤란하다고.”
“아…네….”
“그레이프랑 섹스하는 게 기분 나쁜 건 절대 아닌데 할수록 점점 지능 떨어지는 것 같단 말야…기분 좋아서 바보 되면 그레이프가 책임져 주기라도 할 거야?”
“…꿀꺽.”
그레이프가 대답을 안 한다.
냉정하게 얘기하던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침을 삼키는 그레이프를 보고 조금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레이프?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
“네? 네!”
“내가 뭐라고 했는데?”
“책임! 네! 책임!”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게 맞을까?
새빨개진 얼굴에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책임, 책임만 반복하고 있는 그레이프에게서 신용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책임지라는 게 아니라…그레이프, 다른 생각 하다가 못 들었으면 그냥 못 들었다고 해줘.”
“책임지지 마요…?”
“아니…대화의 요점은 그게 아니잖아. 애초에 책임을 어떻게 질 건데.”
“어…어떻게든?”
…혹시 섹스하면서 내가 바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레이프도 바보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하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화가 제대로 성립되질 않는다.
“자꾸 그럴 때마다 바보 되는 거 같으니까 내가 대답하기 전에 덮치지 말라고….”
“…대답하는거 듣고 난 뒤에 덮쳐달라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잖…어…음….”
…맞나?
대답하고 난 뒤에 덮치면 괜찮긴 할 것 같은데….
일단 하고 싶다고 내게 허락을 구한 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때 해 준다면 문제없긴…한데….
그치만 그러면 내게 덮쳐도 되냐고 물어본 뒤 결국 덮치겠다는 얘기가 된다.
얘기하다 보니 나도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정액과 함께 지능도 빨려 나간 게 분명하다.
“…그냥 이 얘기 그만하자.”
“책임은요…?”
“그만.”
“책임…아니, 네….”
나는 내게 혼나서 그런지 갑자기 기가 확 죽은 그레이프를 뒤로하고 마트 식품 코너에서 고기 매대로 카트를 끌고 갔다.
바로 뒤를 빠르게 걸어 따라온 그레이프가 카트 바로 옆에 선다.
그러자 주변에서 묘한 시선이 나와 그레이프에게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고기를 사러 온 남자들이 모두 그레이프를 힐끔거린 뒤 나를 보고 인상을 쓴다.
그레이프 같은 여자가 나랑 있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납득이 안 간다는 글자가 쓰여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전부 초점이 나가 있는 게 그레이프를 보고 푹 빠졌거나, 날 보고 너무 어이가 없어 충격을 받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나는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고기 매대에서 소고기 배양육을 집어 들었다.
네거티브의 습격이 계속되며 배양육 기술이 발전하고 난 뒤부터 육류는 배양육과 소고기로 완전히 구분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서로 조직 차이도, 맛 차이도 크지 않지만…자연산은 자연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양육보다 좀 더 비싸게 판매된다.
자연산이 아주 약간, 아주 조금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영양분의 밸런스가 좀 더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레이프가 사준다고 했으니 이왕이면 좀 더 비싼 걸 먹고 싶다.
나는 그레이프의 돈으로 사치를 부릴 생각에 망설임 없이 카트에 자연산 소고기를 집어넣었다.
일단 카트에 고기를 넣은 나는 물건을 살 거니까 괜찮다는 마음에서 시식코너에 구워져 있는 배양육 큐브 스테이크를 이쑤시개로 한 번에 5개 정도 찍어 들어 올렸다.
그대로 그 자리에서 서서 하나씩 먹고 있자 인상을 쓴 직원의 시선이 느껴진다.
직원도 그레이프를 보고 반하기라도 했는지 눈에 초점이 나가 있다.
나는 직원의 눈치를 보고 딱 한 번만 더 이쑤시개로 고기 꼬치를 만든 뒤 고기 코너에서 빠져나왔다.
그레이프는 내 뒤를 쫓아오며 내가 먹는 고기를 힐끔거리더니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배고파요?”
“아니…그냥 공짜라서…돈도 없는데 아끼면 좋잖아.”
그러고 보니 그레이프는 마법소녀인데도 공개되지 않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자금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나는 그레이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만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돈이 없기는 할 거라는 생각에 먹던 스테이크 조각을 내밀었다.
“그레이프도 먹을래?”
“네? 네, 네!”
그러자 그레이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내가 먹던 이쑤시개째로 스테이크를 물어 가져가 버렸다.
그레이프도 나처럼 배고팠던 것 같다.
하긴, 섹스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그레이프도 그렇게 섹스해댔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하다.
고기 매대를 지난 뒤, 나는 그레이프와 마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들을 모았다.
과자, 음료수, 야채, 과일 등…내 벌이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식품들이 카트에 가득 찬다.
마트에서 살 물건들을 고르면 고를수록 그레이프를 멍하니 바라보고 멈춰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전부 눈에서 초점이 나가 있는 게 얼마나 그레이프가 매력적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지금 이렇게 같이 마트에 오기만 해도 모든 남자가 정신을 잃고 바라볼만한 여자랑 조금 전까지 섹스했다는 게 우월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참, 저 샴푸 좀 사 올게요.”
“샴푸?”
“샤워실에 있는 거 거의 다 썼더라고요.”
“아하, 알았어.”
그레이프가 내 방에 와서 섹스하고 난 뒤 샴푸를 쓰게 되니, 머리가 길어서 그런지 내가 혼자 쓸 때보다 몇 배는 되는 속도로 없어지고 있다.
살 걸 전부 고른 뒤 계산대 근처에서 그레이프가 한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빨리 갔다 오라며 손을 흔들어 줬다.
나는 그레이프가 올 동안 미리 계산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계산대로 카트를 밀었다.
“어서 오세요, 담아드릴까요?”
“네.”
말없이 물건을 올리던 나는 점원이 물건을 하나하나 계산하는 모습을 보고 그레이프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봉투를 받아 일단 구매한 물건부터 담고 있자, 초점이 나가 있는 점원의 눈이 보인다.
나는 점원도 그레이프를 보고 정신이 나간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 계산대 뒤쪽을 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 데도 그레이프가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프 때문에 넋이 나가서 초점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그럼 왜 눈이 저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