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위화감 (2)
가까워지고 있는 게 누군지 몰라도 래피드가 남들 모르게 모르는 남자 집 앞에 찾아왔다는 걸 들켜선 안 된다.
래피드도 귀찮아질 수 있지만, 내가 위험해 질 수도 있는 문제다.
그레이프가 혹시라도 스캔들이 생길까 봐 창문으로 나갔던 걸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래피드의 등 뒤로 손을 뻗어 현관문을 살짝 끌어당겼다.
그러자 래피드는 저절로 현관문을 등 뒤에 대고 내게 갇히게 되었다.
“억…!”
품에 끌어당겨 진 래피드의 가슴이 내 몸에 푹신하게 눌리며 몸속을 오싹한 간지러움이 내달린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다리 사이가 저절로 저릿해지며 붕 떠오르는 부유감이 찾아온다.
사정 없는 오르가즘에 가까운 감각을 느껴지며 손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앗…하으읏…! 앗, 아…! 후아아앗…!”
깜짝 놀란 래피드는 가만히 숨을 삼키고 있다가 내 품을 놀라울 정도로 힘없이 밀쳐내며 허리를 비틀었다.
목을 들어 올리고 입을 살짝 벌려 달콤한 신음소리로 귓가를 간지럽히며, 눈가를 적신다.
내게 손을 잡혀 움찔거리는 래피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멍하니 손을 주물렀다.
“후악?! 힛…! 하…?!”
귓가에 래피드의 야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귀가 저절로 바짝 긴장된다.
네 손가락을 한 번에 감싸 쥐고 안에서 비벼주자 래피드는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비전폰을 떨어뜨렸다.
“후읏! 응…! 하악…! 하아…!”
래피드는 손을 잡은 내 손 위에 반대쪽 손을 올렸다가 불에 데인 것처럼 손목을 뒤로 확 꺾었다.
그랬다가도 다시 댔다가 다시 뒤로 꺾기를 반복하며 손끝을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 위에 올렸다.
손끝으로 내 손을 떼어내려고 하다가, 갑자기 힘이 풀리며 찰싹 달라붙는다.
두 손을 연약하게 오므려 내 손을 감싸 쥐면서 팔을 부들부들 떤다.
야한 냄새가 맡아져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저깃, 손, 손, 읏, 앗…!”
“앗…! 네, 네….”
래피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한 부탁을 듣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래피드의 손을 놔주고 천천히 손을 뗐다.
손끝이 살짝 닿아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멈춰서 있다가, 내 손을 감싸 쥐던 래피드의 손안을 살짝 긁어내며 천천히 떨어진다.
아주 천천히, 전혀 젖어있지 않은데도 끈적하게 떨어진다.
“응…하아앗..하아….”
“어….”
래피드는 손을 꼭 쥐고 부들부들 떨다가 양손을 감싸 쥐었다.
누가 봐도 손을 잡은 것 뿐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반응이다.
잠시동안 아무 말 없이 숨도 쉬지 않고 있던 래피드는 손의 떨림이 멈추고 나서야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하며 가만히 두 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벌써 몇 번을 잡았는데도 내게 접촉할 때만 손이 예민한 성감대가 되어버리는 최면에 적응도 안 되고 이해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당황한 래피드를 바라보다가 순순히 사과했다.
“저…미안, 죄송합니다…그게, 다른 사람이 오는 것 같아서….”
래피드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만 만지고 있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하다는 게 훤히 보이는 표정이다.
“…래피드 씨?”
“아! 앗…네…?”
다시 한 번 부르자 계속해서 손을 만져보던 래피드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흠칫하며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크게 떠진 눈이 아까보다 훨씬 젖어있는 게,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게 은근히 야하다.
“다른 사람한테 여기 있는 걸 들킬까 봐 그런 건데…괜찮으세요?”
“아! 아…! 그렇구나, 앗…그건…그, 감사해요, 그치만…괜찮아요.”
래피드는 대답과 동시에 갑자기 팔로 얼굴을 한번 쓸어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아주 잠시동안 얼굴 앞이 일렁거리며, 래피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에 봤을 때 사용하고 있던, 래피드를 알아보기 힘들게 해 주는 이름 모를 마법이다.
“이거…다른 방향에서는 전부 저인 줄 못 알아보게 공간 굴절시키는 중이니까, 못 알아볼 거에요.”
“아하….”
“아! 그래도 걱정해준 건 고마워요….”
내가 한 건 괜한 걱정이었다는 얘기다.
래피드는 내가 자신을 걱정해서 한 행동이기 때문인지 헛짓거리를 한 내게 오히려 웃는 얼굴로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해줬다.
그래도 부끄럽긴 했는지, 얼굴이 아직도 달아올라 있다.
래피드는 갑자기 끌어당겨서 비전폰을 떨어뜨리게 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허리를 숙여 바닥에서 비전폰을 주워들었다.
앉는 것만으로 가슴과 엉덩이가 크게 강조되고, 내 허리와 래피드의 머리가 같은 높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흥분된다.
나는 래피드의 커다란 가슴이 닿고 난 뒤 남아있는 여운과 손의 촉감, 야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흥분하지 않으려고 애써 눈을 감았다.
“아…근데….”
결국, 현관뿐이라고 해도 내 방 안에 들어오게 된 래피드는 눈을 깜빡이며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마법소녀 특유의 예민한 감각에 그레이프와 섹스한 흔적을 들킬까 봐 잔뜩 긴장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래피드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생각도 못 한 말을 꺼냈다.
“…어제 잠깐, 사실 그레이프랑 왔었는데 그때도 생각한 거지만 어쩐지…되게 익숙한 느낌이 드네요.”
“익숙해요…?”
“음…뭐랄까, 제 방 같은…냄…새?”
래피드의 몸에서 나는 냄새.
내 방에는 래피드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있다.
낱개로 밀봉된 래피드의 머리카락이, 판매하지 않고 소장용으로 보관한 것들이 잠들어 있다.
“그, 그, 그…래요?”
“아! 제 방이 냄새난다는 게 아니라…아니, 이 방이 냄새난다는 게 아니고 그게…편해요! 편안하다는 얘기에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으며 대답한 나는 목을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려 침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일단, 옆으로 살짝 몸을 틀어, 서랍과 래피드 사이를 막는다.
당황한 심장이 멋대로 요동치는걸, 호흡을 길게 늘려 강제로 진정시킨다.
“아, 혹시…방향제를 같은 걸 쓰는 건 아닐까요?”
“저 방향제 안 쓰는데….”
나도 방향제 같은 건 안 쓴다.
방향제 냄새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완전히 같은 게 아니라 살짝 달라요!”
“그래요?”
“네, 땀 냄새가 나서 훨씬 남자 방이구나 싶고…어제 땀 많이 흘리셨구나….”
“…그래요?”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래피드의 코가 움찔거린다.
내가 그레이프와 섹스하고 난 뒤 남아있는 체취를 맡고 있다.
방에 들여놔서 지금 맡아지는 건가?
방으로 들이는 게 아니었다.
나는 래피드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주머니를 뒤져 비전폰을 찾았다.
“아, 아니…냄새를 맡고 있는 게 아니고요…저기, 마법소녀는 감각이 예민해서…저절로 맡아지니까….”
“그래요…?”
“저…그런데 땀 냄새가 많다는 건…혹시 어제 조금 많이 아프셨던 거에요?”
“그래…네?”
주머니 안에서 비전폰을 쥐고 최면어플을 킬 준비를 한 나는 래피드가 이어서 한 말을 듣고 움직임을 멈췄다.
순진하게, 순수하게 걱정스러워하며 가만히 올려다보는 래피드의 눈이 보인다.
…그레이프랑 섹스한 냄새를 맡아놓고도 섹스했다는 걸 모른다.
그러고보니 래피드는 네거티브를 상대하긴 해도 야한 경험 같은 건 전혀 없는 처녀였다.
원형으로 자그마한 구멍이 있는 귀여운 처녀막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확실하다.
처녀니까, 섹스한 적이 없으니까, 모르니까…눈치채지 못한다.
나는 래피드의 순수함에 안도하면서도 묘한 흥분을 느끼며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식혀 아주 약간이지만 몸을 진정시켜…주려다가 래피드의 달콤한 체취가 후각을 간지럽혀 흥분이 더 커졌다.
착해서 귀여운데, 순진해서 야하다.
“아…조금, 아팠던 것 같기도….”
“마력에 조금 과하게 노출되긴 했으니까요….”
“그래도 많이 아팠던 건 아니고 그냥 땀만 조금 났던 거에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려고 하면 안 돼요, 방위군에 있는 분들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괴수 세포가 체내에 쌓여서 나쁜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었고….”
바이러스성 괴수 사건을 얘기하는 건가?
나는 걱정이 많아 보이는 래피드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금 전에 래피드가 했던 자세를 흉내 내서 팔다리를 좌우로 펼치며 말했다.
“괜찮아요, 상처 없어요, 마법소녀가 치료해줘서.”
“아…!”
그러자 곧바로 내가 누굴 흉내 낸 것인지 알아챈 래피드가 얼굴을 붉히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에스더의 방송에서 에스더가 래피드는 자기가 구해준 사람이 감사 인사를 해 줄 때마다 굉장한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얘기가 맞았는지 래피드는 내 말을 듣고 기분이 무척 좋아진 것 같았다.
“그래도 꼭 병원 가야 해요? 다들 오해하시는데 저는 치료가 될 때도 있지만, 치료마법을 쓰는 게 아니라서 잠깐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일 때도 있으니까요…어?”
래피드는 웃는 얼굴로 말하다 말고 움직임을 멈춰 내 목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예고도 없이 마력을 퍼뜨려 내 몸을 살폈다.
마력에 반응한 왼손의 촉수가 빠르게 몸을 움츠려 감지를 피한다.
갑자기 내 몸을 마력으로 스캔한 래피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목에도 붉은 반점 같은 게…스캔 반응은 문제없는데…마력이 나가는 과정에서 혈관염…? 잠시만요.”
래피드는 내 목 바로 위에 손을 올리고 피부를 접촉하지 않은 채 마력을 내게 흘려보냈다.
나는 돌발적인 행동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그레이프가 입술을 대고 빨아댔던 곳을 간지럽혀져 나도 모르게 야한 기분이 들어 몸을 움찔거렸다.
잠시 후, 마법을 사용한 래피드는 목에서 손을 떼고 내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대단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괴수가 나쁜 짓을 한 걸 수도 있으니까…일단 없애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