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질문 (6)
[어? 뭐야?]
“어? 뭐야?”
시야가 뭉개지고, 다시 정신을 차린 순간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본 순간 곧바로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건 나다.
본능적인 걸 넘어서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이 전부 뭉개져 있어서 대체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궁금했지만, 그 사실도 나로부터 전해져 들어왔다.
여기는 이다.
이곳, 나는, 다.
생각한 것과 다르게, 가, 해서.
나는 나와 다르게, 정도가, 낮으니까 아직 지능에까지 영향을 끼치진….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잠깐, 이거 이래도 괜찮은 거 맞나?]
근육질에,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내가 나보다 훨씬 큰 자지를 덜렁거리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같은 나인데도 이렇게까지 신체적 요건이 차이 난다니…믿기 어렵다.
그런데도 나라는 게 느껴져 나라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나라는 걸 알 수 있는 건 일단 알았다. 상대는 나다.
그렇다면 난 대체 왜 여기 있고, 왜 내가 둘이 된 거지?
정신을 잃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이런 상황에 빠져들었다는 것도 이해한다.
왜 정신을 잃었지?
훈련병 때 통신병 최종시험 준비를 하던 경험을 살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정신을 잃은 이유는 래피드와 손이 닿았기 때문이다.
손이 닿은 게 왜 이유가 되지?
그건 알 수 있지만 알 수 없다. 이 공간 자체가, 이기 때문이다.
[야, 잠깐…너 생각 좀 멈춰봐, 머리 아파.]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사용해 계속해서 상황을 정리하고 있자 근육질의 내가 갑자기 화를 내며 다가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어깨는 두 배는 될 듯한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신경질을 낸다.
[아오, 이 새끼 나보다 머리가 몇 배는 좋네…야, 머리 아파! 차근차근히 해 좀!]
“왜 내가 생각하는데 네가 머리가 아프다는 거지?”
[아…진짜,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런 얘기는 없었는데?]
“아니, 내가 생각하니까 네가 머리가 아프다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니 내가 머리가 아프다는 얘기구나. 그 말은 내 생각을 네가 읽고 있는데 다 받아들이지 못해 머리가 아프다는 얘기야?”
[…나 머리 좀 좋다? 아니, 너라고 해야 되나?]
대체 왜 내가 갑자기 이런 곳에 있는 건지는…알고 있다.
알지만, 모른다.
나는 알고 있는데 나는 모른다는 이상한 감각에 휩싸여있다.
[아니…진짜 이래도 되는 거 맞아? 내가 어떻게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마도 에스더 때문이겠지.”
…왜 에스더 때문인 거지?
내가 말했는데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도, 알고 있는 정보로 생각해보면 에스더밖에 원인이 없다.
그 알고 있는 정보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게 문제다.
내가 한 말인데도 나는 이해를 못 하고, 근육질의 나는 내 말을 듣고 생각에 빠져든다.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천천히 이해하고 있다.
[에스더? 음…아…그건가? 가, 얘기해 준 거.]
“안 들려. 이거 억제력이 있는 것 같은데, 을 제대로 못 들은 거야? 아니, 이건 내가 잘못 말했네, 쪽이 아니라 그냥, 에 확 날아가 버린 건가.”
[무슨 소리야? 너도, 냐? 머리 좋은 놈들은 이래서…지들만 이해했다고 당연한 듯이 얘기하고.]
“아니…네가 알고 있는 것들로 얘기한 건데 네가 이해를 못 하면 어떡해….”
이 상태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뭔가 꼼수가 필요하다.
나는 근육질의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뒤져, 쓸만한 방법을 하나 기억해냈다.
“내가 아는 것들만 말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시간대에 맞는 단어로만 얘기해주지 않을래?”
[지금 시간대에 맞는 얘기라는 게 무슨 소리야?]
“아오…씁….”
이 자식…이거 진짜 나 맞나?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쁘지?
몸은 부러울 정도로 좋으면서…말이 안 통할 정도로 지능 차이가 난다.
“에스더한테 촉수 심어지기 전에 알고 있던 얘기만 할 수 있다고. 그 외에는 전부 안 돼.”
[아~그때인가…음…기억 안 나.]
“…일단 상황부터 정리해보자,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부터, 네가 왜 여기 있는지…내가 지금 인식할 수 있는 정보만 얘기해봐.”
[는 알아?]
“안 들려.”
[음…혹시 2동 박사는 알아?]
“마진사 회원.”
[그럼 에스더가, 인 건? 랑, 가, 해서. 에스더의, 이, 라는 건?]
“전부 안 들려.”
[와, 이거 겁나 답답하네. 흐으으음…이 상황의 원인인 것 같은 얘기는 전부 말할 수 없구나.]
이런 상황이 된 원인, 이유는 전부 말할 수 없다.
말해서 알아들어도 내게 남지 않고 휘발되어 사라진다.
그러면…상황 파악이나 조사는 포기한다.
“애초에 너 어떻게 말하고 있는 거야?”
[내 말이.]
이 녀석이 말을 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이건 내가 아니라, 내 찌꺼기 같은 거니까.
그것도 엉망이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찌꺼기…그래도 나는 나다.
[래피드의 마법이 시공간을 다루는 건?]
“알아.”
[와! 이건 아는구나! 와…좋아, 그러면 그게, 해서, 할 수 있는 건?]
“그거랑 이건 다르지…이건, 한 상황이니까 2동 박사랑 에스더가, 한 거에 애쉬, 한게 겹친 거 아냐? 그걸 래피드가, 고.”
[그게 맞는 것 같은데? 근데 너 지금 네가 한 말 들려?]
“안 들려, 그치만, 를 2동 박사라고 하는 건 되는 것 같네.”
이 정도 대화면 충분하다.
대충, 내게 남길만한 정보를…내가 인식할 수 있는 선에서 정리했다.
“시공간 마력의 영향으로 아마도 너랑 내가 겹치는 속도가 가속하면서 이런 상황이 된 것 같은데…이 이유는 내가 지금 말할 수 없는 상태고.”
[퍼스널 리얼리티는 알아?]
“단어는 머릿속에 들어오네.”
[상위 단어는? 테리토리.]
“의미는 안 들어와.”
[용량법칙은?]
“몰라.”
[이렇게 남길 수는 없어? 시공간 영향으로 테리토리 형성 중에 임프린팅 대상으로부터 접촉.]
“남겨도 못 알아들을걸…? 안다고 해서 변하는 것도 없고.”
[하긴…이거 불안하네…이렇게까지 했는데, 때문에 제대로 안 겹친다니…남길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잖아.]
“그게 마음대로 되면 2동 박사가 머리카락 수집 같은 걸 하고 다니진 않았겠지?”
내가 몰라야 하는 정보는 내가 설명해 줘도 내게 안착하지 않고 사라진다.
지금은 저 단어의 뒤편에 있는 의미들을 알고 있지만, 이 공간에서 벗어난 순간 의미를 전부 잊어버리며 문장만 남을 게 분명하다.
지금 알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계속 알고 있을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너는 나고, 너랑 나는 아는 게 다르고, 나는 이 공간을 나가면 네가 나라는 기억은 잊어버리는 거지?”
[뭐…그렇지 않을까? 애초에 나를 둘로 나눠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안 그러면 이걸 유지하는 뇌에도, 다른 곳에도 데미지가 생긴다.
전부 소각하고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 시간대에 알고 있는 정보, 인식할 수 있을 만한 기억을 제외한 시간대의 기억이나 정보들은 전부 내게 맞지 않는다.
억지로 남기려고 해도 결합부가 맞지 않거나 성질과 높낮이가 달라 떨어지게 되어서 서서히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근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야 내가 죽었으니까 그렇지?]
“그것만으로는 상황 설명이 안 되잖아….”
[…너무 많이 꼬인 것 같은데….]
죽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기억이 머릿속에 번뜩였다가 사라진다.
애쉬가 나를 찢어발기는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반신을 날려버리고, 에, 해서, 얼굴이….
죽음의 기억의 강렬함이 인식을 뚫고 선명하게 남는다.
이건 안 좋다.
남아서는 안 될 기억이 남아봤자 내게 가해지는 영향은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뿐이다.
“…이런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어. 괜히 헤집다가 안 좋은 영향이 남으면 곤란해."
[그래도 이번 한 번뿐이잖아. 이런 일 다시는 없을걸.]
“지금 래피드한테 닿은 게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혼란스러운 상태가 더 오랫동안 지속됐을 것이다.
천천히 필요한 걸 조립하고 두통을 느끼는 일이 많았겠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상황은 나한테 좋게 흘러가고 있다.
“그, 년…이론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해놓고 또…애초에 에스더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 같고.”
[어쩔 수 없지, 일단 너 위주로 유지시키고 필요한 것만 주워담아가. 너무 섞이지 않게.]
솔직히 조금은 섞였으면 싶기는 하다.
다른 것보다 저 몸은 부럽다.
같은 나인데 어떻게 저렇게 자지가 크고 몸이 큰 거지?
어깨도 지금 내 두 배는 되지 않을까 싶고, 키도 더 크고, 자지도 두 배 가까이 되지 않을까….
[어…이건 그렇게 부러워할 필요 없는데.]
“왜?”
[왜라니…그레이프가…음, 아니다. 너도 이렇게 될 거라는 것만 알아둬.]
다른 생각을 할 때는 생각이 서로 겹치는 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기억이나 생각이 뭉치며 다른 부분 중에서 더 큰 게 유지되는 과정이나 맞지 않는 걸 없애는 과정이 없다.
완전히 타인과 얘기하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와 나 사이에 괴리감이 커진다.
“이거 제한시간 있나 본데.”
[그러게, 서로 생각이 안 겹치네.]
“지금 혹시 사라지는 중?”
[당연하지? 난 틀이 없잖아.]
“…사라지기 전에 정리 좀 도와줘 봐.”
지금부터 정리한 걸 제외하면 아마도 난 그걸 제외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기억들이 너무 많다.
멀쩡한 상태여도 내가 버티기 힘든 크기인데, 지금은 몸 상태도 정상이라고 하기 힘들어서 더하다.
“좋아, 네 이름은?”
[앵거]
“직업은?”
[제약회사 영업사원.]
“취미는?”
[마법소녀 보지 탁본 수집]
“…미쳤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건 좀 그렇다.
역겹다.
[머리카락이나 수집하는 새끼가 어딜 역겨워해?]
“아니…어, 그래…생각해보니까 머리카락도 역겹긴 하지.”
[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는 상태여도 말야…어? 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이래서 프로그래머는 사회성이 떨어지니까 대화도 잘 못 하고….]
“프로그래머 무시하냐? 지능도 낮은 게 뭐래. 그리고 그건, 때문이잖아.”
[그렇게 따지면 너도 나한테 지능 낮다고 하면 안 되지?]
…그것도 맞는 얘기다.
어느 쪽도 나인데 괜히 이상한 얘기로 욕할 필요는 없다.
시간도 없는데, 시간 낭비만 된다.
“그만하자…다음, 최면어플의 사용방식…응?”
[…이거 전부 안 되겠는데, 가 너무 많이 껴있어. 나중에 직접 배워.]
“그래…아쉽네, 이게 제일 도움 될 것 같았는데.”
이런 상황에 빠진 게 내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이러면 그렇게 얻는 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가 심하다.
하긴…이러니까, 가 그런 걸 개발하려고 애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