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질문 (5)
“에, 에? 에?”
[아니…잠깐, 뭐, 네? 예?]
에스더의 보지를 빨았다는 사실을 고백하자 옆에 서 있던 래피드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대체 왜 갑자기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다.
드론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놀란 것인지 통신병이 조종기를 잘못 틀어쥔 듯 비행 궤도가 휘청이고 있다.
래피드의 옆에서 하기에는 좀 자극적인 얘기이긴 해도…하지 못할만한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얘기를 함으로써 래피드로부터 동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피해자로서 말해야 한다.
나는 에스더의 보지를 강제로 빨아야만 했던 피해자….
숨을 가만히 참아 코로 숨을 끊어 내쉬며 흐느끼는 소리를 낸다.
영업사원의 기억을 최대한 살려서 불쌍한 모습을 연기한다.
“하아…이 사진은 제가 에스더의 보지를 빠는 사진입니다…설마 이런 순간이 찍힐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그래도 노이즈 덕분에 다행히 보지에 입을 댄 것처럼 보이진 않네요.”
[그, 말을 조금만 순화해서….]
“…순화한 건데요.”
이 정도면 그래도 굉장히 순화해서 말해준 편이다.
겨우 이걸로 이렇게까지 질색하는 반응이라니…에스더의 촉수보지를 혀로 핥으면서 딸기 시럽 맛이 나는 달콤한 음액을 쪽쪽 빨아댔다고 했다면 드론 너머에서 쓰러지지 않았을까?
나는 옆에서 고개를 돌리고 가만히 얼굴을 붉히고 있는 래피드를 힐끔거리다가 최대한 수치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일만 한 모습을 연기하며 말을 이었다.
“에스더가…진정한 팬이라면 보지를 빨 수 있어야 한다면서 빨라고 하더군요….”
[아니…그, 음…어…네?]
“당황스러우시죠…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빨 수밖에 없었어요.”
[아, 음…아….]
“더 자세히 말씀드려야 하나요?”
[아, 예? 네…?]
사진 속의 행동을 네거티브가 된 에스더의 기행으로 해석시키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반응이 안 좋다.
혹시 이 정도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하긴, 갑자기 이해하기에는 조금 황당한 얘기이긴 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설명해줘야겠다.
“에스더가 갑자기 옷을 내리고 비웃으면서 진짜 팬이면 할 수 있겠지? 라며 저를 무릎 꿇리더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꽉 잡고 보지를 빨지 않으면 머리 위의 뿔로 찔러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보는데, 꼬리 끝을 세워서 목을 날카롭게 긁으니까 점점 저도 이성이 마비되어서…보지를 빨지 않으면 죽겠구나 하고 겨, 결국….”
“저, 저기! 잠깐…!”
좀 더 세세한 상황을 묘사해주고 있자 갑자기 래피드가 내 앞으로 팔을 쭉 내밀며 말을 멈추게 했다.
얘기한 건 나인데 듣는 래피드가 수치심을 느낀 듯, 새하얀 피부가 빨갛게 익어 얼굴에서 어깨까지 확 달아올라 있다.
래피드는 뻗은 팔을 부들부들 떨더니 내 쪽을 힐끔거리고 눈동자를 밑으로 내렸다가 확 끌어올렸다.
“에, 에스더가 네거티브가 되니까…이런, 이런 짓까지…그, 변태적인…이런 걸…그게…네거티브니까!”
[어…네…음….]
“그만, 그만 하죠? 이 정도면 조사는…충분하지 않나요?”
[…음.]
래피드의 말대로, 상황 조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사고로 습격에 휘말려 에스더의 퀴즈를 맞히고 시간을 벌다가 결국 보지까지 빨게 되었고, 이후 래피드가 찾아와 구해줬다.
조금 이상한 일이 많기는 해도, 에스더가 네거티브에게 감염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말이 되는 얘기다.
[저도…이해는 됩니다. 당황스럽기는 해도…말이 안 되는 건 아니군요.]
“여기에서 더 묻는 건…그런, 그, 피해자분께도 실례에요. 그런 기억을, 억지로 그런…그게, 그걸 자꾸 떠올리게…그건, 안 좋은…그게….”
래피드는 내가 안 좋은 일을 떠올리지 않게 배려해서 더 묻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자기가 상상을 하는 듯 점점 더 얼굴을 붉혔다.
입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어 자신이 얼마나 순진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무튼! 더 묻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맞…습니다만, 그래도 좀 더 자세히 조사해야 하긴 해서….]
“왜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감염상태 파악, 사건경위조사, 사고 이유확인, 의문점 해결…전부 끝났다.
래피드의 말대로 문제점이 없는 대상에 대한 조사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더 조사해야 한다는 건…자세히 조사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다는 말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애쉬님이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자세한 보고서를 올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아까도 그런 말 했었죠…대체 왜…그리고 습격도, 에스더가 나타난 것도 처음이 아닌걸요.”
[아마도 지하철이 이렇게까지 붕괴된 일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쉘터 역할을 하는 격벽을 전부 녹여버린 거니까요.]
래피드와 통신병의 대화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귀찮은 것 같다.
조사결과 내게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애쉬가 제대로 조사해달라고 했으니 없는 것까지 털어내 짜내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 모르니까 정밀검사를 한번 받아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스캔 결과가 정상이면 정신적 피해를 본 사람이 원치 않는데도 계속해서 검사 강요를 하는 건 그만하기로 한 것 아니었나요?”
[그치만…드론에 장착된 건 간이 스캐너입니다. 보통 감염체나 괴수도 아니고 간부급과 접촉했으니 검사한다고 해서 나쁠 건….]
상대는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조금이라도 더 자료를 수집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나는 그 세세한 검사를 받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들킬 수 있는 처지다.
꽤 귀찮은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래피드가 내가 할 말을 대신해주고 있다.
동일한 발언이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르다.
래피드는 방위군에게도, 애쉬에게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마법소녀여서 그런지 래피드가 따져 물을 때마다 통신병도 숨 막혀 하며 말을 멈춘다.
“정밀 스캔은 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직접 확인해봤는데 문제는 없었어요.”
[네, 하지만 기억에 이상이 있다 하시니….]
“아까 강한 마력파장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지금 이분에게 필요한 건 조사가 아니라 휴식이에요.”
[…예.]
“제가 책임질 테니까…애쉬한테 보고할 보고서에는 제가 확인결과 문제없다고 했다고 적어주세요. 그럼 괜찮죠?”
나에 대한 조사도 멈추게 하고, 통신병이 다른 사람한테 조사가 미흡하다고 갈굼당하지 않도록 자신의 이름을 보고서에 적어두라고 요청한다.
상대를 감싸주는 배려심 있는 조치가 눈길을 끈다.
이렇게 하면 뭔가 부족해 보여도 래피드의 이름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아…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래피드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한 드론은 내 쪽을 힐끔거리다가 래피드에게 기계 팔로 경례했다.
귀찮아질 뻔했지만, 래피드 덕분에 쉽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래피드님, 애쉬님께서 메시지를 남겨두셨습니다. 훈련 도중에 갔으니 끝나면 되도록 빨리 오라고….]
“…알았어요. 바로 간다고 전해주세요.”
용무를 마치고 그대로 날아가려던 드론이 갑자기 멈춰 서서 한 말에 래피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는 애쉬가 전했다는 말을 듣고 조금 지쳐 보이는 래피드를 힐끔거렸다.
먼지투성이가 되고 마력도 전부 썼는데…훈련 도중에 갔으니 빨리 돌아오라니….
래피드는 익숙한 일인 듯 조금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드론에게서 등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조금 전까지 지쳐 보이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든다.
강해 보이면서도 상냥한 눈빛이다.
“저…앵거, 씨…?”
“아, 네.”
“오늘 뭔가…이런 저런 일이 많으셨네요.”
그 말대로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다.
래피드는 아직 조금 전에 들었던 얘기에 부끄러움이 다 가시지 않은 듯 얼굴을 붉히며 내게 조금 가까이 다가와선 가만히 내 몸을 살펴봤다.
크게 다친 곳은 없는지 다시 한 번 봐 주던 시선이 하체 쪽에 갔다가, 다시 확 하고 올라온다.
“저, 저희 뭔가…요즘 자주 보네요.”
“아, 음…그러게요…되게 우연이…잦, 죠?”
“그…렇죠? 어…우연이, 자주…겹치네요…그러게요…?”
어색하게, 우연히 만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자 래피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기억을 더듬듯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옆쪽을 보다가, 표정을 풀며 다시 나를 바라본다.
“…저는 이제 바로 가 봐야 하지만…마력이 기억에 영향을 끼친 거 같다고 생각하실 정도면 제대로 휴식을 취하셔야 해요. 지금은 몸이…흥분되서…그, 그러니까 이상한 흥분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건데…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데, 갑자기 확 올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조금 피곤하긴 하네요.”
몸은 그냥 피곤하기만 한데, 머릿속이 좀 이상하다.
계속 뭔가 어질어질하고…약한 두통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은 좀 가라앉아 있긴 하지만, 확실히 무언가가 이리저리 비틀려 있는 느낌이 든다.
조금 피곤하다고 한 것만으로 갑자기 래피드가 불안해하며 우물쭈물한다.
강한 적과 싸울 때는 더 강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변하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다.
나는 래피드의 귀여운 반응을 보고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번에도 구해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저야말로…구해주셔서, 고마…워요.”
래피드가 눈앞에서 부끄러워하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린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는데도 감춰지지 않은 외모가 귀엽다.
바로 앞에서 눈을 마주치니 저절로 래피드의 가슴이 시야에 들어와 얼굴이 뜨거워진다.
“래피드 씨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몸이 움직인 거라서….”
“그게…그래도 다음부터는 그러시면 안 돼요….”
래피드는 내게 고마워하면서도 정말 다시는 하지 말라고 살짝 화를 내듯이 눈썹을 모으며 말했다.
화를 내는데도 귀엽기만 하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다시는 그런 상황에 뛰어들 생각이 없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래피드는 만족스러워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저기…!”
한숨을 내쉰 래피드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대체 어째서인지 내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누가 봐도 악수를 하자는 모습이 당황스러워 가만히 얼굴을 보고 있자, 손을 내민 래피드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부끄러워한다.
“아, 악수…할래요? 그게…고마, 고맙다는…인사…?”
“어….”
나랑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최면에 걸려서 정확한 원인은 모를 테지만, 나와 손이 닿는 순간 쾌감을 느낀다는 건 이미 몇 번이고 경험하며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나와 악수하자는 건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래피드가 악수하자고 한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나는 곧바로 래피드에게 손을 뻗었다.
래피드와 서로 눈을 마주친 채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이상할 정도로 묘한 공기가 서로를 휘감는다.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래피드에게서 묘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읏?!”
“앗?!”
그대로 손이 맞닿은 순간, 래피드는 쾌감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나도 이상한 감각을 느껴 손을 바로 뒤로 빼냈다.
잠시 막혀있던 게 다시 뚫린 것처럼 머릿속의 통증이 갑자기 커진다.
“어…어? 지, 지금…?”
“어…?”
“앵거…씨도?”
“방금 뭐….”
뭔가에 놀라고 있는 래피드의 목소리가 들리며 내 주변이 흔들린다.
이리저리 비틀리고 파도치는데도 래피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잠깐…어…?”
“저기 혹시 앵거씨도 뭔가 느낀….”
“어…?”
들리는 소리가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시야가 점점 뭉개진다.
시간이 비틀려가는 것처럼, 공간이 뒤섞인 것처럼 이리저리 겹친다.
잠시 한곳에 몰아넣고 쉬고 있던 머릿속이 다시 엉망으로 뒤섞인다.
“아.”
더는 서 있을 수가 없다.
쓰러진다.
[앵거 씨?! 앵거…그레이프! 그레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