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 최면물-145화 (145/299)

< 145화 > 질문 (4)

[…1527번입니다. 등급은 실버였습니다.]

“아하….”

1000번대 번호에 실버밖에 안 된다니, 에스더가 마법소녀였을 때는 생방송에도 들어올 수 없는 등급이다.

팬클럽 내 투표에서 투표권도 없지 않을까?

그에 비해 나는 500명에게만 주는 골든 배지와 회원 등급도 최상위 등급인 특별회원이었다.

100번대라는 숫자에 놀라는 이유는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별것 아니라면 별것 아닌 이유 때문이다.

에스더의 팬클럽은 마법소녀가 되기 전, 아이돌로서 활동할 때의 팬클럽 번호가 그대로 내려온다.

나는 당시 별 관심도 받지 못하던 에스더에게 네거티브가 습격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이 되었는데도 신인 아이돌이 나타났다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가져 팬클럽에 가입해둔 상태였다.

그 후 에스더가 마법소녀로 각성하며 팬클럽 회원은 늘어났지만, 초창기 중에서도 초창기 멤버인 500인은 회원 등급과 관계없이 특별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중에서 나는 초기 멤버 500명 중에서도 에스더가 마법소녀가 된 뒤 점차 등급을 올려 VIP 멤버십을 꾸준히 유지하던 정예멤버중 한 명이다.

1번이나 88번처럼 순수하게 에스더에게 애정을 가지고 VIP등급을 유지한 건 아니었지만, 일단 겉보기에는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성골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잠깐…진짜 팬이었어요?”

[저 등급이면 팬 정도가 아닙니다…스토커에 가깝죠.]

옆에서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란 그레이프가 한 말에 드론이 멋대로 질색하며 대답해줬다.

스토커라니, 역시 실버 등급밖에 안 되어서 그런지 예의가 없다.

진골도 안 되는 허접한 등급 주제에 이런 막말을 하다니.

팬클럽 채팅에서 저런 소리를 했으면 바로 관리자한테 요청해서 정지시켜버렸을 것이다.

[혹시 문제는 어떤 걸 냈죠? 기억나는 것 만이라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답변 메뉴얼을 만들고 있어서….]

“답변 메뉴얼? 그건 왜요?”

[…모든 문제를 맞히면 멀쩡히 살려준다고 하니까요. 저는 두 문제를 틀려서 양쪽 다리를 잘렸습니다. 약속대로 다른 괴수들이 공격하지 못하게 해 주고 살려주긴 했지만…답변을 전부 기록해두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스더를 만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퀴즈의 컨닝 페이퍼를 만들겠다는 건가….

괜찮은 생각인 것 같지만, 큰 오류가 있다.

에스더는 문제를 다 맞힌다고 해서 멀쩡하게 살려주지는 않는다.

“아…얘기해 줄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맞힌다고 멀쩡히 살려주는 건 아닙니다.”

[네? 하지만 에스더는 팬한테 한 약속만큼은 절대….]

“유성우는 영원히 함께라는 말 아세요? 문제 다 맞히면 진정한 유성우로 인정되어서 촉수 괴수로 만들어준다고 하더라고요.”

[이, 이럴수가…그래서, 촉수 괴수가 된 피해자와 생존자가 따로….]

팬이라고 해서 퀴즈를 냈는데 한 문제도 맞히지 못해 거짓말이라는 게 판별나면 팔다리를 하나씩 떼낸다.

시험을 쳐서 모든 문제를 맞히면 촉수괴수로 만들어 데리고 다닌다.

거짓말을 싫어하고, 자신의 팬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에스더다운 행동이다.

냉혹하고 잔인해 보이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조금 묘하기도 하다.

다섯 문제 중 한 문제라도 맞힌다면 사지를 잘라내지만 살려는 준다.

괴수에게 죽지 않도록 괴수들을 통제해주기까지 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죽지 않게는 해준다는 얘기다.

트루 비전의 기술력 덕에 잘려나간 사지는 드론 너머의 통신병처럼 완벽에 가깝게 동작하는 의족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뭐…그래도 좋은 생각이긴 하네요, 문제는…대충 기억나는 것만 말씀드리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생일이 언제인지, 에스더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생일 문제와 싫어하는 문제는…맞히셨나요? 그건 팬클럽 아카이브의 기록대로 대답해도 오답으로 처리하던데.]

“아, 생일은 8월 8일이 아니라 12월 4일이 맞아서 그래요. 싫어하는 음식은 새우입니다.”

“어? 그, 그건 어떻게…알아요? 에스더가 새우 싫어하는 거….”

“생일이 12월 4일이었어…?”

좀 더 드론 너머의 통신병에게 협조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신뢰를 쌓기 위해 태연하게 문제와 정답을 얘기해주고 있었더니 그레이프와 래피드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반응을 보니 마법소녀였을 때 가장 가까이 지내던 둘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새우 칩 같은 것도 안 먹고, 새우 들어간 음식 자체를 안먹던데…손도 안 대고, 해산물 들어간 음식 먹을 때 뭐가 들어갔는지 체크하는 거 보니까 아마도 새우 알러지….”

[자, 잠깐…마법소녀였을때 에스더랑 실제로 아는 사이셨던 겁니까? 그건 대체 어떻게 아시는 거죠?]

“아뇨, 생방송 영상 보면 가끔 저러잖아요? 아…실버 등급이라 영상을 못 보셨구나.”

[그건 생방송을 봤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냥 봐서는 알 순 없고 조금 열심히 봐야 하긴 하죠.”

나와 같은 등급이라면 맞힐지도 모르겠지만 실버 등급에게는 조금 어려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덤덤하게 대답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옷소매를 잡아당겨져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레이프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지, 진짜…팬이었어요? 팬이었던 거에요?”

“어…팬이라기보다는 그냥 팬클럽 회원….”

“제, 제, 제, 제거는?! 제 영상 채널은 구독했어요? 등급 어느 정도에요?”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

래피드는 팬 미팅 때 여러 남자들의 묘한 시선을 견디지 못한 뒤 채널 자체가 사라져 있고, 에스더는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방위군에게 검열당해 정식 채널은 모든 영상이 내려가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레이프는…채널이 있기는 하지만 영상도 잘 올라오지 않고 업로드가 게을러서 정식 채널보다 팬들이 운영하는 채널이 더 활성화되어있다.

“…아이언인데요.”

아이언 등급은 팬클럽 가입도 하지 않고 그냥 영상채널 구독만 눌러줬을 때 받을 수 있는 등급이다.

팬클럽에 가입한 뒤 생기는 브론즈 등급보다도 더 낮다.

아카이브 영상을 보는 것에도 제한이 있고, 실시간 방송도 볼 수 없으며 공개된 영상만 조금 체크할 수 있는 정도다.

미안하긴 하지만 그레이프의 채널은 볼 것도 없었고…매달 구독료를 지불하는 것도 이미 에스더에게 하고 있어 부담스러웠던 나는 에스더를 제외한 누구의 팬클럽에도 가입해 있지 않았다.

그레이프가 같은 회사의 팀장이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관심이 가서 가입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그래도 자위 영상을 올리는 비밀 계정은 팔로우하고 있다.

“읏…아…으….”

솔직한 대답을 들은 그레이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충격받은 듯 눈가를 떨다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린다.

그레이프는 그대로 내 옆에서 뒷걸음질 치다가 뒤돌아서서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드론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저, 저는…잠깐, 돕, 도와주다가…올게….”

“어? 그레이프?”

래피드가 말리기도 전에 뛰쳐나간 그레이프가 어두운 곳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레이프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밝은 곳에는 드론과 나, 래피드만 남게 되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 신경 쓰인다.

[그레이프 님이 도와주시면 한결 수월하죠, 드론만으로는 조금 힘이 딸리는 곳도 있으니까…마저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아, 네.”

나는 그레이프가 사라진 쪽을 보고 있다가 드론이 한 얘기를 듣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 급한 건 드론 너머의 상대와 대화하는 것이다.

얘기에 집중하자.

“생일은…좀 예전 정보가 필요한데, 마법소녀 각성 전에, 아이돌 때 생일 정보가 필요하네요.”

[아니…그때 정보는 인터넷하고 비전넷이 섞일 때라서….]

“네, 데이터 소실 기간이 겹쳐있긴 하죠…?”

데이터 소실 기간이라는 건 괴수의 마력파장에 취약한 인터넷에서 훨씬 더 저항성, 보존성이 좋은 비전넷으로 서버를 옮기며 모든 데이터를 트루 비전에게 검열, 삭제, 소실 당한 기간을 말한다.

그 과정을 거치며 대부분의 정보는 한번 걸러지게 되어, 트루비전과 방위군에게 검열받고 허가받은 정보만이 네트워크상에 떠돌 수 있게 되었다.

에스더의 본래 생일이 12월 4일이라는 정보는 이 소실된 정보에 속한다.

“다른 건…조금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앞서 말한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말과 모순되게 되니, 모든 답변을 다 얘기해 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문제와 답변이라고 생각된다.

충분히 상대에게 신뢰감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정보들이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퀴즈 답변을 모으는 데 왜 이렇게 어려움이 있었는지도…알겠네요…정답을 많이 아는 이들이 모두 촉수 괴수가 되었으니….]

“기억이 좀 더 나면 전부 얘기해드리겠지만, 이상하게 지금 머릿속이….”

[아마도 강력한 마력파장에 노출된 영향일 겁니다. 일반인 중 일부는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하더군요.]

“마력에 노출되면 기억을 잃는다고요?”

[…이 이상은 제한정보입니다. 기억을 잃는 경우는 아주 드문 거로 알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통신병의 태도가 훨씬 좋아진 게 느껴진다.

목소리를 읽어볼 때 적대심이나 의심보다는 감탄, 경악에 더 가깝다.

영업 중이었다면 지금 바로 물건 하나를 내민 순간 하나 정도는 사 줄 만한 상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영업?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내가 영업사원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난 영업 같은걸 해본 적이 없다.

“혹시…강한 마력에 노출되면 이상한 기억이 생기기도 하나요?”

[…감염체에 잠식되었을 때의 초기반응이군요. 신체조직을 조금 절개해봐도 되겠습니까?]

“아뇨! 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기억을 잃기도 한다니까 그냥 좀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흐음….]

내 현재 상태에서 위화감을 느껴 한 질문에 기껏 낮춰놓은 경계심과 의심이 확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신체조직을 절개하는 정밀조사에 들어가면 최면어플 뿐만 아니라 왼손의 촉수까지 들킬지도 모른다.

자칫 잘못해서 감염체 취급당하게 되면 방위군의 판단에 따라 절단 후 감금관찰 또는 소각까지 갈 수도 있다.

“감염체는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도 느껴지는 게 전혀 없어요. 그리고 이 분은 에스더한테서…절 구해주기도 하셨고.”

[구해줬다고요? 마법소녀를 말입니까?]

“감염체라면 마법소녀에게 적대감을 품게 되니까…있을 수 없는 행동 아닌가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치만 구해줬다니…마법소녀를요…?]

“그냥 에스더가 검을 들고 휘두르려는 거에 달려들어서 막은 것뿐이에요.”

조금 불안해지려던 순간, 래피드가 대화에 끼어들어 날 변호해줬다.

래피드의 발언이 도움이 되어 다시 통신병의 의심이 낮아진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한 나는 래피드에게 눈짓하며 고맙다는 의미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감염체에 잠식되었을 때의 초기반응이라니…그럼 내가 영업사원이었다는 기억은 혹시 왼손의 촉수 괴수가 가진 기억인 걸까?

이상하게도…그건 아닌 것 같다.

엉망이 된 기억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일체감이, 동질감이 이 기억의 주인이 나라는걸 느끼게 해준다.

…현재 내 상태에 의문이 많지만, 지금은 생각할 때도 아니고 질문할 때도 아니다.

[그건 대단하군요…흠…알겠습니다, 마법소녀의 대응 미숙으로 인한 사고, 우연히 에스더와 접촉…팬으로서 상당한 정도를 넘어선 수준이어서 멀쩡히 생환…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기는 합니다.]

일단 엉망이 되어있는 머릿속을 뒤로하고 통신병과의 대화에 집중하자 드론이 다시 조금 전 보여준 사진을 내밀었다.

무릎 꿇은 내게 접근한 에스더가 무언가를 하고있는 사진이 보인다.

[…결국 이건 무슨 상황이셨던 거죠?]

당연한 의문이고, 당연한 질문이다.

이 상황이 되기 전의, 이런 상황에 빠지기까지의 의문과 의혹은 전부 납득시켰다.

하지만 이게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는 알아낸 게 없다.

노이즈가 가득한 사진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황금빛으로 빛나는 에스더가 내게 촉수를 심고…뭔가를 하나 더 심었던 것 같은 건 기억난다.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어서 나도 그 정체를 알고 싶기는 하지만…말해선 안 된다.

난 방위군의 실험체가 될 생각은 없다.

촉수가 심어진 것도 있고…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기에는 곤란한 질문이다.

하지만 모든 걸 말해줄 필요는 없다.

나는 드론에게 잘 보이게끔 얼굴을 붉히고 래피드쪽을 힐끔거리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보지…빠, 빨았…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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