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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144화 (144/299)

< 144화 > 질문 (3)

사진 속에는 내가 에스더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옆에서부터 찍혀있다.

하지만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기에는 노이즈가 너무 심한 사진이다.

마력이 대체 얼마나 많이 뿜어져 나왔던 건지 사진 속의 나는 팔과 다리가 완전히 잘려나간 것처럼 뒤틀려 있기까지 했다.

“어….”

혹시 최면어플을 들킨 건가 싶었는데 일단 그건 아니라는 사실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진정된다.

최면어플에 대해서 뭔가 알아낸 게 아니라면 긴장할 필요는 없다.

드론 너머 통신병의 질문은 정말 말 그대로 ‘이게 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는 질문으로밖엔 들리지 않는다.

쉘터 내부 촬영기기는 아주 낮은 프레임과 낮은 화질로 촬영된다.

네거티브와 마법소녀의 마력반응에서 최대한의 저항력을 보이기 위한 여러 장치를 장착하고 있지만, 기술적 한계로 그렇게밖에는 촬영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혹시라도 쉘터 안에 사고가 일어났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한 장비이지만, 그런 기술이 들어가 있는데도 이렇게나 노이즈가 심하다는 건…마력이 그만큼 강력했다는 얘기다.

이 정도로 강한 마력이라면 음성 기록은 더 크게 망가져 있을 테고, 아마도 이 사진이 제일 잘 나온 사진일 게 분명하다.

이건 추론이 아닌, 통신병을 지원했던 사람으로서의 확신이다.

“글쎄요…기억이 잘….”

[기억상실이 일어났다는 겁니까,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입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양쪽 다입니다.”

[흠….]

드론에서 스캔 파장이 계속해서 몸에 쏘아지며 질문이 계속된다.

내 몸을 살펴보는 이 빛이 뭔지도 알고 있다.

투과된 빛으로 심전도와 호흡운동 반응을 체크하는 간이 거짓말 탐지기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에스더에게 촉수를 심어지는 순간 확실히 기억이 어느 정도 날아갔다.

무슨 기억이 날아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촉수를 심어진 전후의 일도 잘 기억나지만…뭔가가 머릿속에서 들어왔다가 사라지긴 했다.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긴 해도 이상하게 대단한 건 아닌 것 같아서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체크 결과 문제는 없으시군요, 전체적으로 그린…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어떤 걸 말씀이신가요?”

[전체적으로, 사건 경위를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촬영 자료가 다 망가져 있었나요?”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떠보려고 했는데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필요한 정보는 알아냈다.

일단 나를 곧바로 제압하거나 체포, 정밀조사를 하려 들지 않는 걸 보니…내 몸에 촉수가 심어졌다는 사실은 모른다.

바이러스성 괴수 사건 이후의 민간인 감염 의심자 대응 메뉴얼에는 특수감염 의심자를 확인한 순간 곧바로 드론을 통해 일차적인 제압을 하게끔 되어있다.

최면어플의 존재를 안다면 마법소녀들을 조종할 것을 경계했을 테고, 촉수의 존재를 안다면 나를 곧바로 제압했을 테니 둘 다 모른다고 봐야 한다.

혹시 나를 경계하느라 움직이지 않는 건가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솔직하게 아무것도 모른다.

뭔지 모를 사진에 의심과 의혹만 품고 내가 뭔가 새로운 정보를 뱉어내지 않을까 하며 한번 떠보는 것뿐이다.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말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크게 나쁜 의도로 묻는 것 같지도 않다.

단순한 정보조사, 약간의 의문 정도인가…대충 파악했다.

묘하게 머리가 평소보다 훨씬 빠릿빠릿하게 돌아간다.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은 아니고, 상대는 의심만 할 뿐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건 알겠지만…그 의심이 뭔지 아직 모르겠다.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잠깐만, 잠깐만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통신병을 떠보려는 순간 래피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곧바로 드론이 옆으로 돌아서 래피드를 보고, 기계 손으로 귀엽게 경례한다.

대화에 끼어든 래피드는 무척이나 불편해하는 표정을 노골적이게 보이며 말했다.

“조금 전에도, 지금도 체크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왜 조사를 계속하는 거죠?”

[래피드님, 아시겠지만 메뉴얼상….]

“그건 감염위험자로 확인되었을 때의 메뉴얼이잖아요.”

[죄송합니다, 조사가 필요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네거티브한테 쫓겼고, 간부에게 인질이 된 뒤 이제야 풀려났어요. 체크에서 문제가 없다면 먼저 돌려보낸 뒤 조사 요청을 보내는 게 맞지 않나요?”

래피드가 말하고 있는 건 민간인의 사건 PTSD를 최소화하기 위한 초기 치료과정 중에 하나다.

일단 일상으로 돌려보내 위기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준 뒤, 사건 경위조사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래피드가 방위군에 제안해 추가한 메뉴얼이기도 하며, 꽤 잘 지켜지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번은 예외입니다. 첫째로 기록내용에 의문점이 많으며, 둘째로 애쉬님께서 제대로 조사해달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의문점이 대체 뭐죠?”

[…역 담당 마법소녀들에게서 받은 보고 내용을 보니, 민간인이 역에 있다가 자신들을 도와줬다고 나와 있습니다. 기록을 확인해본 결과 대상자는 통신병 지원 훈련병 중 역대 지휘평가 최다점수 기록자. 마법소녀의 짐이 된 것이 아니라 도왔다…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대체 왜 역 내부가 아니라 철로에 있었던 건지부터 의문입니다.]

래피드와 그레이프가 드론의 얘기에 듣고 보니 자신들도 궁금하다는 듯 나를 살짝 힐끔거린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이득이다.

길게 물어봐야 알 수 있었을 상대의 질문 의도를 래피드 덕에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묘하게 딱딱한 반응에서 나를 나쁜 의미로 경계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좋은 인식도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이런 이유에서였다면 이해된다.

특이한 일이 겹쳐 습격에 휘말린 시민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상한 사건이 섞여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

그것뿐이라면 내가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영업 경험을 살려서 의심을 완전히 지워버리면 된다.

이런 건 습격지에 숨어들었다가 빠져나올 때마다 몇 번이고 해온 일이다.

나는 곧바로 제약회사 직원일 때의 경험을 살려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 때문에 조사하는 거였군요…확실히 저여도 의심할 만 하긴 합니다.”

일단 상대의 호감을 얻기 위해선 상대의 의견에 동조해주는 게 중요하다.

내가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걸 알려주며 대화를 시작한다.

말하면서 웃는 얼굴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주 살짝 밑으로 까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억도 잘 안 난다고 하지, 보고 내용을 봐도 이해가 안 가지, 기계장비들은 전부 마력에 노출되어서 마비되어있지…하아, 고생이 많으십니다.”

훈련병이었다는 과거를 살려, 상대에게 공감한다.

비꼬는 말투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나도 무슨 기분일지 안다는 한숨을 섞는다.

그러자 드론이 따라서 한숨을 쉬며 내 말에 동조한다.

[하아…아시겠다면, 순순히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래피드 님도…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아, 일단 이걸로 몇 가지가 확실해졌다.

이미 기록된 데이터는 마력에 상하는 일이 드물지만, 기록 중일 때에는 마력에 의해 큰 피해를 입는다.

기기 기록은 대부분이 마력에 의해 망가져 있는 상태다.

내게 데이터 기록과 내 발언을 교차 검증하기 위해 질문하는 게 아니다.

데이터를 통해 상황파악이 불가능하니까, 내 발언을 그대로 기록해 넣기 위해서 조사하는 것뿐이다.

왜 이런 걸 애쉬가 명령했는지는 아직 정보가 없지만…그것까지는 몰라도 괜찮다.

상대는 내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애쉬에게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록물은 전혀 없고, 래피드는 은근히 내 편을 들어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화의 주도권은 내게 넘어온다.

“아, 네…기억나는 것만 말씀드리면 괜찮을까요? 조금 대답이 이상할지도 모르는데….”

[예, 훈련병 경험이 있으시니 아시겠지만, 답변은 전부 기록됩니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철로에 끼어든 건…완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어서 그냥 역에 잠깐 앉아있다가 다음 차량을 타야지 하고 있는데…갑자기 마법소녀들이 교대하는 듯하다가 저한테 가까이 오라고 해서….”

[…마법소녀가 가까이 오라고 했다고요?]

“아무래도 역에 사람이 얼마 없고 제가 당황해서 도망도 못 치고 있으니까 일단 차량에 넣어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먼저 감염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드니까 다른 한 명이 당황해서 잠깐만 여기 있으라고 하길래…뒤에서도 감염체 소리가 들려서 불안해서 쫓아갔습니다.”

[마견은 보통 무리생활을 해 한 방향에서 모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실수한 것 같네요.]

일단 가장 먼저 잘못을 은근하게 아르나에게 넘기며 가장 큰 의문을 해소시켰다.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드론 너머에서 수긍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레이프가…음….”

“가, 같은 회사…사람이고 제가 마법소녀라는걸 알고 있어요.”

설명하다 말고 말해도 되는 건가 싶어 그레이프쪽을 힐끔거리자 그레이프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 대신 말해줬다.

말해줘서 고맙긴 한데, 틀린 말이 조금 섞여 있다.

“네, 오늘 퇴사했지만…그래서 내려와 준 것 같아요.”

[…퇴사하셨다고요?]

“아, 괴롭힘이 좀 심해서요.”

“읏, 윽…읏….”

덤덤하게 대답하자 옆에서 그레이프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반대쪽을 보니 래피드도 계속해서 그레이프를 힐끔거리고 있다.

“아무튼 그레이프가 지켜주다가 쉘터에 넣어줬는데, 에스더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갑자기 저를 붙들고 퀴즈를 내서….”

[에스더 퀴즈군요.]

“알고 계시네요? 뭐, 방위군이시니까 당연히 아시려나…맞습니다. 아무튼 그걸 다 맞혔더니 촉수 괴수로 만들어줄 테니까 영원히 자기와 함께하자면서….”

[잠깐만…뭐라고요?]

순순히 말해도 되는 정보만 입 밖으로 꺼내고 있는데 갑자기 드론이 기계 손을 내밀며 말을 끊었다.

기계 목소리인데도 깜짝 놀랐다는 감정이 전해진다.

[자, 잠깐…그러니까, 퀴즈를 전부 맞혔다고요?]

“네.”

덤덤하게 대답하자 드론뿐만 아니라 그레이프와 래피드도 옆에서 깜짝 놀라며 입을 벌린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놀라는 거지?

의문을 품으며 그레이프와 래피드를 힐끔거리자 드론이 다시 내게 질문했다.

[래피드님이 빠르게 움직여 때맞춰 도착하신 게 아니라, 퀴즈를 전부 맞히고 있던 거라고요?]

“…그런데요?”

[잠시만요, 시간이 조금 이상한데…쉘터 개방 시간과 래피드님 도착 시각이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진짜로 다 맞혔는데요…?”

[…질문 하나만 하죠, 팬클럽 넘버가 몇 번이시죠?]

“124번요. 다이아 회원이에요.”

[100번대…다이아 클래스…구독기간은 혹시….]

"구독기간 기억도 안 나긴 하는데, 초기멤버라서 VIP 붙어있었어요."

[히이익….]

이 말에 놀라다니, 이 반응 자체가 놀랍다.

이런 반응은 오랜만이다.

이런 거에 놀라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어? 혹시 유성우 멤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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