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질문 (1)
에스더가 사라지고 난 뒤 한동안 당황스러워하던 그레이프와 래피드는 주변에서 아무런 마력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얘기했다.
“갑자기 왜 돌아간 걸까?”
“…에스더는 예전부터 변덕이 심했으니까, 또 그거 아냐?”
“혹시, 세뇌에서 풀린 건….”
“그건 아닐 거야 래피드, 애쉬가 말했잖아. 네거티브가 된 뒤로는…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다고.”
지하철 역은 이미 완전히 무너져 내려 역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지상에서 깊은 지하까지 이어진 용암 구멍이 서서히 식어 굳으며 검게 달라붙은 벽면에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위가 떨어져 내린다.
곧바로 그레이프가 나를 꽉 안아 옆으로 비틀고, 래피드가 남은 마력을 쥐어짜 방벽을 펼쳐 바위 파편을 막았다.
소리와 진동이 원인이 되어 벽면의 바위가 우르르 떨어져 내려와 흙먼지를 일으킨다.
그 흙먼지 속에서 가만히 방벽을 펼치고 서 있던 래피드는 바위가 전부 떨어지고 난 뒤 마법을 사용하던 손을 천천히 떨어뜨리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마력만…마력만 많았어도, 리와인드로 되돌려놓았을 텐데…아니면 더…되돌릴 수만 있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애쉬랑 너는 훈련 중이었고, 스승님도….”
“알아…알지만…하아, 맞아…어쩔 수 없었어….”
뭔가 내가 알아듣지 못할만한 둘만의 얘기를 하던 래피드는 얘기를 갑자기 끝내고 입을 다물었다.
그레이프도 마찬가지로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둘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흙먼지를 마력으로 눌러 가라앉히고 마력을 퍼뜨렸다.
마력이 파도처럼 퍼지며 주변의 마력반응을 살피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래피드가 공간을 열어 비전폰을 꺼냈다.
“상황 종료, 파괴상태는 좀 심각…하네요, 복구 드론 보내주세요.”
곧바로 방위군에 짧게 연락한 래피드가 그레이프에게 조용히 안겨있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또 보네요.”
“아, 어…네.”
내게 가까이 다가온 래피드가 조금 머뭇거리면서 인사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줬다.
그 모습에 내 옆에 서 있던 그레이프가 깜짝 놀라며 래피드와 나를 번갈아 본다.
“어…?”
“다친 데는…그레이프, 잠깐만 비켜줄래?”
그레이프는 가만히 나를 안고 있다가 천천히 팔을 풀어주고 몸을 움찔거리며 내게서 아주 약간 떨어졌다.
당황하고 놀라면서도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다.
래피드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레이프를 지나쳐 내게 손을 뻗어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하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리와인드.”
“윽…!”
몸 여기저기에 나 있던 상처가 억지로 되감기며 상처가 사라진다.
래피드의 마력이 흘러들어오며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잠시 후, 아주 잠깐의 어지럼증이 사라지고 조금 전과 달라진 점들이 내게 느껴졌다.
잘려나간 옷이, 뒷머리가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상처도 일부는 남아있지만, 불에 덴 것처럼 붉어진 부분은 전부 사라져있다.
왼손은…그대로다.
“…하아, 죄송해요, 지금 마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라서….”
“아, 아뇨…네….”
마법소녀들의 마법이 각각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선 방위군에서 정보 자체를 제한하고 있어서 알고 있더라도 비전넷에 정보누설을 한 순간 조사관에게 조사당하게 된다.
마진사의 유저 토론을 통해서 짐작하고 있긴 했지만…래피드의 마법은 누군가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대상의 시간을 되감는 마법이다.
저번에 이어서 또다시 이렇게 직접 체감해보니 확실히 알겠다.
회복된 몸을 조금 움직여보니 그럭저럭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근육통도 있고 쓸리고 긁힌 상처도 남아있긴 해도…그 외에는 멀쩡하다.
뒤늦게 긴장감이 풀리면서 몸에 쌓여있는 음액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심장이 잠깐 두근거렸지만, 왼손의 촉수가 음액을 빨아들여 버렸다.
왼손이 차가워지며 취기가 갑자기 확 빠지는 것처럼 나른해진다.
몸에 쌓인 열기가 개운하게 빠져나간다.
…음액을 빨아들인다니, 놀랍다.
내 몸의 상태를 뒤로 되감았는데도 왼손의 무언가가 그대로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왼손의 이것…어쩐지 촉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 촉수라고 지칭하고는 있지만, 뭔지도 모르겠다.
래피드의 마법에도 이게 여전히 내 몸에 있다는 건 스스로 마법에 저항했다는 걸까, 아니면 내 왼손에 촉수가 심어지기 전까지 내 몸 상태를 되돌리기에는 래피드의 마력이 부족했던 걸까.
하지만…마력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데다 뭔지 잘 모를 두통도 사라졌고, 상처를 치료해 주기도 했고…지금 이렇게 음액을 해독시켜주는 것도 같고….
정말 이게 대체 뭔지 정체를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내게 해를 가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에스더는 이게 있으면 다른 괴수들이 날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했었다.
1번이라고 했는데…뭔지 모르겠지만 날 특별취급 해주고 있다는 건 알겠다.
…대체 왜지?
왜인지, 뭐인지, 어째서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도…어쩐지 이게 여기 있어야 한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저기, 이건…그, 이런 말 하기 죄송한데….”
왼손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 내게서 손을 떼고 머뭇거리고 있는 래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을 보니 묘하게 화난 듯이 보이기도 하고,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갑자기 에스더한테 달려든 거에요?”
“아….”
나는 래피드의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며 시선을 피했다.
내 나름 도와주겠다고 뛰어든 게 래피드에게는 방해였을지 모른다.
오는 걸 알아채고 공격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끼어들었으니…래피드의 성격을 생각하며 무척 놀랐을 것이다.
“그…위험한 줄 알고 저도 모르게….”
“에스더가 오는걸…보고 있었다고요?”
“아뇨, 에스더가 오는 걸 봤다기보다는…그냥 갑자기 그, 마력 회복하고 있는 거 신경 쓰고 있었더니…위험하다는 게 느껴져서.”
정확하게는 에스더의 감정이나 생각, 행동이 그대로 전달되어 와서 눈치챘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지, 직감…이라는 건가요?”
“뭐,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걸 갑자기 느꼈다고 해도 그렇게 뛰어들면 안 돼요, 대체 왜 그랬는지…그, 마음은 고맙지만 마법소녀는 저기, 그런 공격 받아도 괜찮으니까….”
얘기하다 보니 묘하게 예전에 어딘가에서 했던 얘기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잠깐 생각해보니, 어디에서 했던 얘기인지 떠올랐다.
그레이프랑 술자리에서 마법소녀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왔던 얘기랑 비슷하다.
“아니…뭐, 제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마법소녀라고 해도 여자애잖아요? 그냥 여자애가 맞는걸 보는 게 싫기도 하고….”
말하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난 마법소녀를 좋아하고 마법소녀가 싸우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마법소녀가 당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들처럼…마법소녀가 다치고, 망가지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
A 시에 오고 난 뒤 사회에 치이고 회사에 너무 찌들어서 감성이 죽어간 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이상한 거부감이 느껴진다.
…혼란스럽다.
조금 전까지 그런 일에 휘말려 있었어서 그런건지…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느낌이다.
당연한 것 같은데…왜 그게 당연한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마법소녀니까 그런건 괜찮….”
“제가 안 괜찮아서 멋대로 몸이 움직인 거에요. 방해됐으면 미안합니다.”
“네? 아니, 방해…가 아니고…위험하니까 다음부터는…아니, 어…?”
래피드가 내 대답을 듣고 조금 놀랄 정도로, 마법소녀가 다치고 상처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마법소녀에게 고마워하기는 해도 마법소녀가 다치는 걸 걱정하지는 않는다.
마법소녀는 사람이 아니라 초인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거티브한테 납치당해 양분이 되긴 해도 죽지도 않아서 구출되기도 하니까…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왜 그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되는 거지?
죽지 않는다 해도, 구출되기 전까지 죽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을 겪게 되는 건데…?
“저, 저기! 둘…잠깐만!”
현실과 감정이 갑자기 어긋나는 이질감에 위화감을 느끼려는 순간 갑자기 그레이프가 내 앞에 끼어들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래피드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는 게 보인다.
래피드와 내 사이를 가로막은 그레이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래피드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둘이…그, 아는…사이야?”
“아….”
래피드와 내가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닌 것처럼 대화하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묘한 사이긴 하다.
래피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는 듯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가 조금 늦게 대답했다.
“아는…사이, 인가…요? 저희?”
“어….”
내가 일방적으로 래피드와 섹스하고 싶어서 꼬시고 있고…래피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꼬셔지는 중이다.
지금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관계이니, 그냥 얼굴만 서로 아는 사이일 뿐이다.
“…아는 사이 아닐까요?”
“음…아, 이름이…저기, 앵거…맞으시, 죠? 그레이프가 그렇게 부르던데.”
“아, 네.”
“그, 앵거 씨하고는 우연히 4번 상가에서 만나서…아! 전에도 에스더한테 습격당하셨잖아? 그때 보고 날 알아봐서…?”
“어, 어…? 그랬지…? 앗, 그러면…그때 처음 본 거야?”
“응, 그러고 나서 케이크 가게에서…알지?”
“아아…단 거 좋아하니까, 아하~아….”
래피드가 나와의 미묘한 관계를 설명하자 그레이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에스더에게 처음 습격당한 때의, 내게 마법소녀라는 사실을 들켰을 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다.
래피드도 말하다 말고 뭔가 깨달은 것처럼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있다가 두 손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아, 혹시 에스더가 앵거 씨…? 를 자기 팬이라고 한 게 혹시…전에 습격할 때 뭔가 대화해서…?”
“아! 그러고 보니까…뭔가 대화를 하기는 했었…죠? 앵거?”
“…앵거? 그러고 보니까 그레이프…아까부터….”
이번에는 래피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레이프와 내 쪽을 힐끔거린다.
그레이프가 래피드와 내 사이를 궁금해한 것처럼 내가 그레이프와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그러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레이프가 래피드에게 대답했다.
“아! 응…서로 아는 사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