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별 (7)
벤다거나, 참격이 날아가는 것과는 다르다.
래피드가 인식하고 있는 앞의 공간이 통째로 갈라진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아…?!”
불의 검을 찔러 들어오던 에스더에게 내가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래피드의 기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법은 이미 발동됐다.
취소할 수 없다.
“안돼…!”
이미 지면을 박차고 날린 몸이 래피드의 마법 안으로 들어간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그레이프의 목소리와 함께 래피드의 마법이 공간을 찢는다.
지면이 갈라지고, 공기가 갈라지고, 빛이 갈라진다.
에스더로부터 흘러나오던 마력이 갈라지고 불이 갈라지고 그레이프의 방벽이 찢겨나간다.
에스더의 눈이 커지고, 불의 검이 빠르게 사라진다.
촉수 꼬리와 날개가 내 몸을 잡아 끌어당긴다.
에스더의 마력이 래피드의 마법을 막아내며 버티는 찰나의 순간에 내 몸을 사선에서 잡아 꺼낸다.
오싹한 감각이 등을 핥아 올리고 지나가며 머리카락이 소리 없이 잘려나간다.
강력한 마력에 쓸려 올려온 피가 머리를 때린다.
그리고 그 직후, 내 바로 옆에서 빛이 번쩍하고 빛나는 것과 함께 어두운 터널이 세로로 갈라졌다.
이제 알았다.
공격할 수 없다는 최면은 제대로 작동되어도, 내가 공격에 끼어들면 공격은 취소되지 않는다.
내가 건 건 실행을 막는 명령어지, 실행된 것을 긴급정지시키는 명령이 아니다.
“허억…! 허억…! 허억…!”
내가 지금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한 건지 깔끔하게 세로로 갈라진 선을 보고 뒤늦게 깨달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놀라서 굳어있던 심장이 조용히 숨을 죽이다가 점점 빠르게 뛴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하는 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운다.
마법소녀의 마법에 달려들다니, 자살 행동이나 다름없다.
최면이 완전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이런 짓은 위험하기도 하고 리스크도 큰데…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였다..
“어? 어?!”
“앵거?! 무슨!”
“뭐하는 짓이야!”
래피드와 그레이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에스더의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큰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굴에서 부드럽고 폭신한 촉감이 느껴진다.
부들부들 떨리는 고개를 들어 눈을 뜨고 피가 너무 빨리 돌아 잘 맞지 않는 초점을 맞추니 놀란 얼굴을 하고 내 위에 올라타 있는 에스더의 얼굴이 보인다.
갑자기 에스더가 나를 꽈악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불의 검을 지운 손으로 내 몸을 만진다.
손이 닿은 머리 쪽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방금 마법에 베여 잘려나간 뒷머리가 상당히 짧아져 있는 것 같다.
옷깃도 짧아진 것 같지만, 몸에 상처는 없다.
“너, 너…이게…무슨…!”
“헉…헉….”
화가 난 에스더가 내게 왜 자기를 방해했냐고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한번 몸을 던진 것만으로 전력질주를 한 것보다 숨이 차 있다.
“마법, 소녀…주…죽는…허억…하아….”
마법소녀한테 죽는 줄 알았다.
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려던 나는 숨이 너무 차서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심호흡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가만히 숨을 쉬고 있는 내게 갑자기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에스더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팔을 붙잡은 손을 꽉 끌어안으면서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처음 보는 눈빛을 하고 있다.
울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깨닫고 놀란 듯한, 묘한 눈빛이다.
“그거 때문에, 그거 때문에 이런 짓을 해?!”
“어…?”
“바…바보 아냐…?! 진짜…너…!”
대체 뭘 깨달은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왼손이 욱신거리고 있긴 하지만 생각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감정이 너무 크고 복잡해서 통로를 지나가지 못하고 막혀버리는 느낌이다.
“에스더!”
그때, 그레이프가 갑자기 검을 앞에 겨누고 달려들었다.
곧바로 날개를 펼쳐 나를 안은 채 몸을 일으킨 에스더가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손으로 그레이프의 검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래피드가 내 쪽으로 손을 내밀고 펼친 손을 꽉 쥐었다.
“이 자식들이 또…!”
래피드의 마법으로 내 몸이 부드럽게 잡아당겨 지며 그레이프의 검이 에스더를 향해 연속해서 휘둘러졌다.
또다시 서로 지키고 빼앗는 입장이 바뀐듯한 상황에 이를 악문 에스더의 마력이 끓어오른다.
그대로 검의 옆면을 손톱으로 빗겨치고 있던 에스더는 갑자기 뭔가 머릿속에 떠올린 것처럼 검을 손에 쥔 채 움직임을 멈췄다.
“쳇.”
“앗?!”
뭔가 내키지 않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에스더가 나를 그레이프 쪽으로 밀어 던졌다.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에 당황한 그레이프가 녹아내리고 뜯겨진 방패를 쥔 손으로 나를 받아 끌어안았다.
푹신하게 꽈악 조여드는 압박감에 묘한 느낌이 든다.
“…질렸어.”
“…어?”
“질렸다고, 아아~질렸어…돌아갈래.”
갑자기 황당한 말을 한 에스더는 그레이프에게 안긴 나를 힐끔거리며 날개를 크게 펼쳤다.
천천히 몸을 띄워 올린 에스더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공중을 내리긋자 갑자기 공간이 일그러지고 쪼개지기 시작한다.
돌아간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대놓고 차원문을 열고 있다.
“그런 식으로 또 속임수를…!”
“속임수 아니니까 검 내려 그레이프!”
이번에도 또 도망치는 척하고 다른 곳에서 공격하는 건 아닐까 경계하고 있는 래피드와 그레이프의 모습을 본 에스더가 짜증 내며 말했다.
의심 좀 하지 말라며 다 열리지도 않은 차원문에 한 손 한 발을 넣은 에스더가 내 쪽을 힐끔거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가 바짝 세워지며 멈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갈래. 어차피 여기서 더 해봤자 내 승리인 것 같고, 너무 약해서 재미없어졌어.”
“이번엔 대체 무슨….”
“아아~! 아무 짓도 안 한다니까! 이쯤 하고 그냥 가준다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적당히 좀 하라며 짜증 내는 에스더가 이제 겨우 반쯤 열린 차원문에 억지로 두 다리를 집어넣었다.
이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정말로 더 뭔가 할 생각도 없고, 그냥 이대로 돌아가겠다는 의미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을 불태우던 검은 불의 마력도 전부 사라지고 있다.
에스더의 주변에도 밝은 빛의 붉은 마력만이 조금 일렁이고 있어 더는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에스더는 여기서 더 싸울 생각이 없다.
지금 공격하면 에스더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지만,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당황한 래피드와 그레이프는 멍하니 에스더가 차원문에 들어가는 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쩌적쩌적 소리를 내며 깨지는 차원문에서 상체만 빼꼼 내민 에스더가 나를 가만히 노려본다.
왼손이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따끔거리며 에스더의 생각이 흐릿하게 전해져 들어온다.
걱정하는 건가…?
짜증도 내고 있고, 한심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쩐지 기뻐 보인다.
“갈 거니까, 너네는 마법소녀답게 구조나 잘 해. 거기 구조할 사람 있잖아.”
“갑자기 대체 왜….”
“몰라, 돌아가고 싶어졌어. 싸우기 싫어.”
“에스더? 설마…네거티브에서…?”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래피드, 이미 늦었으니까. 애초에 그런 걸 원했으면 네 주특기로 날 되돌려 놨어야지?”
“그건…읏….”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레이프도, 에스더도 조금 전까지 싸우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친구처럼 대화하고 있다.
감염되어서 네거티브의 간부가 된 마법소녀와 친구였던 마법소녀의 대화라니, 굉장히 어색하게 들린다.
원래는 친구였던 것처럼…아니, 그러고 보니 이 셋은 원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애쉬, 래피드, 그레이프, 에스더, 릴리…이 다섯은 네거티브 습격이 일어난 초창기에 함께 행동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아, 그레이프…너…방패 잘 쓰더라. 왜 지금까지 안 쓴 거야?”
“어, 어?”
“응…? 그러고 보니까 너 맨 처음에는 방패 들지 않았나?”
“어, 어어…근데 애쉬가 나한테 안 맞다고….”
“…애쉬가?”
에스더가 마법소녀였을 때의 기억 때문에 저절로 대답하던 그레이프가 깜짝 놀라며 방패를 내려다봤다.
뒤늦게 지금 쓰고 있는 방패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떠올린 듯 그레이프의 표정이 굳는다.
방패는 이미 불에 타고 에스더의 마력에 씹혀 너덜너덜해져 있다.
루이의 방패는 그레이프의 검과 같은 특수한 소재로 되어있는 고가의 장비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레이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를 꽈악 안은 그레이프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방패가 안 맞는다고? 저게?”
그레이프의 대답을 듣고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린 에스더가 고개를 들고 래피드 쪽을 바라봤다.
그대로 가만히 래피드를 보고 있던 에스더는 고개를 홱 돌리며 차원문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에스더를 삼킨 차원문이 파직파직 소리를 내며 일그러진 금속판을 힘으로 잡아당겨 펼치는 것처럼 원래 형태로 돌아간다.
네거티브 간부가 혼자서 이동하는 차원문은 순식간에 열 수 있다더니…정말이다.
정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에스더가 사라지고 나는 그레이프와 래피드와 함께 터널 안에 남게 되었다.
황당하게도, 급박했던 상황은 이렇게 갑자기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