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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139화 (139/299)

< 139화 > 별 (5)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래피드와 그레이프, 에스더가 대치하고 있는 게 보인다.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접근하지 않고 노려본다.

그레이프와 래피드는 에스더가 갑자기 덤벼들까 봐, 에스더는 래피드가 이대로 공간이동을 사용해 도망칠까 봐 경계하고 있다.

래피드가 사용하는 포탈 마법은 단거리 연결 통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공간이동 마법으로 타인을 이동시키기 위해선 신체를 접촉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불의 검을 양손에 들고 꼬리를 앞에 겨누며 날개를 펼쳐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래피드가 마법을 사용하려고 마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달려들어서 접촉을 못 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래피드가 마력을 전혀 끌어올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눈치챈 듯 에스더의 자세가 변한다.

갑자기 달려들어서 한방을 찔러 넣는 게 아니라 마력을 끌어올려서 확실하게 처리할 생각이다.

“회복에는 얼마나 걸려?”

“…2 분 정도면, 빠듯하게.”

나는 옆에서 들려온 래피드와 그레이프의 대화를 듣고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사람을 구조하는 데 온 힘을 다하는 래피드는 때때로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 상황에 집중해 마력을 아끼지 않아 전부 사용해 버릴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사람 하나 공간이동 시켜줄 마력도 안 남았나 봐?”

래피드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에스더가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린다.

양손에 들린 불의 검이 함께 하얗게 새어가며 땅이 질퍽하게 녹아내릴 정도의 열기를 뿜어낸다.

그 모습이 래피드에게 난 아직 이렇게 힘이 넘치는데 넌 벌써 끝이냐고 묻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길래, 예전부터 마력 많다고 함부로 낭비하지 말라고 했잖아~?”

“래피드, 마력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

“래피드~보조해주지 않아도 괜찮겠어? 그레이프 혼자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닥쳐 에스더, 넌 나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에스더가 천천히 다가온다.

마력이 점점 밀집된 불의 검이 이글거리는 불꽃을 안으로 삼키며 하얗게 빛내는 검의 형태로 압축되어간다.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눈을 크게 뜨고 빛내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에스더의 앞에 나와 래피드를 등 뒤에 둔 그레이프가 자세를 잡고 서서 방패를 앞으로 세워 들었다.

“시간 벌기는 특기다? 그레이프 답네? 그런데…정말 자신 있어?”

그레이프와 래피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싸우는 건 여기까지다.

래피드는 포탈을 쉴 새 없이 여닫으며 마력을 거의 다 써버렸고, 에스더는 아직 힘이 넘친다.

그레이프 혼자서 에스더를 막아내야 한다.

에스더가 마법소녀였던 시절부터 그레이프가 에스더를 이긴 일은 손에 꼽는다.

방위군의 파워체크에서 나온 점수로도 졌고, 단순 모의전에서도 졌다.

에스더가 지는 경우는 그레이프가 혼자 싸우는 게 아닐 때뿐이었다.

에스더가 네거티브에게 감염당한 후에는 더 심하다.

혼자가 아니어도 지고, 래피드가 옆에 없으면 진다.

그래도 시간을 벌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가 진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고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 적도 많지 않다.

에스더가 괜히 래피드나 애쉬가 아니면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간부 취급을 당하는 게 아니다.

다른 네거티브 간부들도 강력한데, 에스더는 마법소녀였던 경험을 살려 공격해 더 까다롭다.

약점도 알고, 전략도 알고, 전투방식이나 버릇도 알고 있다.

에스더가 그레이프를 괜히 샌드백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마법소녀였을 때부터 그레이프랑 같이 훈련을 하거나 모의전을 하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잦아 약 올리듯이 쓰던 호칭이다.

그런데도 그레이프가 에스더에게 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에스더를 막아서고 있는 그레이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이 이상할 정도로 많아 무서울 정도다.

정상적인 양이 아닌데, 그 밀도도 무지막지하다.

뭔가 잘못된 것처럼 마력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마력을 갑자기 회복하는 것과는 다르다.

원래 있던 걸 억지로 잠시 키워올린 것처럼 끓어오른다.

“덤벼.”

그레이프가 조용히 말하는 것과 동시에 달려든 에스더의 검이 공중에 선을 그었다.

“그레이프 주제에 건방지게!”

공간이 일렁이는 걸 넘어 그냥 그대로 타들어 갈 정도로 달아오른 검이 그레이프의 방패에 가로막힌다.

방패를 녹여버리려고 불의 검이 마력을 뻗어 이글거리며 달려들지만, 그레이프의 마력이 방패 위에 빠르게 덧씌워져 버틴다.

그레이프는 서 있던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클립스! 그레이프! 저건…!”

“전에 말해준 그거지! 알고 있어!”

그림자에 가려진 것처럼 어두워지며 반투명하게 변한 에스더의 검을 그레이프의 방패가 막아 튕겨낸다.

에스더의 마법인 이클립스는 공간의 틈새에 걸쳐 상대의 공격은 무시하고 자신은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기괴한 마법이다.

저렇게 쉽게 방패로 튕겨낼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래피드와 에스더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레이프를 바라본다.

자세히 보니 그레이프의 팔과 방패 주변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다.

뭔가 마법을 쓴 것 같은 광경이다.

“초진동…? 너, 활성화 말고 다른 마법 각성을…!”

“그냥 빠르게 흔든 것뿐이야!”

“징그러운 년이!”

에스더의 말대로 좀 징그러워 보이는 방법을 사용한 그레이프가 팔을 진동시키며 방패로 공격을 막아낸다.

그레이프는 단순히 마력으로 강화한 팔을 마법소녀로서도 비정상적인 속도로 빠르게 흔드는 것뿐이니 마력의 소모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클립스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에스더가 이클립스를 해제하고 다시 공격해온다.

이클립스를 써서 한 번에 끝내지 못한 에스더가 날개를 펼치고 공중에 몸을 띄운 상태로 검을 휘두른다.

그레이프가 방패로 막아내면 날개를 살짝 움직여서 검의 궤도를 틀어 베어온다.

거기에 반응해 방패를 틀어 튕기면 반대쪽의 검이 찔러 들어온다.

한번 반응하게 두고, 빈틈을 키워서 노린다.

막을 수 없어야 하는 공격인데도 그레이프가 능숙하게 방패를 움직여 막는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공격을 막고, 빗겨치고, 튕겨낸다.

열기가 그레이프의 주변을 태우고 뿜어지지만 나와 래피드가 있는 곳으로는 조금도 닿지 않는다.

불이 이리저리 튀고 뿜어지며 내 양옆을 태우고 지나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게 에스더의 감상이 전해져 들어온다.

오싹할 정도로 방패의 각도가 완벽해지고 있다.

잊고 있던 걸 깨우치는 것처럼 그레이프의 방패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옆으로 돌아서서 날아들려고 하면 그레이프의 검이 방향을 틀지 못하게 찔러 들어오며 방해한다.

방패로 막고, 검으로 방해한다.

그레이프를 압박하던 에스더가 반대로 그레이프에게 압박당하기 시작한다.

내 눈앞에 있으라고, 이곳에 묶여서 나만 공격하고 있으라고 강요한다.

앞세워 찔러진 검을 방패로 막고 밑에서 올라오는 다른 검을 검으로 막는다.

찔러진 검을 미끄러뜨려 머리를 노려오자 방패를 능숙하게 틀어 검날을 튕겨낸다.

그레이프의 검에 막혀있던 검을 그대로 비틀어 찌르고, 날개를 펼쳐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빗겨쳐진 검을 다시 휘두른다.

그 순간 갑자기 왼손이 욱신거리며 이상한 게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짜증나게, 검으로 베려는 걸 전부 막는다면…속임수를 쓴다.

휘둘러지는 검은 속임수고, 진짜는 따로 숨겨져 있다.

“검 뒤에서 꼬리!”

회전하는 몸과 함께 휘둘러진 불의 검 뒤에서 에스더의 꼬리가 끝을 뾰족하게 세우며 찔러져 들어온다.

베어 들어오는 검을 피하지 않고 막으면 맞을 수밖에 없는 공격이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외친 목소리에 그레이프가 곧바로 반응해 방패의 위치를 바꿨다.

피했다가 혹시 래피드나 나에게 맞을까 봐 전부 막아낸다.

그레이프가 에스더의 검을 빗겨내고 꼬리를 막자마자 꼬리 끝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꼬리 끝에 준비하고 있던 마법이 폭발한 것이다.

조금 전의 마법은 불의 검에서 나오는 빛에 완전히 가려져 있어서 그레이프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로 맞았다간 치명상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에스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앵거어어어!”

왼손이 욱신거리며 에스더로부터 내가 그레이프를 도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전해져 온다.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거리며 얼어붙는다.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거야아!”

에스더의 마력이 뜨겁게 녹아내린 용암처럼 끈적하게 흘러나와 주변을 뒤덮는다.

흘러넘친 마력이 왼손을 찌르며 내게 에스더의 감정을 전달한다.

나를, 그레이프를, 래피드를 노려보며 박탈감과 후회, 분노를…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무거운 질투를 끌어올린다.

맹렬히 타오르는 질투가 에스더의 마력을 폭발적으로 부풀리고 있다.

“그레이프, 너만…감정으로 마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줄 알아…?”

“뭐?”

“이제 와서 잔재주 하나 익혔다고 우쭐해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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