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별 (4)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인 것처럼 말한 에스더가 역으로 래피드가 만든 포탈에 들어갔다 나오며 그레이프를 쫓아 공격하지만, 그레이프가 방패를 들어 능숙하게 검을 빗겨낸다.
곧바로 래피드가 포탈을 여닫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며 에스더가 쫓아 들어오는 걸 완전히 막아버렸다.
포탈을 쫓아 들어가는 게 막히자 에스더가 그레이프를 노리고 슈팅스타를 쏘아보내고, 슈팅스타의 탄환이 작은 포탈 안에 삼켜졌다가 에스더에게 되돌아온다.
보조기와 원거리 마법에 특화된 래피드와 근접전에 특화된 그레이프의 장점이 훤히 드러나는 연계다.
제대로 거리를 벌린 순간 답이 안 나올 정도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는 래피드의 마법과 근접하기만 하면 쓰러지지 않고 끈질기게 덤벼드는 그레이프의 전투방식이 합쳐져 에스더를 압박한다.
한 두 번 해본 게 아닌 듯 그레이프와 래피드의 움직임이 딱 맞아 떨어진다.
에스더가 검을 휘두르면 래피드가 에스더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고, 에스더가 그레이프의 공격을 피하면 바로 포탈이 생겨나 그레이프를 다른 곳에서 다시 꺼낸다.
에스더의 검이 그레이프의 방패에 막히면 그레이프가 검을 휘두르거나 래피드의 마법이 날아온다.
래피드의 마법을 격추하려고 마법을 사용하면 그레이프가 그 빈틈을 노려 공격하고 그레이프를 먼저 떨어뜨리려 하면 래피드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양손에 불의 검을 든다면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에스더의 한쪽 팔은 나를 안고 있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레이프가 압박하고 래피드가 공간을 비틀고 느리게 해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도 없다.
이런 식으로 연계해 버리면 뭐가 올지 알고있어도 당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안 되는 상황인 건 알지만, 마진사를 아무리 뒤져도 볼 수 없는 진짜 상위권 마법소녀들의 전투에 몸이 저절로 흥분한다.
중위권 마법소녀들과는 공격의 속도가, 질이, 위력이, 호흡이 다르다.
에스더가 공격의 패턴에 익숙해지려 하면 변칙이 섞여 들어온다.
래피드가 비틀어 놓은 공간 안으로 그레이프가 방패를 던지고, 허공에 멈춘 방패를 밟아 뛰어오른다.
밟은 방패는 비틀린 공간에서 탄환처럼 쏘아져 그레이프의 뒤에 숨어 에스더를 노리고, 빗맞은 순간 포탈 안으로 들어가 다시 에스더의 뒤에서 날아온다.
포탈 안으로 뛰어들려는걸 에스더가 검으로 막아 세우면 그레이프가 어깨의 보호대에서 와이어를 꺼내 벽으로 던져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피한다.
그걸 쫓아 달려들면 래피드가 에스더의 앞에 포탈을 열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에스더가 이동한 곳으로 그레이프가 떨어져 내린다.
래피드와 그레이프가 상위권 마법소녀들 중에서도 무척 사이가 좋은 친구 사이라는 사실은 유명하지만, 이건 사이가 좋은 정도를 넘어서 서로의 생각을 훤히 알고 있다고 해야 할 정도다.
그레이프가 원하는 움직임을 래피드가 해주고, 래피드가 원하는 공격을 그레이프가 해준다.
둘 중 어느 쪽이 어떤 변칙을 써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서로가 반응해 움직인다.
단둘이서 하는 거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수준의, 상대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연계가 이어진다.
“크윽…!”
결국, 그레이프의 검이 에스더의 팔을 깊게 베었다.
나를 안고 있던 팔이 갑자기 풀린다.
곧바로 에스더의 날개가 내 몸을 받치지만 래피드의 마법이 에스더의 날개를 베고 지나간다.
다급하게 내 발목을 붙잡은 꼬리가 그레이프의 검에 잘린다.
“어?”
“안돼!!”
정신없이 주변을 휩쓰는 마법과 검광에 시선이 팔려있다가 갑자기 내장이 들어 올려지는 부유감이 찾아온다.
놀라서 입을 벌린 에스더의 얼굴이 갑자기 쭈욱 늘어나며 시야가 일그러지고 비틀린다.
주변의 풍경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몸이 떨어져 내리고, 옆에서 나타난 그레이프가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레이프으으으!!”
불이 붙은 상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에스더가 곧바로 따라온다.
날개가 다시 붙고, 팔이 재생하며 꼬리가 새로 자라나고 있다.
평범한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재생속도다.
시야가 계속해서 일그러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에스더가 점점 멀어진다.
포탈을 열고, 그레이프와 나를 들여보내고, 포탈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서 에스더를 다른 곳에 꺼내고, 다시 나와 그레이프를 멀리 떨어뜨린 걸 확인한 에스더가 날아오고, 벗어나고, 날아온다.
곧바로 나를 데리고 벗어나면 에스더가 날아서 쫓아올까 봐 포탈을 사용해 거리를 벌린다.
어지럽게, 최대한 어지럽게…에스더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아아아아악! 이 쓰레기…도둑고양이 년!!”
서로 쫓고 쫓기는 쪽이, 공격하고 지키는 쪽이 바뀌었다.
에스더가 나를 지키는 것보다 그레이프와 래피드가 지키는 쪽이 더 능숙하다는 게 느껴진다.
움직임을 압박당해 공격을 피하지 못하게 되어 계속해서 내게 충격을 전해오던 에스더와 다르게, 그레이프와 래피드는 포탈과 방패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마법을 회피하고 공격을 빗겨내며 거리를 벌리고 있다.
마법소녀일 때부터 에스더는 구조보다는 괴수 퇴치에 특화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네거티브가 된 지금은 그 성향이 더욱 심해져 있다.
반면에 래피드와 그레이프는 상위권 마법소녀들 중에서도 구조, 보호, 방어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이는 마법소녀다.
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못 피할 것 같은 공격은 래피드가 방해하고, 혹시나 검이 닿으려 해도 그레이프가 방패로 살짝 튕겨낸다.
빠르게 비행해 앞을 막아서려 하면 래피드가 포탈을 열어 그레이프의 위치를 바꾼다.
위치가 계속해서 바뀌어서 공격하기도 힘든데, 맞춘다고 해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스더가 둘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래피드의 포탈 마법은 원래 입구와 출구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연결통로를 열어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되돌리는 마법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에스더가 그레이프와 래피드의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도록 방해한다.
“앵거…!”
포탈을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그레이프의 손길이 내 몸을 살핀다.
상처가 없는지, 이상은 없는지 구석구석 세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내게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그레이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를 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다행이야…다행이야….”
나를 끌어안은 순간부터 점차 진정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검은 마력이, 거품처럼 끓어올랐던 끈적한 기운이 점차 가라앉아 간다.
원래의 그레이프로 돌아오고 있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안긴 채 두 손으로 그레이프의 팔을 꽉 잡아 쥐었다.
“그, 그레이프….”
“어디 아파요?! 에스더가 혹시 이미 뭔가 한 거에요…?!”
누가 들어도 어딘가 아프다는 게 느껴질 만한 목소리로 부들부들 떨며 말하자 깜짝 놀란 그레이프가 내 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어딘가 아픈 곳은 없나 확인하려는 것 같다.
마력이 몸을 휩쓸고 지나가며 왼쪽 손등의 촉수가 몸을 움츠려 숨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야가 계속해서 비틀리고 땅과 하늘이 쉴 새 없이 뒤바뀌며 흔들린다.
에스더의 공격을 피하고 방패로 막아낼 때마다 방향감각이 망가지고 충격이 전해져 온다.
더는 한계다.
“토할 것 같아….”
이게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굉장한 연계라는 건 알겠는데…너무 어지럽다.
에스더한테 안겨있을 때는 그래도 압박당하는 입장이어서 흔들림이 덜했지만, 지금은 평범한 인간이 마법소녀의 팔에 매달려 버티기엔 좀 너무 심하지 않나 싶은 수준이다.
시야가 뭉개지고 다시 되돌아왔다가 일그러졌다가 늘어났다가 위아래가 바뀌고 흔들리고 기울어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가 빠르게 흔들리고 비틀리고….
“우웁…!”
속이 뒤집힌다.
그레이프와 래피드가 노리는 건 틈을 봐서 래피드와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그걸 계속해서 방해받으니 시선을 어지럽히는 것만 계속된다.
그 움직임이 너무 복잡해서 내장이 버티질 못한다.
“그레이프으으! 내 팬한테 무슨 짓이야!!”
“쫓아오지 마! 앵거 토하려는 거 안 보여?!”
“너 때문이잖아! 당장 놓으라고 이 도둑년아아앗!!”
에스더의 말대로 그레이프에게 잡힌 뒤부터 급격하게 어지러워지긴 했지만, 그건 그레이프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래피드가 포탈을 열어서 그렇고, 그레이프가 나를 안고 계속해서 움직여서 그렇고, 에스더가 래피드에게 가까워지는 걸 방해해서 그렇다.
이렇게 흔들리다가 피에 거품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지럽다.
내가 토하려는 모습과 에스더의 말에 동요하기라도 했는지 그레이프의 움직임이 갑자기 느려진다.
“래피드!”
나를 꽉 끌어안고 발로 지면을 파헤치며 멈춰선 그레이프의 외침에 맞춰 또다시 시야가 변한다.
발밑에 나타난 포탈이 그레이프를 집어삼키고 순식간에 래피드의 앞으로 이동시켰다.
그대로 그레이프가 내 몸을 놔주자마자 나는 래피드가 옆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웨에에엑…!”
토하고 있는데도 머리가 어지럽다.
어지러워서 토하고, 토하니까 더 어지러워서 또 토한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도 계속해서 뭔가를 토해낸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았을 텐데, 미묘하게 보이고 있어서 더 어지럽다.
흔들림이나 충격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있어 내장이 뒤집힌다.
당연히 버틸 수 없어야 할 감각이 아슬아슬하게 버텨내고 있어 더욱 괴롭다.
왜 보이지 않아야 할 마력이 보이고, 마법소녀의 움직임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걸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게 정상이어야 하는 것들이 내게 보이고, 인식되고 있다.
동체시력이 좋아지고 마력이 느껴지거나 보일 때마다 왼손이 욱신거리는 걸 봐서는 에스더가 내게 심어놓은 게 뭔가 관계가 있지 않나 싶지만, 왼손에 있는 게 대체 뭐길래 그런 게 가능한지는 모른다.
계속해서 헛구역질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도중, 갑자기 왼쪽 손등이 움찔거리며 팔이 차가워졌다.
토하느라 바빠서 이게 대체 뭘까 하는 의문도 품지 못하고 있는 내게 주사를 맞은 것처럼 내 피가 아닌 다른 액체가 몸에 흐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갑자기 어지럼증과 구토감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다.
“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머리가 개운하다.
왼손 핏줄이 움찔거리며 차가운 뭔가가 흘러들어오던 게 점점 줄어든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도 왼손에 심어진 녀석이 나를 회복시켜 줬다는 건 알겠다.
동체시력을 상승시켜주고 마력을 보이게 해주고 회복까지 시켜주다니….
나한테 해를 끼치는 것 같지는 않은데…이게 대체 뭐길래 이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