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별 (3)
온몸을 압박하는 살기가 눈을 찔러와 한번 눈을 깜빡인 내 시야에 에스더와 검을 맞대고 있는 그레이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인식할 수 없는 속도로 순식간에 날아와 에스더를 공격했고, 에스더는 그 공격을 막아냈다.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았던 움직임이 뒤늦게 뒤따라온 풍압과 함께 느껴진다.
“이 상태…마력…이거, 애쉬의….”
“내놔아아아아!!”
조금 놀란 목소리를 내는 에스더의 말을 자른 그레이프가 검을 맞댄 채 손에 쥐고 있는 방패를 들어 내리찍었다.
노리는 곳은 나를 안아 든 에스더의 어깨다.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는 건 느껴지지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 그 압력만으로도 온몸이 긴장될 만큼 공포심이 든다.
어깨를 잘라낼 것처럼 내리쳐진 그레이프의 방패를 에스더가 날개에 화염을 두른 채 막아내며 서로 양손이 막힌 채 대치한다.
이 가는 소리와 함께 그레이프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내놔아?”
공중에서 그레이프가 허리를 비틀어 에스더의 배를 걷어차려 하고, 에스더의 다리가 그 발을 막아낸다.
꼬리로 발목을 휘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그레이프가 머리를 흔들어 박치기한다.
하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는다.
에스더가 부드럽게 날개로 감싸 충격을 완전히 없애며 막아 버렸다.
“당장 놔…당장 놔…당장…당장…!”
모든 공격이 막힌 그레이프의 몸에서부터 마력이 끼긱끼긱 하고 오싹한 소리를 내며 흘러나와 에스더의 몸을 기어 올라간다.
이리저리 비틀리는 비명소리가 섬뜩하다.
날카롭게 변한 마력이 에스더의 팔을 억지로 잡아 뜯을 것처럼 날카롭게 변해 찔러 들어오고 있다.
검은 마력이 층을 이루며 쌓아올려져 금속으로 만들어진 뾰족한 가시 촉수처럼 변해 휘감겨 오고 있다.
그레이프가 일으키고 있는 현상이라는 걸 모르고 봤다면 마법소녀라기보다는 감염체나 네거티브의 공격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 같다.
마법소녀의 공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기괴한 광경이지만, 기괴한 걸로는 네거티브인 에스더가 더하다.
날개 끝과 마디에서 두꺼운 촉수가 나와 그레이프의 팔을 붙들어 압박하고, 공격한다.
에스더의 마력이 거꾸로 불타 흘러내리는 불처럼 끈적하게 타오르며 그레이프의 검은 마력을 집어삼킨다.
철골 구조물을 녹이는 고열의 용광로처럼 그레이프의 마력을 녹인다.
이 모든 공격과 대립이 내게는 전혀 닿지 않은 채 이루어지고 있다.
“평소보다 단단하네 그레이프? 내놓으라는 건…너도 나한테서 내 팬을 데려가겠다 이거지?”
“팬…?”
에스더의 말을 들은 그레이프의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리며 에스더의 머리와 가슴을 살핀다.
구속되어있지 않은 에스더의 붉은 머리가 불처럼 일렁거리며 흔들리고, 커다란 가슴이 내 얼굴에 맞닿는 걸 본 그레이프의 시선이 일그러진다.
“앵거가…네 팬일 리가 없잖아!”
“…앵거?”
“촉수 괴물 년이, 제멋대로 착각해서 손대지 마아아앗!”
그레이프도 래피드와 마찬가지로 나를 잡고 있는 에스더를 보고 이대로 끌고 가 촉수괴수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급하고 필사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느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진득한 마력이 검과 방패에서 뚝뚝 흘러 떨어지고 있다.
그레이프의 검이 으직으직 소리를 내며 에스더의 불의 검을 깎아 파고든다.
불을 깎는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에스더의 검이 조금씩 파먹히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에스더의 발이 차올려져 그레이프의 턱을 걷어차고, 맞닿은 검이 떨어지며 그레이프가 밑으로 떨어져 내린다.
“크윽…!”
지면에 부드럽게 착지한 그레이프의 손에는 대체 언제 잡은 것인지 모를 내 옷소매가 쥐어져 있었다.
내 옷을 잡고 일부러 에스더의 공격에 맞아 그대로 에스더의 팔에서 빼내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혹시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봐 내 몸을 꽉 붙들고 있는 에스더에게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것만으로 나를 빼내는 건 불가능했다.
“아아아아아! 에스더어어어어!”
손에 쥔 옷자락을 바닥에 내던지며 포효한 그레이프가 기괴하게 깨지는 목소리를 내며 또다시 덤벼든다.
그런 그레이프의 모습을 본 에스더가 불의 검을 겨누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뭔가 생각하는 것 같은 에스더의 검이 그레이프의 공격을 막는다.
방패를 앞세우고 에스더의 검을 막아낸 그레이프가 방패 뒤에 숨어있던 검을 번개처럼 찌른다.
조금 전과 같이 에스더의 어깨를 노린 검이 에스더가 날개를 살짝 틀어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빗맞는다.
그레이프가 추락하고, 다시 뛰어오른다.
검을 휘두르고 검에 막힌다.
방패로 막아내 검을 휘두르고, 검에 막혀 발길질에 당한다.
발길질을 피하고 검을 휘두르고, 날개를 살짝 움직여 피해 떨어진다.
그다음 돌격도, 그 후의 공격도 결과는 똑같다.
그레이프보다 근접전은 약간 떨어지고, 원거리 전에서는 래피드보다 조금 부족했던 게 마법소녀 시절의 에스더다.
지금의 에스더는 단순 근접전으로도 그레이프와 맞승부가 가능하며, 원거리 전에서도 래피드에게 지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날 수 있게 되니, 그레이프 혼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상대가 되어버렸다.
그레이프의 검격에서 평소와 다르게 묘하게 오싹한 기운과 함께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닿으면 치명적일 거라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강력해 보이지만, 에스더와는 상성이 안 좋다.
“고릴라가 점프도 잘하네?”
“닥쳐어어!”
그레이프의 공격은 전부 뛰어오르거나 쏘아져 오는 직선 공격이다.
그레이프는 하늘을 날 수 없고, 에스더는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다.
공중에서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건 마법소녀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밑에서만 뛰어오르는 게 아니라 일부러 벽으로 뛰어 벽을 차 궤적을 비틀기도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앵거한테서 손 떼!!”
공중에 있는 에스더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레이프의 공격이 변했다.
지면에서 발을 굴러 바닥을 깨뜨리고 바위를 공중에 띄워 올린다.
그대로 떠오른 바위를 하나하나 발로 차고 주먹으로 올려쳐 마력에 감싸인 탄환을 무지막지한 속도로 쏘아 보낸다.
수도 없이 많은 마력탄이 에스더의 날개를 노리고 폭풍처럼 쏟아져 날아온다.
날개를 먼저 노려 떨어뜨리겠다는 건 조금 전의 래피드와 완전히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래피드가 했던 것과는 탄환의 수가 다르다.
마력을 크게 끌어올리거나 마법을 연산할 필요도 없이 그냥 주변에 있는 돌덩이에 마력을 씌워 날려 보내기만 하면 돼서 그런지 연사하는 속도가 무지막지하다.
“슈팅 스타!”
평범한 네거티브거나, 괴수였다면 이것만으로 쉽게 날개를 찢겨 힘없이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더는 마법소녀로서 지금까지 이런 일을 몇 번이고 겪어봤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꼬리와 손가락 끝을 세워 날아오는 마력탄환을 하나하나 격추하기 시작했다.
폭발하는 탄환이 양손 끝과 꼬리 끝에서 쏘아져 에스더를 노리는 탄환만을 정확하게 맞춰 터트린다.
당연하게도 바위와 돌덩이 하나하나가 전부 터져나가며 흙먼지로 이루어진 안개가 생겨난다.
그 먼지 속으로 그레이프가 다시 달려들었다.
“큭!”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달려드는 궤적을 읽혀서 쉽게 피하니까 궤적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급하게 날개를 움직여 피하려고 해봐도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아차린 에스더의 검이 그레이프를 향해 휘둘러진다.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는데도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젖혀 머리카락을 베이며 피한 에스더에게 그레이프가 다시 벽면을 차고 되돌아온다.
다시 돌진해온 그레이프의 검에 불의 검을 맞댄 에스더가 몸을 비틀어 그레이프를 지면으로 떨어뜨린다.
“아까부터 앵거, 앵거…둘이 무슨 사이야?”
“네가 알 필요 없어!”
“너한테 물은 거 아니야 고릴라!”
나는 내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가 화가 잔뜩 난 에스더와 눈을 맞대게 되었다.
왼손이 욱신거리며 복잡한 감정이 전해져 온다.
“대답해 1번, 무슨 사이야?”
“하아아아!”
강압적인 분위기에 대답하기도 전에 래피드의 목소리가 들리며 그레이프가 다시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에스더가 검을 밑으로 겨눴다가 다급하게 몸을 비틀어 낙뢰처럼 떨어지는 그레이프를 피했다.
분명 밑으로 떨어졌던 그레이프가 다시 공중에서 나타났다.
“트윙클 트윈즈용 연계기…! 이 자식들이!”
에스더가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떨어지던 그레이프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어두운 색의 차원문 같은 것이 나타나 그레이프를 삼키고, 다른 방향에서 뱉어낸다.
에스더의 뒤에서 나타난 그레이프가 추락하던 힘을 그대로 받으며 공중을 밟아 쏘아지고, 빗맞는 순간 다시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어지러울 정도로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공간이 비틀린 것 같은 광경에 고개를 내려 지면을 보니 조용히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래피드의 모습이 보인다.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고 허공을 겨누며 그레이프의 움직임을 보조하고 있다.
공중을 잡아 굳혀 그레이프의 발판을 만들고, 에스더가 막아내기 힘들게 공간을 비튼다.
그레이프의 검이 빗맞을 때마다 공중에 포탈을 만들어 그레이프를 삼키고, 다시 다른 곳에서 뱉어내 공격을 재개한다.
“이 고릴라 원숭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