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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136화 (136/299)

< 136화 > 별 (2)

내 의지라기보다는 이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저절로 움직인 왼손이 눈, 코, 입을 한 번에 막아 누른다.

그 직후 에스더의 안에 한계까지 응축된 화염 폭풍이 강력한 폭발과 함께 지면을 녹이고 부서뜨렸다.

내 위치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붉은색의 화염과 검은 마력이 겹쳐 휘감긴 불기둥이 천장을 뚫고 올라가고 지하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가 통로를 녹여 뭉갠다.

용의 숨결처럼 뿜어져 나온 화염 기둥이 사라진 직후, 지하에서 화산이 터져 눈앞을 지나간 듯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유리처럼 반짝일 정도로 녹아내린 벽면이 조금씩 흘러내린다.

질척질척하게 달아오른 쇳물이 벽을 태우고, 발밑이 서서히 무너진다.

“와아아아! 악?!”

끈적해진 신발 밑창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이 사라지고 설 곳이 없어진 나는 붉은 용암 방울과 함께 뻥 뚫린 지하를 향해 떨어졌다.

그대로 낙하하던 내 몸은 떨어지던 도중 무언가에 걸리며 멈춰 섰다.

거칠게 옷깃이 잡아당겨 지며 어깻죽지에서 드드득 하고 실밥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하, 하악…! 하아…!”

쭈욱 늘어나던 주변이 멈춰 서며 내장이 오그라들어 위로 올라오는 오싹한 감각과 함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낙하하는 몸속에서 쪼그라든 폐에 급하게 산소를 채워 넣자 뇌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다.

죽을 뻔했다.

열풍에 조금 익어버린 폐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곧바로 왼손에서부터 흘러나온 알 수 없는 액체가 혈관을 채우는 게 느껴지며 통증이 줄어든다.

그 기묘한 감각에 왼손을 들어 올리고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린 나는 내가 무언가에 매달려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옆을 돌아봤다.

내 옷은 에스더의 날카로운 손톱에 걸려있었다.

날개를 펼친 에스더와 눈을 마주치고 얼굴에서 핏기가 다시 한 번 쭉 빠져나가는 걸 느낀 나는 오한을 느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에스더는 그런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며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게 말했다.

“팬 미팅 아직 안 끝났는데…어딜, 마음대로 가려는 거야…?”

오싹하다.

펼친 날개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가만히 멈춰서 있다는 것도 기괴해 보여 무섭게 느껴지지만, 바로 옆에서 녹아내리는 용암보다도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이 더욱 무섭다.

에스더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이 복잡한 감정을 머금고 내 얼굴을 바라본다.

“응…?”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에스더의 눈빛이 갑자기 풀린다.

어딘가에 고정된 시선을 따라 한쪽 손이 움직이고, 조심스럽게 내밀어 진다.

가까워진 에스더의 손이 내 볼에 닿으며 통증이 느껴진다.

“아얏….”

“…피.”

지하철이 무너져 내릴 때 잔해에 살짝 스치기라도 한 것인지 볼에 상처가 난 것 같다.

에스더는 내 볼에 맺힌 핏방울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려 닦아내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시선을 피하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길래…가만히 있었으면 안 다쳤잖아.”

“아니…오히려 거기 있었으면…더 크게 다쳤을 것 같은데….”

“하? 지금 말대답 하는 거야?”

“아닙니다….”

“건방지게.”

에스더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가만히 노려보더니 혀를 살짝 내밀어 손가락에 맺힌 피를 핥았다.

나는 맞는 말을 했는데도 인상을 쓰며 화내는 에스더에게 곧바로 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에스더가 지금 이렇게 혼자서 나를 잡고 있다는 건…래피드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의문을 품고 밑을 내려다보니 저 밑에서 빛나는 동그란 구체가 보인다.

“하아…하아…하아….”

래피드다.

가까운 거리에서 에스더의 마법을 막아내고 지친 듯 숨을 헐떡이고 있다.

조금 전의 마법을 막아내는 것으로 많은 양의 마력을 소모해버린 것 같다.

그와는 반대로, 에스더는 아직 마력이 남아도는지 점점 더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아니…끌어올린다기보다는 원래 있는 마력이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검은 마력이 거꾸로 타오르는 불처럼 에스더의 몸을 뒤덮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에스더의 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마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에…스더….”

어두컴컴한 지면을 배리어로 밝히고 서 있던 래피드가 머리 위쪽으로 손을 내밀어 에스더와 나를 겨눈다.

그대로 손이 쥐어지며 공간이 조여든다.

“절대, 못 가!”

순간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래피드의 마법을 태워 저항하려던 에스더의 시선이 내게 머무른다.

복잡한 표정을 인상을 쓴 에스더가 마력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조여드는 공간이 좀 더 강하게 쥐어지며, 에스더의 날개가 강제로 접힌다.

곧바로 래피드가 손을 잡아당기며 쥐어진 공간이 밑으로 끌려들어 간다.

“이게!”

빠른 속도로 이끌려 추락하던 에스더는 으득으득 소리를 내며 완력만으로 날개를 펼치고는 날개 끝에서 마력을 내뿜어 공중에서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거리가 가까워진 래피드에게서 날카로운 진동파가 셀 수 없이 날아와 에스더의 날개를 찢고 지나간다.

“큭…!”

에스더의 날개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올라 상처를 빠르게 치유시키고 있지만, 비행을 유지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는지 점점 더 밑으로 떨어진다.

양손을 뻗은 래피드의 손이 쥐어지며 내 몸에도 압박감이 전해진다.

나와 에스더를 따로 잡아서 떼어놓으려 하고 있다.

상처 입은 날개를 마법으로 쥐어 잡은 래피드의 손이 잡아당겨 지고, 에스더의 입에서 빠득빠득 하고 이 가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에스더는 천장에 뚫어놓은 커다란 구멍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기둥 속에서 날개를 반쯤 접은 상태로 반짝이는 먼지와 함께 느릿하게 내려갔다.

지상에 도착하자 녹아내린 철로와 유리처럼 반짝이는 지면, 떨어져 내린 용암이 식어서 생긴 동그란 바위들이 보인다.

“끈질기네, 래피드? 죽여 버린다?”

“날개랑 꼬리 생기더니…엄청 강해졌나 봐? 자신만만하네?”

점점 가까워지는 래피드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상태를 살펴보니, 조금 전의 공격을 바로 앞에서 받아내며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지쳐 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을 마주치고 있는 래피드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살짝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가 원하는 건 나잖아! 그 사람은 놔주고 나랑 싸워!”

래피드가 당당하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고 마력을 끌어올린다.

그에 호응하듯 에스더가 나를 꽉 끌어안으며 불의 검을 밑으로 늘어뜨렸다.

서서히, 조금씩 검의 열기가 줄어든다.

하얗게 타오르는 검의 일렁임이 점점 줄어들어 간다.

검날이 가늘어지고, 불이 압축된다.

“그래…죽여 달라 이거지?”

에스더의 모습을 본 래피드가 조금 전보다도 더 긴장하며 자세를 낮췄다.

불의 검이 점점 압축되는 게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것도 있지만, 나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고 구조가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점점 밝아지는 에스더의 불의 검이 빛 기둥보다도 더욱 밝게 빛나며 태양처럼 주변을 비춘다.

나는 에스더에게 안긴 채 점점 밝아지는 시야 속에서 조금 이상한 걸 발견했다.

바닥에 녹아내려 있는 게 전부 용암이라고 생각했는데…검은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는 덩어리들이 보인다.

당연히 아까 위로 도망치기 전에 마견, 촉수견 같은 감염체들을 죽여놓은 시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과는 다르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 형체의 시체들이다.

머리는 늑대, 몸은 인간처럼 생긴…늑대인간의 시체가 수도 없이 쌓여있다.

몇십 마리를 넘어서 백 마리는 될 듯한 무시무시한 숫자의 늑대인간 시체가 불타 없어지고 난 뒤, 그 밑에 깔려 있던 마견 시체가 드러난다.

쉘터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늑대인간이 나타난 것인지 주변이 전부 늑대인간의 시체들뿐이었다.

전부 반으로 갈라져서, 찢겨서, 터져서 죽어있다.

불탄 시체를 따라 길이 만들어지고 어두웠던 공간이 점점 더 밝게 빛난다.

깔려있는 시체가 장작이 되어 더욱 강하게 타올라 불의 길이 무너져내린 바위 더미에 이어진다.

그 순간, 바위 더미가 폭발했다.

“뭐야?!”

솟구쳐 오른 흙과 먼지 속에서 절규가 터져 나오며 울음소리와 마력이 주변에 파문을 일으켰다.

래피드의 시선도, 에스더의 시선도 한 곳으로 고정된다.

살이 떨릴 정도로 강렬하게 증폭된 마력이 주변을 잠식해 들어간다.

“왜…왜…어째서…!”

바닥으로 흘러내린 마력이 막대한 양에 밀려 바닥을 치고 솟구쳐 오른다.

검은 빛의 질척한 마력이 피부에 닿아 촉각이 과할 정도로 예민해져 마력이 닿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 속에 묘한 감각이 이어지며 마력에 새겨진 감정이, 절망이 느껴진다.

그레이프에게서 나오고 있는 마력이 묘하게 익숙하다.

검은빛을 띠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앉는 무거운 마력….

바로 옆에서, 에스더에게서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마력이다.

미세하게 다른 듯 서로 뒤섞이지 않고 부딪히고 있지만, 느낌이 너무 비슷하다.

“뭐야…? 그레이프…?”

“그레이프?! 왜, 왜…?!”

마력으로 흙과 먼지로 이루어진 갈색의 안개를 밀어내고 나타난 그레이프를 알아본 에스더와 래피드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둘 다 그레이프가 나타나서 놀란 게 아니다.

그레이프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느끼고 놀라고 있다.

“쉘터는…내가, 내가 쉘터에…!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숨 막힐 정도로 짙은 마력이 내 몸에 부딪혀 긁히고 있다.

모래에 긁히는 것처럼 아프다.

그때, 고개를 떨어뜨리고 검과 방패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던 그레이프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폭풍처럼 뿜어내던 마력의 파동이 멈추고,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진다.

“앵…거…?”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레이프의 눈이 기괴할 정도로 검은빛에 물들어 있다가 서서히 원래 내가 알던 눈빛으로 돌아왔다.

활짝 웃는 얼굴이 되었다가 나를 보고 있는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더니, 천천히 움직여 에스더를 향한다.

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건지 점점 인상을 써가는 그레이프의 눈가가 떨리며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아아아아…! 너…너…너…!”

그레이프는 에스더를 노려보며 검 손잡이를 꽉 쥐고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고체화된 마력을 검날에 덧씌웠다.

분노와 함께 공기를 찢을 정도로 크게 소리 지른 그레이프의 발이 지면을 박차며 으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탄환처럼 날아온 그레이프가 에스더에게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어딜, 손 대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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